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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아 칼럼] 오스카는 거들뿐…여성들의 ‘윤여정 쌤’ 환호에 주목하라

by | 2021년 4월 26일 | 기획 · 연재

25일(현지시간)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윤여정이 시상식 프레스룸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배우 윤여정(74)이 25일(현지시간)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사요나라>(1957)로 상을 받은 우메키 미요시 이후 아시아계 배우로는 63년 만에 두 번째 수상이다. 윤여정은 “그냥 운이 조금 더 좋아서 이 자리에 서 있는 것 같다”고 겸손한 태도로 소감을 밝혔다. 이어지는 말에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엄마가 열심히 일했더니 이런 상을 받게 됐다.”
박희아 필자는 윤여정의 수상에 따른 여성들의 환호가 단순히 축하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많은 여성들이 윤여정을 통해 또 하나의 삶을 상상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순탄치 않았던 인생을 극복하고 74세에도 영화, 드라마, 예능을 종횡무진하며 묵묵히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온 윤여정의 삶 자체가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자 든든한 롤 모델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편집자]

#한국 최초 오스카 여우조연상 수상
  위트있는 수상소감과 커리어 화제
#솔직하면서도 겸손하고 열린 태도
  70대 여성의 새로운 노년 보여줘
#55년 동안의 도전과 직업적 성취
  젊은 여성들의 ‘롤 모델’로 떠올라

“그런 건 묻지 말아달라.”

2주 전 윤여정은 제74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언론에서는 배우 인생의 화룡점정으로 꼽히는 오스카상, 즉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윤여정이 상을 수상할지 여부에 초점을 맞추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오스카상의 전초전으로 평가받아서다.

“나도 내게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지 모르니 그런 건 묻지 말아달라.”

마침내 윤여정이 한국 영화 102년 역사상 최초로 26일 미국 LA에서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연기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배우로 거듭났다. 윤여정의 연이은 연기상 퍼레이드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막상 수상자로 호명되자 윤여정은 사뭇 긴장한 듯 연단에 올랐다. 그렇지만 이내 여유를 되찾고 수상 소감을 말했다. 그의 수상 소감은 실시간으로 전해졌고 특히 다음과 같은 수상 소감이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다.

“저희 두 아들에게도 감사하다. 두 아들이 저한테 일하러 나가라고 종용한다. 그래서 감사하다. 엄마가 열심히 일했더니 이런 상을 받게 됐다.”

여기에 더해 윤여정의 수상 소감은 2030세대부터 40대까지 부쩍 늘어난 소위 ‘워킹맘’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자신의 일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아이에 대해 소홀해진 것은 아닌지 압박감을 느끼는 그들에게 “엄마가 열심히 일했더니 이런 상을 받게 됐다”며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해도 좋다고 건네는 위로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여성들이 윤여정에게 한 마음 한 뜻으로 축하의 인사를 건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젊은 여성들에게 비친 윤여정의 모습

사실 이번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뿐만 아니라 지난 제74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연 돋보였던 배우도 바로 윤여정이었다. <미나리>로 여우조연상 수상은 으레 당연한 일이 되었던 터라 윤여정의 수상 소감이 더 기대를 모았다. 윤여정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모든 상은 의미가 있지만, 이번 상은 고상한 체하는(snobbish) 영국인들에게 인정받은 것 같아서 정말 기쁘다.”

이 수상 소감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고, 윤여정의 소감은 SNS 상에 빠르게 퍼지며 “멋지다”, “재미있다”는 여러 가지 감탄사를 이끌어냈다. 소위 ‘신사의 나라’로 불리며 격식을 차리는 영국인들 특유의 분위기를 마치 블랙 코미디의 대사처럼 능청스레 소화한 그는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온 소감”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분명하게 덧붙였다. “고상함은 안 좋은 뜻이 아니라 긴 역사만큼의 자부심이 있는 나라라는 뜻이다.”

배우 윤여정이 지난 11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로열 앨버트홀에서 비대면으로 개최된 제74회 영국 아카데미(BAFTA)상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후 소감을 전하고 있다. (사진=런던 AFP/연합뉴스)

이어지는 인터뷰에서도 윤여정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칭찬들 앞에서 지나치게 자신을 낮추지 않으면서, 적당히 말을 돌려 겸손해 보이기까지 하는 화법을 구사했다. 모든 단어 하나하나에 유머와 신중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의 화법과 태도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나아가 인간 윤여정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만든 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사람들은 인상적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가장 열광적인 반응은 의외의 곳에서 생겨났다. 윤여정이 보여준 모습이 젊은 세대 사이에서 빠르게 화제가 된 것이다. 그들은 윤여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생각을 매력적인 말투와 단어들로 표현할 줄 아는 할머니. 할머니이기 전에 자신의 직업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는 여성, 스스로가 뱉은 말에 분명한 근거를 내세우며 여유롭게 웃음까지 이끌어 낼 줄 아는 사람. 뉴스는 잠깐이었지만, 윤여정을 보며 그의 우아하고 단호한 태도에 쏟아진 박수는 여운이 길었다. 그리고 이 박수 소리는 윤여정에 대해 익히 알고 있던 중장년 세대에서보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더 크게, 오랫동안 이어졌다.

