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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칼럼] 수에즈 운하 에버기븐호 좌초, 코미디가 아닌 이유

by | 2021년 4월 2일 | 국제, 정책

지난 3월 28일 수에즈운하에 좌초한 컨테이너선 뱃머리 부분에서 진행되는 준설작업 모습. (사진=수에즈운하관리청/연합뉴스)

수에즈 운하는 지중해와 홍해를 수에즈 지협을 통해 잇는 이집트의 운하다. 1859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1869년에 개통했다. 19세기 제국주의 시대부터 지금까지 이곳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세계사의 흐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최근 수에즈 운하에서 일어난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 사건 또한 지나고 보면 일종의 변곡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한국은 중동으로부터 석유를 대량 수입하고 전 세계를 상대로 수출을 통한 제조업으로 경제를 키웠으며 조선업 강국이고 동아시아권 내 해상물류 경쟁에 놓여 있는 국가다. 따라서 수에즈 운하가 단 1척의 선박으로 폐쇄된 사건을 단순하게 희화화해 ‘남의 나라에서 일어난 이야기’로만 여기기에는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매우 크다.

이번 사고는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도중에 일어났다. 2018년에 건조한 길이 400m 폭 59m 흘수 16.0m 20,000TEU급(1TUE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를 1개 실을 수 있는 규모) 초대형 컨테이너선인 에버기븐호가 지난 3월23일 수에즈 운하 진입 후 약 1시간 지난 후 수에즈 운하 남쪽 수로에 선박 끝부분이 바닥에 닿아 움직일 수 없게 된 사고다. 이로 인해 일주일 남짓 수에즈 운하가 폐쇄됐고 중동과 유럽을 잇는 해상항로에 일대 혼란이 야기됐다.

북극항로 요도와 수에즈운하 vs. 케이프 곶. (출처=연합뉴스)

수에즈 운하, 글로벌 산업지형 바꾸다

수에즈 운하 항로가 막혔던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967년 발발한 제3차 중동전쟁으로 1975년까지 무려 8년간 폐쇄됐던 적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아라비아 반도를 관통하는 송유관(파이프 라인)도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수에즈 운하의 8년 간 폐쇄가 석유산업에 변화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수에즈 운하의 폐쇄는 해운산업에도 큰 변동을 가져왔다. 목적지(유럽,미국)에 빨리 도달하는 것보다, 최대한 많은 양을 싣는 것이 해운사들의 목표가 됐다. 특히 유조선이 대표적이었다. 수에즈 운하 폐쇄로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으로 우회항로를 이용해야 했기에 한 번에 많이 실을 수 있는 초대형 원유 운반선의 경제성이 더 부각됐다.

컨테이너선의 경우 1963년 베트남 전쟁 직후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만 3차 중동전쟁에 따른 수에즈 운하 폐쇄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컨테이너선은 컨테이너 박스라는 전용 상자에 화물을 넣고, 이를 전용 기기로 처리하기에 기존 화물선보다 처리 효율을 크게 개선할 수 있었다. 해운업계에서는 점진적으로 단위당 물류비용을 줄이기 위해 규모의 경제와 연료 효율성을 조선사들에게 요구했고, 화주들에게 ‘Full Speed, Full Load’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러한 경쟁은 곧 컨테이너 선박의 대형화로 귀결되었다. 전쟁으로 인한 해상교통로의 긴장 관계를 계기로, 컨테이너선의 관심은 컨테이너선의 크기를 키우려는 노력으로 가중되기 시작했다.

