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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경의 오래된 유럽] 아시안 혐오와 외국인노동자 차별의 ‘사슬’을 끊으려면

by | 2021년 4월 5일 | 국제, 기획 · 연재, 김진경의 '오래된 유럽'

지난 4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아시아계 미국인 혐오범죄’를 규탄하는 집회에 참석한 아이들이 ‘아시아 혐오를 멈춰라’라고 적은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가슴 깊은 곳에서 나를 괴롭히는 질문이 있다. 왜 우리는 이 문제(아시안 혐오)에 관해서 전에는 얘기를 하지 않았나. 온라인뿐만 아니다. 학교 교실에서, 다른 소수 집단들과, 심지어 가족과 식탁 앞에 앉아서도, 왜 이 문제에 대해 말하지 않았나.”

3월 말 유튜브에 공개된 다큐멘터리 <우리는 아시안 혐오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We need to talk about anti-Asian hate)>의 도입부에서 감독이자 진행자인 한국계 미국인 유진 리 양(Eugene Lee yang)이 하는 말이다.

‘아시안 혐오에 대해 그동안 얘기하지 않았다’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아시안 혐오 범죄가 부각되고 있다. 마치 그 전에는 없던 차별이 바이러스 때문에 처음 생겨난 것처럼 보도된다. 그러나 아시안 혐오는 전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19세기 이후 서구에서 아시안은 늘 경계와 차별의 대상이었다. 다만 스스로가 이를 드러내서 문제 삼는 경우가 적고, 차별을 받으면서도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비중이 높아서 덜 심각해 보인 것뿐이다. 아시안 이민자들은 가정에서도 이 문제를 쉬쉬하는 경향이 있다. ‘나쁜 얘기 해서 우리에게 좋을 거 없다’는 이유로 어지간하면 침묵한다.

침묵 때문에 차별은 반복된다. 조용히 있음으로써 자신이 차별 구조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 아시안 차별의 역사를 되새기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 이건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 출신 이민자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인종 차별이 전쟁이라면 외국에서 차별당하는 한국인들은 전방에서 공격에 먼저 노출된 것뿐이다. 성공한 공격은 외연을 넓힐 것이다. 또 다른 중요한 점, 서양에서의 아시안 차별을 반면교사 삼아 한국 내 인종 차별의 사슬을 끊어낼 수 있다. 외국에서 한국인이 받는 차별은, 한국에서 다른 외국인노동자들이 받는 차별을 비추는 거울이다.

미국 뉴욕 지하철에서 아시아인 남성이 흑인 남성에게 폭행 당하는 영상이 지난 3일 29일(현지 시각) 미국 CBS 방송에 보도됐다. 같은 날 오전 맨해튼 미드타운의 한 건물 앞에서는 흑인 남성이 65세 아시아계 여성을 아무런 이유 없이 폭행했다. (출처=CBS/트위터 캡처)

차별의 시작 – 옐로 페럴(Yellow Peril)

1848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되자 금을 채굴할 인력이 필요했던 미국 정부는 중국에서 대량으로 계약직 노동자를 데려왔다. 금광뿐 아니라 서부 개척 및 대륙 간 철도 부설 사업 등 외국인 노동자는 쓸모가 많았다. 중국인 노동자들은 백인들이 하지 않는 위험하고 지저분한 일을 더 적은 돈을 받고 했다. 그래서 미국인들이 이들에게 고마워했느냐 하면, 그 반대였다. 3D 직종에 종사한다는 점 때문에 ‘더럽고 불결한 중국인(아시안)’의 이미지가 생겨났다. 한편 일자리를 놓고 경쟁 관계에 있던 하층 계급의 백인들은 중국인이 임금을 낮추고 일자리를 가로챈다며 반감을 키웠다.

1854년 뉴욕 트리뷴에 편집장 호러스 그릴리가 중국인 이민자에 대해 쓴 사설이 있다. 호러스 그릴리는 당시 미국 언론 최고의 논설 기자로 평가받는 사람이었다. 사설 내용은 이렇다.

