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새 대표가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첫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더불어민주당)

“대한민국이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어느 한 편에 서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자칫 두 세력의 대척점에 서서 임진왜란, 청일전쟁, 러일전쟁 때처럼 열강들의 세력 확장을 위한 전쟁 무대로 전락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한반도가 3차 세계대전의 화약고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북중러 북방 3각 동맹과 한미일 남방 3각 동맹 간의 대립구조가 동북아에서 재현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
송영길 저 <둥근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에서.

174석 거대 여당의 새로운 리더로 5선의 송영길 의원이 선출됐다. 세 번의 도전 끝에 친문 핵심인 홍영표 의원을 누르고 당권을 손에 쥐었다. 송 대표에게는 4·7 재보선 참패에 따른 내부 혁신과 민심 수습, 그리고 내년 3·9 대선의 관리 임무가 주어졌다. 이와 별도로 송 대표에겐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권유로 1998년 정치에 입문한 이후 정치 인생을 걸고 줄곧 천착해온 과제들이 있다. 바로 한반도 외교안보 이슈다. 특히 미중일러 4강 외교에 공을 들여왔다.

국회 외통위 위원장이었던 송 대표는 지난 1월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 때 여야 의원 6명으로 구성된 외통위 방미단 대표로 워싱턴을 찾았다. 이에 앞서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에는 러시아 특사 자격으로 모스크바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을 만나고 왔다. 그는 당내에서 보기 드문 국제 감각과 외국어 능력을 자랑한다. 당내 외교통일안보자문회의 의장.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 위원장으로도 활약했다. 적어도 21세기 들어 민주당 계열의 역대 당대표 가운데 송영길만큼 4강 외교에 집중해온 정치인도 드물 것이다.

송 대표는 정치권에 들어와서도 어릴 적 자신의 꿈이 ‘외교관’이었다고 밝혀왔다. 외교관이 되려면 외국어에 능해야 했기에 광주 대동고 재학 중 제2외국어인 불어부터 익히기 시작했다. 덕분에 불어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해 한-프랑스 의원친선협회 회장을 맡은 바 있다. 여기에 중국어, 일본어를 따로 배우는 등 평생학습을 계속해왔다. (송 대표는 방통대학 중국어과, 일본어과를 각각 따로 졸업했다) 한때 국회의원실 인턴비서로 일본인을 채용해 과외수업을 받았고, 일본 정치인들과의 교류도 꾸준히 이어왔다. 고노 다로 행정개혁담당 장관과는 서로의 지역구를 방문하기도 했다.

1990년대 초선 의원 시절에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린 유럽-아시아의 젊은 국회의원 미팅프로그램에 참가했는데 그때 '영어 울렁증'으로 적잖게 고생했다고 한다. 그 뒤 본격적으로 영어회화를 익히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는 통역 없이 영어로 대담을 할 수 있을 만한 실력을 갖추었다. 중국어도 유창한 편이다. 2015년 칭화대 방문학자로 머물던 당시에는 중국어로 중국청년중앙정치학원에서 특강을 했고 중국의  TV프로그램에 나가 중국어로 토론을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러시아어 학습에 도전하고 있다.

이런 노력의 결과는 남다른 국제 감각으로 이어졌다. 송 대표는 지난해 2월 메디치미디어가 발간한 저서 <송영길의 지구본 외교, 둥근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를 통해 한국의 외교 현안에 대한 식견과 대안을 밝혔다. 4선 중진 의원으로는 특이한 행보였다. 앞으로 집권여당의 대표로서 송 대표 본인이 마음 먹을 경우 정당 외교, 의원 외교에 나설 공간이 훨씬 넓어질 수 있다. 한국 정치의 국제화를 위해 필요한 과정일 것이다. 송 대표는 이 책에서 한국 외교의 주요 상대국에 대한 자신의 전략과 ‘외교 철학’을 선보였다.

미국, 주체적 가치동맹으로 진화해야

송 대표는 미국과의 외교 관계에 있어 먼저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대한민국의 안전과 발전, 동북아 힘의 균형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건”으로 한미동맹을 바라본다. 따라서 한미동맹의 진화와 발전이 곧 국익과 연결된다는 소신을 밝힌다.

