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4일 경기도청에서 열린 고졸 취업지원 기반마련을 위한 업무협약식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사진=경기도청)

“대학을 가면 장학금도 주고 온갖 지원 해주는데 대학 안 간 사람은 왜 지원 안 해주냐. 똑같은 국민이고 똑같은 세금 내는 이 나라 국민인데 대학 가라고 고사 지내는 것도 잘 모르겠다.”이달 초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고졸 취업지원 기반마련을 위한 업무협약' 간담회에 참석해 한 발언이다. 이 지사는 간담회 중 대학생에게만 국가의 지원이 집중되는 현실에 의문을 표한 뒤 대학을 가지 않은 청년들에게 해외여행 경비 1000만원을 지원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이날 이 지사의 발언은 ‘해외여행 경비 1000만원 지원’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보도됐고 ‘포퓰리즘’이란 비난이 뒤따랐다.천현우 필자는 지난 4월 재보선 선거 이후 <피렌체의 식탁> 뉴스레터 독자의 편지(한국 사회가 놓친 '이남자·이여자'의 목소리)를 통해 지방 제조업에 종사하는 청년의 시각으로 ‘젊은세대 담론’의 여려 결을 솔직하고 생생하게 알려 호평을 받았다.천 필자는 이 지사의 전체 발언을 확인한 뒤 발언 취지에 공감했다. 다만 청년문제 해결을 위해 우선 고졸 채용을 확대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된 정책들이 나와야 한다고 주문한다. [편집자]

#정부, 대학생에게만 관심 이재명 "대학 안 간 사람 지원은?"#청년문제 정치권 어젠다 부상 여행비 지원 아이디어 논란 불지펴#현재 청년문제 핵심은 '취업' 고졸 채용 확대 등 현실책 모색해야

-野 “대학 안 가면 1000만 원? 이재명, 언제 허경영 초월할지 궁금"-이재명 "대학 안 가면 여행비 1000만 원"  野 "선정적 낚시"

최근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발언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며 '1000만 원 논란'이 일었다. 현재 대선 후보 지지율 1위인 이 지사의 발언에 대한 비판적인 접근은 언론의 업무긴 하다. 하지만 제목과 기사만 보고 의아해 실제 이 지사의 발언을 찾아보았다.

'대학 안 간 청년에게 여행비 지원' 본래 의도는?

이 지사의 발언은 지난 4일 경기도와 경기도교육청, 중부지방고용노동청이 경기도청에서 업무협약을 맺는 자리에서 나왔다. 지자체, 교육청, 노동청, 3개의 기관이 ‘고졸 취업지원 기반마련'을 위해 협력하자는 행사였다. 이 지사는 업무협약 이후 간담회 자리에서 본인의 여러 아이디어를 전하며 “세계 여행비를 1000만 원씩 대학 안 간 대신에 지원해주면 훨씬 낫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물었다. 이 말만 따와서 제목과 기사를 낸 언론사들이 많았다. 그전까지 나온 모든 말의 취지를 요약하면 이렇다.

학력으로 인한 임금차별이 심각하다. 이 문제 때문에 모두가 대학을 가야 한다. 국가역량과 재정낭비다. 독일의 경제 핵심은 숙련노동에 대한 존중 또는 충분한 보상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대학 가면 장학금 및 혜택을 주는데, 대학 안 간 사람은 지원 안 해주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 나 또한 4년간 대학을 다녔지만 4년 동안 대학 다니는 것과 4년 동안 해외 일주 다니는 것. 둘 중 어떤 쪽이 그 사람의 인생과 역량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다만 각자가 원하는 생의 경험을 하는 쪽이 더 좋은 교육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 안 가는 청년에게 세계일주 비용 1000만 원 지원하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이 지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당시 발언 전문 에서)
고3 시절. 공고만 나오면 사람 취급 못 받는다는 식의 압박을 자주 받았다. 결국 떠밀리듯 전문대에 입학했고 지금 먹는 ‘쇳밥’과 전혀 무관한 학과로 갔다. ‘만약 대학을 가지 않고 바로 용접을 시작했다면’이란 후회를 곧잘 했었기에 이 지사의 말에 가슴이 울컥했다.

고졸 노동자는 교복 벗자마자 바로 일터로 뛰어든다. 사회생활에 필요한 온갖 경험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 지사는 그 경험의 부재를 여행으로 일부 메꿔주자는 취지였을 것이다. 그 발언이 그렇게 큰 조롱거리가 되는 걸까. 세계일주가 안 되면 국내여행을 지원해주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마침 정부의 복지제도 중 하나로 근로자 휴가 지원의 사례가 있지 않은가. 20대 초반 내가 모르는 세상을 보고, 알고, 경험하는 일의 중요성을 왜 포퓰리즘이라는 이름으로 단순화해 논의조차 막으려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이제 대한민국에서 ‘고졸’ 혹은 ‘검정고시’는 계층 이동이 거의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부모가 그 사실을 알기에 자식을 명문대 보내려고 안간힘 쓴다. 단순히 인식의 문제가 아니다. 학벌주의가 실제 취업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여기서 현시점의 거의 모든 청년 문제가 시작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이 지사는 지긋지긋한 ‘노오력 담론’이 아닌, 보다 명확하고 현실적인 담론을 꺼낸 셈이다. 이는 이 지사 개인의 십 대 시절 경험이 반영된 듯했다. 또래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에 매진했던 시기에 위험천만한 산업현장 복판에 뛰어들었다. 그리하여 귀가 잘 들리지 않고, 냄새조차 제대로 맡을 수 없으며, 왼쪽 손목뼈가 없어 팔이 굽고 만, 불우한 소년공이 탄생했다.

