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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향자 칼럼] 의대·공시에만 몰리는 이과생, 510조 ‘K-반도체 벨트’ 자칫하면 헛돈다

By | 2021년 5월 16일 | 정책

지난 14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에서 연구진이 반도체 웨이퍼 표면을 검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1대 국회에서 자타공인 반도체산업 전문가로 평가받는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3일 ‘K-반도체 벨트 구축’ 등을 골자로 한 정부의 반도체산업 전략 발표 이후 <피렌체의 식탁>에 칼럼을 기고했다.
양 의원은 세계 최고의 메모리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전자에서 메모리사업부 플래시개발실 상무를 역임한 반도체 엔지니어 출신이다. 양 의원은 현재 진행 중인 4차 산업혁명은 모든 기계장치를 전기 중심의 전자장비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 핵심은 바로 반도체라고 역설한다. 따라서 정부의 반도체산업 전략은 바람직하지만 한국이 반도체산업의 선도국으로 계속 위상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인재 육성’에 보다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우수한 이공계 인재들이 의대 진학과 공무원 시험 등에만 몰두하는 현실을 개선하지 않으면 반도체산업 전략은 자칫 헛바퀴만 돌리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편집자]

#반도체산업 경쟁력, 국운 걸려
  정부 ‘K-반도체 벨리’ 구축 등 전략 발표
#각국 반도체 인력 확보 위해 사활
  인재 쟁탈전 물밑에서 치열
#우수 이과생, 의대와 공시에만 몰두
  반도체 핵심 인력 유도 위한 정책 필요

“벌써 9년째 공무원 시험 준비 중입니다.”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원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삼성전자를 그만 두기 직전 마지막으로 본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부 출신 인턴이었다. 친정 식구를 만난 것처럼 기쁘고 즐거워 “회사는 요즘 어때?” 하고 안부를 물었다. 그러자 이 친구의 얼굴에 잠깐 당혹감이 흘렀다.

“인턴 후 (삼성전자에) 입사하지 않아 잘 모릅니다. 벌써 9년째 공무원 시험 준비 중입니다.”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부가 어떤 학과인가. 삼성전자가 취업을 보장하며 미래 인재를 키워내기 위해 설립한 학과다. 이미 많은 학생이 이곳을 졸업한 후, 인턴을 거쳐 반도체산업의 유망한 인재가 되었다. 그런데 이미 정해진 미래를 포기하고 공무원시험을 준비 중이라니…. 충격이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공시 준비하는 사람이 많아요.”

충격은 절망이 되었다. 물론 공직에도 이공계 출신 공무원이 필요하다. 산업 현장에 대한 든든한 지원을 위해 이들의 이해와 공감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모든 청년이 고시·공시에만 집중한다면 인재 배분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산업현장에서 연구개발과 신기술로 미래 경제를 이끌어야 할 인재들이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들의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신산업 분야는 성장이 더욱 둔화될 수밖에 없다.

반도체산업은 한국경제의 버팀목

한국경제는 이제 반도체를 빼놓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반도체산업의 부가가치는 2020년 기준 109조원으로 GDP(국내총생산)의 5.6%를 차지하고, 수출액은 992억달러로 전체 수출의 19.4%를 담당한다. 단일 품목 기준으로 압도적 1위(2위는 일반기계 9.4%)이다. 반도체산업이 만드는 일자리는 13만7000여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0.5% 수준이지만, 대표적인 고임금 산업(인당 보수 1억4000만원으로 전 산업 평균의 3배)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 반도체산업은 자본집약적이고 기술집약적이다. 경쟁력 유지를 위해 대규모 투자가 필수적이어서 2020년 투자액은 39조7000억원으로 전체 설비투자의 24.2%를 차지한다.

반도체산업이 없었다면, 한국경제의 눈부신 성장도 불가능했을 것이고, 선진국으로 도약하지 못한 채 중진국 함정에 빠져 힘겨운 싸움을 지속하고 있었을 것이다. 특히 코로나19로 국내외 경제가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반도체 수출은 증가세를 유지하며 한국경제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한국의 반도체산업이 30년 동안 세계를 재패할 수 있었던 비결은 기업인들의 선견지명과 과감한 투자, 정부 지원 등 수없이 많겠지만, 역시 ‘사람’, 인재를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우리 정부는 그 시절 카이스트와 포항공대를 만들고, 경북대 전자공학과, 부산대 물리학과 등 국립대를 중심으로 이공계 교육 역량을 키웠다. 여기서 배출된 인력들이 한국 반도체산업을 이끌어온 1세대들이다. 당시 이공계 인재 양성은 국가적 과제였고, 전국 수재들의 제1 지망은 서울대 공대에 진학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특목고나 과학고, 영재고를 졸업한 수재들이 전국 각지의 의과대학 정원부터 채운 다음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가는 지금의 현실. 반도체시스템공학부에 다니는 학생이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지금의 현실. 이것을 그대로 두고 반도체의 미래를 낙관할 수 있을까?

