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10일(현지시각) 영국 콘월 카비스베이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앞두고 보리스 존슨 총리와의 회담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대통령이 11~13일(현지 시간) 열린 G7 정상회의를 무대로 ‘미국의 귀환’을 각인시켰다. G7 정상들은 13일 발표된 공동성명에서 중국의 아킬레스건들을 저격했다. 신장 위구르부터 홍콩 민주화 탄압, 대만 압박, 불공정 무역관행 등을 비판했다. 이에 앞서 미 백악관은 홈페이지를 통해 G7 정상의 만남을 소개하면서 ‘세계를 위한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 for the World, 약칭 B3W)’을 강조했다. 중국의 패권 도전과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를 의식한 메시지다. 바이든은 트럼프처럼 튀지도 않았고 상대방을 몰아세우지도 않았다. 하지만 동맹국들의 동의를 얻어나가면서 중국을 묵직하게 압박하고 있다. 이번 G7 정상회의는 한국에도 큰 의미가 있다. 세계 10위 경제대국의 위상에 걸맞게 호주, 인도, 남아공과 함께 초청국 자격으로 참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개도국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지원을 위해 올해, 내년 각각 1억 달러 상당을 돕겠다고 밝혔다. 미국정치를 오랫동안 관찰해온 유정훈 변호사는 오바마·트럼프 시절과 비교해 가면서 바이든의 외교 행보를 짚어본다. [편집자]

#G7 회담은 동맹국 리더의 컴백 무대  "美 국제정책 신뢰한다" 58%p 증가#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무력충돌 위기  막후서 정전 이끌며 외교역량 과시#中 일대일로 대응할 B3W 프로젝트  백신 공급 등 민주주의 동맹 결속 다져#오바마·트럼프 때보다 세련된 행보   이상-현실 간극 메워 레거시 남길까

2009년 1월 취임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첫 해외순방 행사는 그 해 4월 런던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과 뒤이어 열린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담이었다.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으로 대서양을 건너, 방문국 정부에 일절 의존하지 않고 전용차량 ‘비스트’(Beast)부터 모든 장비·인력을 실어날랐다. 이른바 '제국의 위엄'을 과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의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다.

G20은 1999년 출범됐으나 실제 정상회담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008년 11월 워싱턴 D.C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을 위해  처음 열었다. 부시의 후임인 오바마는 미국이 초래한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다른 나라의 협력을 요청하는 입장이었다. 나토 정상회담에서도 새 정부의 아프가니스탄 전략에 대한 동의를 얻었지만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중동정책 실패와 이라크·아프간 전쟁에 대한 유럽의 비판을 감내해야 했다.

당시 회담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오바마의 현실인식이다.

“모든 대통령은 전임자의 선택과 실책을 안고 출발하며, 업무의 대부분은 그렇게 물려받은 문제를 처리하고 예상치 않은 위기에 대응하는 것이다. 규율과 목표의식을 가지고 이를 제대로 처리해야 비로소 미래에 영향을 미칠 정책을 수행할 동력을 얻게 된다.” (Barack Obama, <A Promised Land>, pp.345-346)
10년도 더 전의 얘기를 다룬 오바마 회고록 내용으로 필자의 칼럼을 시작한 것은 G7 정상회담을 위해 첫 해외순방에 나선 바이든 대통령의 처지가 비슷하게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물려받은 문제의 해결: “미국이 돌아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2월 4일 국무부를 방문해 취임 후 처음으로 대외정책 관련 연설을 했다. 여기에서 “미국이 돌아왔다. 외교가 복원된다.”(America is back. Diplomacy is back.)는 선언과 함께 미국의 신뢰도와 도덕적 권위를 회복하겠다고 천명했다. <관련 국무부 보도자료>트럼프 정부의 외교정책, 특히 동맹국과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2018년 6월 캐나다에서 열린 G7 정상회담에서 찍힌 아래 사진일 것이다. 의자에 앉은 트럼프를 상대로 메르켈 총리와 아베 신조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등이 제각각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다. 개인 사이에서도 좀체 포착하기 힘든 어색하고 긴장된 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캐나다 퀘벡주 샤를부아에서 2018년 6월 9일(현지시간)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오른쪽)이 팔짱을 낀 채 의자에 앉아 있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운데 왼쪽)가 두 손으로 테이블을 누르며 트럼프를 노려보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정부가 남기고 간 문제, 즉 미국 우선주의, 고립주의, 일방적 외교노선의 후유증을 해결하기 위해 ▲전통적 외교 복원 ▲미국의 강력한 개입과 리더십▲동맹국 간의 협력을 선언했다. 바이든이 처음 데뷔한 이번  G7 정상회의는 트럼프 시대를 뒤로 하고 중국·러시아에 맞서는 '민주주의 동맹국'의 리더로서 미국이 돌아왔음을 선언하는 무대였다. 미국의 복귀를 화제로 사뭇 다른 분위기에서 회담이 진행되었고, 유럽 국가 정상들은 외교의 복원을 선언한 미국 대통령에 대해 안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바이든은 또한 외교 역량을 동원해 중국 견제 전략을 착착 진행 중이다. <관련 CNN 보도>

