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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형 칼럼] 미국은 하버드 교수의 ‘위안부 역사왜곡 폭동’을 어떻게 제압했나

By | 2021년 2월 28일 | 국제, 정책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1479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기자회견에서 소녀상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3·1절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중요한 국경일로 꼽힌다. 대한민국의 헌법 전문 초입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명시한 대목만 봐도 일제식민통치 시절 자주독립을 선포한 3.1절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해방 이후 반세기가 넘게 흘렀지만 여전히 일본과의 관계는 과거사 문제로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다. 최근 불거진 램지어 하버드 대학 로스쿨 교수의 ‘위안부 역사 왜곡’은 일본이 자신들의 식민통치 시절 반인륜적인 행태를 어떤 식으로 합리화하려는 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필자인 김수형 SBS 워싱턴 특파원은 램지어 교수의 위안부 역사 왜곡 문제를 미국 현지에서 밀착 취재하며 진실을 파헤쳤다. 결국 램지어 교수의 주장은 학자로서의 기본도 되지 않았던 허위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오히려 국내 극우세력은 램지어 교수의 주장에 동조하는 행태를 보였다. 민족의 독립을 위해 일제의 총칼 앞에서도 분연히 일어났던 선조들의 저항과 결기로 대한민국은 여기까지 왔다. 102주년 3.1절을 맞아 김수형 특파원의 칼럼이 주는 시사점은 그래서 특별하다.[편집자]

#램지어 교수 위안부 논문 美서 파장
  “학문적 부정행위, 논문 철회하라”
#글로벌 검증단, 2주 밤낮 팩트체크
  계약서·진술 실체 없었다는 것 밝혀
#’매춘 계약’ 포장에 경제학계도 분노
  “강압과 착취 관계 은폐 위해 남용”
#학문적 폭동에는 학문으로 제압
  ‘닥치고 반일’보다 논리로 대응해야

‘태평양 전쟁에서 매춘 계약’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을 담은 존 마크 램지어(John Mark Ramseyer, 67세)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논문은 미국 사회에서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법과 경제학적 관점에서 위안부의 계약 관계를 분석했다는 외피를 입기는 했지만, 위안부 피해자들을 자발적 매춘부로 결론 내린 것은 미국 학계의 기존 입장과 정면 배치되는 것이었다. 일본 극우 세력의 시각을 미국 주류 학계에 진입시키려는 시도로, 일종의 ‘위안부 역사왜곡 폭동 사태’로도 규정할 수 있다. 실행 주체가 미국 최고 대학의 교수라는 점에서 한국 사회의 관심도 집중됐고,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의 후원으로 자리가 생긴 석좌 교수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닥치고 반일’의 감정이 이번 사건을 또 뒤덮는 듯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벌어진 사건인 만큼 한국 사회의 감정 논리가 사건 전개에 크게 개입될 여지없이, 미국 사회가 이번 사태를 어떻게 정리하는지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제공했다.

“계약서도 진술도 실체가 없다”…근원 타격한 하버드 교수들의 반박

하버드 대학에서 동아시아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앤드루 고든, 카터 에커트 교수는 연구 진실성 보고서에 가까운 반박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위안부가 자발적 매춘부가 아니라는 역사적인 공방을 준비하기 보다는 램지어 교수 논문의 근원을 바로 타격하는 영리한 전략을 택했다. 논문의 출처를 하나하나 따지며 사실 관계와 출처를 추적하기 시작했는데, 두 교수는 검증 시작부터 학문의 진실성이라는 우선적인 문제와 직면하게 됐다고 발표했다.

램지어 교수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자발적인 매춘부라고 주장하면서 논문에 계약서의 존재에 대해서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두 교수가 논문을 샅샅이 뒤져보니 그가 위안부와 위안소 운영자 사이 맺었다는 계약서의 실체를 한 개도 확인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논문에 나오는 계약서 문건 가운데 하나는 상하이 위안소에서 일하는 위안부가 아니라 바텐더의 표준 계약서였다고 확인했다. 하버드 역사학과 교수들은 어떻게 실물을 보지도 않고 램지어는 그렇게 극단적으로 강한 어조로 위안부가 계약 매춘부라는 주장을 할 수 있었는지 납득이 안 갔다고 기술했다.

