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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만 특별기고(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역할

by | 2021년 2월 14일 | 국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8년 10월 바티칸 방문 일정 중  프란치스코 교황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백만 전 주교황청 한국 대사가  <피렌체의 식탁>에 특별기고를 했다. 하노이 노딜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척을 위해 오는 10월 로마에서 열릴 예정인 G20정상회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전 대사는 문재인 대통령과 지난 1월 취임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는 점에 주목했다. 실제로 양 정상 간의 첫 통화에서 가톨릭과 프란치스코 교황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이 전 대사는 두 정상의 삶의 이력을 보았을 때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하고 있는 가톨릭의 사회교리 실천에 공감대를 형성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를 근거로 로마 G20정상회의 기간 중 한반도 평화를 위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미 간 중재역할을 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전망한다. 아울러 본인이 직접 겪었던 교황의 방북 추진 비화를 공개하며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숨 가빴던 물밑 움직임도 생생하게 전한다. <피렌체의 식탁>은 설 연휴 중 이 전 대사의 특별기고를 ·하에 걸쳐 독자들에게 선보인다.[편집자]

#교황, 한반도 평화 정착에 깊은 관심
  南北美 중재외교 가능성 커
#세 차례 걸쳐 방북 의사 밝힌 교황
  심상치 않았던 바티칸-북한 움직임
#교황 방북, 북한에게 정상국가 도약 기회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로 물거품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기회 남아
  로마 G20 정상회의 예의주시해야

“그동안 한국 일 하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문 대통령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고 프란치스코 교황과 여러 가지 면에서 지향점이 같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제 일하기가 쉬워질 것 같아요.”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정상 통화(2월 4일)가 끝난 뒤 청와대 양 정상 간에 가톨릭이란 공통점을 매개로 프란치스코 교황과 소통하자는 내용이 오고 갔다. 뉴스를 접하고 2018년 1월 주교황청 대사로 부임했을 때 처음 만났던 한국 담당 몬시뇰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미국은 대통령이 바뀌면 해외에 파견된 대사를 거의 모두 교체한다. 주교황청 미국 대사도 바뀔 게 확실하다. 바티칸 외교관들 사이에서는 교황과 바이든의 관계를 생각했을 때 ‘비중 있는 인사’가 미국 대사로 올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신임 미국 대사도 미국 담당 몬시뇰로부터 나와 비슷한 이야기를 듣지 않겠는가. “트럼프 시대에는 일하기 어려웠으나, 바이든 시대에는 일하기 재미있을 거 같다.”고! 트럼프 전 대통령과 프란치스코 교황은 코드가 맞지 않아 4년 내내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다. 양국 관계를 조율해야 할 실무자들이 얼마나 애를 먹었겠는가.

‘로마 G20정상회의’ 교황, 한미간 대북문제 중재할 수도

교황청과 수교 관계에 있는 국가의 정상이 이탈리아를 방문할 경우 교황을 찾아뵙는 것은 오래된 외교 관행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시절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에 참석했다가 교황을 뵈었다. 바이든도 10월 로마에서 교황을 만날 것이다. 코로나19 상황이 변수이긴 하지만 백신 보급 등으로 G20정상회의가 예정대로 열릴 경우 교황과 문 대통령, 그리고 교황과 바이든 대통령의 독대(개별 면담)가 각각 이루어질 게 확실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첫 만남이 될 것이고. 문재인 대통령은 두 번째 만남이 될 것이다. 여기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관련하여 중요한 논의가 있지 않겠는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북미관계 개선의 키를 쥐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게 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핵심 당사자인 문재인 대통령도 만나게 되어 있는데. 이 절호의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겠는가.

한반도 평화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계신 분의 성품으로 보아서 그럴 리가 없다. 교황은 이 기회를 하느님이 주신 은총이라 생각하고 두 지도자와의 대화를 통해 좋은 중재안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 외교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가능성의 예술이다. 교황은 이미 북한 방문 의사를 밝혀 놓은 상태다,

더구나 교황은 오바마 대통령 시절(2015년)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를 중재하는 데 성공한 경험이 있다. 미국과 북한의 관계 개선을 위한 뭔가의 조치가 논의될 것이라는 기대는 결코 무리가 아니다. 교황이 바이든에게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할까, 프란치스코 교황을 모시고 주교황청 대사를 3년 했던 사람으로서 궁금하기 이를 데 없다. 교황청은 비록 G20정상회의의 멤버는 아니지만 올 10월 로마 G20정상회의는 교황청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바이든 대통령의 ‘특별한 관계’ 때문이다. G20정상회의도 미국이 주도하는 외교 무대 아닌가!