지난 11일 영국 콘월 카르비스베이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산책로를 걷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올해 78세인 바이든은 취임 이후 다섯 달의 짧은 시간에 '묵은 생강'이 얼마나 매운 지 잘 보여주고 있다. 최근 발표된 퓨 리서치 센터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바이든 정부 출범과 함께 주요국 국민들의 미국 및 미국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급격히 높아졌다. <Pew Research Center 조사 결과>3월 12일부터 5월 26일까지 16개국 성인 1만 6254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는 미국에 우호적 시각을 보인 응답자가 62%였다. 트럼프 집권 마지막 해의 34%에 비해 28%포인트 뜀박질했다. 반면 미국에 대해 '비(非)우호적'이라는 응답은 36%로 작년보다 27%포인트 떨어졌다. 미국 대통령의 국제정책 결정에 대한 신뢰도는 극적으로 달라졌다. '신뢰한다'는 응답이 75%로 무려 58%포인트나 높아졌다. 개별 정책 측면에서도, 미국의 WHO 탈퇴 철회, 파리기후변화협약 복귀 등에 대한 지지율이 85%를 넘었다. 한마디로 바이든 취임 이후 미국에 대한 기대감이 엄청 높아졌다.

냉혹한 현실정치가 지배하는 국제관계에서, 각국을 상대로 한 호감도 여론조사의 의미는 얼마든지 평가절하될 수 있다. 그러나 중국·러시아처럼 위협이나 강제력을 구사하지 않고서도 상대방을 설득해 동의를 얻어내는 소프트파워 자체를 부정할 순 없다. 어느 국가의 외교역량은 하드파워, 소프트파워 등을 포괄하는 국력의 총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에 대한 신뢰 회복은 국제무대에서 바이든 정부의 운신 폭을 넓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돌발 위기의 해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정전 유도

바이든 취임 후 대외정책 분야에서 예상치 않게 발생한 위기는 지난 5월 8일 발발한 이스라엘과 하마스(팔레스타인 무장단체) 간의 무력충돌이다. 열흘 넘게 지속된 교전으로 인해 팔레스타인 주민 200명 이상이 사망했고 상당수는 여성과 어린이였다.

전 세계가 바이든 정부의 후속 대응을 주목하는 가운데, 바이든은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지지하며 일단 이스라엘 편을 들었다. 트럼프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입장 표명에 국내외에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상당수 민주당 의원은 바이든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스라엘의 민간인 공격은 편들어 주면서 신장-위구르 인권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중국의 비아냥도 들어야 했다.

