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군을 포함한 장교 임관식. (사진=연합뉴스)

"여성의 징집 여부보다는 국가가 남성들의 병역 부담과 여기에서 비롯되는 상대적 박탈감을 회복시키는 데 정책의 주안점을 둘 필요가 있다."-김신숙 저 <역사와 쟁점으로 살펴보는 한국의 병역제도> 중

지난 1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여성도 징병대상에 포함시켜 주십시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의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나날이 줄어드는 출산율과 함께 우리 군은 병력 보충에 큰 차질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남성의 징집률 또한 9할에 육박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서 높아진 징집률 만큼이나 군 복무에 적절치 못한 인원들마저 억지로 징병 대상이 돼버리기 때문에 국군의 전체적인 질적 악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여성 또한 징집 대상에 포함해 더욱 효율적인 병 구성을 해야 한다 여자는 보호해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나라를 지킬 수 있는 듬직한 전우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여성 징병제 도입을 검토해달라.”

청원글은 게재 5일 만에 20만 명의 동의를 받아 청와대가 공식 입장을 밝혀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다시 여성 징병제 도입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사실 여성 징병제 논란은 한국 사회에서 주기적으로 반복해온 이슈 중 하나였다. 때문에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여러 번 판결이 나기도 했던 사안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남녀 간 젠더갈등과 공정성 등이 부각되면서 여성 징병제 논란이 또 다시 불붙는 분위기다. 문 정부가 도입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수차례 여성 징병제 도입을 건의하는 글이 올라왔고 결국 20만 명이 동의하는 글도 나왔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박용진 의원도 최근 “사회적으로 병역가산점 제도를 둘러싼 불필요한 남녀 차별 논란을 종식시킬 수도 있고, 병역 의무 면제 및 회피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도 줄일 수 있다”며 여성 징병제를 전제로 한 남녀평등 복무제를 주장하고 나섰다. 박 의원에 따르면 온 국민이 남녀불문 40~100일 정도의 기초군사훈련을 의무적으로 받는 혼합병역제도를 도입해 현재 여성 징병제를 둘러싼 논의를 마무리 짓자는 것이다.

여성 징병제 논의에 담긴 함의는 사실 만만치 않다. 정부 일각에서도 출산율의 급격한 저하로 병역자원이 부족해지는 상황을 예상했기에 여성 징병을 검토하는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8월 메디치미디어에서 출간한 <역사와 쟁점으로 살펴보는 한국의 병역제도>는 이런 측면에서 여성 징병제에 대한 논의를 보다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좋은 안내서이다. 나아가 한국사회의 큰 축이었던 병역제도의 개선을 위한 여러 시사점을 제시해주는 책이기도 했다. 책의 저자인 김신숙 박사는 행정고시 출신으로 국방부에서 인력정책과와 계획총괄과 과장 등 주요 부서의 과장을 역임하며 병역제도 전문가로서 실무를 경험했고 박사 논문으로 '한국 병역제도의 변화연구'를 썼다.

김 박사가 책에서 정리한 ‘여성 징병제’ 논의에 따르면 여성 징병을 주장하는 측의 논거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①헌법 제39조에서 모든 국민은 국방의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병역 부담의 형평성 차원에서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한다.②여성도 신체적으로 남성 못지않으며, 꼭 전투 임무가 아니더라도 전투지원 임무를 수행하면 된다.③여성은 부사관, 장교부터 지원 가능한데 이것도 불평등하므로 남자처럼 병부터 복무해야 한다.

