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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재의 ‘Into 아시아’] 피하지 못한 쿠데타의 운명…미얀마와 수찌의 앞날은?

by | 2021년 2월 9일 | 국제, 기획 · 연재, 정호재의 'into 아시아'

지난해 1월 18일(현지시간) 아웅산 수찌 미얀마 국가고문이 수도인 네피도 대통령궁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 소식이 2021년 벽두부터 아시아를 뒤흔들고 있다. 쿠데타(coup d’état)라는 말처럼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단어도 흔치 않다. ‘독재’와 ‘인권 탄압’ 그리고 ‘불통’과 ‘부패’가 마치 수학 공식처럼 뒤따르기 때문이다. 대략 5년 전인 2015년 말 전 세계는 불굴의 의지로 미얀마를 민주주의로 회복시킨 아웅산 수찌 여사(77세)의 인간 승리에 환호성과 지지를 보냈다. 이번 쿠데타로 세간에서는 미얀마 민주주의가 드디어 진정한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지만 과연 그렇게 단정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글의 ‘수위’와 ‘방향’을 놓고 스스로 고민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명백했던 선거 결과를 헌신짝 버리듯 내동댕이친 미얀마 군부를 비난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대단히 실망스러운 상황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냉정히 바라보면 미얀마 군부의 정치개입, 즉 쿠데타는 2015년 아웅산 수찌가 이끄는 NLD (민주주의민족동맹)의 선거 승리 이후 지속적으로 그 가능성이 제기된 ‘정치적 상수(常數)’였고 아세안 정치의 주요한 특징이기도 하다. 때문에 쿠테타 정국에 대한 우려와 함께 ‘올 것이 왔다’라는 담담한 자세 역시 함께 필요하다. 이번 칼럼에서는 2021년 미얀마 쿠데타에 깔린, 대략의 배경과 원인, 전망을 통해 군부세력과 민주화세력이라는 아세안 정치의 맥을 짚는 기회로 삼아보고자 한다.

제2기 의회 개원 직전 ‘쿠데타’

2월 1일 이른 새벽, 미얀마 군부는 국회 개원 준비를 하던 집권여당 NLD 소속의 대통령과 하원의장 등 주요 정치인들을 구금(가택연금)한 뒤 곧바로 1년 간의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물론 아웅산 수찌 국가고문 역시도 이 대상에 포함됐다. 군대가 이른바 계엄령(戒嚴令)을 선포한 것인데, 이는 입법-행정-사법 등의 국가 주요 권력이 군부(軍총사령관)에 위임됨을 뜻한다.

쿠데타를 주도한 민아웅 흘라잉(Min Aung Hlaing, 65세)은 10년째 총사령관 자리를 지킨 군인인데, 친근한 표정과 겉으로 드러난 겸손한 행보로 미얀마 안팎에서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다. 그러니까 흘라잉 총사령관의 10년쯤 선배들은 미얀마의 악명 높은 독재자 딴쉐(Than Shwe, 1933년생, 1991~2011년 집권)의 지도 아래 대통령도 하고 국회의장도 해보고 화려한 시절을 보냈다. 이제 그 바통이 차세대인 그에게 온 것이다. 쿠데타 직후 그는 다음과 같이 쿠테타의 배경과 향후 계획을 밝혔다.
1)부정선거로 국가비상사태 선포가 불가피했고 2)이를 면밀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고 3)1년 뒤에 공정하게 재선거를 치러 이긴 쪽에 권력을 이양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부정선거 의혹이란 군부의 일방적인 주장에 가깝다. 일부 논란이야 있었겠지만 2020년 11월에 치러진 선거는 국제단체와 외신들이 지켜본 공정한 선거였다. 하지만 ‘국가비상사태’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한 정치의 영역이고 결과적으로 쿠데타의 빌미가 되어 버렸다. 4개 부처 장관을 겸직한 사실상의 국가지도자인 아웅산 수찌를 잡아두기 위한 기소 내용이 “비허가 통신장비 보유”라는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선거 결과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군부가 지난 5년간 잠시 양보(?)했던 권력을 되찾아 온 것이다.

