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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편지] 한국 사회가 놓친 ‘이남자·이여자’의 목소리

by | 2021년 4월 13일 | 독자의 편지, 위크엔드 컬처

(일러스트=셔터스톡)

<피렌체의 식탁>이 새로운 차림표를 마련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앞세우지 않고 묵묵히 일하는 평범한 이들의 삶의 이야기들을 편지 형식으로 담아 독자님들께 선보입니다. 이슈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이나 정책적인 대안에 앞서 사회의 다양한 현장에서 성실한 개인으로 살아가는 분들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첫 번째 편지는 경남 창원에서 제조업 노동자로 일하시는 천현우 님이 보내오셨습니다. 20대 담론이 다시 유행하는 이 시점에서 한국 사회가 놓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천현우님의 편지를 통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

저는 스무 살부터 이른 바 ‘쇳밥’을 먹어 온 제조업 노동자입니다.

현재는 한국의 모든 철도차량을 만드는 대기업 협력업체에서 일하며 정규직을 꿈꾸는 미생이기도 합니다.
제가 <피렌체의 식탁> 독자님들에게 편지를 쓰게 된 이유는, 지난 재보궐 선거에서의 20대 유권자. 특히 남성들이 보수우파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 현상을 목도하면서, 20대 청년으로서 제 나름의 생각을 공유하기 위함입니다.

잠시 2017년 봄을 돌이켜봅니다. 탄핵과 함께 촛불대선으로 당선된 문 대통령의 취임사를 들으며 희망에 부풀었을 때가 생생합니다. 취임사에서 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며 향후 바꿔나갈 한국의 모습을 제시했습니다.

4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다시 복기해봅니다. ‘저 취임사는 공염불이었나?’ 그렇진 않습니다. 2010년 말. 시급 4110원이 아깝다며 4000원 주는 회사에 들어가, 발목에 3도 화상을 입고 발목 절단할 뻔했던 때, 심지어 산재처리도 받지 못 한 그때에 비하면 훨씬 살만합니다. 주52시간의 근로시간도 굉장히 인간미 넘칩니다. 내일채움 공제 강화라던가, 장병 인권 개선과 병사 월급 증가 역시 훌륭한 정책입니다. 대통령 잘 바꿨다는 생각도 적잖이 합니다.
그런데 왜 서울과 부산에 사는 20대 남자들이 민주당에 보복 투표를 던졌을까요?

물론 제가 서울이나 부산 사는 사람은 아니기에 선거공학 측면에서 드릴 말씀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두 도시의 20대 남성 유권자들이 보인 경향성에 관해선 공감 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20대 남성 중 전문직, 대기업, 공무원은 거의 없습니다. 대다수는 중소기업 혹은 비정규직으로 일하거나 취준생에 머물러 있습니다. 저 역시 그 ‘대다수’에 속하는 이로써, 지금의 한국 사회에 불만과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제 고향이자 거주지는 창원시입니다. ‘마산아재’라는 나무위키 항목이 따로 있을 정도로 굉장한 남초지역이기도 합니다. 글을 쓰는 저 역시 그런 성별 편향의 영향을 받고 자랐으며 지금도 그 영향권에서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겠습니다. 이 부분을 언급하는 이유는, 글에 앞서 제가 20대 남성들의 안티페미니즘 정서에 대한 무의식적 동조를 할 수도 있음을 미리 알리고자 함입니다.

인구 100만명의 특례시 창원. 20대 취준생들은 중소기업이 아니면 딱히 갈만한 직장이 없습니다. 제조업을 필두로 한 LG, 효성, S&T, GM 등의 대기업이 신규직원을 거의 채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X소’라고 부르는 게 더 친근할 지경인 지방 중소기업의 열악한 환경입니다. 제가 몸담은 제조업 생산직 분야는 취업시장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습니다. 일할 내국인을 못 구해 외국인을 들여와 일 시켜야 할 정도니까요.

그 안에서 겪어야 하는 문제는 단순히 ‘돈 적고 힘들다’가 아닙니다.

우선 건강을 위협받습니다. 잔업특근 반복하면서 서서히 진행되는 직업병은 둘째 치더라도, 사고 나면 그대로 삶이 끝장나는 위험한 환경에 늘 노출되어 있습니다. 늘상 OECD 산재 사망률 1위 이야기 나오는 와중에도 안전 교육은 눈속임으로 대충합니다. 서류대로 하면 그만큼 일 못 시키니까요. 일도 무척 힘든 판에, 밥이 잘 나온다거나, 점심 먹고 짤막하게 낮잠이라도 잘 수 있는 쉼터, 퇴근해서 샤워라도 할 수 있는 공간 따윈 당연하게도 없습니다.

