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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귀동 칼럼] ‘公共善 자본주의’가 한국 보수에게 주는 화두

By | 2021년 1월 27일 | 국제, 정책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마코 루비오(Marco Rubio) 미국 상원의원. (사진=EPA/연합뉴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최근 당 소속 의원과 당직자들에게 ‘Marco Rubio의 공공선 자본주의와 좋은 일자리’란 보고서를 돌려 화제를 낳았다. 10쪽 분량의 이 보고서는 미국 상원의원(플로리다 주)인 마코 루비오(공화당, 49세)가 2019년 11월 ‘퍼블릭 디스코스’지에 기고한 글을 번역한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평생 화두로 삼아온 김종인 위원장이 보수개혁의 새로운 활로를 공공선 자본주의에서 찾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치 양극화와 경제 불평등은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가 부닥친 거대한 화두가 됐다. 보수든 진보든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대안을 찾아야 할 때다. 조귀동 필자는 루비오의 공공선(공동선) 자본주의의 논리와 내용, 그리고 정치적인 함의를 소개한다. 필자는 한국의 보수진영이 유권자 고립현상을 탈피하기 위해 중도를 향한 좌클릭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한다. [편집자]

#김종인, ‘루비오 보고서’ 돌린 이유
  ‘공공선 자본주의’로 이념 전선 확장?
#’좌회전’ 아닌 新보수 정책 제안
  기업 세제 개편, 산업 경쟁력 강화
#존엄한 일자리와 가족의 가치 강조
  ‘보수 외면’ 중산층을 돌려세울까
#한국, 적극적 무당층 ‘노웨어’ 형성
  4월 보선 승패 떠나 보수 재편 불가피

김종인 위원장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부각했다. 그로부터 9년 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4월)를 석 달 앞두고 김 위원장이 공공선 자본주의란 화두를 던져 보수의 이념 전선을 가다듬고 있다. 특히 올 하반기에는 2022년 대선 이슈 경쟁도 본격화될 거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다른 경제 철학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라는 뜻에서 보낸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이 보고서는 루비오 상원의원의 인터넷 매체 기고문(읽어보기)을 번역한 것이다. 구체적인 정책을 제안하거나 명확한 경제 철학을 제시한 게 아니다. 이것만으로는 경제민주화론(論) 수준의 어젠다로 연결되기 어렵다. 루비오가 ‘트럼프 이후 시대’의 공화당에서 보수의 신주류가 될 지도 아직 미지수다.
공공선 자본주의(Common Good Capitalism)라는 개념은 아직 미국 보수진영 내부의 논의에 그치는 수준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 보고서가 주목받는 이유는 한국의 보수 진영도 기술발전과 세계화로 인한 양극화 속에서 새로운 정치적 대안을 내세워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트럼프주의(Trumpism)와 유사한 경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인종주의와 대중추수주의가 결합된 극우 정치 세력이 보수 주류 자리를 계속 장악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또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를 전후해 불평등 심화, 4차산업혁명 진전, 디지털경제 가속화가 분명해지는 현실에서 보수-진보 모두 그에 대응하는 정책과 이데올로기를 확보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중도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새로운 이념적 포지션과 정치철학을 모색해야 할 처지다.

공공선 자본주의는 단순히 시장이 공동체를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내용에 그치지 않는다. 후술하겠지만 정부의 강력한 산업정책을 기반으로 한다. 그것의 포인트는 기업이나 산업의 이익이 아니라 질 좋은 일자리의 대규모 창출, 즉 중산층 육성이라는 것이다. 보수 정당이 전통적으로 강점을 갖고 있는 ‘가족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중도 포섭 전략을 통해 뉴욕,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등 대도시의 민주당 지지 엘리트들에 대항하는 정치 블록을 만들어내자는 게 루비오의 핵심 주장이다.

