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px
최근 편집 2021. 12.07, 00:00

[유정훈의 美 정치 깊이 보기] ‘덜 약속하고 더 해준’ 바이든의 100일, 반동은 끝났다

By | 2021년 4월 22일 | 美 정치 깊이·멀리 보기, 국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4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오는 30일로 취임 100일을 맞는다. 미국 대통령에게 취임 후 100일은 하나의 이정표, 즉 마일스톤으로 여겨진다. 대선 후보들은 취임 후 100일 내에 할 일을 공약으로 내걸고 새로 취임하는 대통령은 늘 첫 100일 동안 집중적으로 추진할 의제를 제시한다.

퓨리서치(PewResearch)나 NPR·PBS·Marist 등 여론조사기업 및 언론사의 지지율 조사에 따르면 취임 후 현재까지 바이든은 50%대 중반의 안정적인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취임 100일 무렵에 지지율 60%를 넘었던 사례는 로널드 레이건, 버락 오바마 정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기대 이상의 성공적 출발이다. 바이든의 리더십이 트럼프 시대와 다른 네 가지의 변화를 주도했기 때문이다.

정부기능과 신뢰의 회복

먼저 바이든의 리더십이 긍정적 평가를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직전 트럼프 행정부의 난맥상을 수습하여 정부기능(governance)을 빠르게 회복시켜서다. 정부가 기능한다는 것은 국민들이 중요하고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이슈에 대해 폭넓은 지지를 받는 정책을 집행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한다는 뜻이다. 바이든 정부는 백신 접종을 순조롭게 진행하고 1조 9000억 달러 규모의 코로나19 구제 패키지를 시행하는 등 팬데믹 극복 및 민생경제 회복 측면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다.

바이든에 대한 전반적 지지율은 50%대 중반이지만 백신, 경제위기 대응 등 개별 정책에 대한 긍정평가는 70% 안팎이다 퓨리서치 조사 결과 백신 접종 관련 긍정평가 72%, 코로나19 구제 패키지 긍정평가 67% 등을 기록했다. 이는 지지 정당을 떠나 다수 국민이 바이든 정부의 정책 수행을 신뢰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정부기능 회복이라는 성과뿐만 아니라 바이든 정부가 이를 국민에게 보여주는 방식 또한 주목할 만하다. 바이든은 취임 100일 내에 백신 1억 도스(dose)를 접종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는데, 이를 두 달 만에 달성하고 목표를 2억 회로 상향 조정했다. 또한 의료진, 노령층 등의 우선접종자격 없이 성인 누구나 백신을 접종받을 수 있는 시기를 5월 초로 제시했다가 4월 19일로 앞당겼다.

이처럼 과도한 기대를 부추기지 않는 현실적 목표치를 제시한 다음 약속한 것보다 빨리 더 많은 성과를 내는 방식을 영미권에서는 “덜 약속하고, 더 해주어라(underpromise and overdeliver)”라고 표현한다. 책임 있는 행동보다 과장된 말이 앞섰던 전임 행정부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임으로써 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려는 계산된 행보이다.

잠깐의 변호사 생활을 제외하면 평생을 공직에서 일한 바이든은 정부가 공공선과 개인의 복리를 위한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는데, 대통령이 되어 이를 제대로 실행에 옮기고 있다.

과감한 인프라 투자와 개혁 드라이브

바이든 정부는 최근 2조 3000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이 실현되면 아이젠하워 정부의 주간(州間)고속도로(Interstate Highway) 이후 최대의 인프라 프로젝트일 뿐만 아니라,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New Deal), 린든 존슨의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 이후 미국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사회∙경제적 투자가 될 수 있다.

최근 어느 대통령도 시도하지 못한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라는 점만 주목받는 것이 아니다. 기업에 대한 증세 정확하게는 기업이 회피해 온 세금을 제대로 징수하여 재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계획인데, 단순히 세율을 올리거나 세목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협력을 통해 미국 기업들이 이용하던 역외 탈세∙절세 방법 자체를 막겠다는 대담한 구상이다.