나의 예측이다. 주교황청 한국 대사로서의 경험과 바이든 대통령의 정책기조 등을 감안하여 G20정상회의를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관점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북핵 문제와 관련, 바이든 대통령에게 꼭 대화로 풀어나가시라고 말할 것이다. 교황은 어떤 갈등도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철저한 대화주의자다. 전쟁 등 물리력을 동원한 해법에는 절대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교황은 한반도 문제와 관련하여서도 바이든에게 “어떤 경우에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단단히 당부할 것이고 확약을 받으려 할 것이다. 비밀이 보장된 둘 만의 독대 자리인데 무슨 말인들 하지 못하겠는가.

교황은 또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의 규제를 완전히 해제하거나 대폭 완화해 달라고 주문할 가능성이 크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대한 인도적 지원은 가톨릭 사회교리의 핵심 가운데 하나다. 사회교리 실천을 정치적 소명으로 삼아온 바이든이 교황의 이런 요청을 모른 척하고 지나갈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자선단체들의 인도적 지원까지 과도하게 규제했었다. 교황청 산하 가톨릭 자선단체 산테지디오(Sant’Egidio)가 2018년 12월 북한 당국으로부터 평양사무소 설치를 제안받고서도 사무소 설치를 못했던 이유도 사실상 미국의 제재 때문이었다. 또 북한에 대해 식량과 의복은 물론이고 의료지원도 극히 일부만 허용되었다. 북한에 대한 지원 활동이 사실상 중지되고 말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7년 5월 24일 바티칸에서 만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모습 (사진=AP/연합뉴스)

교황, 바이든에게 대북 규제완화 주문 가능성 커

바이든은 취임하자마자 트럼프의 비합리적이고 비인도적인 정책을 지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바이든의 결심에 따라 미국 행정부가 인도적 지원에 대한 규제를 대폭 풀 경우 산테지디오의 평양사무소 개설이 이루어질 수 있다.

과거 우리나라도 공산권 미수교국에 대해서는 수교 전에 먼저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사무소를 설치해 본국과 주재국 정부 간의 메신저 역할을 하게 했다. 교황청과 미수교국 관계에 있는 나라의 경우 자국에 진출해 있는 교황청 산하 가톨릭 자선단체가 중간에서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테지디오의 평양사무소 개설은 이런 면에서 의미가 매우 크다.

시계를 2018년 10월 18일로 되돌려보자. 유럽 순방에 나선 문 대통령을 태우고 이탈리아에 온 공군1호기(전용기)가 로마 공항에서 예정대로 이륙하지 못하고 서너 시간 묶여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테러 위험에 노출? 아니다. “소노 디스포니빌레(sono disponibile).”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 말 한마디가 대통령 일행의 발목을 잡아버렸다. 다음 방문국에서의 외교행사가 취소되는 등 순방 일정에 적지 않은 차질이 생겼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대통령은 이날 오전 바티칸 사도궁을 방문하여 교황을 면담한 후, 곧바로 다음 행선지인 벨기에로 떠날 예정이었다. 벨기에서의 외교 일정을 감안하여 점심도 비행기 안에서 때울 계획이었다. 그런데 교황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파격적인 메시지를 내놓은 것이다. 교황의 개별 면담(독대)은 통상적으로 교황의 전용 서재에서 진행된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교황 면담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제너럴 오디언스(general audience)라 불리는 일반 알현이다.

다른 하나는 프라이빗 오디언스(private audience)라 불리는 개별 알현이다. ‘audience’를 번역할 때 종교적으로 알현이고 외교적으로는 면담이다. 일반 알현은 교황이 베드로 광장 등에서 여러 신자들을 동시에 만날 때 쓰는 말이다. 반면 개별 알현은 교황이 교회 지도자나 정치지도자 등 중요한 사람과 전용 서재 등 독립된 공간에서 1대 1로 독대하여 의견을 교환하는 만남이다. 이것은 중세시대 이후 바티칸의 오랜 전통이다.

