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1월 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열린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의 신년 행사인 '문파 라이브 에이드-해피뉴이어 토크쇼' 현장(사진=연합뉴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새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가 2일 끝났다. 86세대의 맏형 격인 송영길 의원(58세, 5선)이 174석의 거대여당을 이끌 당대표로 선출됐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지지세력을 자처하는 소위 '문파'들이 얼마나 전당대회 결과에 영향력을 발휘하느냐였다. 친문 색채가 옅은 송영길 의원이 0.59%포인트 차이로 친문 핵심인 홍영표 의원을 눌렀지만 최고위원 선거에선 달랐다. 5명의 당선자 중 김용민(초선), 강병원(재선), 김영배(초선) 의원 등 3명은 친문 직계로 꼽힌다. 백혜련(재선)의원과 전혜숙(3선)의원도 친문 색채가 강하다. 이들은 문파가 주류를 차지한 권리당원 투표에서 우위를 점하며 당 지도부에 입성했다. 전남대 철학과 교수인 박구용 필자는 2018년 출간한 저서 <문파: 새로운 주권자의 이상한 출현>를 통해 일찌감치 문파의 역할 확대를 예견한 바 있다. 그는 이번 칼럼에서 한국 정치에서 가장 논쟁적인 '문파' 현상에 대해 진일보한 관점에서 문파의 존재를 옹호한다. 또한 차기 대선 후 문 대통령이 현실정치를 떠나면 문파 또한 사라질 것이나 장차 이름을 바꾸어 되돌아올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번 칼럼을 계기로 '문파'애 대한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길 바란다. [편집자]

#文 대통령 지지율 하락세 뚜렷  역대 정권 집권 5년 차 비교하면?#강력한 지지층 '문파'는 아직 견고  '문파'의 실체 놓고 의견 분분#넷으로 연결된 정치적 집단지성  이름을 바꾸어가며 되돌아올 것

문재인 대통령의 집권 5년 차 국정지지율이 30% 초반까지 내려왔다. 많이 떨어졌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30%선도 무너져 최저치를 경신했다. 국정 수행 동력도 약화되었다. 새로운 동력을 끌어당길 만한 모멘텀도 없다. 그렇다고 절망적이진 않다. '87년 체제'가 확립된 이후 5년 차 국정 지지율이 30%를 유지하긴 처음이다. 그만큼 굳건한 지지 기반을 갖추고 있는 것일까? ‘예’도 ‘아니오’도 같은 답이다.

'집권 5년차 지지율' 30% 유지강력한 기반은 가상세계 네트워크 

먼저 ‘아니오’다. 문재인 대통령 개인은 매우 진보적이다. 그의 정부는 비교적 진보적이다. 그리고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다. 그런데 진보의 단단한 지원 세대인 20대 남성이 등을 돌렸다. 조직화된 생산직 노동자들의 지원도 크게 흔들렸다. 진보 정치의 한 축이 붕괴되고 있다. 이 축에서만 보면 문재인 정권 5년 차는 참여정부와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예’다. 문재인 정부는 분명 강한 지지 세력을 갖고 있다. 이 세력은 어디에 있는가? 지역 프레임으로 보면 호남만 남는다. 그러나 지역 프레임만으로는 더 이상 한국정치를 읽어낼 수 없다. 지역은 여전히 큰 가치를 품고 있다. 하지만 정치 변화를 이끄는 주체는 아니다. 변화는 전혀 다른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강력한 지지 기반은 가상세계의 네트워크다. 가상세계에서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는 개인, 특히 전통적인 지배체계에서 배제되었지만 이제 막 세계를 주도하기 시작한 여성이 문재인 대통령과 그의 국정을 흔들림 없이 지원하고 있다. 이 변화를 문재인을 비롯한 진보적 정치인이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물론 진보적 사상가나 활동가가 만들어낸 것은 더더욱 아니다.

사회변동의 주체가 변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의 지지 기반이 뒤집히고 있다. 정치의 적과 동지를 나누던 의제도 바뀌고 있다. 이 변화는 유통, 교통, 소통의 기술혁명에서 시작된다. 유통, 교통, 소통의 기술은 한 마디로 네트워크 기술이다. 이 기술의 주도권이 현실세계에서 가상세계로 전환되었다.