이밖에도 바이든은 개혁 의제를 위해 가용자원을 주저하지 않고 동원했다. 취임 당일 행정명령을 통해 무슬림 입국 금지, 멕시코 국경 장벽 등 反이민 관련 조치를 철폐하고, 파리기후협정 복귀 선언과 함께 트럼프 정부에서 완화된 환경규제 대부분을 원상회복했다. 오바마 임기 마지막 해에 허용되었으나 트럼프 정부가 금지했던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취임 5일 만에 다시 허용했다.

팬데믹 와중에 더욱 규모와 영향력을 키워가는 테크 기업에 관하여도, 대표적 규제론자 팀 우(Tim Wu)를 국가경제위원회(NEC) 특별자문역에, 리나 칸(Lina Khan)을 공정거래위원회(FTC) 위원으로 지명하며 이를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자신만의 특정 의제는 없는 중도 정치인이었고 ‘오바마 3기’라는 인상마저 주던 바이든이 이 정도로 개혁에 나설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들 계획이 달성된다면 바이든은 레이건의 신자유주의 혁명 이후 클린턴, 오바마도 막지 못한 친기업 트렌드(감세∙규제 완화) 자체를 반전시킬 수도 있다. 과감한 개혁 드라이브는 트럼프 시대의 퇴행에 대한 반작용이 바이든 정부의 추동력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바이든 정부 스스로 오바마 때의 실책을 반면교사로 삼아 진화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바마 실책을 교훈 삼아 ‘협치’ 재정의

미국 정치에 흔히 등장하는 미사여구는 형용사 ‘bipartisan’이다. ‘양당의’라는 의미로 민주-공화 양당 간의 초당적 지지를 통해 소위 ‘협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bipartisan’이라는 평가를 마다할 대통령은 없다. 바이든도 코로나19 구제 패키지가 초당적 지지로 통과되었다고 발언하는 등 이를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구제 패키지에 찬성표를 던진 공화당 의원은 없었다. 여기에서 바이든이 ‘bipartisan’의 개념을 바꾸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즉 공화당 성향 유권자, 공화당 소속 주지사나 시장 등으로부터 널리 지지를 받으면 ‘bipartisan’이지 꼭 공화당 의원들의 지지를 받아야 하냐는 것이다.

이는 오바마 정부의 실책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명백한 선언이다. 진보∙보수를 아우르는 변화를 내세운 오바마는 초당적 협치를 강조했고, 의료보험, 이민, 기후위기 등 주요 개혁 의제를 다룰 때마다 공화당 의원 설득에 공을 들였다. 그의 이상주의적 면모이기도 하지만, 법안 통과에 소수라도 야당 의원의 지지를 받으면 해당 정책이 집권당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어 집행의 실효성 및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오바마의 선의는 실제로는 작동하지 않았다. 공화당과의 협치를 위한 노력은 시간과 자원 낭비에 가까웠고, 민주당의 발목을 잡는 결과를 가져왔다. 당시 의회에서 민주당 의석이 압도적 우위였음에도, 오바마 백악관은 보수층을 의식하여 2009년 금융위기 구제 패키지를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1조’(trillion)라는 수치는 제시하지도 않았다. 충분하지 않은 재정 투입은 경제위기 극복을 지연시켜 결국 2010년 중간선거 참패로 돌아왔고, 오바마 정부는 그 여파를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는 상원 50대 50 동수, 하원 의석 우위는 10석 안팎에 불과함에도, 1조 9천억 달러라는 총액을 건드리지 않고 코로나19 구제 패키지를 통과시켰다. 바이든은 공화당의 협조 없이 이를 강행한 것은 “깊이 고민할 필요조차 없는 선택’’(easy choice)이라고 했다.  일단 패키지를 통과시켜 민생경제를 살리면 공화당 유권자 역시 바이든 개인은 몰라도 그 정책은 지지할 것이라는 자신감이다. 이에 대해 오바마의 첫 백악관 비서실장 람 이매뉴얼(Rahm Emanuel)은 “바이든은 ‘bipartisan’의 개념을 이미 바꾸어 놓았다. 단지 워싱턴 정치인들이 깨닫고 따라오는 속도가 느릴 뿐.”이라고까지 평가했다. <관련 Washington Post 기사>

