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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재 칼럼] 피해자 권리 보장으로 가는 길, 멀어도 가야한다

By | 2021년 5월 12일 | 정책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제1489차 정기 수요시위 기자회견에서 소녀상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류영재 필자는 언론 기고와 강연 등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보기 드문 판사다. 류 필자는 법과 시민들의 사이에 놓인 간극을 줄이고 법의 정신과 시민의 상식이 일치하기를 바란다. 최근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 판결들은 그런 측면에서 법의 정신과 시민의 상식 사이에 거리를 보여주고 있다. 류 필자는 선뜻 이해하기 쉽지 않은 위안부 손해배상 소송의 여러 맥락과 한계, 그리고 의미를 <피렌체의 식탁> 독자들에게 알기 쉽게 전한다. 아울러 이번 소송을 통해 인권을 유린당한 피해자들의 권리를 보상하기 위해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어느 곳인지 제시한다.[편집자]

#주권면제에 판결 갈린 ‘위안부’ 소송
  국제법상 반인도적 행위는 인정
#나치 배상 물었던 페리니 사건과 유사
  피해자 권리 보장 향한 변화 보여줘
#침해에 대한 진상규명과 공적 사죄
  공적 기록 공개와 보존, 교육도 중요
#유엔 ‘피해자 원칙’ 보장 사례 드물어
  국제사회의 연대와 노력 촉구해야

지난 4월 2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 15부(재판장 민성철)는 이용수, 고 곽예남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유족 2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했다. 올해 초 서울중앙지법 민사 34부(재판장 김정곤)가 다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낸 손해배상 ‘1차 소송’ 1심에서 “피고 일본이 원고 피해자들에게 각 1억 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것과 상반된 결과였다. 원고 측 재판 당사자(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적사항만 다를 뿐 내용 자체는 동일했던 두 사안에서 결론이 다른 판결이 각각 선고된 것이다.

사실상 동일한 사안에 대해 재판부별로 다른 판단이 나오는 것은 재판독립의 원칙상 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자연스레 의문이 든다. 같은 내용이었는데 왜 다른 판결이 선고되었을까.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우선 판결의 맥락과 근거를 확인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1억 원씩 지급하라” 1월 청구 인용 판결

지난 1월, 1억 원씩 지급하라는 청구 인용 판결의 판단은 다음과 같다.

① 주권국가의 주권적 행위는 원칙적으로 타 국가가 재판할 수 없다는 것이 국제관습법(상대적 주권면제 이론)이다. 일본국의 일본군 ‘위안부’ 관련 인권유린 행위는 전쟁 수행 및 군 관리의 일환으로 행해진 것이므로 일본국의 주권적 행위다. 따라서 국제관습법인 상대적 주권면제 이론에 의하면 원칙적으로는 일본국의 인권유린 행위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의 재판권이 미치지 않는다.

 

② 그러나 국제관습법이라 하더라도 국내에서는 대한민국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 적용되어야 하고, 국제규범상으로도 주권면제 이론이 가해국의 국제법상 강행 규범 위반 행위에 대한 실질적 면책을 허용하는 취지로 사용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 일례로 이탈리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국제법상 강행 규범을 위반하여 중대한 인권침해를 유발한 행위에 대하여 주권면제 이론을 적용하는 것은 이탈리아 헌법질서에 반한다는 취지의 판시를 하였다.(페리니 Ferrini 사건)

 

③ 일본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인권유린은 전쟁범죄·성범죄·노예제 운용·인신매매·강제노동 등의 국제법상 강행 규범 위반 행위에 해당한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은 일본국의 인권유린 행위에 대한 공적 인정과 사죄, 배상과 재발방지를 요구했으나 외교적 해결이 여의치 아니하자 일본국과 미국에서 각각 소송을 제기했고 모두 패소했다.
한국과 일본국 사이의 협정이나 합의에서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구체적 권리가 보장되지 아니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일본국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주권면제 법리를 적용하여 소송 제기 자체가 부적법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피해자들의 재판청구권을 박탈하고 강행 규범을 위반한 인권유린 행위를 실질적으로 면책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대한민국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하고 국제규범에도 어긋난다.

 

④ 따라서 이 사건에 대해서는 주권면제 이론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소 제기는 부적법” 이용수 외 20명, 4월 각하 판결

반면 지난 4월 각하 판결의 판단은 다음과 같다.