국가 정상과의 만남은 개별 알현으로 진행한다. 교황과의 개별 면담은 가톨릭의 고해성사와 같은 개념이다. 어느 누구도 배석하지 않는 완전한 독대다. 신자가 사제에게 자기 고민을 모두 털어놓듯이 교황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한다. 교황도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한다. 언어적 장애가 있을 경우에만 통역이 배석한다. 대화 내용은 절대 비밀이며 면담자가 대화 내용을 공개하려면 교황청의 사전 양해를 받아야 한다.

대통령 전용기 세웠던 교황의 한 마디 “소노 디스포니빌레(sono disponibile)”

그런데 서재에 들어간 대통령이 30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교황이 국가 정상을 만날 경우 보통 30분 이내에서 끝나는데.’ 문 대통령의 면담이 예상보다 길어진 것이다. 강경화 외교장관,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 윤영찬 청와대 대변인 등 당시 10여 명의 수행 참모들은 사도궁 로비에서 연신 시계만 들춰보면서 숨죽인 채 기다리고 있었다. 정확히 38분이 지났을 무렵 대통령이 메모지를 손에 들고 밝은 모습으로 나왔다.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교황과의 면담 내용을 설명해 주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교황과의 독대 내용을 누가 브리핑해 주겠는가. 통역 말고는 배석자가 아무도 없었는데! 대통령의 설명 중 바로 이 대목이다. “나는 갈 준비가 되어 있다.” 대통령 말씀을 경청하고 있던 수행 참모들이 약속이나 한 듯 “아~” 하며 나지막이 탄성을 질렀다. 대통령이 교황에게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해 설명한 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교황 방북 초청’ 의사를 전해 주자, 교황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김 위원장이 공식적으로 초청장을 보내주면 나는 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화답한 것이다.

사안이 사안인지라 교황의 정확한 워딩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이탈리아어 통역을 맡았던 한현택 신부(교황청 인류복음화성)에게 물었다. 한 신부는 이렇게 답했다.

“교황께서 ‘소노 디스포니빌레(sono disponibile)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갈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영어로는 ‘I am available.’로 이해하면 됩니다.”

교황의 정확한 워딩이 청와대 기자단과 교황청 기자단에 알려지자, 기자들이 바빠졌다. ‘프란치스코 교황, 사실상 북한 방문 요청 수락.’ 국내 언론은 물론이고 CNN, AP통신 등 세계 유수의 언론들이 헤드라인으로 긴급 타전했다. 문제는 국내 언론이었다. 8시간의 시차를 고려했을 때 TV 저녁 뉴스의 기사 마감이 촉박했다. 벨기에행 비행기를 예정대로 탔다가는 외신에 물먹기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교황 기사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전용기를 공항에 잡아 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후 교황의 “sono disponibile”를 뒷받침하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포착되었다.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소속의 아파타토 기자가 영향력 있는 가톨릭 잡지 ‘JESUS’(2018년 11월)에 5쪽 분량의 북한 종교 특집을 실었다. 로마에 북한 붐을 일으키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교황청 외교부에는 이미 중국팀이 가동되고 있었다. 교황청과 중국은 그동안 양국 관계 정상화의 걸림돌로 작용하던 주교 임명과 관련해서 2018년 11월 잠정안에 합의했다. 외교부 중국팀이 만들어낸 외교적 성과였다. 카밀레리 외교부 차관(몬시뇰)이 협상을 주도했다. 총괄 지휘는 파롤린 국무원장 추기경이 맡았다.

