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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형 칼럼] 초·재선들은 ‘고연봉 샐러리맨’?…충청 아닌 청년층이 캐스팅보트 쥘 것

by | 2021년 6월 13일 | 선거의 시간, 정치

지난달 17일 오후 광주 망월동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더불어민주당 초선 모임인 ‘더민초’ 소속 30여 명이 참배단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21대 국회가 개원한지 만 1년을 넘었다. 많은 바람과 기대를 안고 출발했지만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 300명이 제 역할을 잘했는지 의문이다. 정가 일각에선 초·재선 의원들이 고액연봉을 받는 샐러리맨에 안주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3선 이상 중진 의원들은 연공서열주의에 빠져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는 것도 버거워 보인다. 그런 현실의 반작용으로 국회의원선거에서 세 번 떨어진 ‘36세-0선 야당 대표’가 탄생하지 않았나 싶다.
<피렌체의 식탁>은 1983년생인 한윤형 필자(38세)의 글을 싣는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보다 두 살 더 많다. <추월의 시대> 공동저자인 그는 제헌국회 시절에 빗대 21대 국회의 초·재선들에게 분발을 촉구한다. 또한 ‘이준석 현상’으로 인해 내년 대선의 승부처가 충청이 아니라 ‘청년층’의 표심에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한국정치 발전을 위해선 그 현상이 그나마 더 나을 거라고 토로하면서다. [편집자]

#21대 국회 개원 당시 ‘초선 돌풍’
  1년 뒤엔 ‘샐러리맨’ 정치에 빠져
#세대 포위망 걸려든 민주당 지지층
  이준석, 민주당에 ‘냉소적’ 세대 대변
#캐스팅보트, 충청서 청년으로 이동
  포퓰리즘은 ‘패배자들’ 동원용인가?
#미래세대 위한 경쟁에서 대선 결판
  여야, 한국사회 변혁 위한 싸움을

1945년 해방 이후 신생 대한민국의 정치상황을 다룬 책을 봤을 때, 초선 국회의원들의 대단한 자부심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적이 있다. 김진배 선생이 쓴 <두 얼굴의 헌법>은 우리 헌법이 뭔가 미심쩍은 방식으로 형성되고 왜곡되었는지를 다뤘지만, 그 책에 나온 초선 국회의원들의 기개만큼은 대단했다. 당시 대한민국의 유권자 수는 대략 2000만 명, “1948년 5월 10일 누구 할 것 없이 한날한시”에 선출된 국회의원은 198명이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10만 선량’이라 일컬었다. 당시 선거구를 유권자 10만 단위로 책정한 데서 비롯된 말이다.

5·10 총선거의 소장파들은 최고령 이승만 의원(당시 74세)에 대해서도 ‘너나 내나 같은 초선인데’와 같은 당당한 태도를 견지했다. 신생 대한민국은 지금의 대한민국과는 비교할 수 없이 작은 나라였지만 국회의원의 선출 과정에 실린 ‘대의(代議)’의 권위는 오히려 지금보다 두터워 보인다.

‘10만 선량’에서 강경파에 순치된 월급쟁이로?

그로부터 73년이 지난 지금, 우여곡절 끝에 세계 주요국으로 성장한 한국의 국회의원(총 300명)은 10만 유권자가 아니라 거의 20만 유권자의 선택을 받는다.
하지만 국회의원 개개인이 독립된 헌법기관으로서, 독립적인 자긍심을 품고 활동하고 있을까? 답변은 역시나 부정적이다. 과거와 달리 지역구 민심보다 중앙당 정치를 따르는 지지층의 향방이 당락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당 지도부와 정당의 체질이 갈수록 강경파를 대변하는 것으로 고착화되어 의원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리 많지 않다.

몇몇 정치학자들은 여기에서 ‘민주주의의 후퇴’를 읽어 내거나 지적한다. 하지만 현재 상황을 1948년 ‘10만 선량’들이 가졌던 상황에다 억지로 대입해볼 수는 없다. SNS와 유튜브 등 뉴미디어 환경의 변화, 팬덤 정치, 경제사회적 발전 등으로 인해 보수·진보 지지층의 대립이 중간으로 수렴되지 못하고 양극단으로 벌어지는 현상은 한국에서만 관측되는 것도 아니다.

