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 주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리는 국무회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헌법 개정과 권력구조 개편이 다시 한 번 쟁점화될 전망이다. 1987년 민주화항쟁 당시 핵심 구호는 "직선제"였고 이후 7명의 대통령이 탄생했다. 하지만 역대 정권은 초기에 파죽지세로 개혁을 추진하다 집권 후반기엔 관료들에게 끌려가는 양상을 보여왔다. 유권자 다수의 선택을 받은 정당과 대통령도 정작 레임덕과 '관료'들의 저항에 부딪히면 국정운영 동력을 잃곤 한다.고한석 필자는 집권정당이 책임정치를 강화하려면 철학을 같이 하는 관료들의 정치참여를 유도하고, 국무총리와 국무조정실 대신 장관정책실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여야 정당의 정책개발 능력을 향상시키되 정당 전문성 강화와 정부(내각) 책임성 강화를 동시에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당과 내각 양쪽에서 인재-정책을 키워나가는 '쌍끌이 전략'을 펼치자는 얘기다. [편집자]

#관료 권력에 포위되는 직선 대통령  국정운영의 청와대 쏠림현상 초래#책임정치 구현 위한 방안 찾아야  총리-국무조정실 '이중구조'는 문제#장관실 설치 후 책임장관제 해야  정당 역량 강화 위해 '고공단' 활용을#정당 전문성과 내각 책임성 강화하면  청와대 조직 커져야 할 이유 사라져

정권교체기 무렵이면 관가에서 우스갯소리로 “대한민국 정부는 한 번도 정권교체가 된 적이 없다”는 말이 돌곤 한다. 집권세력과 별개로 ‘관료당’이야말로 진정 영원한 집권당이라는 의미에서다.

필자가 정당에서 일하던 시절, 2004년 7월부터 2006년 말까지 참여정부에서 장관을 지냈던 분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다. 정치권의 신망을 받았던 그 분으로부터 장관 재직 시절의 고뇌를 듣게 되었다.

관료들, 국책硏 보고서로 '정치인 장관' 압박

장관으로 임명되면 부처에 데리고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정책보좌관 2명에 불과하다. 부처에 취임하면 관료들의 장관 '길들이기'가 시작된다. 특히 참여정부는 어떤 의미에서는 진보세력 최초의 단독 정부였기에 DJP 연합에 의한 정부 운영을 했던 김대중 정부를 빼고라도, 건국 이후 50여 년간 보수 정권에서 생활해온 관료들은 일부 장관들의 진보적 정책방향에 교묘하게 어깃장을 놓기 일쑤였다고 한다.

부처 기조실에서 장관에게 보고하는 정책보고서들은 매우 디테일하고 객관적(으로 보이는) 데이터에 근거해 특정한 정책방향을 지향했다. 대부분의 부처는 산하에 한두 개의 정부출연연구소를 두고서 관료들의 구미에 맞는 연구를 발주한다. 부처 관료들의 요구에 따라 수십 명의 박사들이 달라붙어 만든 정책보고서는 신임 장관을 무력화시키는 강력한 수단으로 작용했다.

장관이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도 자신의 입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유사한 수준의 객관적 보고서를 대안으로 제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 있게 주장할 수가 없었다. 결국 정치인 출신 장관은 내심 ‘다시 여의도로 돌아갈 것인데 굳이 이렇게까지 싸워야 할 필요가 있겠냐’ 하면서 관료 집단과 타협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선출되지 않은 행정관료가 민주적으로 선출된 권력을 오히려 좌지우지하는 현상은 민주주의 국가의 발전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마주치는 문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정운영의 책임자는 국민들의 민주적 선거를 통해서 선출되며 당선자는 자신을 뽑아준 다수 유권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국정을 이끌어야 하는 책임을 짊어진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힘들여 선거를 치를 이유가 없다. 즉 유권자에 대한 ‘정부의 책임성’은 민주주의 정치에서 매우 중요한 이슈다.

선출된 권력은 이를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서 자신과 생각이 같은 사람들을 정부 부처의 주요 직책에 '정무직 공무원'으로 임명하고, 실무적 정책 지식과 경험을 쌓아온 있는 관료들은 정무직 공무원(예컨대 장차관)을 보좌해 정부를 운영한다. 하지만 이에 따라 제기되는 문제 중 하나는 ‘과연 정무직 공무원이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데 충분한 실무적 정책 운영 지식을 갖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정책 운영에 관한 지식과 노하우는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랜 경험에 기반한 소위 ‘암묵지(暗默知)’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학교에서 관련 분야를 전공한 교수라고 한들 실무 경험이 없으면 설익은 관념론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청와대 확대 개편, '책임정치' 관점에서 봐야

