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걱정도 있었다. 이원종 전 수석은 어쨌든 상당히 오래전에 대통령을 지낸 고 김영삼(YS) 의 복심이다. 20여 년 전 일선에서 퇴장한 YS 코드로 2018년을 얘기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90년대 코드는 이 시대에도 상당히 맥락이 닿아 있는 느낌이다.

이 전 수석은 3당합당을 보수의 진화, 보수정당의 스펙트럼을 넓힌 사건으로 규정했다.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합쳐서 거대 보수정당을 만들었는데, 이를 통해 보수정당을 개량하거나 혁신하는 일을 잘해놨는데, 이후 후속적인 노력이 없어서 오늘날 대 참패를 맞았다는 것이다. YS 진영이라는게 오늘날 존재하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하의 YS나 YS의 유일한 대변자로 통하는 이 전 수석 입장에서는 할 만한 얘기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서 가혹했다. “왜 정치를 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 전 수석의 발언에서 앞으로 자유한국당 내에서 노선 투쟁이나 주도권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란 느낌을 받는다. 간접적으로나마 박정희-전두환의 영향을 받은 계열과 김영삼의 영향을 받은 계열, 또는 냉전 보수냐, 해빙을 인정하되 시시비비를 따지는 보수냐의 투쟁이다. 자유한국당이 패배→ 위기→ 내부투쟁→ 리더십과 노선의 재정립에 나서야 하는 배경에는 이명박, 박근혜의 실정(失政), 지지기반의 자체 와해도 있지만 북한의 3세 김정은과 미국의 ‘돌발’ 대통령 트럼프,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주도하는 한반도 평화체제로의 전환이 더 크다. 이 전 수석의 답변에서는 북한과 미국의 ‘변심’에 대한 중도보수 또는 기득권계층 입장에서의 해석과 그럼에도 숨길 수 없는 당혹스러움이 묻어 나온다.

 

“북한은 전쟁할 수 없는 상황이니까 안한다고 본다. 지금의 북한이 국제무대로 나오는 것은 그만큼 내부모순이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미국 사람들이 그를 뽑았다는 사실만으로 미국의 품격이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자유와 평등, 개방성을 회복해야 한다.(중략) 트럼프를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내야 미국이라는 나라의 존재 이유가 있다고 본다.”

 

이 전 수석은 정치와 정치 지도자의 덕목에 관해 일관된 생각을 갖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도자가 아닌 국민들이 만들어왔으며, 정치는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것, 정치인은 공익적 가치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특히 지도자의 탄생에는 본인의 적극적 자세를 주문한다. <피렌체의 식탁>이 인터뷰에 앞서 이 전 수석과 중국 음식을 먹으며 진짜 식탁을 같이 했을 때 그는 이런 얘기를 했다. “리더라는 게 당돌해야 해, YS가 40대 기수론을 내세울 때가 40대 초반이야, 지금은 40대를 애 취급하지. 그걸 딛고 일어나려면 당돌한 면도 있어야 해.”

 

비가 막 오기 시작해 아스팔트나 풀밭에 빗방울이 떨어질 때 나는 냄새가 있다. 비릿하면서 신선한. 이 전 수석과의 인터뷰를 마치자 그런 비 냄새가 느껴졌다. 앞으로 몇 년, 적어도 다음 총선까지는 보수야당내 치열한 투쟁이 벌어지겠구나 하는 느낌이 비 냄새처럼 다가왔다.

 

김현종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