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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강연] 인간은 바이러스의 ‘블루 오션’…연결·협동이 근본적 백신

by | 2021년 3월 22일 | 국제, 기획 · 연재

지난 4일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서울 중구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명례방에서 열린 메디치포럼 ‘환경의 역전’에서 강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김용훈 작가)

지난해 발발한 코로나19 팬데믹은 아직 현재 진행중이다. 1년 남짓의 시간동안 인류는 수백만명이 코로나19로 목숨을 잃었다. 코로나19를 통해 우리는 환경과 인간은 서로 뗄 수 없는 사이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코로나19의 발병 원인이 결국 자연을 파괴한 데 따른 일종의 ‘인과응보’이기 때문이다.
국내 대표적인 생태학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지난 3월 4일 서울 중구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명례방에서 열린 메디치포럼 ‘환경의 역전’에 연사로 참여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 삶의 문법이 바뀌었다’는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최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코로나19’의 원인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인류의 연대의식, 나아가 ‘공생'(共生)을 추구하는 ‘호모 심비우스’로 거듭나자고 호소했다.
<피렌체의 식탁>은 이날 최 교수의 열띤 강연을 요약·정리해 독자들에게 전한다. 최 교수의 강연을 비롯해 이날 연사로 나선 임춘택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장, 나석권 SK사회적가치연구원장, 홍민정 서유채 대표, 가수인 요조의 강연 원고는 4월초 전자책으로 발간하는 ‘환경의 역전:공존을 위한 시도’에 전문이 실린다. 전자책 수익금은 환경 단체에 기부할 예정이다.[편집자]

#코로나19 비극, 환경 파괴서 비롯
  바이러스 변이·전염 계속될 것
#팬데믹, 연결의 중요성을 역설
  모두가 안전해야 나도 안전하다
#인간·개미·벌의 성공 비결은 협동
자기 희생과 불공정 조율한 덕분

#결과의 평등이 아닌 진정한 ‘형평’
  다양성과 연대로 미래 설계해야

‘만물의 영장’이라며 거들먹거리던 인간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에게 처참하게 당하고 있다. 2019년 말에 시작된 코로나19 대유행(pandemic)이 불과 1년 3개월 남짓 지난 시점에 거의 1억 2000만 명이 감염되어 300만 명 가까이 목숨을 잃었다.

세계보건기구(WHO)를 중심으로 원인 규명을 위한 조사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지만 지금까지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구성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중국 남부 후베이성 주민들 중 누군가가 천산갑(pangolin)의 비늘을 뽑는 일을 하다가, 혹은 야생동물을 포획하다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 우한시장에 나타나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그렇게 감염된 사람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옮겨줘 이 겉은 사태가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생물다양성의 불균형, 코로나19를 초래

우한농업대 연구진이 비교 분석한 야생동물 중 천산갑(pangolin)에서 추출한 바이러스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염기 서열이 가장 흡사하게 나왔지만 천산갑 시료가 우한시장에서 온 것이 아니라서 코로나19의 중간 매개체는 다른 야생동물이거나 천산갑을 포함한 여러 동물로 밝혀질 여지가 남아 있다. 그러나 만일 끝내 천산갑으로 확정된다면 시나리오는 매우 씁쓸한 뒷맛을 남기게 된다. 천산갑은 ‘멸종 위기 야생동식물 국제 교역에 관한 협약(CITES: Convention on International Trade in Endangered Species of Wild Fauna and Flora)’이 선정한 가장 심각한 멸종 위기 동물 다섯(코끼리, 코뿔소, 호랑이, 상어, 천산갑) 중에서 지금 현재 가장 많이 포확돼 밀매되는 동물이다.

지난 10년 동안 중국으로만 적어도 100만 마리가 밀반입된 걸로 알려져 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천산갑 비늘을 효험 있는 약재로 알고 있는 중국인들의 믿음과 달리 케라틴(keratin)이 기본 성분이다. 바로 우리가 가끔 깎아 버리는 손톱과 발톱을 구성하고 있는 단백질이다. 결국 약효도 없는 동물을 잡아 비늘을 뽑는 과정에서 흘러나온 체액을 만진 손으로 음식물을 집어 먹었거나 코를 후비는 바람에 감염되었을 것이다. 만일 이 시나리오가 어느 정도 현실로 드러난다면 이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코로나19의 비극은 그동안 우리 인류가 저지른 기후 위기와 환경 파괴로 인한 생물다양성의 불균형에 기인한다.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지구에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25만 년 전이다. 우리는 그중 24만 년 동안에는 참으로 별 볼 일 없는 한 종의 영장류로 살았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사자나 하이에나를 피해 빌빌거리던 하찮은 동물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난 1만여 년간 농업 혁명과 산업 혁명을 일으키며 폭발적으로 성장한 동물이다.