20대, 30대 여성들은 윤여정의 지난 행보를 곱씹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였고, 세련된 그의 패션이나 말투, 심지어 담배를 피우는 모습까지 섬세하게 캐치해 여러 개의 게시물을 만들어 냈다. ‘윤여정 최근 인터뷰’라며 그의 말을 모은 게시물부터 ‘윤여정 사복 모음’이라는 그의 스타일링과 관련된 게시물, 심지어 윤여정의 과거 남편이었던 조영남과의 일화를 얘기하며 윤여정의 편에 선 여성들의 목소리로 채워진 게시물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윤여정 쌤’이 자신들의 게시글을 보는 것 같다며 설레하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한 마음으로 윤여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와, 멋있어.”

여성들의 롤 모델이 된다는 것

누구와 함께 있든 자신에게 주어진 몫만큼, 혹은 더 나아가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윤여정의 모습은 노년의 배우에게 젊은 세대가 기대하는 것 그 이상이다. <문명특급>의 MC인 이은재 PD(재재)와 함께 있을 때도 그는 “재밌는 애네”라며 제작진이 준비한 내용을 들으며 흥미진진하다는 듯이 이야기를 듣다가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리고, 여러 인터뷰에서는 꾸밈없이 솔직한 말들로 오랜 배우 생활을 통해 굳어진 자신의 심지를 그대로 내비친다. 이런 윤여정의 모습이 영화 <미나리> 속 할머니의 모습과 얼마나 닮았는지를 분석하며 그의 연기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이들은 더 이상 스크린 속 윤여정의 모습에만 환호하지 않는다.

영화 <미나리>가 70대 중반의 윤여정에게 다시금 주목받을 기회를 선사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미나리>이전에도 윤여정은 tvN <윤식당>에서 국내외를 오가며 까마득한 후배 연기자들과 함께 손님을 받았고, 외국인 손님들을 상대로 능숙하게 영어를 구사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유머가 섞인 친절한 태도로 그들을 맞았다.

어떤 재료로 이 음식이 만들어졌는지, 한국에서는 이 음식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맛있게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하나씩 꼼꼼하게 알려주다가도, “(설명하는 것을) 깜박 잊어버렸다”며 후배들 앞에서 발을 동동거리거나 대신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스크린 바깥의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그의 모습에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노년의 모습과 나이와 상관없이 젊은 세대까지 만족시키는 센스를 지닌 멋진 노년의 모습이 공존했다.

tvN <윤스테이>의 한 장면. (사진=tvN)

비혼주의를 내세운 여성들이 늘어나고, 연애가 필요 없다고 말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삶을 살아보겠다는 여성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것을 사회문제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존재하지만, 경제력을 갖춘 젊은 여성들이 여전히 한국 사회를 뒤덮고 있는 가부장제나 결혼‧임신‧출산‧육아로 이어지는 굴레로부터 독립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지금 스스로의 삶을 디자인하기 시작한 20대 여성들은 30대 여성들의 삶을 동경하고, 30대 여성들은 보다 여유롭게 개인적인 삶의 조건을 충족한 40대 여성들의 삶을 동경한다. 그러나 이 여성들에게 노년기에 있는 여성들 중 롤 모델을 꼽아보라고 하면 선택의 폭은 크게 좁아진다. 또한 국내보다 해외의 유명인사, 예를 들어 메릴 스트립, 고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같은 인물들을 롤 모델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현실에서 70대 여성 윤여정은 자신들의 가치관에 맞는 노년기의 롤 모델을 찾지 못한 한국의 젊은 여성들에게 아주 적합한 보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자신들을 옭아매는 가부장제에서 벗어나려 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일을 완벽하게 해내고 그로 인해 큰 성과를 얻은 윤여정의 직업적 성취를 동경한다.