황화론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카툰. 1899년에 발행된 것으로, 중국인이 바닥에 쓰러진 백인 여성(서구 세계를 상징) 위에 서 있다. 손에는 총을 들고, 입에는 칼을 문 모습이다. (출처=오하이오 주립대)

“그들(중국인)은 대개 근면하고, 참을성이 많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사람이다. 이 정도면 그들에 대해 좋은 점을 다 말했다. 그들은 미개하고, 더럽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추잡하고, 고상한 사회적 관계를 맺지 않는다. 성욕이 많고 관능적이며, 모든 여성은 기본적으로 창녀이고, 그들이 배우는 첫 영어 단어는 외설적 비속어다. 무엇보다 배우려는 의지가 없다.”(1854년 9월 29일, ‘Chinese Immigration to California’)

중국인이 ‘더러운’ 이미지였다면, 일본인은 ‘두려운’ 이미지였다. 청일전쟁(1895)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당시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아시안(일본인)이 서구 백인 사회를 위협한다’고 경고하면서 쓴 용어가 ‘황색 위협(Die Gelbe Gefahr)’이다. 영어로는 옐로 페럴(Yellow Peril), 우리말로는 황화(黃禍, 노란 재앙)론이다. 그런데 이 용어, 낯설지 않다. 팬데믹 초기인 2020년 1월에 프랑스 지역 일간지 르 쿠리에 피카르가 코로나19 관련 기사에 ‘황색경보(Alerte Jaune)’라는 제목을 붙여 큰 논란을 일으켰다. 아시안을 비하하는 표현인 ‘황색’을 코로나19와 결부시켰다. 빌헬름 2세의 황화론은 사어(死語)가 아니다. 더럽거나 두렵거나, 서구가 자기 입맛에 맞게 아시아를 대상화하기 위해 지금도 쓰고 있는 살아 있는 개념이다.

차별적 이민 정책, 갈등을 증폭

차별적 시선은 차별적 정책으로 이어진다. 미국은 1882년 중국인 배척법(Chinese Exclusion Act)을 만들어 중국인 이민을 금지했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특정 국가(인종)를 겨냥한 법이다. 노동력이 필요할 땐 불러 쓰더니, 숫자가 늘어나고 사회적 반감이 거세지니 법까지 만들어 입국을 막았다.

차별 대상은 중국인에서 그치지 않았다. 저 유명한 1924년 이민 제한법(일명 존슨-리드 법)은, 간단히 말하면 국가별 이민 쿼터제다. 1890년 미국 인구 조사를 기준으로, 당시 미국에 살던 각 출신지별 인구의 2% 이내로 신규 이민자 수를 제한하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1890년에 미국에 독일 출신 이민자가 100명이었다면, 향후 독일 출신 신규 이민자 수를 매년 2명만 허용한다는 거다. 1890년 미국 이민자 다수는 북·서유럽 출신이었다. 즉 이 법안은 아시아 출신이나 남·동유럽 출신 이민자 수를 제한하기 위한 장치였다.

출신지를 이민 제한의 근거로 삼는 차별적 정책은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에게 영감을 줄 정도였다. 히틀러는 저서 <나의 투쟁>(1925)에서 이렇게 썼다. “미국은 육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민을 카테고리로 나눠 제한한다. 그리고 특정 인종에 대해선 간단히 이민을 막는다.”

이 같은 차별적 이민 정책이 획기적으로 바뀐 건 1965년이다. 새로운 ‘이민 및 국적법’에서 말 많던 국가별 할당이 폐지된다. 이때를 기점으로 아시아 출신 이민자가 급격히 증가한다. 그런데 여기 함정이 있다. 새 법은 이민을 수용하는 8가지 우선순위를 정했다. 그중 ‘지적 직업인’이 있다. 전문 기술을 갖췄거나 자국에서 전문직에 종사 중이던 사람들을 우선 받아들인다는 거다. 이 조건 때문에 1965년 이후 미국에 간 아시안 이민자 중엔 상대적으로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가 많았다. 미국 내 아시안의 지위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게 분명한 이 상황은, 그러나 ‘모범적 소수자’라는 신화를 만들어내며 소수 인종 간의 갈등이 늘어나는 배경이 된다.

‘모범적 소수자(Model Minority)’의 신화

1987년 발행된 타임지 표지. ‘아시안 아메리칸 영재들’이라는 제목으로 아시아계 이민자의 ‘모범적 소수자’ 이미지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 (출처=TIME)

‘모범적 소수자’란 말 그대로 여러 소수 인종 중 본받을 대상이라는 의미로, 주로 아시안 이민자를 일컫는 표현이다. 다른 말로 ‘명예 백인(honorary whites)’이라고도 한다. 학교에서 공부 잘하고, 직장에서 일 열심히 하며, 범죄 등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소수자. 1987년 타임지 표지에 ‘아시안 아메리칸 영재들(Those Asian-American WHIZ KIDS)’이라는 제목과 함께 아시아 아이들의 사진이 실린 적도 있다.