510조 투자, ‘K-반도체 벨트 구축’ 청사진 나왔지만

다행히 정부와 여당이 반도체산업 지원을 위해 요즘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강대국의 기술패권 경쟁 속에 이대로 손 놓고 있다가는 후손들의 미래가 없다는 위기의식의 발로다. 지난 13일 대통령이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찾았고, 2030년까지 반도체산업에 관련 기업들이 510조원 이상을 투자하는 민관 합동전략의 청사진을 발표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판교와 기흥·화성·평택·온양·이천·청주를 각각 연결하는 ‘K-반도체 벨트’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2030년까지 510조원 이상을 투자하고, 정부는 투자 장려 차원에서 연구개발(R&D)의 경우 40~50%, 시설투자는 6~16%의 세액공제 혜택을 줄 계획이다. 전력 공급을 위한 송전선로 비용도 정부와 한전이 각기 절반을 부담한다. 이와 함께 향후 10년간 반도체산업 인력 3만6000여 명을 육성할 방침이다.

미국의 ‘CHIPS for America Act’, 중국의 반도체굴기 등 경쟁국의 반도체산업 지원정책과 견주어 보더라도 세제나 금융, 인프라 지원 면에서 진일보한 정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국회도 반도체지원특별법 등 각종 입법을 통해 반도체산업에 대한 규제 특례를 두고, 기반시설 지원 등을 위한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여 힘을 보탤 것이다.

반도체 인력 양성,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아

그럼에도 마음 한 켠에 드는 불안감을 감출 길이 없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있듯이, 인력 양성은 하루아침에 성과를 낼 수 있는 과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통큰 지원책과 별개로 ‘한국 반도체산업의 과거 30년을 이끌어온 인재 양성 시스템을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는 아직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삼성전자도 처음부터 최고는 아니었다. 반도체산업으로 사업을 확장한 뒤, 첨단기술에 대한 갈증에 시달렸으나 국내에는 인재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 무렵 삼성이 오늘의 반도체 세계 1위 기업이 되기 위해 내린 결론은 ‘필요한 인재를 바깥에서 물색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키워내겠다’며 강력하게 의지를 다진 것이었다.

내부적으로는 자사의 인재를 수준 높은 교육을 통해 성장시키면서, 밖으로는 대학과 연계하여 새로운 인재를 키워내기 위해 반도체시스템공학과를 개설했다. 교육에 드는 운영비와 등록금을 지원했으며, 졸업 후에는 최소화된 채용 방식으로 입사를 보장했다.

필자가 삼성전자에 근무하는 동안 반도체시스템공학과의 인재들이 경험을 쌓기 위해 인턴 사원으로 근무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현장에서 이미 많은 경험을 쌓은 선배들보다는 부족해도, 특화된 기술력을 충분히 배워온 그들은 일에 대한 적응력이 빨랐다. 그 때문에 협업에 큰 어려움 없이 순조로웠고, 더 성장시키고 싶을 만큼 욕심나는 인재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 반도체산업 인력을 둘러싼 한국의 상황은 잿빛이다. 현장에서 사람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들려온 지는 이미 오래다. 산자부 조사를 보더라도, 반도체산업 현장의 부족한 인력 규모는 2017년 1400명에서 2018년 1500명, 2019년 1600명으로 계속 증가하는 추세이다.

반도체 인력 부족은 산업 현장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미래 반도체 인력을 양성할 교육 현장에서도 그 수가 점점 줄어가는 경향이 확연하다. 국내 이공계 학·석사는 인구 감소, 이공계 기피 영향 등으로 2017년 9만3000명에서 2019년 8만8000명으로 감소했다. 특히 전기전자, 재료공학 등 반도체 유관 전공 인력도 감소 추세에 있다. (2017년 3만7000명 → 2019년 3만5000명). 또 관련 전공학과 내에서도 학생들이 최근 유망 분야로 뜨고 있는 AI/SW 분야로 이동함에 따라 실질적인 반도체 인력은 더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학생뿐 아니라 후학을 양성할 반도체 전공 교수 사회에서도 인력난이 우려된다. 반도체업계에서는 반도체가 한창 발전하던 시기에 임용되어 산업에 큰 기여를 한 1세대 교수들이 퇴직한 자리가 AI/SW/바이오 등 비(非)반도체 분야로 채워질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 구체적이고 치밀한 인재 양성 로드맵은 보이지 않는다. 특히 반도체산업에선 석·박사급 고급 인력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단순히 대학 정원 확대를 넘어 고급 기술인재를 키우기 위한 ‘인재 양성 로드맵’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절망적이다. 얼마 전 20년간 반도체 석·박사 3000명을 키우기 위한 민관 연구개발 지원사업이 사업 예비타당성 심사에서 최종 탈락하는 일도 있었다. 반도체산업의 특성을 모르기 때문에 벌어진 참사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지원책에서도 10년간 반도체 인력을 3만 6000명 키운다고는 되어 있지만, 정작 반도체 관련 학과의 정원은 고작 1500명 늘린다고 한다. 반도체 고급 인재를 경쟁국에 뺏기지 않은 방법이나 성적이 뛰어난 학생들의 의대 쏠림 현상을 완화해 우수 학생들이 반도체 관련 학과에 진학하도록 유도할만한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