압도적인 선거 승리를 통해 제2기 집권을 준비 중이던 아웅산 수찌 이하 의회와 행정부 인사들의 정확한 표정과 심정은 아직까지 바깥 세계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수찌 여사가 아마도 며칠 전에 준비했을 법한 “국민들이 나서서 군부에 저항해 달라”라는 코멘트만이 대변인을 통해 공개된 상태다. 1988년 이후 20년 가까이 가택연금에 굴하지 않고 군부에 저항해온 수찌 여사의 심정을 헤아리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군부의 재등장을 가장 막고 싶어 했던 인사가 바로 그일 것이기 때문이다. 군부의 복귀는 정치의 후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군부 쿠데타를 주도한 민아웅 흘라잉(Min Aung Hlaing) 군 최고사령관. (사진=AP/연합뉴스)

수찌와 군부의 ‘사실상 동거정부’

아웅산 수찌 집권 이후 5년간 군부에 대한 숙청이나 군사문화 철폐가 이뤄졌냐, 하고 물어보면 당연히 전혀 아니었다. 여전히 미얀마는 의회-행정부의 최고위층에만 일부 민주화 세력이 진입했을 뿐, 정·재계와 사법부 및 학술계, 교육계를 비롯해 거의 모든 공공영역이 군사문화의 틀 속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상의 민간-군부 동거(同居) 정부라는 표현이 적절한 셈이다. 아무리 수찌 여사가 전 국민의 70% 이상 지지를 받는다고 해도, 나라는 여전히 군인과 경찰 출신의 파워엘리트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얘기다.

미얀마가 얼마나 후진적이고 폐쇄적인 정치문화를 갖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증표 중 하나가 바로 언론 검열 제도의 오랜 존속이다. 한국의 유신독재시절을 연상케 하는 사전검열이 1960년대 후반부터 무려 2011년까지 지속된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의 표준이 된 인터넷과 무선전화가 본격 보급되기 시작한 때가 2010년 이후, 대략 2012년부터다. 안으로 웅크리기만 한 군부의 독재가 초래한, 끔찍한 국가적인 퇴행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개혁개방을 선택한 지 불과 10년 만에 미얀마는 정말 놀랄 만큼 빠르게 변화해왔다. 이제는 전 국민 5500만 명의 절반 정도가 모바일 페이스북 유저라고 할 정도로 세계화와 정보화의 세례를 받게 된 것이다. 2011년 본격화된 개혁개방의 효과는 엄청났는데, 해외에서 투자금이 물밀듯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전기-도로 체계, 교육제도가 확충이 됐다. 미얀마는 2000년대 초만 해도 북한처럼 정전이 잦은 나라였다. 민간 기업들도 활력을 얻기 시작하고 해외로 나갔던 인재들이 미얀마로 대거 복귀했다. 이 무렵 한국의 삼성전자가 대규모 해외공장 후보지로 베트남과 함께 미얀마를 동시에 검토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아세안에서는 왜 군부가 강할까

아웅산 수찌가 그간 군부에 대해 극도로 조심스러운 태도를 내비쳤다는 것은 꽤나 널리 알려진 얘기다. 2016년 군부가 저지른 로힝쟈족(族)의 학살 사건에 대해 수찌 여사가 국제사회에서 대신 옹호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 대표적이다. 연방의 갈등을 막기 위한 정치적 제스처라는 해석도 많았지만, 실제로는 수찌가 군부를 통제할 만한 아무런 물리적 권한이 없다는 것이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 국방과 경찰, 국경부에 대한 인사권과 예산에 대한 내용은 2008년 헌법에 의해 군총사령관이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찌는 대통령이 아니라 헌법상 권한은 장관에 불과한 실정이었다.

이밖에도 NLD의 제2인자로 불렸던 표민떼인(Phyo Min Thein·52) 전 양곤 주지사와의 불화도 꼽을 수 있다. 미얀마에도 1988년 민주화시위를 주도한 386세대(8888세대)가 있으며 이 가운데 성공적으로 정계에 진입한 인물이 바로 표민떼인 주지사다. 오랜 수감생활을 비롯해 여러 정치적 고초를 겪으며 끝내 살아남았고, 수찌 이후 권력을 이어받을 최적임자로 널리 회자되었다. 실제로 양곤에서 국회의원과 지역 최고책임자 역할을 했으니 그의 처신에 따라 정치적 영향력은 얼마든지 커질 수 있었다.

그런데 새로 취임한 대도시의 최고수장 자리가 얼마나 달콤했는지 집권 후 불과 2년 만에 살짝 기고만장해졌나 보다. 2017년 어느 종교행사 자리에서 군부를 겨냥해 “군은 민간정부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하며 군총사령관은 정부의 일개 국장급에 불과할 뿐”이라는 꽤나 도발적인 발언을 내뱉은 것이다. 군부독재와 오랜 기간 싸워온 신세대 정치인으로서 못할 말은 아니지만 절대로 현명한 발언은 아니었다. 당연히 미얀마 언론은 이 발언을 대서특필하게 되었고, 이후 수찌와 표민떼인의 관계는 급속히 차가워지고 말았다. 자연스레 차세대 지도자감이란 타이틀 역시 슬며시 사라지고 말았다. 정치인의 몰락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군부를 도발한 그의 신중치 못한 처신에 수찌가 탐탁지 않아 했다는 해석이 있었다.