여기에 중장년 ‘꼰대’들의 폭언폭설에도 상시 노출되어 있습니다. 저만 해도 직장 내에서 “XX새끼” 같은 욕설을 수 십 번은 들었습니다. 사회의 시선이요? 최악입니다. ‘X소’라고 왜 부르겠습니까. 당장 저희 어머니도 친구 분들과 이야기할 때 제가 다니는 회사를 하청 내지는 협력업체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효성 하청일 땐 ‘효성 다녀’, S&T 하청 다닐 땐 ‘S&T 다녀’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이 암담한 현재를 버틴들 달라질 미래를 꿈꿀 수가 없습니다. 중소기업 대다수는 직급이 올라도 임금은 거의 안 오릅니다. 이런 형국이니 같은 팀 내에서 월급 10만 원 더 받느니 마느니 가지고 투닥거린 적도 있습니다. 이직하기 위한 기술력도 거의 못 쌓습니다. 꼰대들이 으레 말하는 ‘일 배워서 다른 곳 가면 좋은 대우 받는다’는 말은 허상인 셈이지요. 어찌어찌 이 악물고 ‘존버’ 하려고 한들 회사가 날아가면 도로아미타불이 됩니다.

사방이 틀어 막혀있는 현실 속. 지방에서 부동산 투자는 매력 있는 선택지도 아니고, 설령 투자가치가 생긴다한들 애초에 살 수도 없으니 비트 코인이나 토토 등에 빠지는 경우도 잦습니다.

이 와중에 열악한 현실을 잠깐이나마 잊으려 인터넷에 접속하면, 20대 남성들을 여성 혐오자로 몰아가는 여론과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초반에는 저도 ‘여혐’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찰한 적이 있습니다. 제게 페미니즘의 대두는 여성들의 여러 고충과 불안을 알게 된 계기였습니다. 직업 특성상 남초 사회에 노출된 저에게 ‘꾸밈노동’, ‘유리천장’, ‘생물학적 약자로서의 공포’는 생각지도 못 한 개념이었으니까요.

근데 이제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성의 입장을 이해시키기 위한 운동으로 보였던 페미니즘은, 그렇기에 약간의 과격함도 관대하게 받아들일 수 있던 페미니즘은, 제겐 아예 남성을 아예 배격시키자는 운동처럼만 느껴집니다. 어릴 적부터 당연하게 받아 들여왔고, 이미 몸에 익숙해진 남초 문화라도 틀렸다면 바꿔야지요. 문제는 이것도 혐오, 저것도 혐오라고 하니 그냥 입 닫고 여자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말란 소리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우파의 야당 정치인들은 몇 년간 꾸준히 ‘젊은 남자들은 차별당하고 있다!’라고 외쳐 왔습니다. 그들이 현실적으로 아무 것도 못 해줄 거 압니다. 대놓고 우리를 자극해서 여당을 공격할 발판 삼으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시종일관 좋은 사람행세하며 정작 20대 남자 말은 하나도 안 들어주는 여당이나 진보좌파의 젊은 정치인들보다, “그래, 우리 착한 사람 아냐. 대신 너희 이야기는 들어줄게.”라며 가식 없이 소통하는 보수우파 정치인들이 매력 있어 보이는 부분도 분명 존재합니다.

물론 20대 남성만 힘들고 어렵다며 투정 부리고 싶은 건 아닙니다. 여성과 전선을 긋고 서로 적대적 공생을 이루자는 의미는 더더욱 아닙니다.

이쯤에서 잠깐 제 또래 여자 이야기를 드리고자 합니다. 초등학생 시절. 가정형편 어려운 학생한테 주는 장학금을 같이 받은 여사친(여자사람친구)가 있었습니다. 저나 그 친구나 재래식 화장실을 써야 할 정도로 가난했기에 친한 단짝으로 지냈습니다.

중학교에 진학하며 연락이 끊긴 그 친구와 다시 만난 곳은, 마산공단의 노키아 공장이었습니다. 방학 동안 알바 하러 온 저와 달리 그 친구는 꽤 오래 일했던 모양이더군요. 쉬는 시간마다 이런저런 라인 돌아가는 구조. 내부사정. 조심해야 할 사람들을 가르쳐 주곤 했습니다. 그때 전화번호도 교환하게 되었지요.

그 친구의 번호가 휴대전화에 뜬 건 8년 후. 우리가 서른을 목전에 둔 시점이었습니다. 노키아가 망하고 현대차 1차 벤더로 직장을 옮겼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차 계기판에 들어가는 전자회로 부품을 수삽하는 일을 한다고 하더군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요즘은 성희롱 당하는 일이 줄어서 참 좋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중공업 못지않은 3D 업종. 주야교대 근무가 ‘기본인’ PCB 생산직은 대다수가 여성입니다. 보통 20-30대의 외국인, 40-50의 내국인이 주류인 가운데, 간혹 20대 내국인이 있죠. 문제는 이런 공장 대다수가 ‘하부’는 여초인 와중에 ‘상부’는 남초입니다. 즉 과장, 부장, 이사, 사장이 전부 남자라는 겁니다.