정치의 피아 가르던 의제 변화사회변동 주체가 달라진다 

가상세계인 인터넷 쇼핑몰에서 상품 하나를 골라 주문한다. 이 순간 현실세계의 수많은 사물과 사람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곧이어 문 앞에 상품이 배송되었다는 알림 문자가 울린다. 이제 가상세계는 현실세계보다 더 현실적이다. 가상이 현실을 움직이는 초-현실이 되었다.

사회학자 마누엘 카스텔(Manuel Castells)에 따르면 사회 변화를 이끄는 주체는 산업 노동자에서 네트워크화된 개인으로 바뀌었다. 네트워크화된 된 개인은 누구인가? 애매하고 모호하다. 소득이나 재산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직업이나 지역으로 분류되지도 않는다. 연령이나 성별로도 분류되지 않는다. 그럼 누구인가?

현실세계의 가장 강력한 네트워크는 노동조합, 협동조합, 이익단체, 직능단체, 지역단체, 동창회 등이다. 이 네트워크는 정치판에서 여전히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변화, 특히 진보적 변화의 주체는 아니다.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과 같은 노동단체에 가입한 사람들은 여전히 진보정치를 더 많이 지지한다. 하지만 점점 줄어들 뿐 늘어나지 않는다. 추세가 바뀔 기미는 어디서도 포착할 수 없다.

오랫동안 현실세계의 진보적 네트워크는 신자유주의와 싸워왔다. 2008년 마침내 신자유주의는 붕괴된다. 누가 신자유주의를 무너뜨렸는가? 현실세계의 네트워크를 주도한 진보적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가 신자유주의를 붕괴시켰는가? 아니다. 신자유주의는 그들을 비판하던 노동조합과 같은 정치세력의 붕괴로 붕괴되었다. 견제받지 않은 권력은 곧 그 권력을 잃는 법이다. 신자유주의는 그들의 영혼이 집중된 월스트리트에서 발원한 금융위기에 의해서 붕괴되었다.

시대정신으로서 신자유주의는 죽었다. 그렇다고 새로운 시대정신이 태어난 것도 아니다. 최고 통치 이념의 부재상태, 곧 인터레그넘(Interregnum)의 시대다. 새로운 시대정신이 태어나지 않으니 죽은 이념이 살아 있는 냥 돌아다닌다. 좀비-자유주의, 좀비-자본주의 시대다. 그 때문인지 죽지도 살지도 않은 존재인 언데드(undead) 문화 상품이 반복 재생산된다.

언데드 좀비의 무절제한 증식이 계속되는 와중에 사회변화, 특히 진보의 의제와 진보의 적이 바뀌었다. 다원주의, 생태주의, 여성주의가 진보의 의제를 새롭게 만들어 가고 있다. 어제는 재벌과 자본가, 오늘은 검찰과 언론이 개혁의 대상이라면 내일은 원자력, 헤지펀드, 남근 가족 권위주의가 진보의 적이 된다. 그렇다면 보수 우파의 적은 누구인가? 어제는 운동권과 노조(특히 전교조), 오늘은 촛불과 민족이 극복 대상이라면 내일은 동성애, 외국인, 엘리트 여성이 그들의 적이 된다.

한편에선 인터레그넘 현상이 지속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 사회변화의 주제와 의제가 전환되었다. 프레임은 바뀌었지만 패러다임 전환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 마디로 세계가 회전 교차로에서 빙빙 돌고 있다. 이 맥락에서 문파(빠)를 읽고 해석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 엉뚱한 프레임을 아무리 뒤집어씌우려 해도 걸려들지 않는다.

가상세계의 광장에서 '문파' 탄생문파에게 일관된 논리를 요구 말아야

지난 2018년 <문파: 새로운 주권자의 이상한 출현>(메디치미디어)을 쓰면서 민주주의 체계의 변화를 읽어내려고 시도했다. 대의민주주의는 주권자가 형성한 의견과 의지를 의회와 언론이 대변하는 체계다. 의회와 언론이 시민 주권자의 뜻을 온전하게 대변한 적은 별로 없다. 대변은 언제나 대변일 뿐이다. 하지만 주권자들에게 별다른 선택이 없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한계 지점에 이를 때까지 참았다. 한계치를 넘어서면 광장이 폭발하고 혁명이 일어난다.