① 일본군 ‘위안부’ 사건과 관련하여 대한민국 법원이 일본국을 일방 당사자로 하여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하여 가입·체결된 조약이나 국내법이 없으므로 국제관습법이 적용된다. 주권국가의 주권적 행위에 대해서는 타국은 원칙적으로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 확립된 국제관습법이다. 한편 일본국의 일본군‘위안부’ 관련 인권유린 행위는 전쟁 수행 및 군 관리의 일환으로 행해진 것이므로 일본국의 주권적 행위다.

 

② 이탈리아 페리니(Ferrini) 사건에서 ICJ(국제사법재판소)는 2012년 ‘무력 분쟁 중 법정지국 영토 내 불법행위’에 대해서 국가 면제 이론이 적용되고, 만일 그러한 불법행위가 ‘국제법상 강행 규범을 위반하여 중대한 인권침해 결과를 발생시킨 행위’라고 할지라도 주권면제 이론이 예외적으로 배제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ICJ의 국가 면제 이론에 대한 위 결정은 국제관습법으로 확립된 국가 면제 이론의 내용이 된다. 일본국의 일본군 ‘위안부’ 관련 인권유린 행위는 무력 분쟁 중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일부 자행된 불법행위이므로 국가 면제 대상이 되고, 위 인권유린 행위가 국제법상 강행 규범을 위반하여 중대한 인권침해 결과를 발생시켰다고 하더라도 그 이유만으로 국가 면제 이론의 적용이 배제된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국제 관습법상 대한민국 법원에는 일본국을 당사자로 한 재판을 할 권한이 인정되지 않는다.

 

③ 한편, 비록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재판을 통해 일본국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확보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은 피해자들을 위하여 일본국을 대상으로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할 의무가 있고, 2015. 12. 28.자 한·일 합의는 그러한 외교적 보호권 행사의 결과라고 할 수 있으며, 위 한·일 합의를 통해 확보된 금전보상 등은 피해자들이 가질 수 있는 대체 가능한 권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사안에서 주권면제 이론을 적용하더라도 피해자들의 재판청구권이 박탈되거나 일본국의 인권유린 행위에 대한 실질적 면책을 인정하는 등 대한민국 헌법에 위반하는 결과가 초래된다고 볼 수 없다.

 

④ 따라서 이 사건에서는 주권면제 이론이 적용되고 대한민국 법원은 일본국을 상대방으로 한 이 사건 재판을 할 권한을 갖지 않는다. 피해자들의 소 제기는 부적법 하다.

한국 법원의 일본국을 대상으로 한 재판 권한 여부 놓고 이견

결과적으로 위안부 손해배상 소송에서 재판 결과가 달랐던 이유는 ‘대한민국 법원이 일본국을 재판 당사자로 한 이 재판을 할 권한이 있는지’에 대한 판단을 양(兩) 재판부가 달리 내린 까닭이다.

청구 인용 판결은 일본국이 항소하지 아니하여 확정되었으나 각하 판결은 피해자 측이 항소하였으므로 상급심의 판단을 다시 받아보게 될 것이다. 최종적으로 두 재판의 결론이 어떤 식으로 정리가 되든지 간에, 두 재판부 모두 ‘일본이 전쟁 수행 과정에서 일본군 위안소를 설치, 운영하고 여성들을 위안부로 동원하여 관리하면서 여성들의 인권을 참혹하게 유린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두 개의 판결에서 모두 아래와 같은 사실은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일본국은 전쟁 수행 중 병사들의 성폭력 방지 및 성병 예방을 위해 군에 위안소를 설치하고 자국 및 식민지를 포함한 여러 국가의 여성들을 ‘위안부’로 동원하였으며 ‘위안부’들을 관리하고 위안소를 운영하였다. ‘위안부’ 동원에는 납치 등 강제동원·기망·모집·징병 및 공출 등의 수단이 사용되었고 일부 ‘위안부’ 동원 및 ‘위안소’ 운영은 민간업자에게 위탁되기도 하였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1일 십 수 회의 성행위를 강제당하고 폭력에 시달리며 사실상 감금 상태에 처해 있었다.』

나아가 일본국이 위안소를 설치하고 ‘위안부’를 동원·관리하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을 심각하게 유린한 행위(이하 ‘일본국의 인권유린 행위’라 한다)가 국제법을 위반한 반인권·반인도적 행위라는 점, 피해자들이 일본국에 대해여 피해배상을 요구할 권리를 갖는다는 점 또한 두 재판부 모두 인정했다.