구조가 이렇다 보니 대놓고는 아니더라도 은근한 성희롱을 자주 당했다고 합니다. 특히 ‘어릴 때 좀 놀았나봐?’ 라는 빈정거림을 들었을 땐 이가 갈렸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페미니즘과 미투운동 등이 대두되면서 남자 상사들이 알아서 언행을 사린답니다. 불쾌한 농담을 하거나, 어깨에 손 한 번 올렸다간 큰일 나니까요. 평생 투표며 정치에 관심 없던 친구인데 문재인 대통령은 정말 잘 뽑았다고 칭찬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페미니즘이 가난과 희망이 보이지 않는 미래를 해결해 줄 리는 만무합니다.

제가 아무것도 모른 채 “인자 모아 둔 것도 좀 있다 아이가, 니를 위해 살아보지 그라노?”라는 속 편한 소릴 하자, 그 친구는 울컥했는지 이렇게 하소연을 했습니다.

“내는 뭐. 그리하기 싫어서 안 하는 줄 아나? 내도…… 해외여행 가고 싶다. 예쁜 옷 입고 싶고, 음식 사진 인스타에 올리고 싶다. 연애하고 싶고, 취미도 갖고 싶고, 브이로그 찍어서 올리고…… 그라고 싶다. 근데, 그라믄 내 동생 학원비 누가 대는데? 아빠 병원비는?”

그렇습니다. 저 친구 역시 결국 저처럼 희망이 보이지 않는 미래를 살고 있는 지방의 평범한 청년일 뿐. 여자라고 더 혜택 받은 게 없습니다. 오히려 여기에 여성이라는 성별이 추가되면 존엄을 위협받는 상황에 자주 노출되곤 합니다. 당장 인터넷의 어두운 부분만 비춰 봐도 여성의 가난을 이용해 성을 매수 해보려는 남자들이 넘쳐납니다.

적어도 여성의 ‘존엄’ 부분에서 페미니즘이 효력을 발휘한 시점이 있었습니다.

눈앞에 수혜자를 두고 긍정 영향까지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페미니즘. 정확히는 래디컬 페미니즘이며 안티 페미니즘 같은 이념논쟁에 분노하는 점이 있다면, 제 몸 건사하며 살기도 힘든 청년 집단이 남녀로 분단되어, 삶에 중요하지 않은 요소로 논쟁을 반복하게 한다는 점. 그런 증오 밖에 없는 논쟁을 지식인이며 정치인이라는 사람들이 이를 부추긴다는 점입니다.

저는 ‘20대, 지방, 중공업 노동자, 남성’으로 저 스스로를 규정하고 있습니다만. 성별, 직업, 거주지를 막론하고 많은 청년들이 저와 비슷한 문제를 겪을 겁니다.숙련을 거듭할수록 임금이 올라가는 일자리는 소멸했고, 그에 따라 대기업을 제외한 대다수 직장의 보수는 최저임금 부근에서 머무릅니다. 언제 짤릴 줄 몰라 전전긍긍하는 중소기업에서 안정적인 기업으로 이직하려 해도, 그 기업의 문이 과거보다 훨씬 좁아졌습니다.

각자 성별마다 힘든 지점이 분명 있을 겁니다. 군대, 임신, 경력단절, 성범죄 위협, (남성이 훨씬 많은)인구비율 같은 현실부터 미세한 인식 차이까지 말입니다. 이 역시 차차 풀어나가야 할 문제임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제 입장에서 성별갈등보다 훨씬 다급한 문제는 ‘청년의 삶’ 그 자체 같습니다.

전 어느 성별의 편도 서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어려운 청년이라면 남녀 구분 없이 돕고 싶고 그들의 목소리를 전해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20대의 목소리는 듣는 이 없는 메아리입니다. 청년의 말에 누구보다 귀 기울여야 할 여당은 선거 때마다 우릴 공짜표 취급하기 일쑤였습니다. 이번 재보궐 선거의 20대 남성 이반 투표가 이슈가 된 부분도 당연하게 와야 할 표심이 몽땅 넘어간 탓일 겁니다.

이슈가 그저 이슈로 머무르면 공동체의 발전은 없습니다. 실례를 무릅쓰고 <피렌체의 식탁> 독자님들께 부탁 하나 드리겠습니다. 부디 이번 재보궐 선거를 계기로 20대 청년들의 다양한 삶을 낮은 곳부터 찬찬히 살펴봐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그저 페미니즘, 안티 페미니즘 열 글자로 규정받을 정도로 단순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분노를, 절망을, 지금에라도 이해하고 공감해주신다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다시 4년 전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를 가져와 마무리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이제 진짜 남녀평등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뿌리 깊게 박힌 능력주의를 해체하기 위해 노력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온갖 반칙으로 점철된 특권을 완전히 허물어뜨려서,

성실히 일하면 누구나 평범한 행복과 일상을 누릴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기대해 봅니다. 그런 세상이야말로 20대 남성, 아울러 모든 청년이 바라는 한국 사회의 미래일 것입니다.

천현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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