자연계에서 일찍이 이런 반전은 없었다. 우리가 1% 미만이었다가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를 1~5%로 줄이고 지구 표면을 압도적으로 뒤덮은 것이다. 그러니 나날이 줄어드는 서식 공간에서 불안해하는 야생동물의 몸을 떠나 이주를 단행하는 바이러스와 박테리아가 안착할 곳은 확률적으로 거의 백발백중 인간 아니면 인간이 기르는 가축일 수밖에 없다. 조류 독감(AI)은 어느덧 연례행사처럼 일어나고 있고 지금도 우리 산야에서는 아프리카 돼지 열병(ASF) 방역이라는 명분으로 멧돼지를 사살하고 있다. 나는 이 현상을 가리켜 일찌감치 ‘생물다양성의 불균형으로 인한 블루 오션(blue ocean)의 출현’이라고 묘사했다. 유럽경영대학원(INSEAD)의 김위찬 교수는 2005년 아직 경쟁자가 나타나지 않은, 그래서 아주 매력적인 새로운 시장을 ‘블루 오션’이라고 정의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바이러스 입장에서 보면 완벽한 ‘블루 오션’이다. 그리고 이 시장의 위력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사회성 동물인 개미와 인간. (사진=최재천 제공)

‘지구의 정복자’들의 공통 비결은?

하버드대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은 그의 저서 ‘지구의 정복자(The Social Conquest of the Earth)’에서 45억 년 역사를 거치며 결국 지구는 사회성 동물이 지배하게 되었다고 관찰했다. 기계문명사회의 정복자는 당연히 그 세계를 창조해낸 인간이다. 그러나 인간 세계를 벗어나 자연계로 들어서면 그곳의 정복자는 벌, 개미, 흰개미다. 그들도 역시 인간 못지않게 고도록 조직화된 사회를 구성하고 산다.

사회성 동물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정보 공유와 협동이다. 인간과 사회성 곤충 수준은 아니더라도 모여 사는 동물은 먹이 섭취와 방어에 관련된 정보를 공유한다. 지구 생태계에서 가장 성공한 동물들인 벌, 개미, 흰개미, 그리고 인간은 모두 한결같이 고도의 협동을 이뤄내는 동물들이다. 협동이 성공의 비결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협동이 이처럼 더할 수 없이 탁월한 비결이라면 왜 다른 동물들은 협동하지 않는 것일까? 왜 인간을 비롯한 몇몇 동물들을 제외하곤 다른 많은 동물들은 협동할 줄 모르는가? 협동을 하려면 너무나 자주 희생이 따르기 때문이다. 무리의 구성원들이 고르게 동일한 수준으로 희생할 수 있다면 어느 순간 모두 함께 협동에 착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희생의 평준화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민주제란 결국 희생을 골고루 하기 위해 끊임없이 조율하는 제도라 할 수 있다.

희생이라는 동전의 이면은 불공정이다. 막강한 사회성의 이면에는 엄청난 비용이 도사리고 있다. 언뜻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는 듯 보이는 사회성 곤충 사회와 달리 우리 인간 사회에서는 공정의 문제가 끊임없이 부상한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 앞서가는 자와 뒤처지는 자 사이에 갈등은 종종 사회의 존립을 위협한다.

인간은 사실 본래부터 희생을 잘할 수 있는 동물은 아닐 듯싶다. 인간은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희생하는 동물이다. 다분히 계산적으로 최소한의 협동을 이끌어내며 겨우 겨우 민주사회를 유지해가고 있다. 개미, 흰개미, 벌 등 사회성 곤충은 이 점에서 인간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일개미나 일벌 한 마리는 때로 우리 인간의 손에 무참히 희생되는 보잘것없는 미물이지만 그 미물들이 모이면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그들 사회에는 남의 눈치 보지 않고 기꺼이 내 한 몸 희생하는 성원들이 수두룩하다. 자기희생에 기반한 고도의 협동이 그들을 자연생태계의 지배자로 만들었다. 모기, 바퀴벌레, 쥐, 뱀 등이 인간이나 개미처럼 협동할 줄 안다고 상상해보라. 생각만 해도 정말 끔찍한 세상이 될 것이다. 지구를 공유하고 사는 저 많은 동물들이 아직 협동의 비결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자발적 연대와 성숙한 민주주의의 확산

사회성의 성공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또 하나의 결정적 비용은 다름 아닌 전염병이다.

1347~1351년 적어도 2억 명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black death)은 당시 유럽 인구의 30~50%를 말살했다. 1520년에 발생한 천연두로 인해 미국 인디언의 90%를 사라졌으며 세계적으로는 무려 5천600만 명이 사망했다. 1812년 러시아를 침공하려던 나폴레옹의 군대가 발진티푸스(typhus)로 인해 병사 8만 명을 잃고 전쟁다운 전쟁을 해보지도 못한 채 퇴각한 일화는 유명하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밀집해 사는 생물에게 전염병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짐작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일반인들은 한결같이 어서 빨리 이 재앙이 종식되어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기를 고대하지만, 학자들과 사회 지도자들은 거의 모두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열릴 것이라 예언한다. 나는 좀 생각이 다르다.