당내 중도∙진보 연합의 유지 및 확장

민주국가에서 권력을 획득∙유지하기 위해서는 ‘연합’(coalition)을 통해 다수파가 되어야 한다. 이런 ‘연합’ 내부에는 성격과 이해가 다른 분파가 공존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공화당 지지층에서도 감세∙규제 완화를 원하는 기업과 백인 저학력 노동자의 이해관계는 충돌한다. 성공적인 정치 지도자는 핵심 지지층에만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세력의 이해관계를 조정함으로써 연합을 유지∙확장해야 한다. 루스벨트의 ‘뉴딜 연합’(New Deal coalition)은 민주당의 장기 우위 시대를 열었지만, 클린턴과 샌더스 진영이 2016년 경선의 앙금을 털어버리지 못한 것은 대선 패배로 돌아왔다.

바이든, 척 슈머, 낸시 펠로시 등이 대표하는 민주당 주류와 버니 샌더스, 엘리자베스 워런,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를 필두로 하는 진보 진영의 분열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바이든은 트럼프를 꺾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사라진 이후에도 당내 세력의 연합을 유지하고 있다.

샌더스는 자신이 지지한 최저임금 15달러를 포함시키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상원 예산위원장으로서 코로나19 구제 패키지 통과에 앞장섰다. 워런은 개인적 혹은 정책적으로 가까운 규제론자들을 대거 주요 직위에 진입시키며 막후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관련 Politico 기사> 바이든은 앞서 말한 개혁 드라이브를 통해 진보진영의 지지를 끌어내는 한편, 학자금 대출 면제, 대법관 증원, 그린 뉴딜처럼 전적으로 동의하거나 바로 채택하지 않는 이슈에 관하여도 대안 마련을 위한 검토를 지시하고 진보진영의 참여를 유도하여 연합을 유지하고 있다.

바이든은 민주당 유권자 사이에서 90% 이상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최근 어떤 대통령보다 높은 수치이고 대통령의 리더십에 유의미한 의문 내지 도전을 제기하는 당내 세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련 New York Times 기사>

왼쪽부터 차례로 엘리자베스 워런과 버니 샌더스,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AP/연합뉴스)

바이든, ‘레거시’ 남기는 대통령 될까?

개인적으로 바이든의 리더십에 가장 기대를 가지게 된 것은 취임 당일 백악관 보좌진의 영상 선서식을 주재하며 나온 발언이다. <관련 영상>

“나와 함께 일하는 동안 동료를 존중하지 않거나 깎아내리면 그 자리에서 해고될 줄 알아라.” (If you’re ever working with me and I hear you treating another colleague with disrespect, talking down to someone, I will fire you on the spot.)

리더십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하는 공개 발언은 개인 의견 혹은 립서비스가 아니며, 많은 사람들의 행동과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바이든의 전임자가 대표적인 예다. 트럼프 백악관은 ‘유독하다’(toxic)고까지 평가되는 분위기로 악명 높았다. 장관마저 대통령의 트윗 하나로 해임되는, 예측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공직자가 업무에 전념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는 국가의 컨트롤 타워인 백악관의 역량을 약화시키고 공직자의 각자도생을 위한 일탈을 부추긴다. 국민을 섬기는 공직자들의 조직문화가 어떠해야 하는지 정확히 짚은 바이든의 책임 있는 발언은 많은 리더들의 모범이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가 직면한 도전은 만만치 않다. 대외적으로 중국과 러시아의 거센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북한 문제의 경우 해결이 어려운 과제를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 선에서 덮어두는 ‘전략적 인내’로 회귀할 가능성이 크다.