외교관 출신인 파롤린 추기경은 교황청 안에서 대표적인 중국통으로 한국과 일본에도 조예가 깊다. 이 중국팀이 “sono disponibile”의 후속조치를 준비하고 있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공식 초청장을 보내주기만 하면 당장 실무협상에 착수할 요량으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티칸과 평양의 협상 실무자들이 직접 접촉한 적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초청장을 주고받게 되면 이것을 기점으로 교황의 방북을 하루라도 빨리 실현시키기 위한 이심전심의 조치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sono disponibile” 이후 심상치 않았던 북한의 반응

2019년 2월 10일(현지시간) 로마의 라테라노 대성당에서 김천 북한 대사대리와 서기관을 만난 이백만 전 대사. (사진=이백만 제공)

교황의 “sono disponibile” 발언이 나오자 평양과 바티칸은 서로 약속이라도 과거에 보지 못했던 징후가 속속 포착되었다. 특히 북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2019년 2월 10일(일요일) 로마의 라테라노 대성당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하면 지금도 가슴이 쿵쾅쿵쾅 뛰곤 한다. 가톨릭 자선단체인 산테지디오 창립 51주년 기념미사와 리셉션이 열렸다. 산테지디오는 카리타스와 함께 가톨릭을 대표하는 최대의 국제자선단체다. 로마에 주재하고 있는 북한 외교관들도 이날 행사에 참석할 것이라는 정보를 사전에 입수했다. 산테지디오 행사에 가면서 북한 외교관들과의 조우를 기대했지만, 한편에서는 설마 그들이 올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불과 3개월여 전, 그러니까 2018년 11월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관의 조성길 대사대리 부부가 잠적(망명)한 사건이 있기 때문이다. 조성길의 후임이 로마에 부임한지도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는 유엔제재로 사실상 추방되어 장기간 공석으로 있었다. 북한 대사관의 분위기가 얼마나 심란했겠는가. 미사 때 대성당 홀을 쭉 둘러봤지만 북한 외교관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혹시나 하고, 미사를 마친 뒤 열린 리셉션에 가봤다. 그곳에 있었다!! 김일성 배지를 단 남성 두 명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기나 한 듯 홀 한가운데 서 있는 게 아닌가. 얼마나 반가웠던지. 내가 외교관 생활하는 중 최초로 만나 본 북한 외교관들이었다.

로마에 갓 부임한 김천 대사대리와 서기관이었다. 우리 일행이 먼저 다가가 인사를 했다. 멈칫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금세 친해졌다. 서로 통성명을 하고, 환담을 나누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마침 산테지디오의 임팔리아초 회장이 찾아와 서먹서먹할 수도 있었던 자리를 화기애애한 만남으로 만들어 주었다. 임팔리아초 회장은 나와 김천 대사대리랑 식사 한번 하자는 말도 했다. 북한의 고위 외교관이 가톨릭 모임에 공개적으로 참석한 것은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다. 바티칸 외교가에서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질 정도였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이에 앞서 2018년 12월 좀 특별한 뉴스 한 꼭지를 사진과 함께 평양발로 보도했다. 산테지디오의 임팔리아초 회장 일행이 만수대 의사당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나 환담하는 모습이다. 김영남 위원장은 북한에서 헌법상 정부 수반이다. 조선중앙통신은 이와 함께 임팔리아초 회장 일행이 임천일 외무성 부상과 평양외국어대 교수와 학생 등을 만났고, 장충성당(가톨릭)과 정백성당(러시아 정교회) 등을 둘러봤다고 보도했다. (당시 한국의 연합뉴스도 이를 보도했다)

산테지디오는 수년 전 북한에 진출하여 의료지원 등 인도적 차원의 자선활동을 하고 있다. 유엔제재가 너무 강한 관계로 활동이 뜸해지긴 했지만 북한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가톨릭 단체다. 그렇지만 북한의 정부수반까지 나서 산테지디오 회장을 이렇게 환대해 주고 이를 대외에 공개한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북한 당국은 임팔리이초 회장에게 산테지디오의 평양사무소 개설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져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이례적인 일이 또 있었다. 북한의 종교협회는 12월 성탄절을 앞두고 남한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성탄 축하 영상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이 모두가 교황의 “sono disponibile” 발언 이후에 벌어진 일들이다. 김영남 위원장의 산테지디오 회장 환담과 북한 당국의 산테지디오 평양 사무소 개설 타진, 그리고 북한 외교관의 산테지디오 행사 참여 등은 북한이 교황청에 대해 문을 열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인으로 받아들여졌다.