선출된 권력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정당 출신 사람들도 이러한 경험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우리는 딜레마 상황에 놓이게 된다. 유권자에 대해서 정부 운영의 ‘책임성’을 높이려고 행정관료가 아닌 정무적 인사를 기용하게 되면 정책 운영의 ‘전문성’이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정책 운영의 ‘전문성’을 높이려고 행정관료를 중용하면 정부 운영의 ‘책임성’이 약화될 가능성이 커진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선출 권력의 핵심인 청와대의 조직을 확대 개편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서 이에 따른 비판과 논쟁이 자주 일어났다.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뒤인 2018년 5월 청와대가 조직개편을 하면서 50명 정도를 추가 충원할 방침을 밝히자 보수 언론들은 일제히 이를 비판하는 기사를 실었다.예를 들어 한국경제신문은 '지금도 백악관보다 비대한데…몸집 더 키우려는 靑' (2018년 5월 29일자)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청와대 규모인 443명은 “377명인 백악관 비서실 인원수(2017년 기준)와 비교해도 17.5%(66명)나 많다"며 "한국 중앙정부 공무원 수와 미국 연방정부 공무원 수를 고려하면 청와대 몸집은 백악관보다 두 배 이상 큰 셈”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국정운영이 내각이 아니라 청와대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청와대 수석·보좌관이 부처 장관 위에 ‘군림한다’는 지적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우리나라 청와대와 유사한 조직은 미국 백악관(=비서실)이 속한 대통령 집행부(EOP: Executive Office of the President)이다. 이 조직은 대략 2000명의 직원(3분의 1은 정무직), 4000억 원의 예산으로 운영된다.

정치발전소 학교장인 박상훈 박사도 2018년 <청와대 정부>라는 책에서 청와대 중심의 국정운영을 비판한 뒤 "정당 중심, 책임총리-책임장관 중심으로 국정이 운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필자는 박상훈 박사의 주장에 대체로 동의하지만 그것이 현재 체제로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즉 현재의 여야 정당들은 정책 전문성이 부족하다. 책임총리가 중심이 되면 선출직 대통령도 임명직 총리도 모두 유권자에게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가 된다. 또한 책임장관은 자신의 책임 아래 각 부처의 정책 운영을 할 만한 실질적 조건들을 못 갖추고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대통령의 책임정치를 구현하려다 보면 ‘청와대 중심 정부’가 될 수밖에 없다.

'책임정치' 장애물, 국무총리와 국무조정실

만약 청와대 중심의 국정운영이 정당-내각 중심으로 전환되려면 먼저 국무총리와 국무조정실의 역할 조정을 전제해야 한다. 필자는 우리나라에서 선출된 권력이 직접 책임정치를 하는 것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국무총리와 국무조정실이라고 생각한다.

헌법 제86조 2항을 보면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한다”고 명시했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 아니라 국무총리가 행정 각부를 총괄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비서실’인 청와대는 공식적으로는 대통령을 보좌할 뿐 행정 부처에 직접 개입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은 수렴청정을 하는 일종의 ‘상왕 정치'를 하게 되고 실제 정부 운영은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국무총리가 공식적, 일상적으로 지휘한다.

1964년 송년 파티에 참석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정일권 전 국무총리. 정일권 전 총리는 1964년부터 1970년까지 6년이나 재직하며 역대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웠다. (사진=국가기록원)

왜 이렇게 되었을까? 제헌의회 시절의 논쟁도 있었지만 가장 직접적인 배경은 박정희 대통령이 국정운영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고 큰 문제가 생기면 국무총리를 희생양으로 삼았던 게 출발점이었다. 소위 '대독 총리', ‘방탄 총리’가 일상화됐다. 대통령이 직접 장관들과 일상적으로 국정을 논의하면서 이들을 지휘하면 될 텐데 중간에 국무총리라는 대리자 직책을 두어 책임성이 애매한 이중구조가 형성되었다.

참모 조직 역시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 비서실(나중에 정책실도 추가)과 국무총리를 보좌하는 국무조정실로 이원화될 수밖에 없고 인력 정원도 각기 443명으로 동일하다. 청와대의 규모가 과거보다 커진 배경에는 선거로 뽑힌 대통령이 직접 행정 각부를 일상적으로 지휘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를 우회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정상적인 책임정치의 구현이 아니다.

