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을 비롯한 상당수 가상화폐들이 약세를 보인 지난 17일 오전 서울 강남구 빗썸 강남센터 전광판에 가상화폐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7일 오전 6시, 글로벌 코인시황 중계사이트인 코인마켓캡에서 비트코인은 24시간 전보다 8.23% 급락한 4만 4354달러를 기록했다. 같은 시각 한국의 코인 거래사이트인 업비트에서도 24시간 전보다 4.49% 하락한 5616만 9000원에 거래됐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비트코인 전량을 팔았을 수도 있음을 시사하자 벌어진 일이다.

가상자산 시장이 걱정스럽다. 지나치게 폭등하는 것도 위태롭고, 일론 머스크 한 사람의 말 한마디에 출렁이는 것도 조마조마하다. 그래서 최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앤드루 베일리 영란은행 총재가 “가상자산은 내재가치가 없다”면서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구두경고는 공허하다. 내재가치(intrinsic value)가 없기는 법정화폐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말보다는 행동이 필요한 시기다.

마침 정부가 행동에 나서고 있다.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가 현재 가상자산 사업자의 영업신고를 받고 있으며, 9월부터 본격적인 감시·감독을 시작할 예정이다. 기획재정부는 내년부터 투자이익에 세금을 매긴다. 여당과 야당도 각각 가상자산법을 발의하며 규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업계와 투자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소위 ‘양성화’와 ‘제도화’를 요구한다. 규제가 강화되는 것쯤은 각오하는 듯하다. 이쯤 되면, 정부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양성화’와 ‘제도화’에 대해 계속 손사래만 치지 말고, 목표를 세우고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중국처럼 가상자산의 발행과 거래를 전면 금지할 것이 아니라면, 그 존재를 인정하고 주류와 담배처럼 정부의 감시 영역에 두자는 말이다.

이를 통해 가상자산 시장이 투기판이 되는 것을 막는 방법이 나와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상황이 워낙 유별나므로 다른 나라에서는 시도하지 않는 대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거래소 상장(취급종목) 제한과 거래소(가상자산 거래업자) 등급제다.

이와 함께 가상자산은 여러 부처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국무조정실이 컨트롤타워가 되어야 한다. 주무 부처를 따지면서 새로운 법률을 만들 시간이 없다. 허접한 ‘코인’의 투자금을 가로채 도주하는 ‘먹튀’ 사례가 이미 발생하고 있다.

가만히 놔둘 수 없는 비이성적 과열 현상

한국의 가상자산 시장은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같은 물건의 가격이 외국보다 5~8% 정도 높다는 점이다. 이른바 ‘김치프리미엄’이다. 다른 하나는 시가 총액이 가장 큰 비트코인(전 세계 가상자산의 50%)의 거래 비중은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알트코인(비트코인 외) 거래가 전체의 90%를 차지하는 점이다. 거래의 3분의1 이상은 한국에서만 거래되는 ‘김치코인’이다. 알트코인과 김치코인의 가격 등락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중 김치프리미엄 문제는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것은 자본유출입의 제약과 수요 급증에 따르는 부차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외국의 명품 핸드백이나 구두가 한국에서 더 비싼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부작용도 염려할 정도는 아니다. 2017년 말 비트코인 가격이 2000만 원에 육박할 때도 지금 수준의 김치프리미엄이 있었다가 이후 소멸했는데, 별 문제가 없었다.

반면, 알트코인과 김치코인의 과도한 거래에 대해서는 정부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외국에서 튤립 투자 열풍이 분다는 이유로 한국에서 덩달아 붉은색의 고추나 맨드라미를 찾아 투기판을 벌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비이성적 과열이다.

좀 더 깊이 살펴보면, 외국에서는 한 거래소(가상자산 거래업자)에서 거래되는 종목이 10개 정도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수 십 개에 이른다. 국내 투자자들의 성향 탓이지만, 거래소의 상장(취급품목)에 관한 규제가 없는 것도 큰 몫을 한다.