램지어 교수가 실체가 있다고 주장하는 계약서에 대한 3자의 구두, 서면 진술이라도 있어야 하겠지만, 이마저도 전무했다. 미얀마의 한국인 위안부 계약서라고 주장한 것은 전쟁 이전 것이었고, 그나마도 샘플에 불과했다고 두 교수는 적시했다. 딱 한 가지 검증할 수 있는 3자의 진술이 미얀마와 싱가포르에서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였는데, 이것도 일기 자체가 아니라 일기에 대해 언급한 문건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태도는 학술 논문의 진실성에 대한 지독한(egregious) 위반이라고 비난하면서 다른 학자들이 추가로 논문의 오류에 대한 기록을 정리하고 있다는 예고까지 덧붙였다. 두 교수는 학술지가 이 논문에 대한 전문가 조사 결과를 기다려 게재를 철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역사학 교수들과 램지어 교수의 공방을 기대했지만 뜻밖에 본 게임이 열리지도 못하고 램지어 교수 논문은 이렇게 큰 결함이 발견됐다.

두 교수의 반박문은 절제된 언어로 팩트의 약한 고리를 정확히 찌르고 있었고, 그것이 상대를 무엇보다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석장밖에 안 되는 반박문은 한번만 읽어보면 램지어 논문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존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하버드대학 홈페이지에 게재된 직함은 ‘Mitsubishi Professor of Japanese Legal Studies’ 이다

2주 밤낮으로 만든 글로벌 연합군의 ‘램지어 팩트 체크’

일본사를 연구하는 해외 연구자 5명이 내놓은 반박 보고서는 램지어 교수의 위안부 논문의 실체를 더 분명하게 학계에 노출시켰다. 제목부터 <학문적 부정행위로 논문 철회가 필요한 사건>이라고 정했는데, 이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 문건은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스탠리 교수,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암브라스 교수, 영국 케임브리지대 쉐퍼드 연구원, 싱가포르 대학 차타니 교수, 일본 아오야마 가쿠인대 시더 교수 등이 집필했는데, 일본사를 전공한 학계 교수들이 의기투합해 글로벌 검증단을 만들고 자발적으로 보고서를 만들었던 것이다. 차타니 교수는 트위터에 “지난 2주간 말 그대로 밤낮으로 검증 보고서를 만들었으며, 내가 이 일원인 게 자랑스럽다”고 적었다. 국경을 넘나드는 팩트체크 작업이었지만 참여 교수 대부분은 이미 관련 서적을 집필한 경험을 가지고 있어 2주 만에 빈틈없는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 검증 보고서는 4가지 큰 주제 (▲증거가 없다는 걸 시인하지 못한 문제 ▲직접 증거 사용의 문제 ▲간접 증거 사용의 문제 ▲부적절하고 부정확한 인용 실태 문제)를 정하고 구체적인 각 사례와 인용 실태의 적절성을 조목조목 따지며 추적했다. 인용된 문건과 서적을 전부 뒤지며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전공 교수들 아니면 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들이 확인한 故 문옥주 할머니에 대한 왜곡 실태는 이 보고서의 실체가 무엇인지 잘 드러내고 있다.

램지어 교수는 위안부 피해자 문옥주 할머니를 위안소 운영자와 매춘 계약을 맺어 실제 돈도 많이 받고 저축도 상당히 하며 잘 지냈던 사람처럼 논문에 묘사해 놨다. 이 논문의 출처는 (KIH, 2016b)로 표현돼 있다. 하지만 논문 검증단이 이걸 따라가 보니 이건 정식 출판물도 아니고 그냥 국내 인터넷 블로그에 떠 있는 영어 번역문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링크를 따라 들어가 보니 이 블로그는 어느 극우 성향 인사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비하하는 여러 글을 모아놓은 국내 유령 사이트였다. Korea Institute of History(한국 역사 협회)라는 이름이 웹사이트에 떠 있는데 소개 페이지에는 관리자 사진도 없고, 이메일 하나 걸려 있는 게 전부였다. 이 이메일 주소에 블로그가 실제로 운영되는 건지 묻는 이메일을 보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2016년에 39개의 글을 올린 뒤 활동 없이 버려진 ‘흉가 블로그’에 불과했던 것이다.

