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10월 20일(현지 시각) BBC가 방영한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비 인터뷰의 한 장면. (사진=BBC 제공)

영국 언론은 유명인들의 사생활을 캐는 ‘파파라치’와 황색 저널리즘으로 악명이 높다. 그러면서도 '공영방송의 교과서'라는 BBC를 갖고 있다. 민주주의의 역사만큼 언론의 역사가 긴 영국에서는 최근 BBC를 놓고 내로남불의 ‘진영 싸움’이 한창이다. 1995년 10월, BBC 프로그램 <파노라마>가 방영한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인터뷰 배경과 진실을 놓고 또 다시 공방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당시 인터뷰 과정에서 불법-탈법이 자행됐다는 사실이 드러나 BBC가 궁지에 몰리자 집권당인 보수당은 눈엣가시 같던 BBC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권석하 필자는 다이애나비(妃) 인터뷰를 둘러싼 논란을 통해 공영방송과 정치권, 민영방송의 역학구도 및 언론계의 이중성을 짚어봤다. 또한 한국의 부조리한 언론환경에 대해서도 은근한 일침을 잊지 않는다. [편집자]

#BBC, 다이애나 인터뷰로 궁지 몰려  타 언론사 및 보수당, BBC 연일 맹공#도청, 위조 등 영국 언론계 악명 자자  문제의식 없던 과거 취재관행 끔찍#보고서 나와도 공영방송 손봐주기  진실 찾기는 명분, 자사이기주의 우선#관음증 빠진 언론들도 비판 대상  물어뜯기 전에 취재윤리 자성부터

지난해 10월 20일은 영국 왕세자비 다이애나(1961~1997)의 그 유명한 BBC의 프로그램 <파노라마> 인터뷰 25주년이었다. ITV, 채널4, 채널5 등 영국의 민영방송 3사는 당시 다이애나의 인터뷰가 대담자인 BBC 앵커 마틴 바시르(현재 58세)의 위계에 의해 이뤄졌음을 밝히는 폭로 특집 방송을 앞다퉈 방영했다. 민영방송 3사는 자신들의 취재 근거로 바시르와 다이애나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했다는 다이애나의 '동생' 스펜서 백작의 증언을 내세웠다. 스펜서 백작이 바시르와의 인터뷰를 주선한 이유는 바시르의 거짓말과 스펜서 백작에게 보여준 위조 은행계좌 증명서가 결정적이었다.

BBC 다이애나 인터뷰 25주년 후폭풍

문제의 위조 은행계좌 증명서는 스펜서 백작의 경호대장이 유명 신문으로부터 돈을 받고 다이애나를 비롯한 스펜서 가문의 정보를 넘겨준다는 증거로 제시됐다. 계좌의 돈 입금자는 당시 '언론계의 황제'로 일컬어진 루퍼트 머독 소유의 ‘뉴스 오브 더 월드’(News of the World, 약칭 NoW)였다. NoW는 연예인을 비롯해 유명인 스캔들만 주로 다루는 대표적인 황색 언론이었다.

바시르는 '영국 왕실에서도 다이애나의 뒤를 캐내려 한다'고 스펜서 백작을 설득했다. 다이애나의 최측근인 개인비서마저도 왕실에 정보를 넘겨주고 있다고 흔들었다.  바시르의 그럴듯한 거짓말에 속아 스펜서 백작은 적극적으로 다이애나에게 인터뷰를 주선해 BBC 카메라 앞에 자기 누나를 앉혔다.

<파노라마>는 영국 공영방송 BBC의 간판 프로그램이다. 1953년 시작됐으며 탐사보도가 전문이다. 정부나 왕실을 비롯해 누구라도 걸리면 통렬하게 비판했다. 당시 <파노라마>가 다이애나 인터뷰를 방영하기 전까지 BBC의 사장, 이사회 의장 등은 관련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었을 정도다. 그만큼 BBC 내부의 어느 누구든 제작이나 편집에 간섭 못하는 독립적인 프로그램이었다.

1995년 10월 <파노라마>의 54분 분량의 다이애나 인터뷰는 당시 영국 인구의 39.3%인 2300만 명이 시청했다. BBC가 두고두고 자랑하는 세기의 특종이었다. 여기서 다이애나는 지극히 영국적인 표현 "우리 결혼 안에는 3명이 있지요. 그래서 조금 붐벼요 (There were three of us in this marriage, so it was a bit crowded)"라는 유명한 발언을 했다. 바로 남편 찰스 왕세자와 카밀라 부인(현재 찰스 왕세자의 아내)의 혼외 스캔들을 처음으로 공식화한 것이었다.

