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군의 첫 트랜스젠더 고위직 직업 군인 크리스틴 후크. 1980년생인 그는 39세에 커밍아웃을 한 뒤에도 군의 전폭적 지지를 받으며 계속 복무하고 있다. (출처=스위스 군)

크리스티안 후크(41)가 처음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다섯 살 즈음이었다. 어른들이 ‘남자아이답다’, ‘여자 아이답다’고 말하는 내용에 자신이 들어맞지 않는 것 같았다. 십 대 초반 사춘기가 찾아오며 그 느낌은 더 강해졌다. “내 몸과 나의 성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남자의 몸에 태어난 여자였다. 하지만 당시엔 받아들이기 싫었다.” 크리스티안은 스포츠에 더 몰두하며 혼란스러운 생각을 몰아내려고 했다. 일주일에 5일을 노 젓기, 승마를 하며 보냈다. 변하는 건 없었다. 가족에게 상의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식사 자리에서 성차별적 발언을 농담으로 하는 사람이었다.

파파(papa)에서 나나(nana)로

어렸을 때부터 전쟁에 관심이 많고 탱크라면 사족을 못 썼던 그는 취리히 대학에서 전쟁사를 전공했다. 25세 때 만나 첫눈에 반한 타냐와 2008년에 결혼했고, 둘 사이에서 딸 줄리아가 태어났다.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스위스 군 총참모부에서 직업 군인으로서의 경력을 쌓아갔다. 남들 보기엔 평범한 삶이었지만 크리스티안의 성 정체성 고민은 사라진 적이 없었다.

“더 이상 숨기면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았다. 결과가 뭐든 말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2018년, 아내 타냐에게 편지를 썼다. 타냐는 처음에 ‘일시적인 증상일 것’이라며 부인했지만, 결국 받아들였다. 타냐는 “예전엔 내게 남편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내가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사람인 타냐에게 인정받음으로써, 남성 크리스티안(Christian)은 여성 크리스틴(Christine)이 되었다.

당시 열 살이던 딸 줄리아와 얘기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줄리아는 “아직 내 아빠 맞아?”라고 물었고, 크리스틴은 “우리 사이에 변하는 건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다 괜찮아.” 줄리아는 혼란을 주는 엄마(mama), 아빠(papa)라는 단어 대신 새 단어를 발명했다. 나나(nana), 그게 딸이 크리스틴을 부르는 호칭이다. 아내와 딸의 지지를 얻은 그녀는 부모와 형제에게도 커밍아웃을 했다.

스위스 군, 트랜스젠더를 받아들이다

남은 건 직장인 군대였다. 전통적인 위계질서가 지배하는 남초 집단이라 고민이 컸다. 이게 합법적이긴 한지, 혹시 직업을 잃게 되진 않을지, 사람들이 받아들일지, 일상이 변할지 걱정스러웠다. 그녀 이전에 스위스 군에 트랜스젠더가 없었던 건 아니다. 스위스 최초의 트랜스젠더 군인은 클라우디아 마이어로, 2014년에 코소보 평화유지군으로 파견돼 취사병으로 근무했다. 하지만 크리스틴의 경우는 상징적 의미가 더 컸다. 총참모부에서 고위 장교로 일하고 있어 지위가 훨씬 높고, 클라우디아와 달리 복무 중간에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별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크리스틴은 오래 생각한 끝에 700여 명의 대원 앞으로 이메일을 썼다. “성별을 바꾸기로 했다. 앞으로 크리스티안이 아니라 크리스틴으로 불러달라.”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이메일을 받은 700여 명 군인 대부분이 “축하한다”, “용감한 결정이다”라며 긍정적 답변을 보냈다. 그의 직속상관도 “결정을 지지한다. 우리가 어떤 걸 도울 수 있을지 알려달라”고 했다.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지만 무시할 만한 수준이었다. 크리스틴은 “군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성별이 아니다. 완수해야 할 임무와 그 성과다”라며, 바뀐 성별이 자신의 커리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커밍아웃 전과 같은 자리에서 계속 근무하며 성전환 수술을 준비하고 있다.