대내적으로도 인종갈등, 이민개혁, 총기규제 등의 과제가 산적해 있다. 바이든은 일단 코로나19 및 경제위기 대응에 집중하고 위와 같은 이슈는 장기과제로 해결하겠다고 밝혔지만, 백악관의 준비와 대응을 기다려주지 않는 위기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중간선거는 심판의 성격이 강해 대체로 집권당이 의석을 잃는데, 현재 하원에서 민주당의 의석 우위는 10석 정도에 불과하다. 내년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패배하면 바이든 정부의 동력은 급속히 상실될 수밖에 없다.

바이든이 시대의 흐름을 바꾸는 ‘레거시’(legacy)를 남길 수 있다는 기대는 아직 살아 있다. 레거시를 남긴 대통령으로는 대공황을 극복하고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루스벨트, 민권법을 통과시키고 ‘위대한 사회’ 프로그램을 시행한 존슨, 정치∙사회의 흐름을 보수 우위로 역전시킨 레이건을 들 수 있다. 오바마는 큰 기대에도 불구하고 거기까지 미치지는 못 했다. 바이든이 취임 초기 보여준 리더십은 ‘경륜의 정치인’이라는 평가가 아깝지 않다. 과연 이런 기세를 이어나가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바이든 취임 100일을 앞두고 모두가 궁금해하고 또 기대하는 대목일 것이다.


유정훈 필자

변호사(한국 및 미국 뉴욕 주). 2011년 미국 연수 당시 버락 오바마에 맞설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이 한창이어서 미국 정치·선거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페이스북에서 꾸준히 미국 정치와 법에 관한 ‘덕질’을 계속하고 있다. 메디치미디어가 출간한 <상 차리는 남자? 상남자!>를 공저했다.

최신기사 링크

[정호재의 into 아시아] ‘뉴스주권’을 잃은 나라의 비극

종군 기자로 2차 대전에 참전한 소설가 헤밍웨이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으니 최초의 노벨상은 아니다. 하지만 국적 불문 언론인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지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시아 언론인 최초로 필리핀 출신의 마리아 레싸가 그 영예를 안았다.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이 시대의 미디어 시장이 어떤 상황이며 그 속에서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언론은 어떤 사명을 가져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독립 언론인 마리아 레싸의 전장은 부정 부패와 인권 유린이 만연한 모국 필리핀이다....

[이광수 칼럼] 부동산세, 현행 과세 원칙을 지켜야 가격 잡힌다

현 정부는 부동산 가격 폭등을 세금으로 잡으려 했다. 취득(세), 보유(종합부동산세), 매각(양도세)의 각 단계마다 세율이 올라갔다. 특히 다주택자 대상의 세율과 가격상승폭이 큰 주택에 대한 보유세인 종부세의 세율이 많이 올라갔다. 이광수 필자는 여기서 멈추거나 늦추면 안된다는 쪽이다. 요즘 보기 드문 목소리다. 땅으로, 집으로 이익을 얻는 것에 대해서는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과세의 고삐를 늦추면 안된다는 원칙론을 고수한다. 경제신문과 보수 미디어를 중심으로 온건론이 많이...

[위민복 칼럼] 청년국가에서 성인국가로, 독일 신 연정의 각오

독일은 2차대전 이후 외교와 국방에서 성인국가의 길을 대체로 회피해왔다. 나치의 악몽 때문이다. EU나 NATO에서 군비확충을 요구해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독일의 역사적 과오는 독일 국민이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일본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경제와 문화 분야에서나 유럽 선도국가의 길을 걷던 독일이 이번 사민당 중심의 연정 수립에서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타결된 연정 협상안에는 덩치에 비교하면 미흡하지만 ‘세계적 책임’이 주요 항목으로 명기돼 있다. 탄소 중립이나 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