김 박사는 다른 국가의 여성 징병제 사례를 들어 여성 징병제 자체가 불가능한 제도는 아님을 전제한다. 노르웨이의 경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으로는 처음으로 2016년 7월 여성 징병제를 도입하여 남성과 마찬가지로 1년간 의무복무를 하게 했다. 스웨덴도 2010년에 폐지한 징병제를 2018년 1월부터 부활하면서 여성을 징병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징집 대상은 18세가 되는 남녀로서 9~12개월간 복무하게 한다. 스웨덴 정부는 남녀 의무징병제 도입에 대해 “현대의 징집제도는 남녀 중립적이어야 해서 남성과 여성 양쪽 모두 포함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성 징병제 사례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국가는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주변 중동국가와의 긴장관계에 놓여있고 실제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역사다보니 모든 국민이 군대에 가야 하고, 1948년 건국 당시부터 여성을 징집했다. 복무 기간은 남성 36개월, 여성 21개월 정도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 여성이 징병되는 비율은 낮은 편이라고 한다. 노르웨이도 매년 징집 대상자 6만 명 중에 실제 군이 필요로 하는 병력은 1만 명 정도이다. 따라서 여성 중에서도 징집되어 실제 군 복무할 사람은 극소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학계에서는 북유럽 국가들이 여성 징병제를 할 수 있던 배경에 대해 성 평등 문화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의 '2020년 세계 성 격차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성 격차지수(GGIㆍGender Gap Index)는 0.672점으로 전체 150여 개 국가 중 108위를 기록했다. 즉 성 평등 측면에서 한국은 여성들이 불리한 국가다. 반면 노르웨이는 0.842점으로 2위, 스웨덴은 0.820점으로 4위를 차지했다. 그만큼 성별에 따른 격차가 없다는 의미다.

김 박사는 여성 징병제 논의 과정에서 북유럽 국가들의 사례를 가져올 수 있지만 그만큼 여성 징병제의 출발 배경과 맥락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여성 징병제에서 사실 가장 논쟁적인 지점은 대한민국 헌법상 모든 국민에게 부과한 국방의 의무와 병역법상 남성에게만 병역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모순 아닌가? 하는 지적이다.

이는 그동안 여성 징병제 논의 때마다 핵심 쟁점으로 부상했고 그 덕에 위헌심판 제청이 세 차례나 이뤄졌다. 상위법인 헌법에서는 국방의 의무를 모든 국민에게 부과했음에도 하위법인 병역법에서 대상을 남성으로만 한정한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법률상 병역법 제3조 제1항 “대한민국 국민인 남자는 헌법과 이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 여자는 지원에 의하여 현역에 한하여 복무할 수 있다”는 규정이 헌법 제11조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는지가 쟁점이었다. 또한 병역법」 제3조 제1항을 헌법 제39조 ‘국방의 의무’에 대한 위헌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2010년, 2011년, 2014년 모두 합헌 결정을 했다.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국방의 의무는 병역법에 의해 군 복무에 임하는 등 직접적 병력 형성 의무만 가리키는 것은 아니며 간접적인 병력 형성 의무 및 병력 형성 이후 군 작전 명령에 복종하고 협력해야 할 의무도 포함한다”는 것이다.

헌법상 의무에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를 규정한 것은 입법의 재량을 법률의 단계로 위임한 것이다. 즉 헌법상 국방의 의무는 병역법을 통해 구체적으로 구현되는데, 한국에서 징병의 대상을 남성으로 한정한 것은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헌법재판소는 “남성이 전투에 더 적합한 신체적 능력을 갖추고 있고 신체적 능력이 뛰어난 여성도 생리적 특성이나 임신과 출산 등으로 훈련과 전투 관련 업무에 장애가 있을 수 있다”며 “최적의 전투력 확보를 위해 남성만을 병역의무자로 정한 것이 자의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 외에도 △여성이 전시에 포로가 되는 경우 남자에 비해 성적 학대를 비롯한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 커서 군사작전 투입에 부담이 크다는 점 △여성 징병제 도입 시 발생하는 막대한 경제적 비용 △징병제 채택하는 다른 국가들의 일반적 상황 △도입 시 남녀 간 성적 긴장 관계에서 발생하는 군 기강 해이 문제 등으로 “남성만이 병역의무를 지는 것이 위헌이 될 수 없다”라고 세 차례 모두 합헌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사회의 변화에 따라 헌법재판소의 판결도 달라질 수 있다. 간통법 폐지 사례가 대표적이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여성 징병제 도입 논의는 예전에 비해 남자만 병역의 의무를 지는 것이 매우 큰 부담이므로 여성도 부담을 나눠 가져야 한다는 주장에 동조하는 입장이 많아졌다는 특징이 있다.