다이애나는 <파노라마> 인터뷰를 통해 찰스 왕세자와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인정했다. 이듬해 이혼을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BBC는 세기적 특종을 통해 공영방송의 위상을 과시했지만 다른 언론사들에게는 뼈아픈 낙종을 안겨준 보도였다.

영국 런던의 BBC 본사 건물 (사진=런던/EPA 연합뉴스)

ITV 특종에 맞서려 서류 위조해 인터뷰 추진

사실 찰스는 다이애나가 <파노라마>와 인터뷰하기 1년 전에 민영방송인 ITV와 인터뷰를 하면서 스스로 불륜을 고백했다. 특종을 뺏긴 BBC는 세계 최고의 공영방송이라는 자존심에 엄청난 손상을 입었다. BBC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다이애나 단독 인터뷰가 최고의 방법이었다. 당시엔 전 세계 모든 언론매체가 다이애나와의 단독 인터뷰를 따내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심지어 BBC 사내에서조차 부서끼리 경쟁할 정도였다. 당시 바시르는 위조 서류를 바탕으로 스펜서 백작을 거짓말로 설득해 다이애나 단독 인터뷰를 성사시켰다.

다이애나 인터뷰가 엄청난 주목을 받자 그때부터 영국 언론계에선 ‘32세의 BBC 입사 9년 차인 파키스탄 이민 2세 출신' 바시르가 어떻게 해서 세기의 인터뷰를 따냈는지에 대한 의심과 질투가 눈덩이처럼 커졌다. 당연한 의문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영국의 방송사, 특히 BBC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는 기자들은 모두 경력 20년을 넘긴 50대 고참들이다. 거기에 더해 왕실과의 접촉은 영국 내에서도 ‘상류층 기득권(Establishment) 내부자’가 아니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분명 무언가 불·탈법 행위가 있을 거라는 의심을 품고 ITV를 비롯한 민간방송 3사는 BBC의 명성을 깎아내릴 복수의 기회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바시르의 요청을 받고, 위조계좌 서류를 만든 BBC 내 그래픽 디자이너가 내부고발을 했다가 해임당하고, 블랙리스트에 올라 방송계 일을 못한다는 소문이 언론계에서 돌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반격과 보복을 위한 타사의 취재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결국 ITV, 채널4, 채널5는 모든 조사와 준비를 마치고 지난해 10월 BBC 인터뷰 25주년을 맞아 '진상 폭로 프로그램'을 거의 동시에 터뜨린다. 25년간 앙심을 품어온 3사의 폭로전은 의도대로 BBC를 곤경에 빠뜨렸다.

영국 사회는 벌집을 들쑤신 듯 난리가 났다. 다이애나의 비극에 대한 화풀이 대상을 찾아왔던 대중들의 심리를 제대로 저격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상대가 평소에도 연간 수십억 파운드의 수신료를 챙겨가는 공영방송이다 보니, 숱한 언론매체들이 연일 BBC 때리기에 앞장섰다. BBC를 손 볼 기회를 찾던 집권 보수당 쪽에선 한술 더 떴다. 국민들에게서 시청료를 받아 운영하는 공영방송임에도 보수당 정부가 하는 일에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것을 못마땅하게 봐왔기 때문이다. 견디다 못한 BBC는 전직 대법관 존 다이슨 경을 위원장으로 한 독립 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조사위원회는 6개월 만인 지난 5월 20일 보고서를 발표했다. 위원장의 이름을 딴 ‘다이슨 보고서’에는 정작 다른 민영TV들이 파낸 것 외에 새로운 사실은 없었다.

그러나 BBC와 바시르에 대한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스펜서 백작을 비롯해 윌리엄·해리 왕자 형제, 다이애나 친구 등이 나서서 '다이애나의 비극적인 죽음은 1995년 10월 <파노라마> 인터뷰에서 발단된 것'이라고 비난했기 때문이다. 영국 언론들은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기사들을 지속적으로 게재하고 있다.

BBC 앵커인 마틴 바시르(Martin Bashir). (사진=AP/연합뉴스)

BBC의 조직적 은폐와 '바시르 비호'가 비난 대상

BBC가 비난받는 이유는 바시르가 위조서류를 이용해 인터뷰를 따낸 것보다는 'BBC가 조직적인 사태 은폐와 함께 바시르를 적극적으로 비호했다'는 이유가 더 크다. 1996년 BBC의 내부조사에서 ‘바시르는 정직하고 명예로운 사람(honest and honourable man)’이라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여기에 바시르가 2003년 미국으로 건너가서 ABC 등에서 승승장구하다가 돌아왔을 때 어떻게 BBC에 쉽게 복직이 되었고 1년 뒤 종교부장으로 승진까지 했는지 뒷배경이 석연치 않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한 마디로 바시르 개인이 아니라 BBC 회사 차원의 스캔들이라는 주장이다. 영국 경찰은 '수사를 할 의향이 없다'고 결론 냈지만 현재 하원부터 시작해 7개의 조사위원회가 가동되고 있다.