옛날에 그랬다. 지금은 다르다. 가상세계에서 광장은 너무 쉽게 열린다. 누구나 광장을 만들 수 있다. 누구나, 언제나 광장으로 나갈 수 있다. 오랫동안 현실세계의 광장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독점했다. 지식을 가진 사람, 재산을 가진 사람, 나이를 먹은 사람, 남자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과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들이 독점했다. 그러나 가상세계의 광장은 다르다. 교양 언어를 쓸 필요가 없다. 논리나 이념도 제약조건이 아니다. 재산, 나이, 인종, 성 따위는 이제 광장의 출입허가증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새 대표로 선출된 송영길 의원(가운데)과 김영배(왼쪽부터), 백혜련, 전혜숙 최고위원,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 김용민, 강병원 최고위원이 2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임시전국대의원대회에서 꽃다발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최고위원 선거에서 1위를 차지한  초선의 김용민 의원은 문파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은 의원으로 꼽힌다(사진=연합뉴스)

이 가상세계의 광장에서 문파(빠)가 태어났다. 문파는 현실세계에서 실체가 없다. 그러나 현실세계를 움직이게 한다. 실체는 없지만 작동하는 정치 현상이 문파다. 이 맥락에서 문파보다 먼저 등장한 정치 현상이 안철수 현상이다. 안철수는 이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실체화를 꾀하고 있지만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현상을 현상으로 보아야 성공한다.

문파에 대한 비난과 비판은 오래되었다. 최근에는 보궐선거의 패배에 대한 책임을 문파에게 묻는 이들도 있다. 실체 없는 문파는 책임지고 싶어도 질 수가 없다. 실체 없는 문파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이들은 책임회피 전략을 쓰는 것이다. 자기 짐은 자기가 짊어져야 올바른 정치인이다.

문파에 대한 가장 오래된 비난은 문파에겐 ‘논리가 없다’, ‘이념이 없다’, ‘일관성이 없다’, ‘좌‧우 분간 못 한다’는 말이다. 일관된 이념과 논리로 세계를 바라보고 주도해온 사람에겐 치명적 결함처럼 들린다. 하지만 논리 운운하는 이들의 비난 논리에도 논리는 없다.

세상은 하나의 이념, 하나의 논리로 구성되지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하나의 이념이나 논리로 살지 않는다. 물론 합리적 의사소통에 참여하는 사람이라면 가능한 논리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정치적 의견과 의지 형성이 이루지는 광장의 판이 바뀌었다. 가상세계의 광장에 참여하는 시민 주권자에게 논리와 이념을 참여조건으로 제약하는 것은 더 이상 합리적이지 않다.

더구나 당파성을 가지고 자기 편의 승리를 지향하는 문파에게 일관된 논리를 요구하고 추궁하는 것은 지나치게 허황된 비정치적 논리다. 전투 중인 군인에겐 내 편의 승리를 위한 생각과 행동이면 합리적인 것이다. 승패와 상관없는 교양 언어, 논리 언어는 적어도 이 편에서는 합리성과 무관하다. ‘심한 욕을 퍼붓는다’, ‘문자 폭탄을 날린다’는 비난 역시 교육받은 성인 남성 권위주의자들에게만 설득력이 있다.

욕을 먹으면 욕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럽다. 문파로부터 욕설 문자로 융단 폭격을 당한 사람이면 문파란 말만 들어도 고개가 돌아간다. 욕먹고 욕해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교양인 행세를 하려면 최소한 교양 있게 상대를 분석해야 한다. 허공에다 욕지거리하면 정신병자 취급받기 쉽다.

실체 없는 문파를 실체화하려는 시도들문파의 심장이 아니라 배설물일 뿐

문파를 비난하면서 해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민주당의 보궐선거 패배의 직접적 원인을 당심과 민심의 괴리, 문파에 의한 당심의 과다 대표에서 찾는다. 네트워크화된 개인은 2015년 이후 자리 잡은 온라인 당원제와 모바일 투표를 통해 민주당의 중요 의사결정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문파는 이렇게 네트워크화된 개인들의 비조직화된 시민들이다. 그러니 민주당이 극렬 지지자라는 문파에게 휘둘려서 망했다는 분석이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지나치게 게으른 정치 분석이다.