나치 배상 물었던 페리니(Ferrini) 사건, 이탈리아 사법과 ICJ의 판단

한편, 두 개의 판결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사례로 유명한 이탈리아인 페리니(Ferrini)의 독일을 상대로 한 소송이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페리니 사건을 양 재판부가 모두 참고한 만큼 이를 살펴보는 것은 두 판결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페리니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① 이탈리아인 페리니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 체포되어 강제노역을 하였다는 이유로 독일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탈리아 1심 및 2심 법원은 독일에 대한 주권면제가 적용된다는 이유로 소송을 각하하였는데, 대법원은 국제법상 강행 규범을 위반한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주권면제 이론을 적용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② 독일은 위 판결을 이유로 2008년 이탈리아를 상대로 ICJ에 제소하였다. ICJ는 2012년 ‘국가의 주권적 행위는 다른 국가의 사법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주권면제 이론은 국제 관습법으로 확립되었으며 이는 무력분쟁 상황에서의 국가의 개인에 대한 생명 신체 재산 침해 행위에 대한 민사절차에서도 적용된다’는 취지로 이탈리아 패소 판결을 내렸다(ICJ는, 독일이 전범국으로서 2차 세계대전 당시 피해국인 이탈리아에 배상 조치를 이행하였는데 이탈리아가 그 배상금을 국가재건을 위해 사용하는 바람에 개별 피해자들이 배상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을 들면서 페리니 재판에 주권면제 이론을 적용할 경우 전쟁범죄 피해자들이 아무런 배상을 받지 못하게 된다는 이탈리아 측의 주장을 기각했다).

 

③ ICJ 판결 이후 이탈리아 법원에서는 페리니 사건과 동일한 재판에 대해 주권면제 법리를 적용하여 각하 판결을 내렸고, 의회는 이미 피해자가 독일을 상대로 승소한 재판을 ICJ 판결에 따라 재심리할 수 있는 법을 만들었다.

 

④ 일부 판사들은 위 ICJ 판결과 의회가 입법한 법률이 이탈리아 헌법에 반한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제청 신청을 했다. 이탈리아 헌법재판소는, 국가의 전쟁범죄 또는 반인도적 범죄행위에 대해 주권면제를 허용하는 ICJ의 판결 및 의회가 만든 법률은 반인도적 범죄 및 기본적 인권 침해 피해자들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완전히 무효화하는 것이고 반인도적 범죄에 관하여 결과적으로 사법적 구제를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페리니 사건에서 이탈리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기존의 국제 관습법인 주권면제 이론이 주권국가의 전쟁범죄 또는 반인도적 범죄 행위에 적용될 경우 전쟁범죄 및 반인도적 범죄의 절대적인 금지와 그에 따른 피해회복을 규정한 또 다른 국제 관습법과 저촉되게 되므로 이 경우에는 국제법상 강행 규범을 설정한 취지를 존중해 주권면제 이론에 관한 국제 관습법의 적용이 후퇴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판시했다. 이러한 태도는 이탈리아 사법이 주권면제에 관한 국제 관습법의 적용을 자의적으로 배제하였다는 비판과 동시에 국제법상 강행 규범의 취지를 고려한 주권면제 이론의 변화를 처음으로 시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이탈리아에서 위와 같이 독일을 상대로 전쟁범죄 피해배상 판결을 받는 것이 가능해졌음에도 피해자들이 실제로 독일의 재산을 집행하는 것은 또 다른 국제법 위반 논란을 불러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탈리아 사법 판단의 한계라고 볼 수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일본국을 상대로 한 재판으로 돌아오자면, 청구 인용 판결은 이탈리아 대법원 및 헌법재판소의 입장과, 각하 판결은 ICJ의 입장과 각각 유사하다. 다시 말하면 국제법상 강행 규범 위반으로 인한 인권유린 사안에 대한 주권면제 적용 여부에 관하여, 각하 판결은 기존 국제 관습법에 충실한 입장을 취하였고 청구 인용 판결은 인권침해 사안에 대하여 국가책임을 확대하고 개인의 권리를 인정하는 쪽으로 발전되어온 국제법의 방향성을 고려해 기존 국제 관습법의 변화를 촉구하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국제법의 변화-국제 인권법의 태동과 유엔 피해자 권리 원칙