불과 일 년 전, 제21대 국회가 개원되면서 ‘초선’ 돌풍이 관심을 끌었다. 재적 300명 의원 중 초선은 151명으로 과반이 넘었다. 기존의 여의도 정치문법에 구애받지 않고, 정파를 초월해 만나고 정당 갈등 구조를 넘어서는 신선한 물결을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유권자들의 바람과 달랐다. 151명 초선 의원들은 대부분 당 지도부의 의견에 지극히 순치된 ‘샐러리맨’ 정치에 머물러있다.

여의도의 ‘선수(選數) 우선’. ‘나이 우선’, ‘경력 우선’의 관행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21대 국회의 초·재선들은 연공서열 질서에 저항하는 모습조차 아예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튀는’ 행동이 있었다면, 민주당 김남국 의원으로 표상되듯 오히려 당내 강경파 노선을 적극 옹호하는 순간에 두드러졌다.
정세균 전 총리가 지난 달 25일 이준석 당대표 후보와 관련된 얘기를 하다가 ‘장유유서’를 강조한 것은 결코 우발적인 게 아니다. ‘국민의힘 사람들이 그렇게 볼 거라고 말한 것이다’란 점에서 취지가 왜곡 전달된 부분이 있지만, 여야 정당에서 지극히 순치된 초·재선 의원들을 4~6선급 중진들이 그리 겁내지 않는다는 숨은 진실을 드러냈을 뿐이다.

혹자는 한국 사회가 발전하는 가운데 정치 영역이 엘리트주의에서 멀어진 것이 오히려 ‘합의’의 전통을 무너뜨렸다고 말한다. 여야 의원들이 대부분 법조인, 학생운동 리더, 교수, 언론인 등 뻔하게 제한한 풀(pool)에서 충원될 때엔 서로 간에 공통분모가 있었다. 그들끼린 학맥(學脈)을 비롯해 연수원이나 학생운동 정파에서 미리 맺어진 친분이 있었다. 초·재선일 경우 정당의 지침보다 자신들의 기존 인맥을 중시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각 정당의 초선 충원 방식은 사뭇 다양하다. 그들은 더 이상 이전의 삶에서 완벽한 접점을 찾기 어렵다. 법조인이라도 고시·연수원 출신이 아니라 로스쿨 출신이며, 학생운동 출신이라도 전국 차원의 중앙조직에서 엮인 경험이 없다. 초·재선 의원들이 ‘참신함’과 ‘합의정치’의 동력이 되지 못하고 각자 고립되어 무기력한 고액 월급쟁이로 전락한 이유 중 하나가 될지 모르겠다.

세대 포위망에 걸려든 민주당 지지층

이렇게 초·재선, 그러니까 국회의원으로 일한지 5년 이하인 정치인들이 샐러리맨처럼 무력해졌을 무렵 이른바 ‘이준석 돌풍’이 몰아쳤다. 초선 밑의 0선인 이준석이 제1야당의 당대표가 되는 데까지 두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는 지난 4월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2030세대의 민주당 이탈 현상(보수화 성향)을 자극하면서 4·7 선거 승리의 전리품을 두둑하게 챙겼다. 처음에는 2030세대 남성의 ‘반(反) 페미니즘’ 정서에 밀착해 보수 지지층을 확장했지만 지금은 단지 그 전략만으로는 ‘이준석 현상’을 설명할 수 없게 돼버렸다. ‘36세 야당 당대표’를 선출한 보수 진영이 2022년 3월 대선 구도에 던지는 물음은 다음과 같다.
“국민의힘이 2030 청년층에게 어필하면서 민주당 지지층을 세대포위망 안에 가둘 수 있다면 우리가 승리하게 될까?”

필자는 그 물음을 ‘세대 구도 공식’으로 간단히 풀어보려 한다.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은 30대 후반부터 50대 초반까지라고 말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1967년부터 1986년에 태어난 20년 구간의 35~54세일 것이다. 그들은 요즘 위·아래 세대에게 포위될 위기에 처해 있다. 흔히들 하는 세대 구분으로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을 ‘86세대’라고 표상한다. 86세대란 좁게는 1963~1968년생 정도, 좀 더 넓게는 1958년~1972년생 정도의 대졸자들을 일컫는다.

