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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형 칼럼] 윤석열 전 총장, 송시열을 반면교사 하라

by | 2021년 3월 24일 | 정치

윤석열 전 검찰총장.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다시 한 번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차기 대선을 1년 앞둔 상황에서 윤 전 총장이 대권 잠룡으로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윤 전 총장은 기존 정치인들을 제치고 대선 후보 지지율 1위에 올랐다.
이도형 필자는 국회와 검찰 등을 거쳐 현재 청와대를 출입하고 있는 현직 언론인이다. 이 필자는 진영에 따라 평가가 극과 극으로 달라진 윤 전 총장의 모습에서 조선 중기 논쟁적 인물인 우암 송시열과 겹치는 지점을 찾아낸다. 목숨을 내놓고 상소를 올리던 송시열은 ‘정직의 실천’을 신념으로 삼았지만 그로 인한 자기 모순도 있었다.
이 필자는 윤 전 총장이 정치일선에 본격적으로 나서기로 했다면 송시열을 반면교사 삼으라고 조언한다. 반평생 피의자와 피해자, 유죄와 무죄로만 세상을 봤던 윤 전 총장이 빠지기 쉬운 오류가 무엇인지 송시열을 통해 가늠할 수 있어서다. [편집자]

#윤석열, 정치 또는 정의로운 검사?
  정파 따라 호불호 극명히 갈려
#우암 송시열도 진영 간 평가 극과 극
  조선사에서 논쟁적 인물로 꼽혀
#평생 ‘정직’ 강조하며 왕과도 맞서
  인식과 경험에 갇힌 한계 인정치 않아
#수사와 기소만 했던 윤석열
  다름을 인정하는 정치세계 구축해야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2013년 10월 22일 서울중앙지검 국정감사장

(조국 수사와 관련해) “조직에 불리한 선택을 했다는 후회도 든다”-2020년 10월 22일 대검찰청 국정감사장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2021년 3월 4일 검찰총장 사의 표명 자리

현 시점의 대한민국에서 가장 논란이 거센 사람은 누구인가. 많은 이들을 떠올릴 수 있지만 맨 윗줄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있다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검찰총장이었던 그는 지금 여권이 아닌 야권의 유력 대선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실제로 그는 1년 남은 차기 대선의 후보군 정상에 올랐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지난 19∼20일 양일간 전국 18세 이상 10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22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윤 전 총장은 39.1%로 전체 1위를 기록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정치 검사” vs. “정의 검사” 윤석열

그에 대한 시선은 극과 극으로 나뉜다. 윤 전 총장이 정치 참여 선언을 공식적으로 하지 않았는데도 그렇다. 현 정권의 적극지지층은 그를 ‘정치검사’로 깎아내린다. ‘선택적 정의’로 검찰 조직 수호만을 위해 수사를 했다고 몰아붙인다. 반대편에서는 그를 ‘강골검사’라고 칭한다. 현 정권의 위선적 행보를 공개한 대가로 박해 당하는 ‘정의로운 검사’라고 치켜세운다.

윤 전 총장을 바라보는 극단적인 시각 중 무엇이 그의 본질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의 말과 행동 속에서 유추할 뿐이다. 그의 언행에서 드러나는 특징은 ‘분명하다’는 점이다. 윤 전 총장은 어느 한 사안에 대해 돌려 말하는 법이 극히 드물다. 윤 전 총장이 가지는 강점이다.

윤 전 총장은 자신의 행보에서 변곡점마다 명확하게 말해왔다. 지난해 대검찰청 국정감사장에서 정계 진출에 대한 질문에 “사회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지 그런 방법은 퇴임 후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고 말한 정도가 ‘에둘러 말한’ 몇 안 되는 사례다. 본인은 ‘정무감각이 없다’고 자신을 평가했지만, 이런 발언이 오히려 여의도 정치권으로부터  “정치적 감각이 뚜렷하다”는 평을 받는다.

윤 전 총장에 대한 논란과 비슷한 상황을 역사적 사례에서 꼽는다면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우암 송시열(1607~1689)을 둘러싼 논쟁을 들 수 있다. 두 사람이 같은 처지에 놓여있거나, 같은 유사한 일을 겪었다는 뜻이 아니다. 한 인물을 놓고 진영에 따라 벌이는 ‘논쟁적’이라는 이미지가 그렇다는 뜻이다.