징병제는 국가가 합법적으로 개인에게 가하는 가장 강력한 신체적 제제이자 부담이다. 게다가 그 기간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인 20대의 수 십 개월에 달한다. 제대를 해도 일정 기간 예비군 동원훈련 의무가 있고, 공식적으로는 40세까지 병역의무가 유지된다. 이처럼 남성의 병역 부담이 과도하니 여성도 어떤 형태로든 부담을 나누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김 박사는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병역의 형태로 부담을 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한국 사회가 보다 근본적인 합의를 해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한다.

김 박사는 국가가 개인에게 가하는 부담은 ‘필요 최소’로 하고, 혜택은 충분히 나누어야 하는 게 현대 국가 행정의 목표로 보고 있다. 따라서 의무라는 명목 하에 일률적으로 부담을 확대하는 것은 국가 행정의 목표와 상충한다. 징병제 탓에 남성에게 부과되는 부담이 과하다면 그 부담 자체를 완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지, 그 부담을 널리 퍼지게 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김 박사의 입장이다.

헌법과 병역법 사이에 놓인 법리적 문제 외에도 여성 징병제를 도입했을 시 남자는 병으로 입영하는데 여자는 부사관이나 장교 같이 군 간부로 바로 가는 것이 부당하니 여자도 병 생활부터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는 현재 여군 모병제와 연결되는 문제다.

김 박사에 따르면 이런 주장은 맹점을 안고 있다. 남자가 병 생활을 하지 않고 바로 군간부로 오는 경우를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장교나 부사관으로 오는 남자들도 병 대신 간부를 택하고 온다. 장교는 3년, 부사관은 4년 동안 병역의무를 간부 생활로 지는 것이다. 만약 여성도 병 생활을 먼저 하고 간부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 남자도 병 생활을 먼저 하고 간부로 오게 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징병제와 모병제가 혼합된 징모 혼합제의 형태로 지원에 의한 전문 병사나 계약직 병사가 확대되면 여성도 정책 결정에 따라 병으로 복무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를 위해선 내무반 등 각종 생활관 시설, 야간조 등 근무 형태, 병 훈련 형태와 체계 등 여러 면에서 점검하고 고쳐야 할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란 점이다. 김 박사는 이 과정에서 자칫 큰 실익이 없는 상태에서 여성을 병으로 징병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과 불필요한 사회·경제적 논란을 가중시킬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김 박사는 본질적으로 병역제도의 변화 맥락에서 여성 징병제 논의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역설한다. 인구 사회적 여건 변화와 경제성장률의 안정적 둔화, 안보 환경의 불확실성 속에서 지속 가능한 국방을 위한 새로운 전략 차원에서 병역제도의 변화를 추구해야 하고 여성 징병제 역시 그 중 일부로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 논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현 시점에서 여성의 징집 여부보다 국가가 남성들의 병역 부담과 여기에서 비롯되는 상대적 박탈감을 회복시키는 데 정책의 주안점을 둘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징병으로 남자들이 받는 손실에 대해 더욱 실효적인 보상 방안을 강구하는 등 국가의 노력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병역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당위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성 징병제나 모병제의 선택 여부에 앞서 보다 큰 틀 안에서 논의를 해야할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운영해온 병역제도는 인구가 충분하던 '팽창사회'에 맞게 설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초저출산국가에 접어들었으며 인구감소는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됐다. 그래서 김 박사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는다.

“이제 우리 군은 더 멀리 봐야 한다. 과거와 상관없이 다가온 미래의 조건들이 기존의 병역제도를 그대로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핵심은 징병제냐 모병제냐 하는 병역제도의 선택에 있지 않다. 역설적이게도 병역제도의 개선은 병역제도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다. 병역제도를 넘어선 국방정책과 군사력 운용의 전반적 구조 속에서 함께 개선되어야 한다.”

김용운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