크리스틴의 커밍아웃이 받아들여진 간접적 이유로,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는 스위스 군의 현 상황도 빼놓을 수 없다. 스위스에선 19세 이상의 건강한 남성 국민에게 병역의 의무가 있고, 여성은 자원입대할 수 있다. 문제는 병력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2030년이 되면 지금보다 군인이 약 3만 명 줄어들 전망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여성과 트랜스젠더에게 군대의 문을 더 여는 것이다. 스위스 군은 현재 0.8%인 여성 군인의 비율을 2030년까지 10%대로 늘릴 계획이다.

성전환 수술을 한 뒤 강제전역한 변희수 전 하사가 숨진 채 발견된 가운데 지난 4일 국회 정의당 대표실 앞에 변 전 하사를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차별 금지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스위스의 트랜스젠더

위 내용은 크리스틴이 스위스 매체와 했던 여러 인터뷰와 스위스 정부 홈페이지 내용을 참고해 재구성한 것이다. 놀라웠던 건 스위스 정부가 홈페이지에서 크리스틴의 사례를 긍정적으로 소개하며 스위스 군이 다양성을 존중한다고 강조하는 부분이었다. 얼마 전 사망한 한국의 트랜스젠더 군인 변희수(당시 22세) 하사의 사례와 대비됐다. 육군 부사관으로 복무하던 변 하사는 성전환 수술을 받은 뒤 강제 전역을 당했다. 기갑 부대에서 근무하다 커밍아웃을 한 공통점이 있는 두 군인은 전혀 다른 결말을 맞았다.

크리스틴의 사례만 보면 스위스에서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성소수자의 권리가 잘 보장되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스위스에서 성소수자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 개정안이 국민투표에서 통과된 건 2020년 2월의 일이다. 선진국들이 모인 서유럽에서 가장 늦은 축에 속하는 변화인데다, 내용도 다른 나라의 차별금지법과 비교해 허점이 많다.

당시 국민투표 안건의 정확한 명칭은 ‘성적 지향에 근거한 차별 금지’다. ‘성적 지향’에 따른 성소수자는 동성애자와 양성애자다. ‘성 정체성’에 따른 성소수자인 트랜스젠더나 인터섹스(intersex, 간성)는 차별 금지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흔히 LGBTIQ+(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인터섹스, 퀴어 등)로 일컫는 다양한 성소수자 중 ‘LGB’만 보호한다는 것이다. 트랜스젠더나 인터섹스라는 이유로 공공장소에서 혐오 발언을 듣거나 폭행을 당해도 처벌할 규정이 없다. 이 때문에 성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사람들 중 일부가 당시 이 법안 개정안에 반대하기도 했다.

애초에 저 법안의 시초는 1995년 발효된 ‘인종차별 금지법’이다. 스위스 형법 제261조에는 이렇게 돼 있다. “인종, 민족, 종교를 이유로 사람이나 집단을 공개적으로 혐오 또는 차별하는 사람은 누구든 최대 3년의 징역형이나 벌금형에 처해진다”. 당시만 해도 사회적 차별의 가장 흔한 원인이 인종, 민족, 종교였기 때문에 이런 법이 만들어졌고 이름도 인종차별 금지법이었다. 그러다가 ‘성적 지향’이라는 차별 근거가 2020년에 추가된 것이다. 아마 앞으로도 느릿느릿, 하나씩 이 법에 추가 내용이 생길 것이다. 현재 명기되지 않은 ‘장애에 의한 차별 금지’, ‘성 정체성에 의한 차별 금지’ 같은 것들이, 매번 반대자들의 저항에 부딪혀가며, 국민투표에 부쳐져서, 운이 좋다면 통과될 것이다, 먼 미래에.

2020년 2월 '성적 지향에 근거한 차별 금지' 법 개정안 국민투표 당시 녹색당의 캠페인. 무지개는 다양성을, 우산은 보호를 뜻한다. 이 안건은 투표자 63.1%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사진=스위스 녹색당)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

이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를 보여준다. 차별을 금지한다면서 그 원인을 하나하나 따로 지목하는 것에는 끝이 없다. 동성애자와 양성애자를 차별하지 말라는 말은, 다르게 하면 트랜스젠더와 인터섹스는 계속 차별해도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게다가 사람의 정체성은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다. 스위스 군인 크리스틴의 경우를 다시 보자. 그녀는 성별을 전환한 트랜스젠더이면서, 여성인 아내를 계속 사랑하는 동성애자이기도 하다.