미얀마의 군부는 1962년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차지하고서는 2015년까지 정확히 53년의 장구한 세월의 집권을 이어왔다. 한국의 군부집권 기간(1961~1992년)의 거의 두 배에 달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북한의 노동당 일당 집권에 비교가 될 수준의 강력한 독재권력이었던 셈이다. 이 같은 군부정치 아래서 미얀마의 경제와 언론환경은 세계 최빈국이라는 불명예 타이틀에 더해 정치범 수용소가 도처에 산재한 가장 비민주적인 국가로 분류되어 왔다. 북한과 미얀마는 1990년대 이래로 국제정치학계에선 언제나 같은 부류로 인식이 된 것이다.

미얀마도 한국처럼 냉전이 해체되어 가는 1988년에 군부 장기집권을 끝장낼 기회가 있었긴 했다. 수도 양곤 시내를 약 반년에 걸쳐 100만 명의 시위대가 장악하며 일종의 ‘해방구’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8월 8일에 그 분위기가 최고조를 이루었다고 해서 ‘8.8.88 시위’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그 끝은 한국과는 사뭇 달랐다. 직전 독재자 네윈은 사임을 했지만 막상 군부의 핵을 이루는 장군들은 권력을 넘겨주기 싫어 거리로 나온 시위대 수천 명을 사살함으로써 ‘신군부’의 집권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미얀마 군부가 1988년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내건 조건이란 게 “1990년 공정하게 선거를 진행해 승자에게 권력을 이양한다”는 것이었다. 사뭇 엊그제 쿠데타에서 군부가 내건 조건을 빼다 박은듯한 당시 약속은 당연히 지켜지지 못했다. 1990년 아웅산 수찌의 야당이 압승을 했지만 군부는 권력 이양을 무려 20년 넘게 거부한 것이다. 그렇게 결국 반세기에 이른 2011년에서야 경제실패를 자인한 군부가 달라진 국제정세 바람을 타고 극적으로 개방에 합의하면서 국가적 전환이 시작된 셈이다.

미얀마 양곤에서 저항에 나선 시민들. SNS에서는 쿠데타에 불복한다는 의미를 담은 ‘세이브미얀마'(#SaveMyanmar),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FightForDemocracy)’ 등의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올라오고 있다. (사진=트위터)

동남아국가 쿠데타…언제 어디서든 가능

그런데 동남아 지역에서 “쿠데타”라고 하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나라가 이웃 태국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태국은 평균 4년에 한 번꼴로 군사쿠데타가 일어날 정도로 군부의 발호가 잦은 나라다. 당장 2014년 쿠데타를 일으킨 프라윳 총리가 6년 넘은 지금까지도 권좌를 지키고 있으니 말이다. 시위대가 거리를 점령하면 경찰보다 오히려 군대가 출동해 태국 왕실을 호위할 정도다. 군부의 장기집권과 정치참여가 미얀마만의 특별한 사례는 아니라는 얘기다.

‘아세안’ (동남아국가연합)으로 불리는 동남아 지역에서 군부의 뚜렷한 존재감은 보편적 현상이다. 캄보디아의 경우도 군인 출신 훈센 총리가 1985년 이후 독재에 가까운 방식으로 35년간 권좌를 지키고 있는 중이다. 공산당이 이끄는 베트남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인도네시아만 해도 수하르토를 정점으로 하는 군부정치가 1966년부터 1998년까지 32년 넘게 유지된 적이 있다. 필리핀의 마르코스도 군인 생활을 꽤 오래 했었다. 아세안에서 군부 정치는 주류라고 할 정도로 엘리트 시스템의 핵심을 차지한다.