컨테이너선의 규모가 일종의 퀀텀 점프를 하게 된 계기는 2001년 11월 중국이 WTO에 정식으로 가입하게 됨에 따라, 해상물동량이 급격히 늘어나면서부터였다. 중국의 올림픽 특수와 세계경제 호경기에 따라 2003~2007년 조선&해운 시황이 초호황을 구가하게 된다. 세계경제 발전에 따라 GDP와 해상물동량은 서로 연관성을 지닌 동조화 관계(커플링)로 꾸준히 상승하게 되어 경쟁의 속도도 가속화하기에 이른다. 70년대 가장 큰 컨테이너 선박이 3000TEU급이였는데, 2006년에는 급기야 1만TEU급이 넘는 엠마 머스크선(도입시 1만1000TEU급, 현재 1만5000TEU)이 시장에 선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배의 크기도 커지면서, 연료효율성, 환경효율성 등을 고려해 나온 게 초대형 컨테이너선(VLCS: Very Large Container Ship) 전략이다. 이런 전략은 시장점유율 기준 1위 컨테이너 회사인 머스크(Maersk)가 가장 빨리 도입을 했다. 현재 이러한 초대형 선박 대형화 기조는 세계 각국의 컨테이너 선사들이 도입했으며, 한국국적 컨테이너선사 HMM(구,현대상선)이 2020년부터 단계적으로 12척(2만TEU)+8척(1만5000 TEU), 총 20척 초대형선박 도입으로 정점을 찍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환경규제와 디지털화가 변수로 작용했다. 단순히 해운&조선업계에 친환경과 디지털을 도입하는 게 아니라 기존의 서비스 영역에서 비용관리와 이익 측면도 변화를 겪으며 연료효율성, 환경효율성 등 컨테이너 해운산업의 변수가 갈수록 복합적으로 뒤섞이기 시작했다. 해운산업이 다양한 해상루트를 이용하고, 컨테이너 운송 선박의 대형화 추세 속에 선박 1척이 일시적으로 전 세계 물류 혈관을 막은 사건이 에버기븐호 사건이다.

수에즈 운하 대신 북극항로가 가능한가?

수에즈 운하의 일시적 폐쇄 이후 국내에서는 북극항로가 대안으로 부상했다. 북극항로를 타고 북동항로를 이용해 네덜란드의 로테르담까지 40일에서 30일로 열흘을 줄이고, 북서항로를 통해 미국 동안을 바로 진출할 수 있는 전략이다. 북극항로를 이용하게 된다면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는 기간보다 더 빨리 유럽에 도달하게 되니 한국이 해양산업의 거점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게 근거였다. 여기에 북극항로를 이용하기 위한 내빙 기능 선박 수요도 많아져 한국 조선업의 새로운 먹거리가 될 수 있다는 바람도 섞여 있다.

그러나, 정작 해운업계에서는 북극항로에 대해 시일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북극항로는 우선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제약과 해류 등의 계절적 제약을 무시하지 못한다. 추가로 운항하기 위해서는 내빙 기능이 있는 선박을 확보해야 된다. 설령 이용이 가능하더라도 초대형 선박의 이용은 요원하며, 중형급의 선박이 한시적으로 이용이 가능하다.

실제 시범 운항의 성격으로 2013년 현대글로비스의 스테나 폴라리스호가, 2018년 벤타 머스크호가 북극항로를 이용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성과를 드러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북극항로가 이용하려면 다음과 같은 제약을 넘어야 한다. 내빙선이나 계절적 제약 등 각종 비용을 감안하더라도, 이를 상쇄할 규모의 경제성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유럽까지 추가 선적없이 사실상 직항으로 운송해야 하는데, 빠른 것만이 정답이 아니라 단위당 비용이 싸고, 효율성과 안정성도 고려되어야 한다. 이 외에 시베리아 철도같은 다른 운송체계와 비교 우위인지 확인해야 할 부분이다. 그래서 아직까지 대안으로 여기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산업질서 재편과 선사들의 전략

에버기븐호 사건과는 별개로 지금의 해운산업 질서변화(Regime Change)에 대해 학계나 산업계에서도 고민이 많다. 산업환경이 급격히 변경한 배경에는 2010년 이후 경제성장과 해상물동량은 탈동조화(디커플링) 현상을 비롯해 파나마 운하 확장, 유가 등락 등 컨테이너 선사가 직면한 다양한 외생변수 요인에 있다. 규모의 비경제나 상대적으로 적은 항만 취항 항로 선택 등 각계별로 다양한 시각과 전략이 있으며 이러한 내부변수에도 많은 논쟁거리가 존재한다.

수에즈 운하 항로는 협소한 폭 외에도 해운업계는 여러 가지로 문제가 되고 있다.

먼저 벌크선과 탱커선의 경우 수에즈 운하 통과료가 부담되어 ‘수에즈맥스’(Suezmax)보다 작은 선박이라도 희망봉으로 돌아가서 수에즈 통과를 하지 않거나, 수에즈 운하나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파이프 라인을 이용해 운송 서비스를 하는 사례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이에 이집트 당국에서는 운하 이용료를 감면하는 인센티브를 시행하는 중이었다.