사실 BBC 때리기에는 이번 사건보다 더 좋은 핑계가 없다. 집권 보수당은 해묵은 불법 취재관행과 조직적인 비리 은폐, 내부 인사 비호의 악습을 다시 되풀이하지 못하도록 BBC 개혁을 반드시 해내겠다고 잔뜩 벼르고 있다. 여기에 BBC에 반감을 가진 집단과 개인들도 '당연한 조치'라며 적극 동조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BBC 및 바시르에 대한 압박에서는 각기 다른 의도가 깔린 '마녀사냥' 냄새가 난다. 또한 영국 언론들의 ‘내로남불’ 심리마저 엿보인다.

과연 다이애나는 순전히 바시르의 위계에 넘어가 원하지 않은 인터뷰를 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건 아니다. 우선 모든 정황을 고려했을 때 다이애나는 바시르가 아니더라도 분명 인터뷰를 했을 확률이 컸다. 다이슨 보고서에서도 그렇게 결론지었다. 다이애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 했다. 그리고 다이슨 보고서 발표 후 바시르는 '선데이 타임스' 인터뷰에서 “다이애나는 인터뷰를 갈구하고(desperate)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파노라마> 인터뷰를 되돌려봐도 다이애나는 바시르가 미처 묻지도 않은 사안을 먼저 거론하는 등 자신이 거의 대화를 이끌어 가듯이 했다. .

BBC 동료들보다 먼저 특종 보도를 할 욕심으로 서류 위조를 교사한 바시르는 당연히 비난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다이애나는 직접 위조서류를 본 적도 없고, 다이애나 스스로 “나는 인터뷰를 위해 내가 이미 알고 있던 사실 이외의 어떤 서류나 사실을 들은 바 없다”라는 자필 문서를 남겼다. 바시르는 위조서류가 다이애나의 인터뷰 결정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다이슨 보고서도 이를 인정했다. 위조된 서류로 스펜서 백작을 설득한 일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바시르도 “내가 은행계좌 서류를 위조하라고 한 일에 대해 사과했고 이번에도 다시 사과한다. 그런 일은 바보짓이었고 지극히 유감으로 생각하는 행동이다”라고 밝혔다.

경찰도 고개 내저은 '악명 높은' 취재관행

그러나 1990년대 중반에 영국뿐만 아니라 대다수 언론의 취재 관행상 그 정도는 정말 가벼운 일탈에도 속하지 않던 때였다. 특히 영국 언론들은 비밀정보를 캐내는 사설업체를 이용해 유명인들의 정보를 수집해서 기사 쓰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그렇게 하지 않는 기자는 언론 내부에서 무능하다고 조롱을 받고 도태될 수밖에 없었다. 연예인 사생활을 엿보고자 하는 독자들의 불타는 관음증을 채워주기 위해, 기자들은 피를 말리는 취재경쟁을 벌어야 했고, 언론 매체들은 그런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당시에는 취재를 위한 매수, 협박, 위장취재에다 취재 대상자의 자동차나 가택에 침입해 자료를 도둑질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길거리에서 취재원 휴대전화를 탈취하거나, 전화 음성메시지와 휴대전화와 집전화를 도청했다. 취재 경쟁이 붙으면 취재원의 자동차와 집에 도청장치를 설치하고, 우편물 탈취, 기만, 신분 위장, 함정 취재 등을 자행했다. 경찰들도 이런 불법 취재활동을 문제삼지 않았다.

심지어는 정의감과 사명의식을 가진 제대로 된 기자라면 주저하지 말고 속보 경쟁에서 앞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인터뷰를 성사시켰는지  굳이 상사에게 보고하지 않았고 상사들 역시 묻지 않았다. 정보를 어떻게 캤는지 묻지 않는 게 관행이었고 동료에 대한 예의였다. 비상한 방법이든 불법으로 캐낸 정보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비밀 취재원을 보호하려면 한 사람이라도 더 그런 사실을 몰라야 했다. 특히 <파노라마> 기자들의 무모하기 그지없는 취재관행은 영국에서도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그들은 독재국가였던 루마니아, 짐바브웨, 이라크, 심지어 북한까지 잠입 취재하는 걸로 소문나 있었다.