하지만 바이든은 막후에서 이스라엘 정부를 움직였다. 겉으로는 국내 정치에서 위기에 몰린 네타냐후 총리의 체면을 세워 줬지만, 물밑으로는 상황을 더 이상 악화시키지 못하도록 압박했다. 그렇게 양측의 정전을 이끌어냈다. <관련 Politico 보도>  정전 합의 후에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을 현지에 보내 상황을 관리했다. 팔레스타인 난민을 위한 자금지원을 약속하고, 트럼프 정부가 폐쇄하기 전까지 사실상 미국의 팔레스타인 대사관으로 기능했던 예루살렘 총영사관을 다시 여는 등 반대편 당사자인 팔레스타인에 대한 배려 또한 잊지 않았다. <관련 ABC News 보도>

이는 2014년에 2000명 넘게 희생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면 공격에 대한 오바마의 대응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관계가 껄끄러운 네타냐후를 상대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겨 오바마는 적극적인 막후 외교에 나서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은 당시 부통령으로서 이를 지켜보았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오랫동안 경험을 쌓아온 바이든은 교묘한 줄타기를 통해 돌발적인 위기 상황을 잘 수습한 것으로 평가된다.

국가 역량의 집결: 중국 견제를 위한 민주주의 동맹

요즘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우선순위는 단연 중국과의 패권 경쟁이다. 다른 외교 이슈를 미중 관계의 종속변수로 볼 필요는 없으나, 바이든 정부의 대외정책은 중국 문제에 집중하면서 다른 변수들이 역량을 분산시키지 않도록 최대한 상황을 관리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정부 후반에는 유럽·중동 위주의 외교에서 벗어나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를 선언했다. 하지만 이라크·아프간 전쟁이 해결되지 못했고 ‘아랍의 봄’ 이후 불안한 중동 정세가 지속돼 정작 아시아 외교 및 중국 견제에 전력을 쏟지 못했다. 이런 경험은 바이든에게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예상대로 G7 정상회의에서 바이든은 중국에 대한 민주주의 국가들의 공동 대응 원칙을 관철시켰다. 정상회의 뒤 발표된 공동성명에선 중국의 오랜 아킬레스건인 신장 위구르 인권 탄압을 비롯해 홍콩, 대만 문제에 관한 내용이 거론됐다. 중국 측은 "내정 간섭이자 핵심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강력 대응할 뜻을 밝혔다.

또한 중국이 국가 주도의 해외투자를 내세워 개발도상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는데 맞서 저개발 국가의 인프라 지원을 내용으로 하는 ‘Build Back Better World for the World’(B3W)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중국의 일대일로(BRI: Belt and Road Initiative)에 본격적인 맞불작전을 놓는 셈이다.‘Build Back Better’는 바이든의 3대 사회∙경제 프로그램 American Rescue (코로나19 구제), American Jobs (인프라), American Families (교육 투자)를 통칭하는 표현이다. 이것을 야심차게 대외정책에도 적용해 바이든 정부만의 고유한 성과와 업적을 남기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관련 Reuter 통신 보도> 또한, 저개발 국가에 대한 백신 공급 연대 또한 이번 G7 회담에서 논의했다. 이는 눈앞의 지구적 위기인 코로나19 해결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과 서방 선진국들이 백신 공급에 적극 나서지 않을 경우 중국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깔려 있다. 한국도 이런 국제적 연대와 개도국 지원에 참여했다. 다만 청와대는 '중국을 겨냥한 이번 공동성명은 G7 초청국인 한국과 무관하다'고 밝힌다.

G7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의 리더십 복귀를 선언한 바이든은 중국 견제를 위한 기본적 합의를 이끌어 내고, 전통적 동맹국들을 정렬시키고 결속을 다짐했다. 향후 국제 정세를 주도하기 위해 의미있는 첫발을 내디딘 것이라 평가된다.