동시에 스타일리쉬한 패션 아이콘으로까지 진화한 그의 모습에 관심을 가지면서, 윤여정이 입은 고가의 브랜드 상품을 검색하고 그것을 본인의 핏과 컬러에 맞게 입는 세련된 70대 여성의 모습에서 미래의 자신을 보고자 한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분위기에 적절한 말을 내뱉을 수 있는 센스 또한 나이가 먹고도 건강하게 우아함을 지키고 싶은 젊은 여성들에게 매혹적인 요소다.

‘윤여정 쌤’을 따라 나아가는 여성들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하면서 개인사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풍파에 맞섰던 윤여정은 그래서 젊은 여성들을 위한 든든한 롤 모델이다. 그리고 어쩌면, 윤여정 또한 그들을 통해 “내게 무슨 일이 생기는지 모르”는 경험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결혼이나 출산, 육아와는 별개로 이루고 싶은 것들이 많은 젊은 여성들이 있다.

그들은 앞으로도 윤여정의 행보 하나하나에 관심을 가지면서 닮고 싶은 부분들을 찾아내 동경의 눈길을 보내며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나갈 게 분명하다. 배우 윤여정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숫자의 젊은 여성들이 ‘윤여정 쌤’이라고 부르며 그의 뒤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윤여정은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시작해 문제작이라 여겨지던 1971년의 영화 <화녀>를 거쳐 꾸준히 주연과 조연을 오가며 2021년의 <미나리>에 이르렀다. 그가 쌓아온 필모그래피는 젊고 활기찬 에너지로 삶을 대하며 다소 미숙했을 청년 시기와 프레임 안에 앉아있기만 해도 저절로 인물의 서사가 그려지기 시작한 경이로운 능숙함을 모두 담고 있다.

2016년에 나온 영화 <계춘할망> 속 계춘과 <죽여주는 여자> 속 소영은 같은 해에 태어난 인물들이지만 앉아있는 자세부터 눈빛까지 모든 게 다르다. 놀랍도록 다른 사람을 연기하는 그의 모습에서 시간이 흘러야만 가질 수 있는 커다란 직업적 성취의 순간을 목도하게 된다. 이 변화의 흐름 속에서 분명 많은 여성들은 윤여정을 통해 또 하나의 삶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2016년 <계춘할망>과 <죽여주는 여자>에 출연한 윤여정. 윤여정은 데뷔작인 <화녀>(1971)로 제10회 대종상영화제 신인상, 제8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제4회 시체스 국제판타스틱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 특히나 대중매체는 여성이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두려움을 느낄 것을 종용한다. 25세가 되면 ‘꺾인 나이’라고 표현하고, 30세가 넘으면 더 이상 연인으로서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이 없는 것처럼 간주하기도 한다. 하지만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많은 여성들이 낯설게만 여기던 페미니즘의 흐름에 동조하기 시작하면서 위와 같이 여성을 판단하는 시각은 촌스러운 것으로 치부되기 시작했다.

또한 잔존하는 압박에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가면서 미래에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지를 상상하는 많은 여성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여성의 성적 매력이 반감된다는 주장이 얼마나 성차별적인지에 관해 목소리를 높이면서, 많은 경험을 통해 스스로의 삶과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양해지고 보다 깊이를 갖추게 된다는 진실에 가까워졌다.

윤여정이 해외 유수의 시상식에서 상을 받든 그렇지 않든, 어쩌면 수상 여부는 그들에게 크게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상이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지나온 삶이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므로. 다만 계속 나아가는 한 자신의 노력에 깜짝 이벤트와 같은 보상이 찾아오는 순간이 있으리라는 희망은 있다. 그 희망의 조각을 모아 자신의 삶을 꾸려갈 여성들은 윤여정이 지나온 길을 바라보며 2021년의 자신에게 힘을 불어넣고 있다.

그리고 윤여정은, 자신의 말대로라면 “운이 좋아서” 오스카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 상은 갑자기 찾아온 행운이 아닌, 윤여정이 직업인이자 여성, 나아가 어떤 삶을 선택하든 존중받을 권리가 있는 한 인간으로서 일궈낸 성취에 가깝다. 이미 젊은 여성들의 새로운 롤 모델로 부상한 그에게 한 줄의 이력이 더해지며 그들에게 또 하나의 꿈을 꾸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젊은 여성들은 윤여정을 향해 진심이 가득 담긴 박수를 보내고 있다. 미래의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박수인 마냥, 열렬히, 뜨겁게.


박희아 필자

대중문화·음악 전문 저널리스트. KBS, TBS, YTN, NAVER NOW 등에서 한국 대중문화와 관련한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으며, <아이돌 메이커>, <아이돌의 작업실>, <우리의 무대는 계속될 거야> 등 K-POP 산업 관련해 아이돌 그룹 인터뷰집을 포함한 네 권의 책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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