아예 유럽처럼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를 도입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유럽 국가의 의원내각제는 대부분 비(非)선출 권력인 왕실을 국민이 선출한 의회가 견제하는 것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반면 한국의 대통령제는 (유신헌법 이후) 비선출직(유명무실한 간선제)이었으나 1987년에 민주화 투쟁을 통해 직선제를 국민들이 쟁취한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따라서 행정부의 실질적 수반을 직접 뽑는 권리를 국민의 손에서 다시 회수하는 의원내각제 또는 이원집정부제로의 개헌은 국민정서상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책임정치를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옥상옥'을 만드는 국무총리 직제를 폐지하고, 대통령이 국무조정실의 도움을 받아서 직접 부처 장관들과 행정을 운영하도록 해야 한다.

책임장관제 위한 장관실 설치 땐 청와대 축소 가능

그러려면 비(非)관료 출신 장관들이 실질적인 책임을 지고 부처를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스태프(staff, 참모) 조직이 필요하다. 프랑스는 대통령의 엘리제궁이 약 50명, 총리실이 약 80명에 불과하지만, 각 부처마다 20~40명 규모의 장관실(합계 720명)을 설치해 직업공무원과 정치적으로 임용된 공무원이 함께 장관을 보좌한다.

우리나라에선 현재 각 부처의 장관 정책보좌관이 2명에 불과하다. 책임장관제를 위해서는 프랑스와 유사한 규모의 장관실을 설치해 장관이 실질적으로 부처를 장악하고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할 경우 현재의 청와대 정책실 안의 각 분야 정책비서관 기능 및 인원의 일부는 국무조정실로, 일부는 관련 부처 장관실로 재편되어야 한다. 국무조정실과 장관실이 단순히 ‘늘공’(늘 공무원, 직업 공무원을 지칭)뿐만 아니라 대통령과 정치적 운명을 같이하는 ‘어공’(어쩌다 공무원, 정무직 공무원)들도 함께 하는 조직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청와대는 진정한 ‘비서실’ 역할을 하면서 오직 정무적 기능만을 하는 조직으로 축소될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행정 부처에 대한 전체적인 장악력을 더 높일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선출된 정권의 성공 여부와는 무관하게 신분을 보장받는 고위공무원들이 '책임성'을 갖고 일할 수밖에 없도록 인센티브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독일에서는 정부의 정치적 의도 내지 목표와 지속적으로 일치하는 것을 필요로 하는 관직에 취임하는 정치적 임용직 관료는 언제든지 이유를 명시하지 않고도 일시 퇴직(Einstweiliger Ruhestand)에 부칠 수 있도록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때 일반 공무원에게 적용되는 절차는 적용되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임용된 관료는 일시 퇴직에 대한 불복 신청의 권리가 없으며 일시 퇴직에 대해 연방정부 인사위원회 및 연방의회는 관여하지 않는다.

독일에서 고위공직자에 대한 일시퇴직 제도가 도입된 것에는 그 역사적 배경이 있다. 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8년에 의회민주주의에 기반한 바이마르공화국이 탄생했지만 실제로 행정부를 구성하는 공무원들은 프로이센 국왕과 그 후 독일제국 황제가 채용하거나 임명한 '왕당파 공무원'들이었다. 결국 이들을 통제하고 장악하기 위해 고위공무원들에 대한 일시퇴직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약 1500명에 달하는 고위공무원단이 있다. 이 중 절반인 700명 정도의 직위에 대해 공무원 신분보장을 없애고 정권이 바뀌면 언제든지 퇴직당할 수 있는 별정직 공무원으로 ‘어공化’ 해야 한다. 이를 통해서 공무원 이기주의와 보신주의에서 벗어나 국민에 의해 선출된 정부에 충성하고 책임성 있게 일을 하도록 하는 인센티브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공무원 신분을 보장받기를 원하는 경우에는 고위공무원단으로의 승진 포기를 선택하고 정년퇴직 때까지 중간급 공무원으로 평생을 보내면 된다. 리스크와 보상을 일치시키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원내 정책전문위원 확대, 정당 전문성 강화도 필수

그렇다면 정권이 바뀐 후 이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여당에서 야당이 된 정당은 어떻게 이들을 활용하고 또 책임져야 할까? 여기에도 독일의 사례가 의미 있는 대안을 제시해준다. 정권교체 후 기존 고위공무원들 중 일부는 정당 산하의 싱크탱크에 합류한다. 독일에는 3대 정당 싱크탱크가 있는데 보수정당인 기독교민주당은 아데나워 재단, 진보정당인 사회민주당은 에버트 재단, 중도정당인 자유민주당은 나우만 재단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한편으로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정책연구 기능을 수행한다.

에버트 재단을 예로 들면 직원 수는 약 660명이고 연간 예산은 1.6억 유로(약 2000억 원)인데 전액을 국가에서 지원한다. 200~300명에 달하는 정책연구 부서에는 과거 연방정부에서 정치적 관료로 근무했던 고위공무원 상당수가 참여하고 있다. 관료 경험을 통해서 정책 전문성을 축적한 이들은 소속 정당의 정책 및 행정감독 전문성이 강화하는데 큰 힘이 된다.