전통적인 국제법 관점에서 권리의무의 주체는 국가였다. 각 국가의 주권은 평등하다는 전제하에 주권면제 이론과 내정 불간섭의 원칙이 파생되었다. 조약을 기본으로 한 규범체계가 마련되었고 국가 간 경계, 전쟁, 자원 확보, 무역 등의 이슈 중심으로 국제법이 발전되었다. 이러한 국가 단위의 규범체계 아래에서 개인의 인권은 주목받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는 전쟁으로 인한 참혹한 인권유린의 결과를 반성하면서 인권보장을 위한 국제법 체계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반인도 범죄 등 국제 형사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처벌하는 사법절차가 마련되었다. 그 결과 국제 형사재판소 및 각종 특별재판소가 설립되어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개인이 국제법상 의무의 주체로 등장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내정 불간섭의 원칙을 허물며 국가에 의해 개인의 인권이 침해된 경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인권보호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각종 인권조약 기구들이 인권침해 현장을 직접 가서 진상조사를 실시하고 인권침해 국가에 대해 각종 의견과 권고를 내놓는가 하면, 인권을 침해당한 개인이 진정을 올리거나 권리 구제 신청을 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되기도 했다. 개인이 국제법상 권리의 주체로 등장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국제인권규범체계가 마련되면서 종래 국제법상에서는 권리의무의 주체가 되지 못했던 개인이 권리의무의 주체로서 등장하게 되었고 내정 불간섭 원칙에도 불구하고 국제기구들이 개별 국가에 대해 인권조약에 기초한 관리감독을 실시하거나 인권침해의 책임을 묻게 되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2005년 ‘피해자 권리 기본원칙’이 유엔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그간 인권조약기구나 지역인권법원 등에 의해 반복적으로 설시 되어 온, ‘국제법 위반으로 인해 발생한 인권침해 피해자들의 권리를 확인하고 이에 대한 국가의 법적 의무를 이행시킬 수 있는 절차와 방법들을 집대성한 원칙’이라고 설명된다. 피해자 권리 기본원칙에 따르면 국제법 위반으로 인한 인권침해 피해자들의 권리는 금전배상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피해자 권리는 매우 방대한데, 금전배상을 포함한 일상 회복 이외에도 진상규명-잘못의 공적 인정과 공적 선언-공적 사죄-기록 및 교육을 통한 재발방지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간 진행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권리 회복 운동의 과정을 살펴보면, 초창기에는 진상규명 자체가 중요한 목표였다가 점차 국제법 위반의 인권침해에 대한 가해국의 공적 인정 및 공적 선언, 공적 사죄, 기록 및 교육을 통한 재발방지 요구로 나아갔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운동이 식민지배의 문제와 민족주의적 관점에서만 진행된 것이 아니라 전시상황에서의 여성인권유린의 차원에서 진행되어 결국 일본군 ‘위안부’ 사안이 ‘국제법 위반으로 인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안’의 중요한 예로서 국제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5년 12월에 체결된 한·일 위안부 합의는 절차적으로나 실질적으로 피해자들을 소외시켰다는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위 합의 내용에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이라는 대목과 ‘향후 상호 비판과 비난의 자제’라는 대목이 들어간 의미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는 점도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유엔 피해자 권리 기본원칙에 의하면, 국제법 위반의 인권침해를 공적으로 기록하고 이를 공개하며 교육하여 향후 유사한 인권침해의 재발을 방지할 것을 요청할 권리도 피해자의 권리로서 인정되는데, 만일 한·일 위안부 합의의 내용이 일본군 ‘위안부’ 사태 관련 진상규명 중단, 공적 기록의 삭제, 공적 발화(피해사실 증언 및 비판)의 금지 등으로 해석된다면 위 합의는 명백히 피해자의 권리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달 14일 오전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ICJ) 회부를 촉구하는 서한을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측에 전달하고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권리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국을 상대로 제기한 두 개의 민사재판에서 일본국은 소송 자체가 국제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실질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동일한 사안에 대한 서로 다른 두 개의 판결이 대법원에서 통일될 가능성이 사라진 가운데 피해자들이 청구 인용 판결을 권원삼아 일본국의 재산을 집행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사회는 어떻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권리를 보장할 것인가.