아메리칸드림 붕괴…“시장은 국민·국가 위한 것”

공공선 자본주의가 미국 공화당 내부에서 제기된 것은 2019년 11월 루비오 상원의원이 워싱턴DC 소재 미국가톨릭대학에서 ‘가톨릭 사회 정책과 일의 존엄성(Catholic Social Doctrine and the Dignity of Work)’란 주제로 연설을 하면서다. 루비오는 이날 연설과 동시에 미국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위더스푼인스티튜트(Witherspoon Institute)가 운영하는 인터넷매체 퍼블릭디스코스에 연설내용을 담은 에세이를 기고했다.

그는 공공선 자본주의를 “근로자들이 의무를 다하고 직업에서 오는 혜택을 향유할 수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 기업들은 이윤을 낼 권리를 향유하고 미국인들에게 존엄한 일자리(dignified work)를 창출하도록 충분한 규모의 이윤을 재투자하는 자유기업체제(system of free enterprise)”라고 규정한다.

이 문장에서 세 가지 핵심 요소가 드러난다. ▲경제 운용의 핵심 목표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고 ▲목표 달성 수단은 미국 기업의 자국 내 투자이며 ▲자유로운 영리활동의 보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적극적인 예산 투입 및 조세정책을 통해 미국 기업들이 자국 내에서 일자리를 만들어내도록 유도 또는 견인해야 한다는 얘기다. 다방면의 산업·통상 정책도 동원하게 된다. 정부 정책의 목표가 자유로운 시장질서 유지가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능동적으로 개입하는 국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루비오는 2016년 대통령선거 당시까지만 해도 전통적인 공화당의 노선을 그대로 걸어갔다. 그가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 펴낸 정책 제안서인 ‘아메리칸드림을 다시 요구하기(Reclaiming the American Dream)’는 이를 잘 보여준다. 빈곤퇴치정책은 주(州) 단위 예산 자율성 강화, 근로장려세제(EITC) 확대였으며 일자리 정책은 주로 고등교육 확대를 통한 근로자 역량 향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고 산업 관련 정책은 “미국을 기업들이 가장 투자하기에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는 내용이었다. 쿠바 이민자 2세로 자수성가에 성공한 자신의 이미지를 십분 활용하겠다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었다.

그런데 3년 후 2019년 연설에서 그는 미국인을 향해 아메리칸드림이 사라진 나라가 됐다고 강조한다.
“1956년 미국에 오셨던 제 부모님처럼 가난하고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이민자들이 존엄한 일자리를 구하고, 살 집을 마련하고, 가족을 양육하고, 네 명의 자녀를 그들보다 더 나은 조건에서 살 수 있도록 했던” 예전의 미국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가 가장 문제삼는 것은 미국 기업들이 금융자본에 예속됐다는 것이다.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뒷전으로 미루고 주주가치 극대화에 골몰하면서 최상위 1%만 이득을 보고 있다는 진단을 내린다. 루비오는 “대기업들이 이윤 창출에만 집중하고, 미국에 재투자해야 한다는 의무를 망각하면서 주주, 경영자, 권리 관계가 있는 은행을 위한 돈벌이 수단(financial vehicle)으로 전락하게 됐다”고 강도 높게 비판한다.

루비오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는 배경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계속되는 양극화와 함께 임금·일자리 격차 확대가 자리잡고 있다. 세계불평등데이터베이스(WID)에 따르면 미국의 최상위 1%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76년 10.2%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18.4%로 뛰었다. 2018년 이 비율은 18.9%였다.
반면 중산층이라 할 상위 11~50%의 비율은 1976년 45.7%에서 2018년 41.0%로 4.7%포인트 줄었다. 하위 50%의 소득 몫은 더 격감해 같은 기간 20.6%에서 13.5%로 7.1%포인트나 쪼그라들었다.