한미관계와 관련해 송 대표는 국내 보수세력의 자세 변화를 주문한다. 항상 ‘반미냐 친미냐?’는 관점으로 바라봐선 안 된다는 것이다. 한미관계가 서로의 입장 차이로 인해 다소 경색되면 “동맹의 배신이냐?”며 진보 정부를 공격하고 걸핏하면 친중 조공외교라는 프레임으로 한미동맹, 한중관계를 연결지어 정치적 공세로 치환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시한다. 송 대표는 “한미동맹을 교조화하거나 신화화해서 절대선으로 만드는 행위야말로 조공종속외교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송 대표가 보는 한미관계의 지향점은 이렇다. “지구의 축이 23.5도 기울어진 것 같이 한미동맹을 기본 축으로 하되 한미동맹이 대북한 방위를 넘어 대러, 대중 군사적 대립으로 발전하는 것을 차단하고 분명한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자주적인 민족의 생존공간을 자신감 있게 열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송 대표는 한미동맹, 대미 외교에 있어 한국 정치인들이 국내 정치에 매몰돼 미국 정치를 잘 모르고, 여당 내부의 대미 네트워크가 취약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 대안으로는 일본이 장기적으로 미국 정치권에서 친일-지일 정치인을 양성해나가는 프로그램을 적극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 과정에서 재미동포에게 뭔가 역할을 맡기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재미동포 사회가 미국 상하원 내 유력 의원들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한미 정치인들의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우리 정부가 뒷받침하자는 것이다.

對中 경제의존도 낮추되 형제국가로 가야

중국과의 관계는 ‘의로운 대국, 진정한 형제 국가로 발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송 대표는 중국이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를 만들어낸 것은 위대한 업적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서구 언론이 주로 제기하는 중국 내 인권유린 문제와 관련해선 상대적으로 주목하지 않는 편이다. 또한 중국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 핵보유국 중 유일하게 '핵 선제사용 불가' 방침을 공식 선언한 국가라는 점을 환기시킨다.

송 대표는 북핵 문제를 이유로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에만 쏠려있는 보수세력들의 주장들을 우려한다.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는 필연적으로 가상의 적인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하게 된다. 이에 따른 군사적 긴장상태가 한반도 평화에 과연 도움이 될지 되묻는다. 그러나 한중 관계에서 사드 배치를 둘러싼 중국의 경제보복 조치를 겪고 나선 ‘대중 의존도’를 줄여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또한 대중 외교에서 외교부 내 중국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중국을 바라보고 외교정책을 펴야 하는 데 한국이 그런 면에서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2018년 6월 22일(현지 시간) 모스크바 크레믈린대궁전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의 안내로 한국측 인사들과 인사하던 도중 당시 북방경제협력위 위원장이던 송영길 의원과 반갑게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러시아, 동북아 냉전구조의 완충 지렛대 삼아야

송 대표는 러시아와의 인연이 각별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시 러시아 특사로 파견됐으며, 인천시장 재임 시절엔 상트페테르부르크, 예카테린부르크, 블라디보스토크와 자매결연을 맺었다.

송 대표가 보는 러시아는 분단된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대륙경제로 연결되는 통로이며 북극항로 시대를 열어가는 중심축이다. 때문에 북중러 북방 3각과 한미일 남방 3각 구도의 신냉전구조는 동북아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특히 최근 강화되고 있는 중러 군사협력과 미일 군사동맹은 남북관계의 분열과 결합돼 한국의 운신 폭을 좁혔다고 진단한다.

때문에 송 대표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주도하는 동방경제포럼, 즉 중러와 한일 4개 나라가 미국 없이 만나는 경제포럼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북아 냉전구조를 경제협력으로 완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다.

또한 한중일 정상회의와 한중일 FTA 체결 및 협력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아울러 러시아가 지닌 우주과학 분야와 물리, 화학 등 기초학문 분야의 경쟁력을 활용해 한국의 산업응용기술 및 ICT기술과 상호 보완할 수 있도록 과학기술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결국에는 한러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발전시켜 유라시아 경제공동체로 FTA 협상을 실현시켜 나가자는 거다.

일본, 민주주의 국가로서 우호적 관계 지향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 대해 송 대표는 한국과 일본이 서로에게 제3의 경제파트너라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일 간에 제조업 분야의 공급사슬과 가치사슬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현실에서 ‘민주주의 국가 일본과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자’는 게 핵심이다.