왜 군부가 전후 아시아 정치를 관통하는 주된 흐름이 되었을까?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듯이, 아세안의 군부가 제국주의로부터 나라를 지켜내는 꽤나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제국주의에 협력을 했던 관료나 정치인, 경제인보다 국가를 대표할 만한, 훨씬 더 뚜렷한 ‘정통성(legitimacy)’을 지녔기 때문이다. 베트남이나 중국의 공산당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수 있다. 제국주의와 맞서 싸운 세력이 바로 현 군부의 모태가 되었고 이후 상당 기간의 장기집권을 통해 정치적 기반을 탄탄이 쌓았다. 미얀마가 바로 그런 대표적인 케이스다. 아웅산 수찌의 아버지인 독립운동가 아웅산 장군이 바로 미얀마 군대의 토대를 닦은 주인공이었다. 그 유산이 둘로 나뉘어 그의 후배인 군대와 혈연관계인 딸에게 직접 연결이 된 셈이다.

1980년대 이후 줄곧 미얀마의 정치체제를 연구해온 로버트 테일러(Robert Talyor)는 막연한 군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정면으로 도전한 바 있다. “경제 및 사회개혁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미얀마 군부는 독립 이후 허약한 정치와 경제를 대신해 사실상 국가기구를 지탱해온 거의 유일한 기관(institution)”이라고 평가한 것이다. 그동안 미얀마 군부가 지키고 넓혀온 법과 질서, 나아가 연방과 주권(主權)의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군대를 중심으로 밖으론 외세와, 안으론 공산주의 및 소수민족과 싸우면서 현대국가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은 따지고 보면 한·중·일을 포함한 아시아 전 지역의 현대사와 크게 맞닿아 있는 동질성이라고 하겠다.

군부는 개혁개방에 왜 불만일까?

그럼에도 이번 미얀마 쿠데타는 여러모로 미스터리다. 가능성이야 언제든지 있었다지만 코로나19 유행으로 나라 경제가 최악으로 치닫고, 사람들의 이동까지 극도로 통제된 상황에서 쿠데타라는 정치적 격변까지 상상할 사람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그 동기에 대해서는 세 가지 요인이 거론되고 있다.

첫 번째는 군부독재의 회복력, 즉 ‘오랜 습관설’이다. 둘째는 ‘소외에 대한 복수설’이다. 2016년 집권 이후의 아웅산 수찌의 행보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전임 정부가 시작한 경제개혁의 범위를 확대해 외국인에 문호를 개방하고 관광산업을 육성했다. 또한 국민 생활수준 향상을 위해 군부정권과 달리 전기, 도로, 교육 등의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렸다. 그 과정에서 군부를 명확하게 차별해 소외시킨 정황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수찌 정부는 발전소를 지을 돈이 없어 전전긍긍했을 뿐 군부의 예산을 빼앗아서 쓰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예산은 물론 인사권조차 침해해본 적이 없다. 미얀마 군부는 전례대로 자신의 지분을 보장받고 뚜렷한 권위를 지속적으로 누려온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난 5년간의 권력교체 이후의 막전막후를 보면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게 많은 미얀마 전문가들의 평가다. 미얀마 군부는 지난 50년간 나라 운영을 독점하며 국가의 부를 사실상 독점해 온 말 그대로 최고의 기득권세력이었다. 특히 보석과 천연가스 등의 지하자원과 리조트, 호텔 등의 이권 관련 시설이 바로 그것이다. 미얀마에서 정부의 인허가가 필요한 사업을 하려면 당연히 군부에 줄을 대고 막대한 로비를 해야 했던 게 오랜 관행이었다.

군부는 최근 10년간 이런 사업들을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지가 상승과 사업면허를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그것으로 권력에서 멀어진 보상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실제로 미얀마 군부는 통신, 건설, 시멘트, 호텔, 출판 등 거의 모든 사업에 진출했을 정도로 사실상 재벌에 가까운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 사업의 운영과 탈세, 면허 연장, 이권 다툼, 검찰 수사 같은 여러 분야에서 민간 정부와 충돌을 빚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 사례를 보여주는 기사가 영자지 <아시아 타임스>에 보도됐다. 바로 2월 5일에 실린  ‘Following the money behind Myanmar’s coup(미얀마 쿠데타 배후의 돈)‘인데, 이미 널리 알려진 내용이기도 하다. 이 기사에서는 “쿠데타의 진짜 이유는 군부의 이익 극대화와 더불어 흘라잉 총사령관 집안을 비롯 군부 사업가들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는 설명을 펼쳐 놓는다. 이 같은 “사적인 이익”이 현상을 100% 설명해줄 순 없지만, 현재 진행 중인 개혁개방 과정을 둘러싸고 군부세력과 민주화세력 사이에 꽤나 치열한 주도권 다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2017년 4월 10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틴 쩌 미얀마 전 대통령과의 회담에 참석했다. (사진=AP/연합뉴스)