한편, 정상회담에 앞서 G7 재무장관 회담에서 각국은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을 15%로 정하고, 법인세 부과 권한을 기존의 고정사업장에서 매출발생지역 기준으로 한다는 중대한 합의를 이루어냈다. 이것 또한 역사적 의미가 작지않다. <관련 Washington Post 보도>  각국이 국내 인프라 투자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국제협력을 통해 미국 기업들이 이용해왔던 역외 탈세∙절세를 막겠다는 구상을 뒷받침한다. 이미 엄청난 영향력을 갖게 된 빅테크 기업들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외교안보에서 어떤 업적(legacy)을 남길 것인가?

바이든은 국내정치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어젠다는 없으나 외교안보 분야의 식견과 경험을 갖춘 정치 리더로 인식돼 왔다. 상원의원 시절 오랜 기간 외교위원회에서 활동했고 외교위원장을 두 차례(2001~2003년, 2007~2009년) 역임했기 때문이다. 나이가 젊고 의정경력이 짧은 오바마가 2008년 대선 때 러닝 메이트로 바이든을 선택된 이유도 외교안보 경험이 적은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었다.

1972년 상원의원 당선 이후 50년 가까이 워싱턴 정가를 누벼온 바이든은 기존 정치의 문법에 충실하면서도 예상하지 못했던 수준의 과감한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관련 피렌체의 식탁 칼럼>대외정책에서도 전통적 외교와 동맹관계를 복원하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 해결을 위해 막후 역할을 하며 괜찮은 출발을 보였다. 트럼프를 꺾기 위한 민주당의 고육지책처럼 보였던 ‘올드 보이’ 바이든은 취임 이후 남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세대교체를 말할 땐 나이 못지않게 정책의 전환이 더 의미있다는 것을, 정치 리더의 참신성을 말할 땐 경력보다 실력과 콘텐츠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다시 오바마 회고록 속의 얘기로 돌아가보자. 2009년 12월 코펜하겐 유엔 기후변화 회담에 참석한 오바마는 교토의정서를 무력화시킨 전임 정부 때문에 ‘미국이나 잘 하라’는 냉소적인 분위기에서 회담을 이끌어야 했다. 화담 후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오바마는 생각에 빠진다.

“내가 맡고 있는 미국 대통령직이 가진 막강한 힘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이루어야 하는 목표와 (회담을 하는) 하루 혹은 좀 더 길게 한 주 혹은 한 해의 시간을 들여 실제 이룰 수 있는 것 사이에는 언제나 깊은 간극이 있다.” (Barack Obama, <A Promised Land>, p.516)
환경 이슈에 적대적이던 부시 정부의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오바마는 인류문명을 위협하는 기후변화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8년이라는 긴 시간을 들여 임기 마지막 해인 2016년에야 파리기후변화협약 체결을 결국 성사시켰다. 미래를 생각하는 리더가 국내 정치와 글로벌 이슈를 연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할 때 어떤 성과를 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바이든에게 주어진 외교적 과제 또한 비슷하지 않을까.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대응해 B3W를 출범시켰지만, 미국·캐나다·영국과 유럽연합(EU) 회원국의 입장에는 온도차가 있고, 투자규모, 재원조달 및 배분 방법 등의 구체적 내용을 발전시켜야 한다. <관련 New York Times 보도>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 또한 국제적 합의를 통해 각국의 세법에 중대한 변경 내지 제약을 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본 합의가 어떻게 실제 디테일(detail)로 구현되는지 지켜봐야 한다.

바이든은 취임 이후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복원을 꾀하면서 오바마, 트럼프보다 훨씬 조용하고 세련된 행보를 과시했다. 미국의 국력이 예전같지 않고 중국의 추격과 도전이 거센 상황에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극복해 나가며 바이든이 어떤 레거시를 남길지 기대된다.


유정훈 필자

변호사(한국 및 미국 뉴욕 주). 2011년 미국 연수 당시 버락 오바마에 맞설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이 한창이어서 미국 정치·선거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페이스북에서 꾸준히 미국 정치와 법에 관한 ‘덕질’을 계속하고 있다. 메디치미디어가 출간한 <상 차리는 남자? 상남자!>를 공저했다. 각종 언론매체의 칼럼니스트로도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