2019년 1월 예사롭지 않던 바티칸의 움직임

바티칸의 움직임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바타칸은 신자들의 고해성사를 집전하는 사제들의 집단이기에 ‘비밀의 성’으로 불린다. 고해성사 내용은 어느 누구에게도 발설할 수 없다. 가톨릭 사제들에게는 비밀엄수가 몸에 배어 있다. 언론인 생활을 할 때의 감각으로 바티칸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했다. 어떤 작은 움직임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교황이 2019년 새해 벽두 ‘중대한 발언’을 하시는 게 아닌가. “긍정적인 신호들이 한반도로부터 속속 도착하고 있습니다(Positive signs are arriving from the Korean Peninsula)”고! 교황청 주재 대사들에게 공개적으로! 교황은 전통적으로 해마다 1월 둘째 주에 교황청 외교단을 부부 동반으로 초청하여 사도궁 1층 ‘왕의 방(Sala Regia)’에서 신년하례회를 가진다. 2019년에는 1월 7일에 열렸다. 교황이 이 자리에서 당신 특유의 간명한 어법으로 한반도 상황을 진단하고 관련 국가의 지도자들에게 적극적인 협력을 당부하는 메시지를 발표한 것이다.

북한과 미국 간의 대화 무드를 염두에 둔 발언이었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매우 함축적이었다. “한반도에서 긍정적인 신호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습니다. 교황청은 현재 진행 중인 대화들을 호의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화들을 통해 좀 더 복잡한 의제들도 건설적으로 논의되어, 남북한 모든 사람들과 이 지역 전체의 발전과 번영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공동의 영속적인 해결책이 도출되기를 바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북한 방문이 핫이슈로 떠올랐고 여러 움직임이 보이던 2019년 2월 교황청 관계자로부터 무척 흥미 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로마에는 한반도 평화와 냉전체제 종식을 위해 교황의 북한 방문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여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지만, 교황의 북한 방북이 시기상조라는 신중론 또한 무시하지 못할 정도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들었던 교황청 관계자의 말은 나의 귀를 쫑긋 세우게 하기에 충분했다. “교황께서 올 연초에 ‘북한 방문’을 놓고 주요 참모들과 토론을 했습니다. 추진론과 신중론이 활발히 전개되었습니다. 교황이 토론 내용을 모두 경청한 뒤 결론을 내렸습니다. ‘나는 북한을 방문하고 싶다. 준비 잘하길 바란다.’ 교황의 방북 문제에 대한 교황청의 입장이 이날 회의를 통해 사실상 정리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019년 11월 일본을 방문해 당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고 있는 모습 (사진=EPA/연합뉴스)

교황 방북 가능성에 속 태웠던 일본

그런데, 정작 비상이 걸린 곳은 주교황청 일본 대사관이었다. 일본도 이 회의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여 부랴부랴 대응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교황의 북한 방문이 현실화할 경우 일본에 미칠 영향 때문이다. 당시 나카무라 요시오(中村 芳夫) 주교황청 일본 대사는 교황청 외교부를 황급히 찾아 “교황의 북한 방문은 반대하지 않지만 교황이 일본을 방문하는 길에 북한에 들르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교황의 방일과 방북을 한 세트로 추진하지 말라는 주문이었다.

당시 아베 일본 총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일본 방문을 위해 수년간 정성을 들이고 있었고, 교황청도 일본의 간청을 받아들여 2019년 하반기 일본을 방문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실제로 2019년 11월 방일). 교황은 착좌 다음 해(2014년) 여름휴가를 이용하여 한국을 찾았지만 일본 방문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신임 일왕 즉위(2019년)와 도쿄하계올림픽(2020년)을 앞두고 있던 일본으로서는 국내외 분위기 조성 차원에서라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일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어렵게 교황의 방일을 확약받아 놓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교황의 방북 이슈가 터져 나왔으니 일본으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교황의 북한 방문이 차츰 현실화하여 가는 분위기가 조성되자, 교황청 안팎에서는 교황의 건강을 생각할 때 일본에 가는 길에 북한도 함께 방문하는 것이 좋겠다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교황 방북이 현실화할 경우 CNN, BBC 등 전 세계의 주요 TV가 교황의 평양 도착을 생중계하는 등 일거수일투족을 연일 비중 있게 다룰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 아닌가. 교황의 방일 뉴스는 관심 밖으로 밀려날 버릴 것이고! 교황의 방북이 성사될지 안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교황청은 교황의 방일과 방북을 분리해 추진하겠다고 일본 측에 전달했다.