중국 배후설…‘일대일로’와 군부 밀착

미얀마와 한국은 서로 닮은 점이 많은 나라다. 특히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국경을 맞댄 나라라는 점이 공통점인데, 미얀마는 인도와 중국 사이에 있고, 한국은 일본과 중국의 사이에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1990년대 미얀마가 민주화 시위를 짓밟은 대가로 전 세계로부터 강력한 경제제재(sanction)를 받자 이를 구원해 준 나라가 중국이다. 이는 북한을 경제적으로 지원해 체제가 몰락하지 않게 적절하게 관리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미얀마 경제가 완전히 몰락한 1990년대 이후 그나마 나라 꼴을 갖추고 돌아간 배경이 바로 중국이라는 얘기다. 게다가 미얀마에서 거의 대부분의 군부 지도자들은 로힝쟈족 학살과 여러 소수민족 탄압으로 인해 서방세계 입국이 금지될 정도로 국제사회와 척을 지고 살았다. 그러한 미얀마 군부의 자존심을 살려주고 중국이 관계의 끊을 놓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런 경향이 강화된 계기가 바로 2013년 본격화된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다.

중국에게 미얀마는 인도양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목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벵골만에는 천연가스와 지하자원도 풍부하다. 이를 연결해 중국의 배후로 연결하는 게 중국의 전략적 목표가 되었다. 쿠데타 발생 후 중국 배후설이 나온 핵심 포인트는, 중국 입장에서 미얀마와 같은 주요 요충지에서 서구 민주주의의 가치를 옹호하는 아웅산 수찌보다 오랜 시간 우의를 다져온 군부의 집권이 더 반갑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중국이 미얀마에 쏟는 관심과 애정은 지나치다고 말할 정도다. 시진핑은 물론이고 왕이(王毅) 외교부장도 미얀마를 수시로 드나들었고, 2010년 이후 미얀마의 주요 도시에서는 사업 기회를 찾아온 중국인들로 넘실댈 정도였다. 실제로 대도시의 부동산 가격도 10배씩 폭등하고 또 폭락하는 기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민생정치’의 진짜 실력을 경쟁할 시기

2월 1일 전 세계가 난데없는 쿠데타 소식에 당황한 이유는 개혁개방을 선택한 미얀마의 국가 진로에 쿠데타가 절대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쿠데타는 상당히 시대착오적인 움직임으로 읽힌다. 과거의 원죄는 차치하더라도 코로나19로 촉발된 경제위기 책임까지 군부가 다 짊어지면서까지 권력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번 쿠데타는 역설적으로 미얀마가 처한 정확한 정치적 현실을 세계 만방에 알린 셈이 되었다. 예를 들어 지난 2~3년간 서방세계가 로힝쟈 사태에 대한 비난을 엉뚱하게 국가고문인 아웅산 수찌에게 쏟아부은 게 대표적 사례다. 군사적, 경제적 실권을 쥔 것은 수찌 여사가 아니라 군부세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제부터는 군부와 민주화세력 모두가 새로운 판에서 경쟁을 시작하게 된다. 정국 혼란 속에서 국정 운영의 진짜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시기를 맞은 것이다. 군부세력은 민주화세력 못지않게 미얀마 경제를 발전시키고 국민생활수준을 효율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까?

쿠데타 발생 후 가장 분노한 사람들은 젊은이들과 한창 돈 버는 재미에 빠진 대도시의 중산층들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SNS와 온라인 메신저 등에서는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군부에 대항할 것인지에 대한 아이디어와 제안들이 넘쳐난다. 과연 군부는 지난 10년간 개혁개방의 과실을 맛본 미얀마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민생정치를 펼칠 수 있을 것인가? 아웅산 수찌를 포함한 민주화 세력은 시민들을 효과적으로 조직해 다시금 권력을 평화적으로 되찾아올 수 있을 것인가? 이번 쿠데타 이후 상황은 동남아시아 정치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적절한 사례가 될 것이다.


정호재/ 아시아연구자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사에서 짧지 않게 기자생활을 했다. 동북아, 동남아, 남아시아를 두루 답사하며 태국의 탁신, 말레시아의 마하티르, 캄보디아의 삼랑시 등 각국의 지도자들을 만났다. 번역서로 《탁신-아시아에서의 정치비즈니스》, 《수상이 된 외과의사-마하티르 자서전》이 있으며, 최근 《아시아 시대는 케이팝처럼 온다》를 펴냈다. 싱가포르와 미얀마 등을 오가며 연구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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