거제 반곡서원 중 우암사의 송시열 초상. (출처=한국학중앙연구원)

우암 송시열도 진영 간 평가 ‘극과 극’

송시열은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서 진영에 따라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린 인물로 자주 꼽힌다. 국가는 그를 ‘성현’으로 기렸고, 사후 그의 글을 모아 ‘송자대전’이라는 이름의 문집도 편찬했다. 하지만 그와 대립한 다른 당파의 가문에서는 개 이름을 ‘시열이’라고 붙일 정도로 그를 증오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송시열이라는 이름은 2797번(고종·순종실록 제외) 언급된다. 그만큼 많은 이가 그를 입에 올렸다. 그만큼 논쟁적이었다. 생전의 송시열은 많은 적과 대립했고, 자신의 생각을 쉽게 굽히지 않았다. 죽어서는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들의 증오를 샀다.

‘아니다 싶으면 아닌’ 송시열의 태도를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 있다. 1688년, 27세의 숙종은 희빈 장씨로부터 아들을 얻는다. 훗날의 경종이다. 평균수명이 낮았던 당시, 서른을 앞두고 아들을 얻은 숙종의 기쁨은 컸다. 숙종은 서둘러 아들을 원자로 책봉하려 했다. 임금의 맏아들을 뜻하는 원자로의 지정은 세자에서 왕으로 이어지는 승계과정의 첫발을 뜻한다.

서인 입장에서는 남인의 지지를 받는 희빈 장씨의 아들이 세자가 된다는 걸 가만히 지켜보기란 쉽지 않았다. 장희빈의 아들이 세자가 된다는 건 인조반정 이후 60여 년 동안 굳세게 지켜온 권력이 흔들린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은 강하게 반대했지만 불같은 성미의 숙종을 말리기란 힘들었다. 석 달이 지난 다음 해 1월, 숙종은 종묘·사직에 희빈 장씨로부터 얻은 아들을 원자로 정했다고 고한다. 오늘날로 비유하자면, 국회 본회의에서 법률을 통과시킨 뒤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 공식으로 법률을 공포했다는 의미다.

2주 뒤 송시열은 상소문을 올렸다. 원자가 고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올린 상소문이었다. 송시열은 이 상소에서 여덟 살에 태자로 책봉된 송나라 철종의 사례를 거론했다. 원자를 정한 것에 대한 명백한 비판이었다.

송시열의 상소가 숙종에게 전달된 건 오후 6시 즈음이었는데 숙종은 곧바로 승지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한다. “일이 정하기 전에 말하는 것은 상관이 없다. 하지만 일을 정하고 난 뒤에도 말하는 건 의도가 있다”. 실록은 숙종이 상당히 화를 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해가 넘어간 직후, 숙종은 곧바로 영의정을 파직하고 승지들을 전원 교체했다. 숙종의 일생에서 두 번째로 이뤄진 환국인 기사환국의 시작이었다. 송시열이 왕의 지시로 목숨을 내려놓기까지는 채 반년도 걸리지 않았다.

죽어도 아닌 것은 아니었던 송시열

송시열은 상소를 올리면서 자신의 운명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까? 그러지 않았으리라고 본다. 숙종의 성격이 불같다는 건 거의 대다수의 신하들이 알았다. 본인도 “나의 화증(火症)이 뿌리내린 지 이미 오래다(숙종 30년)”라고 말할 정도였다. 불같은 성격의 숙종이 상소문을 읽자마자 ‘왕인 나를 능멸했다’며 즉각 반응할 것이라는 건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숙종은 상소문이 올라온 다음날에도 분이 안 풀린 듯 “송시열의 상소는 음흉하다”며 노골적으로 비판한다.

숙종의 원자 정호에는 서인 위주의 조정을 개편하겠다는 왕 나름의 정치적 의도도 있었다. 세 명의 왕을 거치면서 정치적 파고를 숱하게 넘어온 송시열이 이를 계산하지 못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숙종의 개인적 성정과 정치적 의도를 몰랐을 리는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그의 상소문을 보면 왕의 행동에도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말해야 한다는 기질이 느껴진다. 그 판단에 대한 자신감도 더불어 말이다.