이 지사처럼 십 대 초반부터 일하진 않았지만 나 역시 청년공으로 취업해 줄곧 현장에 종사하고 있어 이 지사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며 동의한다. 다만 현재 고졸과 다를 바 없는 전문대 출신으로서, 현실과 제도의 한계를 직접 보아왔기에 이상론 내지는 거대담론보단 현실에 좀 더 초점 맞춰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모든 정책이며 담론들도 결국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 없이는 공허한 탁상공론일 뿐이지 않겠는가.

청년 문제 해결 위한 대전제는 고졸 채용 확대

이날 이 지사의 발언을 가장 크게 동의할 수 있던 이유는 '청년 문제 해결을 위해 고졸 채용을 확대하고 권장해야 한다'는 대전제를 명확히 했기 때문이다. 주위를 보면 대부분 대학의 교과 과정은 취업용 훈장을 달아주기 위한 단계로 변질했다. 시대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지점이라 하지만 이 ‘훈장’을 달기 위한 기회비용이 너무나 크다. 당장 4년의 세월 간 벌 수 있는 돈과 수천만 원에 이르는 학비며 기타 비용을 감안하면 대부분 대학의 ‘가성비’는 극히 나쁘다. 더군다나 GDP 중 제조업 비율이 30%에 육박하는 대한민국의 산업구조에서 넘쳐나는 비공대 대졸자를 취업시장이 수용하기 쉽지 않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일자리 미스매칭’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고졸 채용은 그래서 필요하다. 그러려면 고졸 채용의 핵심인 직업계(실업계) 고등학교의 교육 변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입시에 필요한 국영수보다는 노동법이나 산업안전법, 산재 대응 같은 산업현장의 실전지식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직업계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취업 현장에 나가서도 ‘억울한 일에 대처할 수 있다’는 지식과 자신감을 심어줘야 한다.

지난 달 28일 오후 충남 태안군 원북면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정문 앞에서 열린 '고 김용균 노동자 추모조형물 제막식'에서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가 아들 조형물을 만져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나도 실업계 고교를 졸업했지만 현장에서 발목에 수지를 쏟아 3도 화상을 입었을 때, 그라인더 파편을 오른쪽 눈에 맞았을 때,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했다. 그저 부랴부랴 달려온 사장 손에 이끌려 병원 치료 한 번 받은 게 전부였다. 만약 고등학교에서 산재 대응요령을 가르쳐주었더라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같은 사례는 현장에서 일상처럼 일어난다. 비일상이어야 할 일상이 쌓이고 쌓여 직업계 고등학교 진학과 이후 취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해진다.

또한 고졸 직장 중 상당수는 기능직에 속한다. 다행히 마침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발급하는 자격증 제도는 매우 잘 정비되어 있다. 이를 적극 활용해 고졸자들의 ‘상승 사다리’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즉 자기 실력을 제대로 인증해 더 나은 처우를 받을 수 있게 하자는 뜻이다. 이를 위해선 기능 숙련과 기술지식 분야로 자격증 제도를 개편해 실무와 이론 구분을 좀 더 명확하게 나눠야 한다, 고졸-대졸자가 상호 유리한 쪽으로 능력을 입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아예 두 자격증을 다 습득해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고졸 노동자라도 언제든 대학교 공부를 다시 할 수 있는 체제 마련도 생각해봐야 한다. 현장에 있으면서 공부의 꿈을 버리지 못했으나 현실에 가로막힌 노동자를 너무 많이 봐왔다. 물론 초인 같은 인내력으로 그 꿈을 쟁취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는 누구든 노력 하나만으로 이룰 수 있는 업적이 아니다. 배움의 장벽을 조금 더 낮춰야 한다. 몇 년 이상의 산업 종사자에게 학비를 지원해주거나, 어느 정도 생활비를 보전해주는 정책은 실현해볼 만한 일 아닐까? ‘늦깎이 공부’가 무모한 도박이 아닌 평범한 진로 중 하나가 될 수 있도록 국가가 정책적 고려와 설계를 해주길 바란다.

무엇보다 대다수 고졸이 가게 되는 중소기업은 임금, 안전,설비,인식,비전,업무강도,출퇴근 편의, 온갖 면에서 매우 열악하다. 더군다나 고졸 노동자는 대체로 집안 사정 때문에 진학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자산도 없는 와중에 일은 힘들고 월급은 많지 않으며 직장 근처로 이사 시 월세까지 부담해야 하는 삼중고에 갇힌다. 이때 국가가 정책을 통해 개입할 수 있는 부분 중 하나가 주거안정이다. 중소기업 직원을 대상으로 한 청년 내일채움공제와 연계해 일하는 동안이나마 마음 편히 머물 수 있는 주거공간 지원도 함께 이루어지면 어떨까.