이 인식은 미국만이 아니라 유럽에서도 단단히 자리 잡고 있다. 내가 얼마 전 스위스인 이웃에게 미국에서 일어나는 아시안 혐오 범죄 때문에 마음이 힘들다는 얘길 했더니, 돌아온 대답이 이랬다. “당신들은 성실하게 노력해서 성공한 사람들이다. 그런 모범적 인종을 누가 차별하겠나. 아시안 차별은 미디어가 과장한 것이다.” 나는 아무도 말을 믿어주지 않아 무기력해진 모범생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모범적 소수자’라는 긍정적 지칭 뒤에 자리 잡은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제아무리 모범을 보여봤자 결코 주류와 같아질 수 없다는 점이다. ‘너희는 계속 모범생으로 살아라, 그러면 반장 자리는 주겠다’, 이게 모범생을 지정하는 선생의 속마음이다. 학교에서 1등 하고 직장에서 좋은 실적을 내더라도 아시안이 관리직에 오르는 게 어렵다는 통계는 차고 넘친다. ‘대나무 천장(bamboo ceiling)’, 즉 아시안에게만 적용되는 사회적 장벽은 견고하다. ‘모범’은 계속 말을 잘 듣게 하려고 붙이는 딱지에 불과하다.

둘째, ‘모범’이라는 딱지 때문에 다른 소수 인종과 원치 않는 비교 대상이 된다. ‘흑인이 못 사는 건 아시안만큼 노력을 안 해서’라는 억지 주장이 성립한다. 1965년 이민법의 영향으로 미국 내 아시안 이민자의 학력과 직종이 치우쳐 있다는 통계는 무시되고, ‘성공한 아시안’이 아메리칸드림의 근거로 이용된다. 아시안 스스로 이 신화가 사실이라고 믿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너희가 성공하지 못하는 건 우리만큼 똑똑하거나 노력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하는, 그래서 흑인 등 다른 소수 인종을 앞장서서 차별하는 아시안들이 분명 존재한다.

이 글 첫머리에 소개한 다큐멘터리에서 미국의 젊은 아시안들은 한 목소리로 지적한다. ‘솔직해지자, 우리 부모 세대는 흑인을 혐오한다’. 이민 1세대 아시안의 흑인 혐오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고국에서부터 존재한 편견일 수도, 미국 내 소수자 중 아시안의 지위에서 비롯된 상대적 우월감일 수도, 아니면 그저 구세대의 덜 세련된 태도일 수도 있다. 이유가 뭐가 됐건, 연대해서 주류의 편견에 대항해도 모자랄 소수자 집단끼리 서로 증오하는 건 비극이다.

1992년 미국 LA 폭동이 그 사례다. 사망자 53명, 부상자 4000명, 재산 피해 7억 5000만 달러를 낳은 LA 폭동의 직접적 원인은 두 가지다. 하나는 백인 경찰관들이 집단으로 흑인 로드니 킹을 구타하고도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계 이민자 두순자가 자신의 가게에서 15세 흑인 소녀 라타샤 할린스를 등 뒤에서 총으로 쏘아 살해한 사건이다.

당시 미국 언론은 라타샤가 총 맞는 장면을 방송으로 반복해 보여줌으로써 로드니 킹 사건으로 인한 흑인들의 분노를 한인들에게로 돌리려 했다. 폭동 발생 직후 경찰이 LA의 흑인 거주 지역에서 백인 거주 지역으로 향하는 길은 완전히 차단해 놓고 한인 타운으로 향하는 길만 열어둔 것도 피해가 한인들에게 집중되는 결과를 낳았다. 당시 폭동으로 인한 재산 피해의 약 40%가 한인 업소에서 발생했지만, 한국인들은 경찰에 기대지 못하고 자경단을 꾸려 대항해야 했다. 모범적 소수자라 해도 결정적 순간에 배제될 수 있고, 모범적 소수자의 지위가 오히려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다.