수에즈맥스는 수에즈 운하와 중동지역에서 원유를 운송하는 유조선의 기준 중 하나로 기술적으로 최대로 적재해 수에즈 운하 통과가 가능한 선박을 칭한다. 컨테이너선은 다수의 항만에서 마치 시내버스처럼 운송하는 서비스 형태이기에 수에즈 운하 통과료 외에도 추가 항해에 따른 유류비 그 외 선사의 노선전략, 외생변수(코로나19)에 따른 영업전략 등 고려할 요소가 많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수에즈 운하가 장기적으로 폐쇄가 된다면, 부산에서 로테르담까지 왕복으로 90일 안팎으로 왕복이 가능하던 것이 희망봉으로 돌아갈 경우 최소 20일 정도 더 소요가 된다. 즉, 1년에 4번 왕복이 3번 왕복으로 줄어들 수 있다. 아무리 운임상승의 이점이 있더라도 4번 벌 기회가 3번으로 줄어들면 선사 입장에선 운송비용을 줄일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이런 비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 큰 초대형선을 투입을 해야한다.

Sumed Pipeline & Arab Gas Pipeline. 출처 : EIA /The Times, (2020.10.22.)

해운선사와 항만물류업의 고민

해운선사 입장에서는 기존의 선박보다 더 큰 선박을 수배하기 위해선 신규 선박건조나 중고 선박을 매입한다. 이는 건조, 금융비용이 추가로 들며 최소 6개월~1년 이상 걸린다. 도입을 결정하더라도, 이 때 기존 선박들은 도태(중고 시장에 판매, 해체)되거나 다른 항로로 전이(Cascading)가 발생한다. 현재 기업이 수익을 내기 위해 도입한 선박이 미래에 애물단지이자, 매몰 비용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중요하다. 이러한 딜레마적 상황 때문에 HMM같은 해운사와 정부에서도 에버기븐호의 좌초 상황에 긴장하며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운송상황을 점검하는 게 우선이었지만 장기적으로 산업질서 변경에 따른 해양산업 전략도 수정해야해서다.

지난 10년간 전 세계 컨테이너 해운선사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디커플링 현상 때문에 수익성이 좋지 못했고 컨테이너 해운사 간의 M&A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20년전 10년전 5년전 컨테이너 선사 순위는 상위그룹을 제외하면 빈번하게 바뀌었다. 작년이 최근 10년 중 영업실적이 좋았던 이유는 코로나19 사태로 물류의 리드타임이 늘어났고, 특히나 선원교대가 어려워서 노선영업이 정상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워 영업비용이 줄어든 효과가 더 크게 작용했다. 매출의 급격한 증가에 힘입은 영업실적이 아니란 의미다. 즉 해운선사들이 추가로 초대형 선박을 구매할 여력이 없고, 추가 선박을 도입하기보다 대부분의 해운사들이 부채 탕감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항만물류산업 시각에서도 이는 곤란한 상황이다. 2만TEU급 이상 접안 가능하고, 효율적으로 짐을 싣고 내릴 수 있는 설비가 완비된 컨테이너 항만은 2021년 현재에도 전 세계에 몇 개 되지 않는다. 그나마 대규모 신규 항만시설을 투자를 실천한 곳이 싱가포르의 투아스 항만이고 구체적으로 계획이 잡힌 곳은 중국, 미국, 네덜란드 정도이며 대다수 신규 항만시설은 양적인 설비투자가 아닌 스마트 항만으로서의 질적인 항만개발도 병행하며 진행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컨테이너선의 초대형화는 진행 중이며, 해운 관련 산업질서는 재편되는 중이다. 다양한 비용과 변수를 고려했을 때 희망봉으로 돌아가는 항로가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는 것보다 더 경제적일 수도 있다. 즉 초대형선이 현재 유럽과 아시아의 수요지를 최단 거리로 통과하는 수에즈 운하를 항로에서 제외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 세기 넘는 동안 수에즈 운하를 상수로 놨던 해운산업과 연관된 산업의 경영환경이 달라지는 중이며 이번 수에즈 운하 에버기븐호 사고는 이런 상황에서 일어난 사고라는 점에서 짚어봐야 할 부분이 많다.