루비오는 양극화 심화 원인에 대해 “미국에 나쁜 경제 질서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조지아 주의 가구공부터 펜실베이니아 주의 공구 공장 근로자에 이르는 사람들의 삶은 기업들이 이익을 좇아 그들의 일자리를 해외로 보내버리고, 그들의 일할 권리를 무시하면서 뒤집혀버렸다”는 것이다. 고졸 백인 중산층들에게 ‘존엄한 일자리’를 주었던 전통적인 미국 경제가 독과점 기업과 금융자본의 독주 때문에 무너졌다는 얘기다.

정치적 목표: ‘엘리트 vs. 대중’ 전선 구축

루비오는 여기서 정치적 전선을 구축하려 한다. 한쪽엔 뉴욕, 워싱턴DC,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등 부유하고 세계화되어 있으며, 세련된 메트로폴리스의 엘리트, 즉 민주당 지지층이 있다. 다른 한쪽엔 오대호 연안, 애팔래치아 산맥 기슭, 남부 선(Sun)벨트의 평범한 미국인들을 상정한다. 그러면서 양쪽의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것을 이렇게 부각시킨다.
“금융·미디어 엘리트의 본거지인 뉴욕, 엔터테인먼트 엘리트의 본거지 로스앤젤레스, 정치 엘리트의 본거지 워싱턴DC를 중심으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신경제(new economy)로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그들이 사는 번영하는 좁은 구역(these pockets of prosperity)은 그 바깥의 수백만 명의 분노한 미국인 사이에 끼어있고 고립되어 있다.”

루비오는 “좁은 공간에 갇혀 있는 엘리트들이 갖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관점(view)은 그들에게 잊혀지고 뒤에 남겨졌다고 느끼는 수많은 사람들과 매우 상이하다”고 지적한다. 한 발 더 나아가 “미국 중산층의 전통적인 가치를 후진적이라고 지속적으로 조롱하며, 심지어 인종주의적이라고까지 한다”고 설파한다.

 

2020년 미국 대선 결과를 시·군·구에 해당되는 카운티별 득표율로 그린 지도(오른쪽 위)와 카운티별 인구에 맞춰 면적을 조정한 카토그램으로 그린 지도(가운데). 공화당(트럼프)의 우세지역은 대도시 외곽, 내륙의 중소도시, 농촌 지역에 몰려있다. (출처=월드매퍼)

루비오의 공공선 자본주의는 단순히 중산층의 일자리를 복원하는 정책이 아니다.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양극화가 심해지는 미국 현실에서 트럼프주의와 다른 방식으로 내륙 중소도시의 유권자들을 동원하겠다는 일종의 새로운 정치전략에 가깝다.

끊임없이 ‘가족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도 공공선 자본주의의 특징이다.
루비오는 “가족이야말로 미국에서 가장 기본이 되고 가장 중요한 제도이지만 ‘존엄한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가족이 쪼개지고, 빈곤에 시달리며, 혼인율과 출산율이 하락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2000년대 중후반을 거치면서 사라지다시피 한 공화당의 전통 가치관을 주춧돌로 삼는 모습이다.

공공선 자본주의의 이런 구조는 루비오가 가톨릭 가치관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과 상당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그는 지난 1891년 교황 레오13세가 발표한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회칙과 레오13세가 교황이 되기 전 쓴 글을 주요하게 인용한다. 레오13세는 19세기 후반 극심해진 양극화와 자본-노동의 대립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당시 세력을 넓혀가던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한편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했다. 레오13세는 기업과 노동자가 상호의존적이며, 상대방에 대한 권리-의무를 함께 갖는다고 봤다. 또 “정의는 노동계급의 이해관계에 대해 정부가 면밀히 살필 것을 요구한다”며 자본-노동 양쪽의 ‘조화’를 위해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루비오의 글을 실은 퍼블릭디스코즈와 이 매체를 운영하는 위더스푼인스티튜트도 기독교적 가치관에 기반한 싱크탱크다.