그러나 이들 세대의 대학 진학률이 당시 전문대학까지 합쳐도 채 30%를 넘지 않았기 때문에,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을 이 연배라고 보기는 어렵다. 각종 여론조사를 분석하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4년간 가장 든든한 지지층은 단연 40대이며, 30대와 50대가 그에 조금 못 미친다. 좀 더 건조하게 분석한다면 30대, 50대가 40대와 별도의 특성을 지닌다기보다는, 30대의 절반인 후반, 50대의 절반인 초반이 40대와 정치적 성향이 비슷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를 현 시점에서 볼 땐 만 35~54세 집단이다. 공교롭게도 이준석 대표가 1985년생으로 그 끄트머리에 속한다. 그의 동년배 중에선 민주당 지지층이 더 많을지 몰라도 ‘이준석 돌풍’은 분명히 민주당에 냉소하는 그보다 젊은 세대(30대 초반~20대)의 감수성을 표상하는 것이다.

사실 이 20년 구간(35~54세)의 인구 총합은 적지 않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2021년 5월 기준)에 따른다면 무려 1631만 명이나 된다. 그보다 먼저 태어난 이들의 인구 총합인 1684만 명에 거의 엇비슷할 정도다.

그러나 그 아래에도 많은 젊은이들이 있다. 내년에 투표권(만 18세 이상)을 갖게 될 17세부터 시작해 34세까지의 인구, 즉 1987~2004년생 인구를 같은 기준으로 합산해보면 1141만 명쯤 된다. 비록 그 위 연배에 비해 규모가 훨씬 적기는 하지만, 두 연배 사이에서 캐스팅보트를 취하기에는 전혀 무리가 없는 숫자다. 민주당은 이 연령대에서 절반 이상의 지지를 얻어내야 내년 3·9 대선 승리를 담보할 수 있는데, ‘이준석 현상’의 후폭풍을 감안하면 그것이 너무나 녹록치 않아 보인다.

필자가 참여한 졸저 <추월의 시대>에서 6명의 저자들은 20대80 사회에서 ‘80을 위한 정치’를 내세웠으나, 그 실질적인 방법론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우리는 ‘80을 위한 정치’를 방해하는 모든 요소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검토했으며, 이를 위해 한국 사회의 정치적 세대론과 주체를 횡단하고자 논의를 거듭했다.

책 출간을 준비할 때 우리들이 만지작거리던 책 중 하나가 상탈 무페의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2019)이다. 그러나 이 책을 굳이 인용하지는 않았다. 무페의 논의를 인용한다고 그게 대안이 될 리 없다는 생각도 있었고, 저술 작업 자체를 일종의 ‘정치적 실천’으로 삼아서 더 많은 독자들을 만나는 일이 중요하다고 봤다.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4월 3일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서울 서초구 잠원동 고속버스터미널 인근에서 청년들과 함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캐스팅보트는 ‘충청’에서 ‘청년’으로 이동

이 책에서 상탈 무페는 에르네스토 라클라우를 인용해 포퓰리즘을 “사회를 두 진영으로 분리하는 정치적 경계를 구성하고, ‘권력자들’에 맞선 ‘패배자들’의 동원을 위한 담론 전략”이라고 정의한다. 이런 정의를 따른다면 엘리트주의를 표방하지 않는 경우에 거의 모든 유효한 정치행위가 포퓰리즘으로 수렴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것을 한국정치에 대입해보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민주당 주류에선 ‘권력자들’이 ‘검찰 적폐’와 ‘사법 적폐’로 정의되고 있는 반면, 국민의힘 주류에선 ‘운동권 독재세력’으로 정의된다. 정의당에선 양당의 기득권이 사실상 비슷한 존재임을 입증하는데 시간을 쏟고 있다.
이에 비해 이준석이 대변하는 주장의 흐름은 ‘권력자들’의 목록에 ‘페미니스트들’과 그들을 보위하는 ‘내로남불의 86 운동권들’을 포함시킨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경우엔 권력자들의 목록을 그때그때의 민생 화두로 바꿔가면서 독특한 포퓰리즘 정치를 실천하는 것 같다.