2018년 10월 18일(문재인 대통령의 교황 면담)과 2019년 2월 28일(하노이 북미정상회담), 4개월여 동안 교황청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관련한 물밑 움직임은 이처럼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no deal)된 후 북한의 외교활동이 급속히 냉각되어 버렸다.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로 교황 방북도 물거품

교황의 방북 논의도 ‘하노이 노딜’의 충격파를 넘지 못하고 물속 깊숙이 잠기고 말았다. 만약 하노이 노딜이 없었다면, 우리는 평양 순안국제공항에서 교황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겹게 포옹하는 장면을 TV 생중계를 통해 보았을 텐데…. 무척 아쉽다. 나의 이런 예측은 당시 바티칸의 분위기와 평양의 움직임을 종합한 결과다. 당시 바티칸과 평양은 같은 목적지로의 여정을 위해 각자 분주한 움직이고 있음이 확연하게 관측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교황 방북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교황 방북은 특정 종교 지도자의 행차가 아니다. 만약 교황이 북한 땅을 밟게 된다면, 그것은 북한 개방에 결정적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교황 방북은 그 자체로 ‘기적’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북한으로서는 플러스 효과와 마이너스 효과가 확연하다. 국제사회에서 정상국가로 도약하는데 최고의 이벤트가 될 것이고 체제 홍보에도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플러스 효과다. 리스크도 적지 않을 것이다. 김일성 주석을 신처럼 받드는 사회에서 교황의 존재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교황 방북이 몰고 올 자유의 바람을 어떻게 차단할 것인가. 이것은 분명 마이너스 효과다.

과거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교황 방북을 추진하다 중간에 포기한 이유도 이런 리스크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중학교 학창 시절을 스위스에서 보냈다. 서구 문화와 가톨릭에 대한 이해가 선대 지도자와 많이 다를 것이다. 이 점은 교황의 북한 방문이 김정은 위원장 시대에는 성사될 것이라고 보는 유력한 근거 가운데 하나다.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당시 옥류관 오찬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김희중 대주교(사진 오른쪽)와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 (사진=평양 사진공동취재단)

프란치스코 교황, 한반도 평화 정착에 깊은 관심

2020년 말 교황청 대사 이임 인사를 하기 위해 사도궁을 방문했을 때, 나는 교황에게 “sono disponibile가 지금도 유효합니까?”라고 물어봤다. 교황은 당연하다는 듯이 “물론입니다.”고 말씀하셨다. 또 “한국 국민들은 교황께서 남한과 북한을 함께 방문하여 직접 축복해 주시기를 바란다.” 말하자 “vorrei andare(I would like to go).”고 대답하셨다. “나도 가고 싶다.”고 하신 것이다.

사실 교황은 2018년 10월 문 대통령 면담 이전에도 나에게 방북 의사를 밝혔다. 내가 신임장을 제정할 때(2018년 2월) “기회가 되면 북한을 방문하겠다.”고 말했다. 당시 이 내용은 언론에 공개하지 않고 청와대와 외교부 본부에 ‘비밀 전문’으로 보고했다. 교황은 나의 주교황청 대사 재임 기간 중 세 번에 걸쳐 방북 의사를 일관되게 피력한 것이다. 그냥 듣기 좋으라고 말하는 덕담 수준의 언급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반도 사랑은 정말 대단하다. 교황은 개인적으로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 냉전체제의 종식을 위해서는 한반도 평화 정착이 꼭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신임장을 제정하던 날, 교황은 나에게 한국에 대한 좋은 추억을 긴 시간 이야기해 주셨다.

아르헨티나에서 추기경으로서 사목활동을 할 때 한국 신부와 한국 수녀, 한국 교민들로부터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특히 오웅진 신부가 설립한 사회복지시설 ‘꽃동네’가 아르헨티나에 분원을 내어 가난한 이웃을 돕고 있고 성가소비녀회 수녀들이 아르헨티나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며 감사의 뜻을 전해 주셨다. 교황은 이 자리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의견도 말씀하셨다. 평창동계올림픽이 막 시작한 때였다.