ICJ 제소를 제안하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2012년 ICJ가 ‘국제법상 강행 규범을 위반한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서는 국가면제 이론이 배제된다는 취지로 국제관습법이 변화하였음을 인정할 수 없다’고 결정한 이래 현재까지 국제관습법이 변화하였다는 유의미한 증거를 찾기는 마땅치 않다.

ICJ가 그간의 국제인권법의 발전 양상을 반영, 국제법상 강행 규범을 위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 국가면제 이론을 배제하여야 한다는 국제법 이론을 새로이 확립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도 있다.

만일 ICJ가 그러한 변화를 선언한다면 이는 분명 국제법상 강행 규범 위반 행위를 강력히 제재하고 인권침해 피해자들의 권리를 실효적으로 보장하는 길을 열게 되는 유의미한 한 걸음으로 평가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결정이 나온다면 그에 따라 유럽의 식민지배로 인한 인권침해 사안에서부터 최근 미국의 관타나모 수용소 사건까지 광범위한 영역에서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는데 ICJ가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국제법 이론을 변경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심각한 회의도 나온다. 특히 국제법을 해석하고 발전시키는 주체가 주로 유럽과 미국의 법학자들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말이다.

2005년 국제사회는 만장일치로 호기롭게 유엔 피해자 권리 원칙을 통과시켰지만, 실제로 그 원칙에 따라 국제법 위반의 인권침해 사안이 해결되고 피해자의 권리가 보장된 사례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런 만큼 일본군 ‘위안부’ 사태를 국제 인권법상 확립된 원칙에 따라 해결하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려는 노력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내는 여정에 가깝다. 성공이 보장되기는커녕 어떻게 열어나가야 할지 보이지 않는 와중에 비현실적이고 국익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을 부담만 한가득 안아야 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결론을 낸 두 개의 판결도 이러한 어려움을 반영한다.

재연되지 않도록 국제사회의 연대와 노력 촉구해야

두 판결에 대해 어느 한쪽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편을 들었고 다른 한쪽은 피해자들을 내쳤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해석하는 것은 옳지도 않을뿐더러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소송 결과를 놓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억지를 부린다거나 법을 잘 모른다는 식으로 비난하는 것 역시 옳지 않고 문제 해결에 도움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두 개의 판결 모두 일본군 ‘위안부’ 사안의 인권침해적 측면과 일본의 개입 사실을 인정하는 전제하에 이 사안을 국제법적 관계에서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심했다는 점을 주목하는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얼마 전 램지어 하버드대 교수가 일본군 ‘위안부’들이 자발적 성매매에 나섰고 이를 통해 상당한 경제적 이익을 취득했다고 주장하며 결과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사태의 본질 -국제법 위반 및 인권침해-을 왜곡(김수형 칼럼)하는 논문을 발표했던 사안에서 볼 수 있듯이 아무리 중대한 인권침해 사안이라 하더라도 왜곡과 지우기 시도는 계속될 수 있다. 왜곡과 지우기 시도는 인권침해 피해자들의 정의 구현을 방해하고 그들의 명예를 손상하며 사안에 대한 경각심을 지워 재발(再發)을 용이하게 한다. 역사왜곡의 방지를 위해서는 인권침해 사안의 공적 기록의 공개 및 보존, 교육이 필요하다. 인권침해 사안의 진상규명, 공적 기록 및 인정, 공적 사죄, 공적 기록의 공개 및 보존, 교육이 모두 피해자의 중요한 권리로 인정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사회가 어떤 방법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을지에 대해 구체적인 정답을 내기는 어렵다. 그러나 어떠한 길을 열어가든, 그 방식이 국제사회가 규정한 피해자 권리 원칙에 최대한 부합할 수 있도록 유념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사태에서 드러난 전시 여성 인권유린의 참혹함이 인류사에 재연되지 않을 수 있도록 국제사회의 연대와 노력을 촉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들과 그 연대자들에게 모든 책임과 비난의 화살이 돌아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류영재 필자

판사. 2009년 제50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제40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2011년 서울중앙지법 판사로 임관해 서울남부지법과 춘전지법을 거쳐 현재 대구지법에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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