게시물들은 외부 링크를 많이 걸어놨는데, ‘일베’로 널리 알려진 극우 성향의 일간 베스트 사이트는 물론 디시인사이드 등 인터넷 게시판으로 연결되는 게 상당수였다. 내용은 하나같이 위안부 피해자들의 실체를 부정하는 내용이었다. 하버드 교수가 자신의 논문에 이런 정체불명의 블로그를 근거로 인용하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지만, 그게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램지어 교수는 이 유령 블로그 글마저 입맛대로 편집하는 이른바 ‘악마의 편집’을 했다. 출처가 확인 안 되는 블로그에도 “나는 양곤에서 전보다 더 많은 자유가 있기는 했다. 물론 완전히 자유가 있는 건 아니다. 나는 한 달에 한두 번 한국인 위안소 관리자의 허락을 받아야만 나갈 수 있었다”고 표현돼 있다. 문옥주 할머니가 신체의 자유를 구속당한 상태라는 걸 유령 블로그도 표현해놨던 것이다.

하지만 램지어 교수는 이 문장을 빼버리고 뒤에 이어지는 문장인 “나는 인력거를 타고 쇼핑가는 게 재미있었다. 나는 양곤 시장에서 쇼핑하는 경험을 잊을 수가 없다”는 표현부터 단락을 시작했다. 돈 벌어서 미얀마 양곤을 누비며 대놓고 돈을 흥청망청 쓰고 다니는 직업 매춘 여성처럼 보이게 하려는 악의적인 편집을 한 것이다. 램지어 교수는 문옥주 할머니를 표현하면서 자신의 논문에 “기록이 남아 있는 한국 위안부 가운데 문옥주가 가장 튀게 잘 살았던 것으로 보였다. 그렇게 회고록에 썼다”고 표현해 놨다.

글로벌 검증단은 문옥주 할머니를 실제 인터뷰했던 모리카와 마치코의 책을 일일이 뒤져서 전체 맥락이 무엇인지 서술했다. 보고서는 문 할머니가 1940년 만주의 위안소에 잡혀가 겪은 끔찍한 일부터 시작했다. 문 할머니는 16살 때 대구에서 만주로 잡혀온 뒤 자신이 위안부가 됐으며, 하루 20,30명의 일본군을 상대해야 하는 걸 알게 됐을 때 하루 종일 울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한 일본 헌병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그곳을 탈출했지만, 1942년 문옥자 할머니는 해외에 있는 군 구내식당에 식모살이를 하러 가자는 꼬임에 넘어가 미얀마까지 가게 됐다. 항구에 집결했던 한국 소녀들은 타이완, 사이공, 싱가포르, 양곤에 차례차례 내려야 했다. 문 할머니는 자신이 미얀마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곳에 가게 됐다고 회고했다. 군인 가운데 한국말 하는 사람들이 와서 “너 속아서 여기 왔다. 너 위안부로 가게 된 거야”라는 말을 듣고 진상을 알게 됐다.

위안소 관리인들은 군인들을 상대하면 티켓을 받게 될 것이고, 그 티켓을 한국에 갈 때 돈으로 바꿀 수 있으니 열심히 일하라고 독려했다. 하지만 이건 노동의 대가라기보다는 그저 꼬드김에 불과했다. 문 할머니가 매춘 계약을 맺고 돈을 받았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고, 그나마 만주에서는 이런 티켓 따위도 받았다는 흔적이 없다고 학자들은 담담하게 지적했다. 문 할머니의 실제 회고록은 일련의 과정이 강압과 사기를 가리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령 블로그는 물론 램지어 교수조차 논문에 문 할머니가 팁으로 돈을 많이 모았다고 써 놨다. 위안소에서 주는 돈으로 모은 게 아니라 군인들이 개별적으로 주는 돈을 모았다는 의미이다.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의 문 할머니는 지옥굴을 탈출하기 위해 돈을 악착같이 모으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시모노세키 우체국에 입금된 이 돈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의해 문 할머니가 더 이상 일본인이 아니기 때문에 돌려줄 수 없다고 지급 거절당하는 것으로 끝났다.