전쟁 당시 격리 수용된 일본계 미국인

또 다른 모범적 소수자인 일본계 이민자들은 미국에서 일어난 아시안 차별 행위의 최대 피해자이기도 하다.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습 후 미국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 당시 미국 언론은 일본계 주민의 애국심을 의심하며 이들을 ‘제5열(적국 내에서 모략 활동을 하는 조직)’로 몰아갔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1942년 2월 ‘포고령 9066’을 발동해 태평양 연안 7개 주에 사는 일본 출신에게 강제 이주를 명령했다. 당시 미국의 일본계 주민은 약 12만 7000명이었는데, 1/3이 일본 국적을 유지한 이민 1세대이고 2/3가 귀화했거나 미국에서 태어난 이민 2세대였다. 미국 국적을 가진 사람들, 스스로 미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포함해 10만 명 이상이 군사시설에 마련된 격리 캠프 10곳에 수용됐다. 이들은 취업도 못 하고 교육도 못 받는 상태로 3년 동안 감금당했다.

감금되지 않은 일본계 2세대 중 일부는 미국에 대한 충성을 입증하기 위해 자원해서 입대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442 보병 연대’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대활약했다. 한쪽에서는 국적상 미국인인데도 감금당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목숨을 걸고 애국심을 증명하는 상황이었다. 전쟁이나 경제 불황, 전염병 유행 같은 국가적 위기 앞에서 소수자들은 희생양이 되기 쉽다.

한국계 미국인 유진 리 양 감독의 다큐멘터리 <우리는 아시안 혐오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We need to talk about anti-Asian hate)>의 한 장면. (출처=유튜브 캡처)

왜 우리는 연대해야 하는가

1982년 중국계 미국인 빈센트 친(Vincent Chin) 살해 사건은 일자리 감소 같은 경제 위기가 인종 혐오와 직결됨을 보여준 범죄다. 미시간에 사는 제도사였던 친은 결혼식을 앞두고 술집에서 총각 파티를 열었다. 같은 술집에 미국 자동차 회사 크라이슬러에서 해고된 두 명의 백인 노동자 로널드 에벤스와 마이클 니츠가 있었다. 이들은 일본 자동차 때문에 미국 디트로이트 중심의 자동차 산업이 무너졌다고 믿고 있었다. 일본인을 증오하던 차에 친을 본 그들은 “우리가 일자리를 잃은 건 너 XXX 때문이야(It’s because of you mXX fXX that we’re out of work)”라고 하며 싸움을 걸었다. 친을 일본인이라고 생각한 거였다. 친은 술집 밖에서 야구 방망이에 맞아 사망했다. 두 백인 가해자에게는 징역이 아닌 집행유예 3년에 벌금 3000달러가 선고됐다. 사건의 중대성에 비해 형량이 터무니없어서, 판사 카우프만이 베트남 전쟁 포로 출신이라는 게 판결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친이 살해당한 이유는 ‘억울하게 일본인으로 오해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일본인이라면 죽여도 된다고 생각한 인종차별자들 때문이다. 아시안을 하나로 묶어 혐오하는 자들에게는, 역시 하나로 뭉쳐 대항하는 게 효과적이다. 코로나19 발발 초기 세계적으로 중국인에 대한 반감이 퍼질 때, 일부 아시안들이 ‘나는 중국인이 아니다’라고 항의하던 게 아쉬운 건 그래서다.

현재 발생하는 인종 혐오 범죄가 더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팬데믹과 경제 불황이 동시에 진행 중이라는 점, 예전과 달리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로 혐오가 훨씬 더 빠르게 퍼진다는 점 때문이다. 팬데믹 이후 아시안 혐오 범죄 건수를 집계하고 있는 단체(Stop AAPI Hate)’에 따르면 2020년 3월 19일부터 2021년 2월 28일까지 접수된 혐오 범죄는 총 3795건이다. 단체는 이 수치가 실제 범죄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추정한다. 이 중 언어폭력이 68%, 신체 공격이 11%를 차지했다.

언어폭력을 가볍게 봐선 안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도 취리히에서 혐오 범죄의 피해자가 된 중국인 여성의 이야기를 들었다. 오토바이에 탄 남성이 대로에서 쫓아오며 “차이나 XX, 꺼져”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빨리 피하지 못했더라면 무슨 일이 생겼을지 모른다. 수많은 언어폭력은 더 심한 사건이 일어나기 앞서 생기는 전조 현상이다. 이걸 막을 방법은 연대뿐이다. 인터넷에서건 대로에서건 소수의 혐오자들이 힘을 얻지 못하도록 함께 나서야 한다.


김진경 필자

한국에서 일간지 기자로 일했다. 미국에서 만난 스페인 출신의 남편과 2011년부터 스위스 취리히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다. 한국 및 스위스 매체에 문화 다양성(cultural diversity)에 대한 글을 쓴다. 여전히 정체성을 고민 중이고, 심리적 이방인의 새로운 시각을 글에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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