송 대표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의미의 친일 정치인이 되고 싶다’ 고 말한다. 과거 군국주의 일제의 잔재를 청산한 '민주주의 국가 일본'과 친해지고 싶다는 의미에서다. 즉 과거의 친일이 민족을 배반한 반인륜적 범죄행위에 동참하는 행위였다면, 새로운 친일은 군국주의 체제를 해체하고 새롭게 평화헌법 아래 인권과 자유,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일본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송 대표는 특히 일본과 손잡고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주장한다. 한일 양국은 모두 에너지와 천연자원 등 대부분의 원자재를 대외수입에 의존하는 국가다. 이를 위해 안전한 통항 질서와 해상운송로를 확보해야 하는 공동의 과제가 있다. 또한 수출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한 상황에서 자유로운 국제무역질서를 같이 발전해 나가야 할 처지다. 급속한 노령화, 저출산을 겪고 있는 사회 현상도 닮았다. 결국 서로의 지혜와 경험을 나누는 것이 양국 발전에 더 이롭다는 것이다.

북한, 세계 금융질서 체제에 편입시켜야

송 대표는 스스로를 ‘주사파가 아닌 민족주의자’라고 설명한다. 자신에게 영향을 미쳤던 정치인으로 죽산 조봉암을 비롯해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을 꼽는다. 이들의 공통점은 남북화해협력, 민족 통일을 위해 헌신했던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송 대표는 “분단을 극복하는 시대를 만들어보겠다는 비전을 품고 실천해 왔다"고 자부한다 20대 국회 하반기에 외교통일위원회로 상임위를 옮긴 이유에 대해 “대한민국의 생존전략을 구체적으로 실천해 보기 위해서”라고 답한 바 있다.

송 대표는 베트남의 사례를 봤을 때 북미 간의 국교 정상화가 언젠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의 관점은 북미 수교를 통해 북한이 친미 국가가 된다면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는 새로운 카드를 갖게 되니 서로 이해관계가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북한은 미국과 문명사적인 대립이나 종교적인 대립이 있던 게 아니었다.

주목할 점은 북한 역시 중소분쟁 당시 등거리 외교를 펼쳐 실리를 챙겼다는 것이다. 송 대표의 전망으로는 향후 미중 분쟁 과정에서 북한도 실리 확보를 위해 미국 카드를 쓸 수 있다. 북한의 국가안보 불안 해소, 경제제재 해제, 세계 금융질서 편입, 북한 제품의 세계시장 수출 등은 미국만이 해줄 수 있어서다. 북한은 자신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대미 관계 개선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외교 막후 실력자로 부상할 수 있을까?

송 대표는 당대표 취임 초기엔 부동산 정책 실패에 따른 민심 이반과 차기 경선 관리에 중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느 정도 정치적 현안들이 정리되면 과거의 여당 대표와는 다른 길을 추구할 가능성이 크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초선 의원 때부터 외교와 국제정치에 늘 관심을 쏟아왔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권에선 지금까지 의원 외교, 정당 외교를 펼쳐왔지만 그 수준이 미미한 편이었다.

다른 한편에선 '외교하는 여당 대표'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외교가에서 가장 터부시하는 항목은 실언이나 돌출행동이기 때문이다. 외교 현장에서는 미묘한 뉘앙스 차이에 걷잡을 수 없는 오해와 충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실제로 송 대표는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 이후 인천시장 자격으로 연평도를 찾았다가 '폭탄주 실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지난해 6월 북한의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사건 때도 “대포로 안 한 게 어디냐”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다. 이에 대해 송 대표 측에선 "발언 전체의 맥락을 무시하고 일부 대목만 편파적으로 왜곡한 것"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미중 패권경쟁과 신냉전의 기류로 인해 한국 외교는 갈수록 고차방정식이 돼 가는 각종 현안에 부닥치고 있다. 그래서 외교에 대한 철학과 소신이 뚜렷한 여당 당대표의 출현은 분명히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총력 외교도 필요한 시기다.

송 대표는 <둥근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사진)를 출판하며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초선의원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님을 동교동에 찾아가 만나 뵈었을 때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을 항상 기억한다.

“송 의원, 우리나라는 외교하는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4대 강국 어느 나라와 척지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면서 우리 민족의 생존공간을 열어야 합니다.”

송 대표가 항상 기억한다는 DJ의 조언을 거대 여당의 수장이 된 지금 그가 어떻게 실현해 나갈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외교의 힘'을 믿는 집권당 대표의 출현은 적어도 21세기에는 처음 있는 일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장차 '정당 국제화'와 '외교하는 국민' 의 길을 주도해 나가기를 기대해보는 이유다.

김용운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