교황청, 초청장 오면 방북 최우선 고려 방침

그때만 해도 북한과 미국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화염과 분노’라는 수사를 동원하며 북한을 압박하고 있었다. 북한 또한 ‘불바다’ 운운하며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었다. 세계 어느 정치 지도자도 트럼프의 ‘과격한 발언’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침묵의 카르텔 속에 숨어 있었다. 유일하게 프란치스코 교황만이 “전쟁은 안 된다. 대화로 풀라.”고 트럼프를 겨냥했다. 교황은 나에게 “내 마음과 내 머리에는 늘 한국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한반도에 중요한 계기가 있을 때마다 한국민들을 격려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평창동계올림픽 때 ‘평화의 제전’이 되길 기원하는 특별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국내외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음은 물론이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서도 한국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4.27 판문점선언 2주년 기념행사 때(2019년)에는 TV 방송용 영상 메시지를 특별히 보내주었다. 5·18 민주화운동 40주년과 제주 4·3 사건 70주년, 밀양 대화재 사건 때에도 특별 메시지를 통해 한국민들을 위로해 주셨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서랍에는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보낸 초청장이 쌓여 있다. 교황이 인기가 높다 보니, 많은 나라에서 교황 방문을 요청하고 있다. 교황청은 교황의 순방 일정을 통상 2~3년 전에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은 예외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이 공식 초청장을 보낼 경우 교황청은 교황의 북한 방문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방침을 갖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입장에서는 한반도 평화 정착은 물론이고 동북아시아(중국)의 선교를 위해서라도 “sono disponibile.”의 실현이 절실한 상황이다.

‘로마 G20 이벤트’ 성공위해 한국 노력 필수적

교황의 해외 순방은 기본적으로 사목 방문이어서 해당 지역의 교구장이 실무협상을 하고 교황을 공항에서 영접해야 하지만 한반도의 특수한 사정을 감안하여 기존의 관행과 의전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원칙을 정해 놓고 있었다. 바티칸과 평양이 직접 협상한다는 방침이었다. 현재 평양교구는 존재하지만 교구장이 공석이어서 서울대교구장이 평양교구장을 겸직하고 있다.

오는 10월 열릴 로마 G20 정상회의에서 교황청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일 경우, 그리고 미국이 이를 받아들일 경우, 산테지디오 평양사무소 개설을 넘어선 파격적인 조치가 취해질 수도 있다. 바이든과 문재인이 사회교리 실천을 정치적 소명으로 삼고 있는 정치지도자라는 점을 생각할 때 이런 상상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 두 지도자가 존경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회교리를 앞장서 설파하고 독려하는 사제 아닌가.

로마 이벤트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의 노력 또한 필수적이다. 바티칸의 전략적 가치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는 8개월 뒤 로마에 큰 기대를 걸고 있을 것이다. 아마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예의 주시하고 있을지 모른다. 10월 로마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위한 큰 진전이 있기를 기도한다. God bless Korean Peninsula!

※참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이 현실화하고 있을 무렵 주교황청 한국 대사로 있던 필자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교황 전용기를 타고 평양에 갈 수 있겠다.”는 말을 들었다.
한국 대사가 교황을 따라 평양에 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국제법적으로나 외교적으로 엄연히 개별 국가다. 주교황청 한국 대사가 교황의 북한 방문을 수행할 수 없는 것은 한국 대통령이 캐나다를 방문하는데 주한 미국 대사가 한국 대통령을 수행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교황이 북한 방문을 추진할 경우 주교황청 한국 대사는 물밑에서 보이지 않게 양측을 지원하는 것으로 끝나야 한다.


이백만 필자

전 주교황청 한국 대사. 언론인 출신으로 한국일보 경제부장 및 논설위원을 거쳐 한국경제TV 보도본부장을 지냈다. 2006년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과 2007년 대통령 홍보특별보좌관을 역임했다. 2018년 1월부터 2020년 11월까지 제15대 주교황청 한국 대사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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