저들의 말처럼 온라인 당원이 아닌 국민여론조사로 후보를 선출했다면 민주당이 승리했을까? 민주당이 정부와 비판적 거리두기를 했으면 여론과 민심이 이반하지 않았을까? 민주당이 그럴싸한 경선 레이스를 연출했다면 결과가 바뀌었을까? 알 수 없다. 그렇지만 패배의 핵심은 정치 공학이 아니라 정치 부재에 있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지난해 4월 총선 승리 이후 주권자의 의견과 의지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20~30대, 남자, 생산직 노동자의 마음을 외면했다. 윤석열과 싸우는데 에너지를 소진하면서 이들의 마음을 읽는 일을 게을리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를 박근혜 정부나 이명박 정부와 비교하여 평가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해와 욕망에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하느냐로 문재인 정부를 평가한다. 주권자의 이해와 욕망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현대사회의 정치다. 바로 이 정치의 부재가 패배의 직접적 원인이다.

문파는 패배의 원인이 아니다. 문파는 30%의 지지율 기반이다. 문파 중에는 극렬 지지자도 있고 당파적 지지자와 비판적 지지자도 있다. 문자 폭탄을 보내는 사람도 있고, 가상세계에서 광장을 활성화시키며 진보 의제를 만들어가는 사람도 있다. 온라인 당원도 있고 정당 근처에는 가보지도 않는 사람도 있다. 어쨌거나 이들은 더 이상 방관자가 아니다. 문파는 발언한다. 문파는 행동한다. 그러나 문파는 어디에도 거주하지 않는다.

실체가 없는 문파를 실체화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2018년 6월 지방선거, 특히 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에서 이재명 후보를 적대시한 세력들이 문파의 실체화, 곧 조직화를 꾀했다. 실패했지만 같은 해 이루어진 민주당 당대표 선거에서 유사한 시도가 다시 한 번 이루어진다. 실패했다. 이들은 문파를 자처한다. 물론 이들도 문파다. 문파의 심장이 아니라 배설물이다.

'문파'는 정치적 집단지성의 등장 징후이름을 바꾸어가며 되돌아올 것

문파를 비난하는 소리가 들리면 그 소리를 내지르는 사람부터 관찰해야 한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고들 한다. 아니다. 달을 제대로 보려면 손가락부터 봐야 한다. 어떤 손가락이냐에 따라 달은 달라 보인다. 지금 문파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은 민주당과 정당정치, 혹은 진보정치를 지지하는 사람이 아니다. 저 손가락의 주인은 교양 정치, 논리 정치, 간부 정치, 현실 광장의 정치권력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들 중에는 문파와 이재명의 분리와 대립을 반복 재생산하는 이들이 많다. 두 부류 중에 하나다. 한 부류는 민주당 내부에 있다. 민주당의 권력을 계속 독점하려는 자들이다. 문파가 이들에게 놀아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이들이 시도했던 두 번의 실체화 시도의 실패가 증명한다. 민주당이 건강한 정당으로 계속해서 비상하려면 굳건한 두 개의 날개가 있어야 한다. 봉화와 양산에서 자란 날개, 신안과 성남에서 자란 날개가 함께 펼쳐져야 한다. 두 날개를 찢으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은 민주당 내부의 민주당 적이다. 이들은 민주당 바깥에서 문파와 이재명의 대립을 조장하고 확산하려는 부류와 적대적 공존을 꾀한다.

문파를 해체하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실체가 없으니 해체할 수가 없다. 문재인이 정치무대에서 떠나는 날 정치 현상으로서 문파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문파는 이름을 바꾸어가며 되돌아올 것이다. 새로운 이름으로 귀환하는 주권자, 네트워크화된 개인들의 정치적 집단지성이 지지하는 정치인이 곧 등장할 것이다. 그와 함께 주권자의 이해와 욕망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정치가 복원되기를 바란다.


박구용 필자

전남대 철학과, 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으로 다원적 학문 성장과 건강한 학술 정책 방향을 모색했다. 세계시민적 관점으로 학문과 예술을 연구하고 교육한다. 주요 저서로 <우리 안의 타자>, <부정의 역사철학> 등이 있으며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테제들>과 <촛불, 어떻게 볼 것인가> 등을 공저했다. <정신 철학>, <도구적 이성 비판>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