필자가 느끼는 가장 큰 문제는 ‘권력자들’과 ‘패배자들’이 누군지를 입증하는 사회적 논의들이 점점 더 폐쇄적이고 공격적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각 당파의 개념 정의(?)는 이제 일종의 ‘밈’처럼 기능하며, 지지층들은 짧은 문구와 사진만으로 이미 믿고 있는 정치적 구도에 대한 자신의 신뢰를 재확인한다.

이런 환경 속에선 과거의 담론 공식에 따라 ‘가장 정상적이고 온건한’ 발화(發話)를 하는 이들은 정치적 고난을 겪게 된다.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서 컷오프 되어 고배를 마신 김웅 의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서 이준석 후보를 비판했으나 그다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던 이탄희 의원의 사례가 이에 포함된다고 하겠다. 정상적으로 담론을 ‘논의’하려는 노력은 일종의 변형된 엘리트주의로 규탄받기 십상이다.

미래세대를 대변할 어젠다 경쟁을 벌여야

하나의 희망이 있다면, <추월의 시대>에서도 집중 묘사된 한국 사회의 세대론적 당파싸움에서 청년층이 일종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과거 한국 정치의 갈등 구도가 ‘지역’이었을 땐 캐스팅보트가 ‘충청’으로 귀결됐다. ‘영남정당’과 ‘호남정당’의 대립에서 ‘충청’ 표심을 잡기 위해 양당이 진력했던 것은 국가 발전 차원과는 거리가 좀 멀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정수도 이전 공약 정도가 ‘캐스팅보트 충청’을 공략하면서 국가대계에 대한 고민을 담았던 사례였을 뿐이다.

그래서 한국 정치의 갈등 구도가 ‘세대’로 바뀌고 캐스팅보트를 ‘청년층’이 쥐게 된 현실은 우리 사회의 발전과 변혁을 위해 결코 나쁘진 않을 것 같다. 비록 한국 사회가 저출생-고령화의 압박을 거세게 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현실정치는 미래세대를 위한 어젠다 경쟁을 할 수밖에 없어서다. 요컨대 어느 정당이든 차기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청년층의 표심을 더 많이 얻는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국회의원과 대통령의 임기 불일치, 권력구조에 따른 ‘대의정치’의 위기 역시 이러한 기본에 집중한 이후에야 제도 개혁 및 개헌 관련 문제로 확장해나갈 단초가 보일 것이다. 중앙정치 흐름에 휘둘려 ‘10만 선량’의 권위가 위협받는다면, 각각의 의원들이 ‘청년층’이란 캐스팅보트 집단을 대변하기 위해 노력해보는 것이 그나마 미래세대를 위한 정치 변혁을 촉진하는 정치적 지혜일 수 있겠다.

※알림
<피렌체의 식탁>은 오는 16일 오후 3시부터 두 시간 동안 유튜브 메디치미디어 채널(링크)을 통해 <이준석이라는 현실: 세대교체인가? 시대교체인가?>라는 주제로 긴급대담을 준비했습니다. 우리 눈 앞의 현실이 된 30대, 0선의 제1야당 당대표 시대, 내년 3월 대선까지 정국은 어떻게 전개되며 여야 차기 경선과정에서 ‘청년정치’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망하는 자리가 될 겁니다.
이양수 <피렌체의 식탁> 부문대표가 사회를 맡고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 성한용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임명묵 작가(<K를 생각한다>), 장경상 국가경영연구원 사무국장이 패널로 참여합니다. <피렌체의 식탁> 독자님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한윤형 필자

한국 사회의 청년세대 문제, 미디어 문제, 그리고 현실정치에 관한 글을 써왔다. 매체비평 전문지 <미디어스>에서 2012년부터 3년간 정치부 기자로 일했다. 이후 몇몇 여론조사기관과 선거컨설턴트 업체에서 일했다. 주요 저서로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미디어 시민의 탄생>이 있다. 최근 1980년대 출생 저자들과 함께 <추월의 시대>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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