허울 뿐인 '일학습병행제'  고졸자 직무역량 향상과 무관

그리고 이 지사의 고졸-대졸 간 동일노동 동일임금 주장은 일리가 있으나 현실과는 동떨어진 발언이다. 지금 현장에는 대졸이 없고, 사무실에는 고졸이 없다. 일자리 양극화 때문이다. 극도의 단순노동이나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일자리 사이에 중숙련 노동은 멸종하다시피 했다. 대다수 중소기업의 월급은 최저임금에서 요지부동이며, 별다른 숙련을 요하지 않기에 경력 쌓아 이직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즉 ‘고졸이 실력을 쌓아 대접받는’ 일은 극히 일부 업계에만 존재한다.

이를 보완해주어야 할 ‘일학습병행제’의 현실은 더욱 참담하다. 이 지사가 언급한 독일의 경우 직업교육이 기업과 국가 간 고도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진다. 직업학교에서 이론을 배우고 현장에서 실무를 배우는 이원제도 안에서, 졸업과 함께 바로 현장에 투입 가능한 인재가 만들어진다.

그럼 한국의 ‘일학습병행제’는 왜 이런 모델이 될 수 없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기업이 ‘일학습병행제’에 참여하는 학생을 ‘발전시켜 나갈 인재’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학습병행제’를 시행하던 업체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제도 당사자들에게서 “괜히 했다”라는 후기를 자주 들었다. 사실상 회사는 정부 지원금을 타내려고 신청했을 뿐, 제도를 실현할 준비는 미비하기 짝이 없었다.

배우는 일과 공부가 따로 노는 건 기본이요, 회사는 실무를 빙자해 일 시키기 바빴고, 주경야독의 지난한 과정을 거쳐 얻은 학위는 사실상 쓸모가 없었다. 개인적 경험을 일반화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일학습병행제’는 존재 자체가 무의미한 제도였다. 이 제도를 독일식으로 개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오랜 기간이 걸리는 일이다. 결국 산업 개편이 이루어져야 한다. 단기-저숙련 일자리를 줄이고, 쌓은 기술만큼 임금으로 대우 받을 수 있도록 산업 체질을 개편해야 한다. 이는 원론적인 이야기라는 한계가 있지만 그 원론을 계속 외면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진이 발표한 '일학습병행제' 사업목적

대한민국의 인구는 계속 감소하고 있고 국가간의 경쟁은 계속 심화하고 있다. 이에 따른 여러 사회문제들도 발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 해결의 우선순위는 청년들의 미래에 맞춰야 한다. 당장 청년들의 미래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은 일자리 문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 방안은 청년세대에 대한 지원과 고졸 채용 확대다.

고졸 채용이 자리 잡게 된다면 그 이익은 단순히 취업시장의 정상화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것이고, 일찍 기반을 다진만큼 더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질 것이다. 공무원에 목숨 걸고 대기업 채용만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무엇보다 고졸-대졸 사이가 지금처럼 계급관계가 아닌, 인생의 다른 길을 가는 동등한 인격체로 서로 존중할 수 있는 풍토가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청년 지원, 대학 진학 여부 놓고 차별 말아야

청년들은 공정에 민감하다. 그러나 그 공정의 기준은 매우 협소하다. 단지 명문대나 대기업에 들어가기 이전 과정에서만 작동한다. 천대받는 고졸과 중소기업 문제엔 결코 공정의 천칭을 들이대지 않는다. 청년이 무지해서가 아니다. 대한민국 사회가 그런 식으로 흘러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문제점이 계속 지적되어왔지만 정치권에서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사실 이제야 정치인들이 관심을 가지는 듯해 씁쓸하기까지 하다.

사실 ‘진짜 공정한 세상’이란 전혀 거창한 개념이 아니다. 작업복과 양복이 서로 우열을 나누지 않는 세상.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현장에 들어간 노동자들이 흘린 땀과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이 공부에 들인 노력이 동등하게 평가받는 세상이다.

이 지사는 청년세대에 매우 중요한 문제의식을 제기했다. 앞으로 이 담론이 커져 현실의 정책으로 자리 잡길 바란다. 기성 정치인들도 여러 청년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주시길 바란다. 작금의 청년세대를 둘러싼 불행은 기성 정치인 세대, 즉 부모 세대의 모든 노력과 성취가 물거품이 되어간다는 신호나 다름없다. 단순히 ‘먹고 살만해진 세상’의 철없는 젊은 세대들의 투정으로 여기지 않길 바란다. 기성세대가 청년에게 진지하게 다가설 때, 청년 역시 기성세대의 공로를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사회가 될 것이다.


천현우 필자

본업은 용접공. 전문대 졸업 전후로 여러 중소기업을 돌아다니며 일했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소설가를 꿈꾸며 계속 도전하고 있다. '쇳밥 먹는 청년 노동자'를 자칭하며, 지방 제조업 현장의 목소리와 수도권 외 청년들의 현실을 보다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글쓰기에도 매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