주식의 경우 복수 상장이 불가능하다. 즉 똑같은 주식이 코스피시장과 코스닥시장, 뉴욕거래소와 시카고 거래소에서 동시에 거래할 수 없다. 가상자산은 아직 그런 규제가 없다. 그 탓에 시세조작이 용이하다. 투자자가 두 거래소를 넘나들며 매수·매도 주문을 동시에 입력(A 거래소에서는 매수, B 거래소에서는 매도)하는 방식으로 시세를 조작하더라도 쉽게 적발하기 어렵다. 지금의 김치프리미엄이 그 결과일 수도 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특정 가상자산은 1~2개 거래소에서만 거래가 가능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상장을 제한할수록 감시는 쉬워지고 시세조작은 어려워진다. 김치프리미엄도 당연히 줄어든다. 다만 비트코인 등 외국에서도 활발히 거래되는 상품은 국내 시세조작만으로는 가격이 왜곡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복수 상장 제한의 의미는 없다.

특정 가상자산의 복수 상장 제한은 무엇보다도 경쟁력이 적은 거래소와 이른바 ‘잡(雜)코인’이라 불리는 거래 가격도 낮고 시가총액 역시 낮은 가상자산들을 도태시킬 것이다. 가상자산 생태계가 결정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따라서 일부 대형 거래소들은 환영할 테지만, 기존 투자자들과 소형 거래소는 크게 반발할 것이다. 정부는 현재의 반발과 미래의 버블 붕괴 가능성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구윤철 국무조정실장(왼쪽)과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가상자산 거래소 등급제도 검토 필요

은행의 경우 시중은행과 지방은행의 영업지역이 다르다. 과거에는 갑류와 을류 외국환은행의 등급도 있었다. 현재 택시(모범·일반·공항)와 호텔 업계에도 등급이 있다. 그렇다면 가상자산 시장에서도 거래소 등급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전산 시스템의 안전성과 회복력, 자금세탁 방지 의무의 준수 정도, 투자자 예치금 보관·관리의 투명성 등을 기준으로 등급을 부여하는 것이다.

정부 주도로 거래소를 서열화하면, 일부 대형 거래소는 환영할 것이다. 반면 소형업체들은 시장 위축을 이유로 크게 반발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그런 반발을 무릅쓸 용기가 필요하다. 택시나 호텔의 등급화가 운송업이나 숙박업의 위축을 초래했는가? 택시와 호텔의 등급제는 소비자를 안심시켜 오히려 업계에 도움이 된다. 가상자산 시장도 마찬가지다.

한편 “거래소 등급제는 정부가 가상자산 투자 분위기를 오히려 조장하는 격”이라는, 정반대의 비판도 제기될 수도 있다. 틀린 주장이다. 영국만 겪었던 1825년 금융위기가 그 반증이다.

영국은 1720년 금융위기(South Sea Bubble) 직후 버블금지법(Bubble Act)을 제정했다. 해외투자를 위한 합자회사의 신규 설립을 금지하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해외투자는 한동안 동인도주식회사가 독점했다. 그런데 100년이 지난 1820년 돌연 그 법을 폐기했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뒤 국채 발행이 줄면서 영국 안에서는 더 이상 투자할 물건이 없다는 불평이 커졌기 때문이다(지금 한국의 상황과 별로 다르지 않다). 그 불평을 듣고 정부가 법률을 폐지했더니 합자회사의 난립과 함께 해외투자 광풍이 또다시 불었다. 그 결과가 1825년 금융위기다.

무분별한 투기를 억제하려면, 과거의 영국(해외투자)이나 지금의 중국(가상자산)처럼 금지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것이 어렵다면, 등급제가 차선책이다. 그래서 지금 가상자산 등급제를 검토해야 한다.

금융위가 가상자산 사업자의 신고를 받고 감독하는 근거는 특금법(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의 목적은 자금세탁방지(AML)에 있기 때문에 그 법을 근거로 거래소에 등급을 부여하기는 곤란하다. 부득이 다른 근거를 찾아야 한다. 항구적이라기보다는 세상이 잠잠해질 때까지 한시적으로 이용할 근거다. 대신 시간이 급하다. 국회가 새로운 법을 만들기보다는 국무조정실 훈령으로 대처하는 게 효과적이다.