결국 돈 한 푼 손에 못 쥐고 문 할머니는 지난 1996년 사망했다. 비극적인 전쟁의 역사를 알려주기 위해 모리카와 씨와 인터뷰를 통해 진상을 밝혔던 것인데, 램지어 교수는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자신의 공식에 맞추기 위해 피해자의 역사를 완전히 뒤틀어놨던 것이다. 노스웨스턴대학교 에이미 스탠리 교수는 “논문이 실리는 국제 법경제 리뷰가 우리 보고서를 참고해 논문을 철회해주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일본사를 전공했지만 어느 한쪽에 서지 않았고, 자신들이 연구한 역사적 팩트가 말하는 대로 진실을 추적했던 것이다. 이들에게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한일 문제가 전혀 아니었다.

“열 살 소녀도 매춘부” 램지어 주장에 경제학자들은 ‘연판장 반박’

램지어 교수의 논문이 출간되는 학술지 국제 법·경제 리뷰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경제학자들까지 집단 반발했다. 램지어 교수 논문에 대한 반박문과 반대 연판장까지 돌았는데 28일 기준 2500명 가까이 서명했다. 미국에서 이런 학자들의 대규모 반발은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큰 사건이다.  이들은 램지어 교수 논문에 나오는 열 살 일본 소녀 오사키 문제부터 거론했다. 램지어 교수는 “오사키는 부모의 강압을 받지도 않았고, 성 노예 상태도 아니었다”고 전제했다. 해외에 가서 일하면 300엔을 주겠다는 매춘부 모집책의 제안을 받고, “열 살이었지만 무슨 일이 발생하는지 알았다”고 기재했다. 하지만 별 근거도 없이 모집책은 “그녀를 속이려 하지 않았다”며 선량한 사람으로 묘사했다. 말레이시아에 가는 것이 오사키가 집에서 버려진 아이로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는 설명이었다. 논문에는 오사키는 실제 13세부터 가족을 위해 매춘부 일을 시작했다고 기술돼 있다.

경제학자들은 “램지어 교수는 열 살 아이가 성 노동자가 되는데 동의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분노했다. 이런 야만적인 상황을 감내했던 여성들을 설명하기 위해 게임 이론을 적용했고, 램지어의 논문은 학술지는 물론 경제학 종사자들에게도 오명을 남겼다고 설명했다.

경제학자들은 증거도 없이 매춘 계약을 꺼내 들며 이를 경제학으로 포장하려고 한 것에 대해 가장 큰 분노를 표시했다. 램지어 교수의 논문에서는 허가증을 가진 포주들이 일본에 있었다는 것 외에는 적절한 사실이 없었다고 전제했다. 이를 근거로 어떠한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위안소도 마찬가지라고 논리를 억지로 확장해 적용했다고 비판했다. 경제학자들은 계약이라는 용어 자체가 인류 역사에서 강압과 착취 관계를 은폐하기 위해 남용됐다는 점도 지적했다. 램지어 교수는 소녀를 포함한 여성들이 별 설명도 없이 매춘부가 되는 계약관계에 “동의했다”고 써놨는데, 1896년 이후 일본은 민법에서 20세 미만이 자기 의지로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게 해 놨다는 규정까지 확인해 강조했다.