그런 관행은 결국 대형 사고로 터졌다. 2010년에 들어 영국의 레브슨 조사위원회는 2000쪽짜리 보고서에서 영국 언론의 광범위한 도청 문제를 공개했다. 300여 명의 기자들이 경찰 조사를 받고 68명이 체포되었다. 그중 100여 명이 기소돼 10여 명이 실형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260만 부를 자랑하던 NoW가 2010년 7월 10일 폐간되고, 영국 언론의 불법 취재관행은 점차 사라졌다. 독자들의 관음증을 채워 줄 기사들도 격감하고, 대중지의 몰락도 가속화되고 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출연한 BBC TV 인터뷰를 보도한 영국 신문들의 1면 모음. (사진=AP/연합뉴스)

정치권, 불법 인터뷰 핑계로 BBC 압박

다이슨 보고서에선 “중대 범죄 조사의 경우에 한해 서류 조작은 용인될 수 있다”라고 적시한 뒤 “다이애나비 인터뷰는 그런 상황에 분명 해당되지 않는다”라고 못 박고 있다. 그러나 그런 결론은 현재 기준으로 내린 판단이지 1990년대의 시각은 아니다. BBC를 지금 기준으로 마녀사냥을 하는 게 옳은지는 좀 더 따져 봐야 한다.

우선 바시르가 저지른 간단한 서류위조 정도는 협박, 탈취, 강탈 같은 행위와 비교했을 때 불법 수위가 낮았다. 취재를 위해 수단과 방법과 물불을 가리지 않던 25년 전 언론 관행으로 봐서 큰 문제가 될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당시에는 ‘진실을 찾기 위한 일’이라고 평가받았다. 그래서 BBC는 ‘정직하고 명예로운’ 일이라고 내부 조사 결론을 냈던 것이다. 내부 조사에선 바시르의 일탈행위를 은폐한다는 죄의식조차 없이 사건을 덮었다. 오히려 내부고발자를 사내에서 추방했다. BBC 입장에선 "그 시대에 맞는 조치였다"고 주장하고 싶을 것이다.

지금 영국에서는 다이슨 보고서가 “BBC의 적들의 정미소에서 탈곡할 곡식(grist to the mill of the BBC’s enemies)을 제공했다”는 기사처럼 온갖 언론매체들이 BBC에 몰매를 가하고 있다. 심리적으로 다이애나를 못 보내고 있는 보통사람들의 기사 클릭수를 노려 시시콜콜한 콘텐츠들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존슨 총리를 비롯해 집권여당 각료들은 호기를 잡은 것처럼 "BBC에 관리감독 개혁이 필요한지 살펴보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이에 맞서 BBC 이사회의 전직 의장은 “BBC를 집어삼키려고 ‘좋은 먹이를 찾은 듯 미쳐 날뛰다가(feeding frenzy)’ 잘못하면 재창조가 불가능한 BBC를 파괴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내로남불’ 장삿속, 한국은 다를까? 

영국 언론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BBC와 바시르를 꾸짖기 전에 그들은 과연 그럴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필자는 묻고 싶다. 정론지로 유명한 가디언의 기자 데이비드 리는 2010년 레브슨 청문회에 나와 당시 대처 총리의 아들 마크와 무기상 간의 거래를 취재하느라 무기상을 도청한 사실을 자랑스럽게 떠들었다. 자신은 범죄행위를 취재한다는 의무감에 불법이라는 생각을 못 했고 심지어 전화 도청을 하면서 “관음증의 스릴(voyeuristic thrill)’마저 느꼈다”는 내용이었다.

민영방송 3사가 25년 전의 일을 끄집어내서 BBC를 집중 공격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단순히 진실 규명을 위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거기에는 다이애나 관련 스토리라면 무엇이든 돈벌이에 도움이 된다는 얄팍한 장삿속과 BBC에 대한 구원(舊怨)이 깔려 있을 것이다.

영국 언론들이 과거의 일을 현재 잣대로 재단해 BBC를 때리다 보면 결국 언론을 손보려는 정치권에 빌미를 주게 된다. 오늘은 BBC가 공격받지만 내일은 민영방송 3사들이 궁지에 몰릴지 모른다. 언론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언론 매체들이 서로를 회복불능 수준으로 물어 뜯으면 곤란하다. 무엇보다 민영방송 3사는 BBC를 비판하는 잣대를 자신들에게도 적용해봐야 할 일이다. 언론과 정치권의 ‘내로남불’은 어쩌면 한국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니다.


권석하 필자

재영 칼럼니스트. 1982년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근무하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갔다. 고르바쵸프, 옐친 시절 10년간 소련에도 거주했었다. 영국의 정치, 역사, 문화, 건축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했고 영국인도 따기 어렵다는 예술문화해설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영국을 비롯한 유럽문화권에 대한 폭넓은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영국인 재발견 1, 2권>, <유럽문화 탐사>가 있으며 케이트 폭스의 <영국인 발견>을 번역서로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