가상자산의 법적 성격을 따지는 것은 탁상공론

일부에서는 가상자산의 법적 성격과 주무 부처부터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하다. 아니다. 2017년부터 정부는 가상자산이 화폐도 아니고, 일반 상품도 아니고, 금융자산도 아니고, 외국환도 아니라는, ‘아니다’ 시리즈로 일관해 왔다. 가상자산의 법적 성격을 따지다 보면, 일이 이렇게 흐른다.

지금까지 가상자산의 법적 성격을 명문화한 나라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일본(금융상품거래법, 2019년 5월)과 싱가포르(증권선물법, 2017년 8월)가 “가상자산은 금융상품”이라고 선언했다. 반면 미국, 캐나다, 독일, 스위스 등 대부분의 나라는 가상자산의 법적 성격을 굳이 규명하지 않는다. 가상자산이 무엇이건, 그 취급업자(금융기관, 가상자산 거래소)의 영업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시장을 규율한다.

우리나라도 미국 등 대부분의 국가들처럼 실용적 접근법을 취하는 게 바람직하다. 온실가스 배출권과 타자기의 한글 표준자판을 정리했던 사례처럼 가상자산의 법적 성격이나 주무 부처를 따로 정하지 않고 사태를 수습하는 방법을 써야 한다.

온실가스 배출은 분명 환경문제와 밀접하지만, 환경부 혼자 담당하지 않는다.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에 의거해 국무조정실이 부처 간 협력을 조율하는 가운데 금융위가 그 일부인 온실가스 배출권 시장의 감독을 관장한다. 금융위는 온실가스의 정체와 온실가스 배출권의 법적 성격을 따지지 않는다. 시장만 감시한다.

국무총리 훈령 제81호(1969년 7월 28일)로 발표된 표준자판.

1950년대 타자기의 한글 표준자판을 정하는 것을 두고 벌어졌던 논란도 좋은 사례다. 표준자판은 보기에 따라 어문정책(당시 문교부)일 수도 있고, 산업정책(당시 상공부)일 수도 있었다. 그 문제를 두고 20여년에 달하도록 두 부처가 핑퐁을 하다가 1969년 과학기술처의 검토를 거쳐 국무총리 훈령으로 표준자판을 정했다. 지금 우리가 쓰는 컴퓨터 자판의 출발이다.

성격이 애매모호한 가상자산도 똑같은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 가상자산의 법적 성격을 고민하는 것은 시간낭비다.(엄밀히 말하면 화폐도 정의는 없다. 기능만 열거될 뿐이다) 국무총리실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상장제한 등 시장 감독은 금융위가, 거래소 등급제는 2~3개 부처가 나누어 협업하는 게 실용적이다.

가산자산 시장 정비, 국무조정실이 나서야

현재 가상자산 생태계의 정비는 시급하다. 한국의 가상자산 시장이 유난히 투기적이라는 점을 심각하게 직시하고 과감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업계와 투자자의 눈치를 살피는 사이에 버블이 터지면, 그 책임은 현 정부에게 쏟아진다. 당장 국무조정실이 나서서 시장을 정비해야 한다.

얼마 전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잘못된 길로 가면 어른들이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가 호된 비판을 받았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금 정부가 할 일은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넛지(nudge)하는 것이다. '팔꿈치로 쿡쿡 찌르다'는 뜻의 넛지는 행동심리학에서 사람들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부드럽게 유도하되, 선택의 자유는 개인에게 맡기는 개념이다.

업계와 투자자들을 옳은 방향으로 넛지 하려면 지팡이를 잡은 손에 약간의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 힘을 써야할 시기다. 섣부른 말보다는 행동이 필요하다!


차현진 필자

금융전문가. 서울대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유펜) 와튼스쿨에서 공부했다. 대통령비서실, 미주개발은행(IDB)과 한국은행 워싱턴사무소장, 기획협력국장, 금융결제국장, 부산본부장을 거쳤다. 저서로는 <애고니스트의 중앙은행론>, <숫자 없는 경제학>, <금융오디세이>, <중앙은행 별곡>, <법으로 본 한국은행>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