이집트 수에즈 운하에서 굴착기 한 대가 운하를 가로막고 있는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 아랫부분의 흙을 퍼내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수에즈 운하 사태의 교훈과 과거사례 복기

이번 사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중동에서 전쟁이 나지 않았음에도 수에즈 운하의 일시적 폐쇄(불가동위험)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환기했다는 점이다. 특히 단 1척의 선박으로도 일주일간 항로의 정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항만 당국과 해운산업, 항만물류산업 종사자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따라서 외생변수로 인한 해운, 항만물류산업 저변에 있었던 거버넌스와 레짐이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단계별 대처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기업 수준의 대응을 넘어 국가 차원에서 산업전략 도출과 매뉴얼 설정, 비전과 어젠다 등이 있어야 한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사실상 섬나라이므로, 해양산업이 고사하면 나라의 존망이 위태로울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선 다른 국가와 차별적인 성장방안을 강구해야 된다. 최소 지금의 지위와 역량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비용과 수익의 관계에서 필수적으로 구비 해야할 역량은 필히 확보해야 한다. 특히 수에즈 운하 불가동위협과 같은 사고 발생 시 재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구난·구조 역량은 세계적인 해양강국 수준에 비해 미미한 실정이다.

또한 동아시아권에서 불가동위험이 장기화되어 특정 항만이 폐쇄된다면 중국이 해운산업에서도 패권을 차지해 이 같은 상황이 고착화 할 수 있다. 중국은 전세계 해상물동량의 절반을 차지하며, 컨테이너 항만처리량 1~10위 중 절대다수가 중국이기 때문이다. 특히 환적화물 유치가 많은 부산항은 중국 항만의 경쟁력이 올라갈수록 초대형선 유치 경쟁력이 떨어지고 초대형선의 기간항로에서 이탈 가능성도 커진다.

일본은 외생변수에 대한 대처 미비로 곤란을 겪은 적이 있다. 1995년 고베대지진 당시 고베항의 항만기능 마비로 부산항에게 동북아시아 환적항의 위상을 내어주었기 때문이다. 비록 고베항의 항만기능은 2년 만에 회복되었으나 고베항의 화물처리량은 상당히 감소하게 되었고 반대급부를 부산항이 누리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무역항이 32개(국가관리 15개, 지방관리 17개) 연안항이 26개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물동량의 기준으로는 부산항(컨테이너&환적화물), 여수·광양항(원자재), 울산항(석유화학&자동차), 인천항(대중국 교역), 평택·당진항(LNG&자동차) 순이다. 수출입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우리나라에서 5곳의 항만 중 1곳이라도 1주일 이상 장기간 항만 폐쇄가 일어난다면 국가 재난급의 위기 상황이 발발한다. 각 항만별로 취급하는 화물이나 서비스 영역이 다르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열린 관점에서 종합적 대응이 필요하다. 중국의 톈진 항 폭발사고(2015)이나 베이루트 항 폭발사고(2020)가 대표적 사례다. 만약 LNG를 취급하는 한국가스공사 항만 (인천·평택·통영·삼척) 내에서 LNG 선박이 폭발한다면 한국은 어떤 대책이 있는가?

해양산업 전략, 양적성장 신화 벗어나야

한국의 해양산업은 조선·해운 초호황기 때 양적 성장을 구가했다. 정확한 시점은 산업별로 일치하지 않지만, 다음의 수치로 전성기를 유추할 수 있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부산항은 물동량 기준 홍콩, 싱가포르에 이어 세계 3위였다. 조선산업은 2000년대 이미 일본을 제치고, 세계 1~3위 모두가 한국 기업이었다. 컨테이너 해운도 2000~2010년대에는 10위권, 20위권에 1개씩 존재했다. 2008년 금융위기 직전만 하더라도 2개의 국가선사는 매출액이 도합 20조(11조, 9조) 가까이 기록했다. 국가 선복량도 세계 5~10위권이었다. 이 때 당시 상장된 기업들의 주가는 연일 고공행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양적인 지위보다 질적인 내실에 대해 고민이 많은 상황이다. 조선산업은 일본과 경쟁, 중국의 추격에도 기술적 우위를 유지하며 간신히 버티고 있지만, 사실상 이겨도 결코 득이 되지 않는 승리를 의미하는 ‘피로스의 승리’ 상황이다. 해운산업은 한국해운의 전성기의 매출액 기준 반토막 수준이다. 항만물류 산업도 다양한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결국 양적 성장(물동량, 처리능력) 뿐 아니라 질적 성장(고부가가치)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가시적인 방법과 성과에 대해서는 업계와 학계에서 아직 뚜렷한 답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양적 성장 측면에서 기반이 되어야 인프라 시설(철도·도로망·전기시설)과 구매력의 증가속도가 가변적이란 변수가 있다. 신규 물동량 유치가 가능한 몇몇 국가들을 이러한 기준으로 살펴보면, 양적 성장조차도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이미 성장 가도를 달리는 중국의 경우에도 항만까지의 철도 인프라 설치 속도가 항만 성장속도를 따라 잡지 못한 적이 있었다. 자국 항이 양적 성장을 하더라도 대상국의 인프라가 이를 받쳐주지 못한다면 또 딜레마에 놓인다.