송시열이 가진 자신감의 근원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는 서인의 핵심인사이자 이론가였다. 그의 스승이 김집(1574~1656)이었는데 김집의 아버지인 김장생(1548~1631)은 조선 예학의 대가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조선 사대부들의 정신세계를 차지한 핵심논리가 예학이다. 이 예학에서 송시열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컸다.

서인과 남인이 인조반정 후 처음으로 공개 대립한 예송논쟁(기해예송)에서 송시열은 남인 허목(1595~1682)이 자신의 뜻대로 진행 중이던 ‘1년상’을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리자 조목조목 다시 반박하는 상소문을 올린다. 이는 허목의 논리에 대해 대신들 의견을 들으라는 현종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다른 대신들은 사실상 별다른 의견을 내지 않았다. 송시열 혼자 허목과 토론을 벌였던 셈이다. 정치적 풍파가 벌어지긴 했지만, 결국 1차 예송논쟁은 송시열의 의견대로 1년상으로 결론 내려진다.

인식과 경험에 갇힌 신념의 한계 

송시열의 주장은 항상 옳았을까. 모든 인간은 한계가 존재하며 자신이 알고 있는 인식과 경험에서 쉽게 벗어나기 힘들다. 이경석(1595~1671)과 벌인 수이강 사건에서 송시열의 한계를 알 수 있다. 이경석은 인조, 효종, 현종을 거치면서 우의정과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최고위급 관리였다. 그는 원만한 대인관계로 유명했다. 훗날 기록에서 이경석은 “벼슬한 지 50년 동안 한 차례도 다른 사람과 싸운 적이 없다”라고 평가받았다. 청나라 사신들이 효종의 북벌 계획을 트집 삼아 조선에 왔을 때 “모든 책임은 영의정인 나에게 있다”고 말한 사람이 바로 그다.

그런 이경석이 한 일 중 하나가 삼전도비문 제작이다. 인조가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한 삼전도의 굴복을 기념하라며 청나라가 요구한 비문이다. 인조의 간곡한 요청에 따른 작성이었다. 이경석은 후에 “글을 배운 것이 한스럽다”고 한탄했다.

현종 시절, 이경석이 국가 원로로 칭송받을 때 송시열은 그에게 ‘수이강’이라는 찬사를 남기는데 “오래 살고 건강했다”는 의미였다. 이 수이강의 뜻이 찬사가 아니라 비꼼이라는 것이 이후 이경석과 송시열이 다른 사안으로 논쟁을 벌였을 때 드러난다. 송나라 사람 손적이 금나라에 끌려가서 온갖 비위를 맞추는 항복문을 지었다. 나중에 송나라 사람들이 이를 들어 “오래 살고 건강한 사람”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송시열은 이 고사를 인용해 이경석을 깎아내린 셈이다. 누가 보더라도 치졸한 행위다. 송시열은 자신의 이 발언을 물리거나 이경석에 대한 사과를 하지 않았다. 그의 제자들은 이런 송시열의 행위를 비판한 조정 중신을 ‘사문난적’이라고 비판해 실각시킨다.

세간의 인식대로 송시열을 완고한 보수주의자, 교조주의자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개혁적인 성향도 엿보인다. 송시열은 조선왕조 최고의 세정개혁인 대동법을 지지했다. 지방 대지주들이 다수 반대했던 것과 비교하면 의외의 행보다. 송시열은 많은 문제점으로 오늘날로 따지자면 ‘적폐’나 마찬가지인 왕실 기관 내수사를 혁파해야 한다고도 했다. 당시의 유학자들과 다른 여성관도 보였다. 집에 들어올 때마다 부인과 항상 맞절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며 과부의 재혼을 허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얼들에게도 관직 진출의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도 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의견과 대척되는 사람들에게는 편협하게 행동했다.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도망친 윤선거(1610~1669)와 친하게 지냈는데, 윤선거가 자신과 다른 생각을 고치지 않고, 이를 숨겼다고 생각해 그의 제문을 성의 없이 적었다. 윤선거의 아들 윤증이 고쳐달라고 여러 번 간청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송시열은 아울러 자신의 정계복귀를 도와준 김석주(1634~1684)가 ‘공작정치’를 하다 젊은 서인들의 비판에 직면하자 감싸는 듯 한 발언을 하기도 한다. 반면 윤증은 숙종의 외척인 김석주의 배척을 주장했다. 이 사례들이 모든 원인으로 작용한 건 아니지만 결국 송시열과 윤증은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진다.