철강업계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지켜달라고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미국 제조업 연합)

정책 처방: 새로운 산업국가 모델

루비오의 제안은 단순한 ‘정책상 좌회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 보수 진영의 가치관에 입각한 새로운 산업정책과 노동정책을 제안한다.

루비오는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미국가톨릭대 연설을 게재하면서, 동시에 두 개의 다른 보고서를 소개했다. 하나는 ’21세기 미국의 투자: 강한 노동 시장과 국가 발전을 위한 계획‘ (American Investment in 21st Century: Project for Strong Labor Markets and National Development) 이다. 또 하나는 ‘중국 제조2025와 미국 산업의 미래’ (Made in China 2025 and the Future of American Industry)다.
2020년 4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우리는 좀 더 회복력 있는 경제를 필요로 한다’ (We Need a More Resilient American Economy) 라는 글에서 루비오는 “지금까지 잘못된 정책의 결과로 우리의 제조업 기반은 심각하게 약화됐다”며 단적으로 코로나19에 필요한 물품을 중국에 의존하는 상황을 그런 사례로 들었다.

‘21세기 미국의 투자’ 보고서에서 루비오는 미국 기업들의 자국 내 설비투자가 부진한 이유로 “잘못된 제도 설계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주주 배당, 자사주 매입, 공장 해외 이전 등에 설비 투자보다 훨씬 더 많은 인센티브가 주어져 미국의 탈(脫)공업화가 가속화되었다는 얘기다. 루비오가 제안하는 정책의 선두에 기업 세제 개편이 자리잡은 이유다.

루비오는 이어 국가 주도의 첨단산업 육성과 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책의 목표는 1969년의 경제를 되살리는 게 아니고, 21세기 경제 여건에 걸맞는 성장 엔진을 장착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항공우주, 통신, 자율주행차, 에너지, 수송, 주거 분야에서 경쟁력 강화를 주문한다. 중소기업부를 개혁해 중소 제조업체의 경쟁력 강화에 중앙정부가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역설한다.

교육, 양육 등과 관련해선 좀 더 적극적인 정책 개입으로 가족을 유지할 수 있게 지원하자고 주장한다. 이들 영역에서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거라는 믿음을 버리고, 정부가 사회적 조화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루비오는 중국에 대해 ‘경제적 경쟁자를 넘어서서 미국과 대립관계일 수밖에 없는 체제·이념을 가진 국가’로 묘사한다. 옛소련에 대항했던 냉전기처럼 미중 체제 경쟁에서 꼭 승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수 외면’ 중산층을 돌려세울까

공공선 자본주의는 트럼프 이후 시대에 공화당과 보수 세력의 진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오런 캐스 맨해튼연구소 연구원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기고한 글에 “아무런 지적 기반도 만들지 않고 물러난 트럼프 전 대통령 이후 공화당의 진로를 둘러싼 갈등에서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공화당의 양대 조류는 자유경제를 그 자체로 지켜야할 것으로 보는 자유지상주의 (libertarian)와 일종의 수단으로 간주하는 보수주의 (conservative)인데, 공공선 자본주의는 보수주의의 대표적인 갈래로 평가된다.

그래서인지 이념 노선 경쟁을 의식한 당내 반발도 만만치 않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유엔 대사를 역임한 니키 헤일리의 경우 “사회주의로의 느린 길”이라며 직설적으로 ‘색깔론’을 제기했다. 팻 투미 상원의원(펜실베니아)은 “전통적인 중도 우파 컨센서스 안에 숨겨진 단검”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문제는 2020년 대선에서 공화당이 경합주(州)는 물론 전통 텃밭에서 패배해 당 내부에서조차 정책노선 전환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조지아 주 상원의원(2석) 선거에서의 민주당 승리는 해당 지역의 경제 발전과 외부인구 유입 증가로 인한 유권자 구성 변화에 힘입은 것으로 풀이된다. 설상가상으로 오대호 연안의 제조업 쇠퇴지역도 민주당 지지로 다시 돌아섰다. 백인 인구 비율 하락과 함께 백인 여성 유권자의 공화당 이탈 등도 주요 요인이 됐다.