고부가가치 항만의 전략으로 나아가기에도 한국의 전략이 애매하다. 각각 항만 물동량이 2위, 10위권에 있는 싱가포르, 로테르담 항만의 경우, 고부가가치 화물을 유치해 수익성이 높은 항만으로 꼽힌다. 한국의 경우 화물의 종류, 제공하는 서비스별로 주요항만이 분리되어 있어 두 항만의 전략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런 측면을 고려했을 때 한국만의 해양산업 전략과 정책을 범 정부차원에서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 한국은 한진해운 청산 이후 해운물류 분야에서 상당부분 경쟁력을 상실했다. 반면 덴마크에서 본사가 있는 머스크(Maersk)는 달랐다. 컨테이너 해운선사 1위인 머스크는 1990년대 M&A,  2000년대 선박 대형화로 덩치를 키웠다면, 10년대 초반 치킨게임을 통한 독자 생존전략, 2010년대 중반 치킨게임 종료 및 수지타산 방어전략, 2010년대 종반부터 지금까지 IT/디지털 기업으로 전환 등 1등 기업으로서 초격차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은 최근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다른 산업에 비해 현장에서 절실함이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무엇보다 단순 통계 비교를 통한 정책수립 패턴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통계의 이면적 의미를 살펴야한다.

에버기븐호 사건도 마찬가지로 단순 통계가 하나의 참고사항이지 중요한 판단근거로 들 수 없다. 수에즈 운하가 세계 물동량의 12%를 점유한다는 통계적 사실에만 매몰된다면, 이번 사고의 여파로 전 세계가 막힌다거나 12%만 관련된다는 잘못된 결론으로 유추할 수 있다. 사실 한국은 이러한 점에서 이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한진해운 청산 과정에서 벌어진 정책적 오판의 근거는 해상 물동량에 대한 단순 통계 비교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청산판결 당시 회계법인이 추정한 잔존가치에만 매몰되어 한진해운이 30년 이상 축적된 원양해운의 물류 네트워크라는 비정형적 자산가치는 고려되지 않았다.

한국 해운업계는 10년 주기로 상승과 추락을 겪고 있다. 초대형선이라는 자산도입과 낮아진 단위당 운임, 낮춰야 되는 비용 등 딜레마적 상황을 겪고 있다. 항만도 설비투자 대비 운임수익은 낮아지는 실정이다. 수에즈 운하 폐쇄처럼 산업 근간을 흔들리는 사건들이 재발할 가능성도 상존하고 있다. 때문에 조선 ·해운·항만물류 산업의 균형 발전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인식해야 한다. 또한  자산조달에만 초점을 맞춘 금융정책 관점에서 해양산업을 보는 것에서 탈피해야 한다. 아직은 보조적인 역할에 머무르고 있지만 디지털화가 해양산업에 미칠 영향도 주시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에버기븐호 사건을 계기로 한국해운이 간과한, 항상 주어진(ever given) 과제에 대해 논의하고 사회적으로 환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단순히 커다란 컨테이너선이 모래톱에 빠져 일주일간 배가 멈춰있던 코미디 같은 일로만 에버기븐호 사건을 소비하기에는 조선·해운·항만물류 등 해양산업을 둘러싼 세계 각국의 경쟁이 너무나 치열하다. 한국해양산업의 도태는 결국 한국의 국가 경쟁력 후퇴와 직결한다는 것을 한국 사회가 잊으면 안된다.


이준혁 필자

바다를 보며 자랐다. 한국해양대학교에서 해운경영학부를 전공했다. 해군에서 군 생활을 했으며 군 복무 당시 수에즈 운하를 다녀왔다. 해운보국을 꿈꾸며 해운업계에서 종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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