송시열에 대한 진영 간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라진 건 완고한 교조주의자여서가 아니다. 자신의 생각이 정당하다고 굳게 믿었던 것에 본질적인 원인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송시열은 정치인이라기보다 학자에 가까웠다. 학자가 곧 정치인이었던 조선왕조 정치권을 생각해보면 크게 틀린 건 아니지만 ‘아닌 건 아니어야 한다’는 정도가 송시열에게는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렇기에 송시열은 자신이 옳다고 믿은 것에 대해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정직의 실천’을 일생의 지표로 삼았고 이를 평생 강조하는 삶을 살았지만, 그 정직에는 자신의 경험, 인식이 상당히 반영됐다. 송시열은 평생 반청(反靑)의 기치를 들었는데, 이는 그의 큰형이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사망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 그의 눈에 이경석과 윤선거가 좋게 보일 리가 없다. 그가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믿은 이유가 이 때문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사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치인 윤석열’의 세상은 무엇인가 

윤 전 총장과 송시열간 유사성을 통해 역사는 반복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 공화국의 공직자였던 윤 전 총장과 왕조시대의 신하였던 송시열의 언행을 같은 방식에 놓고 비유할 수 없다. 두 사람의 인생은 다를 수밖에 없으며 실제로도 다르다. 송시열의 인생에서 윤 전 총장이 참고해야 할 대목을 언급하고 싶을 뿐이다.

송시열은 자신의 경험과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년 넘게 ‘선과 악’을 쾌도난마처럼 규정해온 윤 전 총장은 어떨까. 윤 전 총장은 검찰에 대한 신뢰를 여러 차례 보여왔다. 그는 자신이 물러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여권 일각의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추진을 비판했다.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고도 했다. 그 안에는 권력형 비리 수사와 기소를 동일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소신이 보인다. 언론 인터뷰에서도 여러 차례 강조했던 대목이다. 정작 검찰 내부에 대한 비판은 잘 보이지 않는다.

라임사태 피의자 김봉현의 주장으로 시작된 검사 술 접대 의혹 사건수사에서 검찰은 검사들이 술접대를 받은 것 자체는 수사 결과 사실이라고 했다. 검찰은 이들이 받은 접대가 1인당 금액 100만원을 넘지 않는다며 기소하지 않았다. 윤 전 총장은 앞서 국감장에서 “조사 결과를 지켜본 뒤에 적절한 입장 표명을 하겠다”고 했지만, 검찰총장 사퇴 전까지 이와 관련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윤 전 총장이 본격적으로 정치인으로 변신한다면, 국민적인 기대치가 높은 만큼 그에게 쏟아지는 질문은 많을 것이다. 그중 가장 먼저 할 대답은 그가 바라보는 세상의 기준이다. 즉 ‘윤석열의 세상’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정치는 자신의 세계관을 확고히 한 뒤 ‘나와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일에서 시작한다. 윤 전 총장은 20년 넘게 검찰에 몸담았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은 본인의 정체성이 됐고 인기의 원동력이다. 그가 속했던 세상은 피해자와 피의자, 혹은 무죄와 유죄로 분명하게 나뉜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세상은 뚜렷하거나 마냥 선명하지 않다. 세상은 중첩적이며 민주주의에서 정치가는 나와 다른 ‘너’를 인정해야 한다. 현 정권을 둘러싼 많은 논란의 시작은 상대의 인정 여부에서 갈렸다는 걸 부정하기 어렵다.

죄를 지은 자. 잘못을 한 자까지 포용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은 언제나 한계가 있다는 걸 인식하지 않으면 상호 설득을 바탕으로 한 민주정치의 본질은 훼손된다. 사회생활 이후 ‘검찰’이라는 눈으로만 자신의 세상을 밝혀왔던 윤 전 총장은 과연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정치인으로의 기대치가 쌓여가는 현 상황에서 윤 전 총장은 송시열의 인생에서 어떤 답을 찾을 것인가.


이도형 필자

세계일보 기자. 국회에서 대부분의 기자 경력을 쌓았다. 현재는 청와대를 출입하고 있다. 역사를 좋아하고 훗날 궁궐 탐방으로 여생을 보내고 싶은 바람이 있다. 때로는 소속 매체와는 무관한 글로 독자들과 이야기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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