한국의 보수 개혁에 시사하는 점

미국 공화당 못지않게 한국의 보수정당도 새로운 노선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다. 중앙일보는 지난해 말 ‘한국 보수의 쇠락’을 분석하는 일련의 기획기사를 통해 ▲가치상실 ▲세대고립 ▲지역고립 ▲인재고립 ▲계급고립의 5중고를 겪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한국갤럽의 주간 정례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는 지난 1월 셋째 주(1월 19~21일) 54%까지 올랐지만, 국민의힘 지지율은 23%로 거의 쭉 20% 초반에 갇혀있다. 안철수의 국민의당 지지율도 5%로 예전(3~4%대)과 큰 차이가 없다. 예컨대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여당 심판론’이 강하지만, 정작 보수 야당의 지지율은 답보상태를 면치 못한다.

요즘 한국의 보수 정당이 겪는 가장 큰 난제는 중산층, 대졸자, 청년층이 외면하는 정당이 됐다는 것이다. 2020년 4월 총선 당시 위성비례정당이었던 미래한국당의 서울 시내 동(洞)별 득표율과, 해당 동의 아파트 면적당 평균가격을 비교하면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를 제외하면 득표율이 대부분 지역에서 30~39% 사이에 몰려있다. 특히 준(準)강남이라는 광진구, 동작구, 마포구, 용산구, 성동구 등의 득표율은 그보다 집값이 낮은 지역과 거의 비슷한 수준에 머문다.

대졸자 지지율의 경우 2002년 대선 때 31.7%에서 2007년 대선 때 51.8%로 높아졌다가 2016년 총선 당시 21.9%로 추락했다. 문제는 2020년 총선에서도 24.9%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잘 교육받고, 괜찮은 직업을 갖고 있고, 중산층 거주지역에 사는 대졸자들이 보수정당을 외면하는 모양새다. 한때 보수의 새로운 주력군이 될 것이란 기대를 받았던 ’20대 남성’의 경우 2020년 12월 국민의힘 지지율이 13%를 기록해 더불어민주당(25%)의 절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20대 여성은 6%에 불과하다. 이렇게 중산층과 청년층의 외면을 받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결국 쇠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집권여당의 확실한 우위가 지속되는 상황도 아니다. 2019년 하반기부터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 정치세력의 지지율은 경제구조 변화, 불평등 강화에다 일련의 사회경제적 사건들을 겪으면서 급격히 흔들렸다. 조국 사태를 둘러싼 상위 중간계급의 행태, 집값 폭등에 따른 계층 격차 확대, 코로나19 이후 양극화 심화 등이 바로 그것이다. 심지어 20~30대의 결혼 거부와 저출산도 해당 세대의 경제 여건 악화 및 불평등 심화가 핵심 원인으로 작용 중이다.

요컨대 한국의 양대 정당은 노동시장 변화, 자산격차 심화, 교육·취업·주거·결혼·출산 등에서 유권자들이 원하는 적절하고 적합한 정책 처방과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에 실망했지만, 그렇다고 국민의힘을 찍는데 거부감을 느끼는 “적극적 무당층”이 큰 집단으로 버티게 된 이유다. 소외당한 ‘노웨어(nowhere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이)’의 불만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4월 보궐선거에서 설혹 범야권이 승리한다 해도, 보수 세력 재편이 불가피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공공선 자본주의라는 어젠다가 한국정치에서 주목받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조귀동 필자

12년차 직장인. 서강대 경제학과 박사과정 재학 중이다. 기업 활동이 노동시장과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인적자본 투자의 양상을 연구하고 있다. 사회 갈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대나 문화 같은 것보다 먼저 하부구조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저서로는 «세습 중산층 사회», «2020 한국의 논점»(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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