만약 크리스틴이 아내와 길에서 손을 잡고 가다가 혐오 발언을 듣고 공격을 받는다면, 이유는 그가 트랜스젠더라서일까 아니면 동성애자이기 때문일까. 스위스 법은 동성애자는 보호하고 트랜스젠더는 보호하지 않는데, 크리스틴은 스스로에 대해 경찰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형법이 인간의 위엄을 선택적으로 보호하는 것은 만족스럽지 않다”(스위스 일간지 NZZ, 2020년 차별금지법 개정 당시 사설에서).

물론 아무것도 없는 것보단 나을 수 있다. 위 법안이 통과되기 전까지 스위스엔 성소수자 혐오 범죄와 관련한 통계가 없었다. 범죄가 아니니 국가에서 통계 수치를 모을 필요가 없었던 거다. 의사가 “동성애는 꽃가루 알레르기 같은 증상으로, 내가 치료할 수 있다”고 해도(2018년, 제네바), 정치인이 “게이와 레즈비언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동성애 세금을 도입하자”고 주장해도(2018년, 극우 정당 PNOS), 국가는 이를 혐오 발언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인권 단체가 개별적으로 모은 혐오 범죄 통계가 전부였다. 성적 지향에 근거한 차별금지법이 생겼으니 이제 최소한 동성애자와 양성애자 대상의 범죄 통계는 나올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가

개별적 차별금지법이건 포괄적 차별금지법이건, 법 제정에 반대하는 측의 논거는 스위스나 한국이나 같다. 표현의 자유가 침해된다는 이유다. 표현의 자유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인 건 맞다. 하지만 일부의 주장처럼 차별금지법 때문에 ‘차별이라고 무조건 고발부터 하는 문화’가 퍼진다거나, ‘판사에 의해 다스려지는 국가’가 된다는 것(스위스 극우 정당인 스위스국민당의 주장)은 과장된 우려다.

스위스에서 인종차별 금지법이 발효된 1995년 이후의 상황을 참조할 수 있다. 이 법에 근거해 인종차별로 기소되는 범죄 건수는 연간 40-60건 정도다. 예를 들면, 2012년 인터라켄에서 열린 요들링 축제에서 한 남자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흑인 참가자에게 “더러운 N*****” 등의 멸시적 용어를 반복한 혐의로 벌금형을 받았다. 생갈렌 지방의 한 술집 주인은 “알바니아인, 유고슬라비아인, 흑인은 내 구역에 허락 못한다. 술집 경비원에게 어떻게 막아야 할지 가르친다”고 라디오 인터뷰에서 말했다가 벌금형을 받았다. 자기 집 거실에서 가족에게 “나는 흑인이 싫어”라고 말하는 것 정도로 처벌을 받는 게 아니다.

오히려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스위스가 너무 느슨하게 법을 적용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지적한 사례는 이렇다. 2007년에 바젤에서 시계박람회가 열렸는데, 한 알제리인이 시계 절도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체포 과정에서 경찰관은 이 알제리인을 “외국 돼지”, “추잡한 망명 신청자”라고 불렀다. 알제리인을 경찰관을 고소했지만, 법원은 “특정 인종이나 민족을 가리킨 말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무혐의 처리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우려보다는, 법이 있어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경우를 더 걱정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또 법이 만들어졌을 때 그것을 근거로 무차별 고발을 남발하는 게 아니라 적시 적소에 날카로운 메스처럼 적용하는 시민 의식도 필요하다. 그게 차별 금지와 표현의 자유를 둘 다 지키는 길이다.

개별적 차별금지법보다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합리적이고, 포괄적 차별금지법보다는 사회 구성원의 인식 개선이 더 이상적이다. 크리스틴이 군인으로서의 삶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 트랜스젠더 차별금지법 때문이 아니다. 그녀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어려운 결정을 지지해 준 군대의 상관, 동료, 부하들 덕분이다. 법은 사회를 반영한다. 차별이 자랄 수 없는 사회적 토양을 가꾸고, 안전장치로서의 법을 마련해야 한다.


김진경 필자

한국에서 일간지 기자로 일했다. 미국에서 만난 스페인 출신의 남편과 2011년부터 스위스 취리히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다. 한국 및 스위스 매체에 문화 다양성(cultural diversity)에 대한 글을 쓴다. 여전히 정체성을 고민 중이고, 심리적 이방인의 새로운 시각을 글에 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