몇 년 전부터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화두로 등장한 ‘제4차 산업 혁명’을 가로지르는 키워드는 단연 연결(connectedness)이었다. 연결은 코로나 19 상황에서도 여전히 중심적인 키워드로 등장했다. 사회성 동물로서 우리는 지나치게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바람에 바이러스의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연결은 어쩌면 우리의 운명이다. 이 세상 어디에도 바이러스로부터 완벽하게 안전한 곳은 없다. 우리는 이번에 더할 수 없이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이전까지는 이른바 ‘가진 자’는 웬만한 재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우리는 깨달았다. 우리 사회의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모두 다 바이러스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는 한 우리 사회는 결코 정상으로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동안 “빨리 가려면 혼자 가도 되지만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진정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우리는 이 속담이 진의를 똑똑히 알게 되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 떠오른 또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는 연대(solidarity)이다. 세계 여러 나라의 사회 여러 계층에서 동시다발로 채택한 새로운 삶의 목표다. 우리 인간은 전혀 모르는 사람과도 연대할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그동안 조금은 강압적이고 선동적인 연대에서 공감을 기반으로 한 자발적 연대로 옮겨가고 있는 걸 관찰할 수 있다. 전례 없이 빨리 개발된 백신을 두고 국가 간에 적지 않은 경쟁과 암투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적어도 한 국가 안에서는 예전과 달리 누가 먼저 맞는 게 사회 전체에 유리한가를 두고 논의가 진행된다는 사실 자체가 나는 성숙한 민주주의의 발로라고 생각한다.

‘형평의 늪’서 벗어나 사회적 가치 추구해야

경제학은 그동안 도덕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학문이었다. 종종 현대 경제학이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1776)이 아니라 그보다 17년 먼저 나온 그의 ‘도덕감정론’(1759)에서 출발했더라면 자본주의가 지금처럼 ‘야수 자본주의’로 전락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최근 경제학이 당당하게 도덕을 아우르는 모습에 크게 고무되고 있다. 2019년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온 새뮤얼 보울스(Samuel Bowles) 교수의 ‘도덕 경제학(The Moral Economy)’은 다양성과 연대가 우리 사회에 진정한 의미의 형평(equability)을 구축해줄 것이라고 설명한다. 어쩌다 형평은 우리 사회에서 금기어가 돼 버렸다. 어설픈 평준화 시도 때문에 과정은 정당하지 않은 채 결과를 평등하게 맞추는 정책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아쉽게도 기본 소득과 기본 자산에 관한 논의도 이 ‘형평의 늪’에 빠져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 우리가 활발하게 논의하기 시작한 사회적 가치(social value)는 바로 공감에 기반한 형평을 추구하는 데 필수적 개념이다. 행동경제학 연구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사회적 가치의 구현에 필요한 구조적 기반을 갖추고 있다.

네덜란드의 젊은 역사학자 뤼트허르 브레흐만(Rutger Bregman)은 스스로 거침없이 “이 책은 급진적인 아이디어를 담고 있다”라고 말하며 내놓은 그의 저서 ‘휴먼카인드(Humankind: A Hopeful History)’에서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이던 성선설-성악설 논쟁을 단칼에 끝내며 인류 역사에서 경쟁보다 협력과 연대가 더 중요했다고 단언한다. 20세기를 거치며 거의 모든 학문 분야가 앞다퉈 끌어안은 홉스를 버리고 ‘철 지난’ 루소를 지지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 발짝 더 나아가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하며 보다 나은 미래를 설계해줄 유일한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우리 대부분은 학창 시절 맹자와 순자가 주창한 학설이 완벽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걸로 배웠다. 그러나 맹자와 순자와 비슷한 시대에 성무선악설(性無善惡說)을 주장한 고자(告子)도 있었다. 그는 “인간의 본성이 선과 악으로 나뉘지 않은 것은 마치 물이 동서로 나뉘지 않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람의 품성은 교육하고 수양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에서 자연계에도 경쟁 일변도가 아니라 협력이 중요하다는 엄연한 사실을 알렸다. 코로나19가 끝나면 예전과는 무척 다른 사회가 열릴 텐데 그 사회의 모습은 상당 부분 우리의 의지와 노력에 달려 있을 것이다. 나는 코로나 이후의 세상(post-COVID-19 world)이 코로나 이전의 세상보다 훨씬 따뜻한 세상이 되기를 기대한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생명다양성재단 대표

평생 자연을 관찰해온 생태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 서울대학교에서 동물학을 전공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에서 생태학 석사학위를, 하버드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0여 년간 중남미 열대를 누비며 동물의 생태를 탐구한 뒤, 국내로 돌아와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생명에 대한 지식과 사랑을 널리 나누고 실천해왔다.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한국생태학회장, 국립생태원 초대원장 등을 지냈다. 대표 저서로는 <생태적 전환, 슬기로운 지구 생활을 위하여>, <개미제국의 발견>,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등이 있으며,  2019년 총괄편집장으로서 세계 동물행동학자 500여 명을 이끌고 <동물행동학 백과사전>을 편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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