일자리 아닌 ‘반도체 인재 로드맵’을 만들자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한 반도체 인재를 양성하자는 주장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이유도, 지금이야말로 미래기술을 선도할 인재를 양성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20여 년 전 이상희 전 과학기술부 장관의 ‘10만 해커 양병설’과 같이, 정부와 산업, 학교가 미래를 위한 사명감에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인재 양성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단순히 일자리를 마련하는 정책이 아니라, 4차 산업혁명에 이바지할 특수한 인재를 선별해 자신들의 직업까지 연계될 수 있도록 만드는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방안이 필요하다.

교육을 통해 정치를 바꾸는 것은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정치는 교육을 바꿀 수 있다. 정책과 제도를 바꾸면 된다. 이제 국가가 나서서 교육 현장을 바꾸고 기초과학 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 유관 부처는 밥그릇을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또한 산업 현장과 대학이 서로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며 함께 미래 인재를 육성할 수 있도록 액션 플랜을 내놓아야 한다.  무엇보다 반도체 개발 분야의 전문 인력 가운데 첨단 분야를 선도할 탁월한 인재를 국가가 따로 관리하고 중국을 비롯한 해외 기업들로 유출되지 않도록 특별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단지 3라인 건설현장에 마련된 야외무대에서 열린 ‘K-반도체 전략 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현재 진행 중인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하는 문명사적 전환은 바꿔 말하면 반도체 혁명이다. 반도체 없이는 그 무엇도 설명되지 않는 디지털혁명 시대에 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모든 기계장치를 전기 중심의 전자장비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내연기관이 해오던 기계장치의 역할을 모두 반도체가 대신하고 있다. 자동차가 대표적이다. 내연기관 중심에서 전자장비로 가장 빠르게 전환 중인 기계장치가 바로 자동차다.

최근 일련의 차량용 반도체 부족 현상은 예고편에 불과하다. 인류와 관련된 모든 영역에서 반도체 부족 현상을 겪게 될 것이다. 선박·비행기 등의 교통수단은 물론 의료와 돌봄, 군사무기체계에 이르기까지 반도체 수요는 사물인터넷(IoT) 시대를 맞아 더욱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4차 산업혁명을 가능케 하는 것은 천문학적으로 증가하는 데이터의 안정적 처리와 빠른 전송이며, 이는 반도체 기술 발전에 따른 결과물이다. 다시 말하면 미래에는 반도체 수요가 더 팽창할 것이라는 얘기다. 지금도 꿀단지인 반도체산업이 미래에도 보물단지라는 얘기다.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예견한 미래의 신(神), 데이터 신(神)조차 반도체 없이는 존재하지 못한다. 단언컨대 반도체는 21세기 인류 역사를 새롭게 편성할 문명의 ‘게임-체인저’로 자리매김했다.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은 이런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유럽, 일본, 대만 등 거의 모든 선진국이 반도체 전쟁에 뛰어드는 이유도 문명의 게임-체인저를 확보하겠다는 그랜드 전략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그 전략의 핵심은 단연 뛰어난 인재의 육성, 확보, 관리다.

한국이 제조업 기술강국이 된 비결은 남들보다 한발 앞서 기술격차를 벌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우수 인재가 없다면 기업의 연구개발 노력은 허황된 꿈일 뿐이다. 설령 해외에서 인재를 데려온다 해도 기술 유출이라는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외국인 인재를 영원히 한국에 붙잡아두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전자 시절 나와 함께 일했던 중국인 인재들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시작되기가 무섭게 모두 자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미중 간에 반도체 패권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지금,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얼마나 자각하고 있는가? 반도체 경쟁의 궁극은 결국 인재 쟁탈전이다. 반도체 경쟁력이 한국 미래를 좌우하는 현실에서 인재 양성에 대한 관심은 아무리 지나쳐도 모자라지 않을 것이다. 510조원이라는 투자도 중요하지만 특히 반도체 기술을 좌우하는 핵심 인재를 키우고 지켜야 할 파격적이고 구체적인 대책이 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무엇보다 지금처럼 이과 출신 우수한 인재들이 의대 진학이나 공무원 시험 등에만 매진하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한국 사회가 심각하게 공유해야 한다.


양향자 필자

국회의원(광주 서구 을). 전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원장. 더불어민주당 반도체특위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1985년 광주여상 졸업후 삼성전자에 연구원 보조사원으로 입사해 연구임원직인  메모리사업부 플래시개발실 상무이사에 올랐다. 2016년 정계에 투신해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및 전국여성위원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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