국내에도 국가가 정당에게 지급하는 보조금 중 30%를 할당하는 산하 정책연구기관들이 있다. 하지만 이 돈 중 상당 부분은 중앙당 활동 및 인력을 지원하는데 투입되고 정작 박사급 정책연구원들은 각 연구기관마다 고작 10여 명에 불과하다. 중앙정부 18개 부처의 정책을 연구하고 대안을 제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국회사무처 산하에 있는 예산정책처와 입법조사처는 중립적 관점에서 개별 의원들의 정책연구를 보조하고 지원해주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일정한 당파성을 지닌 정당의 정책 형성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가장 좋은 대안은 각 정당의 원내 정책전문위원(국회직)을 확대 개편하는 것이다. 현재 전체 인원은 77명으로 의석수 비중에 따라 이중 더불어민주당에 할당된 숫자는 44명이다. 부처별로 대략 2.5명의 전문위원이 있는 셈인데 예를 들어 보건복지부 같은 경우 보건 영역과 복지 영역은 매우 다른 분야라서 결국 한 명이 한 분야를 맡는 셈이나 다름없다.

이 정도의 정책전문위원 숫자로는 입법부가 행정부를 상시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정책대안을 만들어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만약 의석수당 2명의 원내 정책전문위원을 갖도록 확대 개편을 하면 현 시점에서 민주당은 320여 명, 국민의힘은 160여 명의 원내 정책전문위원을 운영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각 부처를 대상으로 10~20명의 전문위원들이 모니터링 및 정책연구 활동을 할 수 있고 이를 통해서 정당의 정책 전문성을 양적으로 강화할 수 있다. 또한 이렇게 형성된 정책전문가 풀(pool)에 정권교체 등으로 퇴직한 고위공무원들이 합류하면 질적인 강화도 이루어낼 수 있다.

책임지는 정부와 능력있는 정당을 위한 개혁 방안. (이미지=고한석)

사막에선 '무거운 물주머니' 짊어지고 다닐 수밖에

이들 중 일부는 소속 정당이 다시 정권을 잡을 경우 (또는 개방직 고위공무원 임용 시) 각 부처 공직에 발탁될 수 있다. 이렇게 할 경우 정부의 유권자 책임성을 높이는 동시에 각 정당의 정책 전문성을 강화하는 두 가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의 증원을 위한 예산은 현재 제 기능을 잘 수행하지 못하는 정당 정책연구소에 대한 정당 국고보조금 30% 지원을 폐지하고 연구소를 원내 정책전문위원 제도에 통폐합시켜 일부 충당할 수 있다. 또한 국회직인 예산정책처와 입법조사처의 일부 인력 정원을 마찬가지로 국회직인 정당 원내 정책전문위원으로 재편하면 추가 예산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런 방안이 실시되면 민간기업이 아닌 공공 분야를 지향하는 젊은 인재들에게 정치 참여, 정책 참여의 길을 넓혀주는 효과도 낳을 것이다. 5급 행정고시라는 낡은 수단을 거치지 않고도 정당의 원내 정책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실질적 정무-정책 경험을 쌓고 향후 행정기관에 진출할 수 있는 경로를 제공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각 정당은 젊은 인재들을 충원하면서 정책 정당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

현대의 민주정치는 정당과 정부(내각)가 함께 노력해야 실현된다. 책임지지 않는 관료에 의해서 운영되는 정부를 단순히 정당 중심으로 유권자에게 책임지는 정부로 만든다고 해서 국정이 제대로 돌아간다는 보장은 없다. 정당의 역량을 강화시켜 줄 수 있는 시스템을 동시에 구축해야 진정으로 국민에게 책임지는 '정당 정부'를 만들 수 있다. 정부-정당 영역에서 이러한 체계적 변화가 없이 단순히 청와대의 규모나 역할이 너무 크다고 비판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것은 물 없는 사막에서 '왜 그렇게 크고 무거운 물주머니를 짊어지고 다니냐'고 비판하는 것과 같다. 정당의 전문성 강화와 정부(내각)의 책임성 강화를 통해 양쪽에서 샘물이 솟게 만들어 놓으면 청와대가 커질 아무런 이유가 없다.


고한석 필자

서울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에서 IT정책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SK China IT/인터넷 사업개발팀장으로 중국에서 4년 동안 일했으며 삼성네트웍스에서 글로벌사업추진팀장으로 5개 해외사무소를 총괄했다. 이후 열린우리당 정책연구원 정책기획 연구원과 정세분석국장,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부원장 등을 거쳐 서울디지털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