램지어가 열 살밖에 안 된 일본 소녀가 매춘 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한 것도, 조선의 소녀들이 자발적인 매춘부라고 주장한 것은 모두 목적은 한 가지였다. 원래 인류의 역사 초기부터 매춘부는 존재했던 것이고, 그들이 게임 이론에 따라 자발적으로 최대 이익을 얻기 위해 계약을 체결한 것이니 강압이란 건 애초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램지어 교수는 논문에 이것을 일제나 조선의 책임도 아니라고 노골적이라고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책임은 조선의 매춘부 모집책에 있다고 비난의 화살을 외부로 돌리기도 했다. 모든 결론은 일제의 강압은 없었다는 것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 경제학이 동원됐다는데 학자들은 깊은 절망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난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제1480차 정기수요시위’에서 한 시민이 위안부는 매춘부였다고 주장하는 논문을 쓴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를 규탄하는 팻말을 목에 걸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위안부 피해 당사국 한국…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하나

이번 사안이 미국에서 벌어진 게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운 측면도 있었다. 하버드 대학 교수라는 흥행 요건을 갖춘 인물이 일본 극우의 논리를 그대로 가져와 논문에 쓰려다 전 세계 학계가 연합해 반론을 제기하면서 논리의 수많은 문제점들이 그대로 노출됐기 때문이다.

특히 석지영 하버드 법대 교수는 잡지 뉴요커에 기고한 글에서 램지어 교수와의 직접 인터뷰를 통해 램지어 교수가 매춘 관계를 입증할 계약서는 물론 다른 간접 증거조차 제시하지 못했다고 공개해 논란의 종지부를 찍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픈 역사는 공방의 대상이 아니라 이미 역사적으로 확증된,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는 걸  재미 학자들과 각국의 학자들이 자기 일처럼 나서서 확인해준 것이다. 국내 극우 인사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증거를 왜곡하며 “일제의 강제 동원이 없었다, 위안부는 매춘부다”라고 주장을 하더라도 이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좋은 선례를 남긴 셈이다.

램지어의 주장과 놀랍도록 흡사한 국내 극우 인사들 주장의 근원까지 이번 사태로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게 됐다. 그들이 주장하는 문건은 출처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고, 진술은 마음대로 뒤튼 게 아닐지 곱씹게 할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 착취 역사를 전복하려는 불순한 시도에 대해 얼마나 국제 학계가 분노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쉬운 점은 우리 학계가 이런 역사왜곡 시도에 대해서 가장 정교한 데이터와 사례를 가지고 반박문을 가장 빨리 내놨어야 했다는 점이다, 학자들도 반박문을 내면서 이전에 낸 교수들이 내놓은 것을 참고하며 사안을 더 크게 굴려갔는데, 적절한 참고 문헌 가운데 피해 당사국인 국내 연구소나 교수진이 만든 것은 거의 없었다. 교수직 자체가 일본 기업의 후원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램지어의 논문 내용은 볼 필요도 없다면서, 과도하게 흥분하고 분노한 나머지 논문의 문제적 내용에 대해서는 정작 관심을 안 뒀던 게 아닐까 생각도 든다.

사실 하버드 대학 자체가 거액을 기부한 목사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을 정도로 미국 대학은 기업의 후원과 기부가 일상적인 상황이다. 특히 돈이 안 되는 인문학은 기업의 후원 없이 교수 자리를 유지할 수 없는 학교도 많은 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미국은 학문의 자유가 최우선시 되고 그런 후원 기업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학자들이 자유롭게 연구를 하고 있다. 이번 사태에서 보듯이 이런 학문적 폭동은 학문으로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는 것도 확인됐다.

하지만 당사국인 우리가 감정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사건을 보면서 우리 국민들이 가지는 분노와 상실감은 어찌 보면 당연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사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거나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이다. 반일 감정을 표로 환산하는 정치인들이나 막무가내 일본 편들기로 주목을 받으려는 일부 극우 인사들도 모두 정치적인 이익을 추구해서 그러는 건 마찬가지다.

특히 일부 극우 세력이 일본의 시각에 무조건적으로 동조하며 국민감정을 자극하는 것은 위안부 문제의 실체를 드러나게 하는 것보다는 사건 자체를 감정적 난장판으로 만드는 게 목적일 수도 있다.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비롯한 역사 왜곡 시도에 대해 분노 대신 논리를 앞세워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을 램지어 교수 사태는 우리 사회에 시사하고 있다.


김수형 필자

SBS 워싱턴 특파원.  미국의 다양한 문제적 현장을 직접 다니며 방송 리포트를 제작하는 건 물론 페이스북에도 취재 후기를 꾸준히 남기고 있다. 정당과 IT분야를 오랫동안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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