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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의 ‘리더의 말과 글’] 22세 계관시인은 어떻게 ‘취임식’을 훔쳤나

By | 2021년 1월 25일 | 박상현의 '리더의 말과 글'

미국의 초대 청소년 계관시인이었던 어맨다 고먼이 지난 20일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서 자신의 자작시인 ‘우리가 오르는 언덕’을 낭송하고 있다.(사진=AP/연합뉴스)

지난 20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조 바이든 제 46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렸다.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의 폭력적인 지지자들 탓에 행사가 무사히 열릴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또한 미국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소수인종 부통령인 카말라 해리스의 취임이라는 역사적 의미도 주목할 만했다. 하지만 정작 취임식 이후에 스포트라이트는 취임식 단상에 올라 시(詩)를 낭송했던 젊은 시인에게 쏠렸다. 영국의 가디언은 22세 시인의 시가 “취임식 행사를 훔쳤다”고도 했다. 이는 과언이 아니었다. 온라인에서는 사람들이 일제히 어맨다 고먼(Amanda Gorman)을 검색했고, 각종 매체가 고먼의 시를 게재하고 분석하며 흥분했다. 도대체 이 시인은 누구였고, 어떤 시를 쓰고 낭독했길래 그랬을까?

취임식의 ‘깜짝 스타’ 어맨다 고던

우선 계관시인(Poet Laureate)이라는 개념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계관’은 월계관을 의미하고, 말 그대로 월계관을 쓴 시인이 계관시인이지만, 이는 하나의 직책이다. 왕실, 혹은 국가가 선정한 시인으로 일정한 임기를 가지고 있고, 국가적인 경조사가 있을 때 이를 기념하는 시를 쓰는 임무, 혹은 영예를 갖게 된다. 미국에서는 각 주별로 계관시인을 임명하고, 연방정부도 임명하는데, 후자의 경우 미의회도서관에서 매년 선발한다. 현재 미국의 계관시인은 조이 하조(Joy Harjo)가 맡고 있다. 하지만 바이든 취임식 준비위원회는 연륜이 많은 하조에게 시를 맡기지 않고 어맨다 고먼이라는 젊은 흑인 여성 시인에게 맡겼다.

어맨다 고먼은 2017년, 미의회도서관이 ‘청소년 계관시인(Youth Poet Laureate)’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면서 19세 나이로 선발된 미국의 초대 청소년 계관시인이었다. 지금은 임기를 다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내려왔지만, 이번 대통령 취임식에서 시를 쓰고 낭독해달라는 의뢰를 받게 된 것이다.

민주당 정부 ‘계관시인 초청’ 전통 잇기

한국 언론에서는 어맨다 고먼이 시를 낭독하면서 손동작을 많이 사용한 것을 특이하게 생각하고 관심을 보였지만, 사실 요즘 영미권의 젊은 시인들 사이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큰 인기가 있는 포에트리 슬램(poetry slam)은 래퍼들의 힙합 문화와 시인들의 창작, 낭독이 만나 탄생한 흥미로운 이벤트인데, 여기에 등장해서 경쟁하는 시인들의 모습(영상)을 보면 고먼의 손동작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젊은 시인들에게 시는 단순히 종이에 써서 책으로 출판하는 단순한 문학을 떠나 무대예술이기도 하고, 때로는 음악과 만나(영상) 종합예술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역사상 가장 나이가 많은 대통령, 그것도 백인 남성 대통령이라는 약점을 가진 바이든의 취임식에 흑인여성 시인, 그것도 젊고 역동적인 시 문화를 대표하는 어맨다 고먼을 선택한 것은 탁월한 결정이었다.

취임식 때 시인을 초청해 시를 낭독하는 것은 민주당 대통령들이 주로 이어온 전통이기도 하다.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식 때 ‘가지 않는 길’로 유명한 로버트 프로스트가 시를 낭송한 것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전통적인 엘리트 교육을 받은 케네디 가문의 형제들이 여러 연설에 고전 시인들의 구절을 넣었던 것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빌 클린턴 때는 마야 앤젤루가 등장했고, 오바마 대통령도 시인을 초청했을 뿐 아니라, 대통령이 된 후에는 백악관에서 포에트리 슬램을 개최하는 등 문학을 이해하는 지적인 대통령의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취임식 훔친 5분 38초  ‘우리가 오르는 언덕’ 

어맨다 고먼은 바이든 대통령처럼 어린 시절에 말을 더듬는 증상이 있었을 뿐 아니라, 청각 신호를 처리하는 데 장애가 있고 소리에 지나치게 민감하다고 알려져 있다. 2018년 인터뷰를 보면 어릴 때부터 말하기 치료를 받았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의 신체적 불편을 장애로 인식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받은 재능이나 강점으로 여긴다. 취임식에서 시를 낭독하는 고먼의 모습(영상)을 보면 이런 고먼의 태도는 어떤 꾸밈이 아니라 분명한 사실임을 누구나 깨닫게 된다. 그만큼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다.

고먼이 지난 20일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서 자신의 자작시인 ‘우리가 오르는 언덕’을 낭송하는 모습(사진=AP/연합뉴스)

아래는 취임식에서 5분 38초간 고먼이 낭독한 자신의 시 ‘우리가 오르는 언덕(The Hill We Climb)’을 번역한 것이다. 영어로 된 시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워낙 언어학적으로 거리가 먼 언어들이라 그렇다. 서로 공유하는 어휘나 개념이 적을 뿐 아니라, 서로 사용하는 수사법도 크게 달라 풍부한 시적 장치들이 번역과 함께 사라지기(lost in translation)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시를 번역하기로 한 이유는 가디언의 표현대로 취임식을 훔칠 정도로 워낙 화제가 된 시였을 뿐 아니라, 트럼프 시대에 분열의 상처를 받은 미국인들을 치유하는 시였고, 그만큼 훌륭한 문학 작품이어서다.  번역문에서 이 시가 가진 아름다움이 사라진 것은 전적으로 필자에게 책임이 있다. 다만, 일상적인 영문기사를 읽을 수 있는 독자들이 시라는 장르가 가진 특성으로 이 시를 이해하는 데 겪는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돕고 싶었다.

따라서 번역문은 전적으로 의미를 가장 가깝게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운율과 리듬, 표현의 아름다움은 동영상을 보면서 영문을 읽으며 직접 느끼시기 바란다. 시를 즐기는 방법이 훌륭한 노래를 즐기는 방법과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다.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것도 그렇게 볼 수 있다.

대통령님, 바이든 박사님(조 바이든의 아내, 퍼스트레이디), 부통령님, 그리고 엠호프님(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의 남편), 미국인, 그리고 세계인 여러분, 새 날이 되면 우리는 이 끝없는 그늘 속 어디에서 빛을 찾을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상실을 감내하고, 바다를 헤쳐 건넙니다. 우리는 최악의 상황에 용감하게 맞섰습니다. 조용한 것이 항상 평화는 아님을, 규범과 관념에 맞는 것이 항상 정의는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새벽은 우리가 깨닫기 전에 이미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가능했는지 모를 일을 해냅니다. 어떻게 가능했는지 몰라도 우리는 견뎌냈고, 망가진 게 아니라 단지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한 나라를 목격했습니다. 우리는 노예의 후손으로 태어나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깡마른 흑인 소녀가 자신도 장래에 대통령이 될 꿈을 꾸면서 대통령에게 시를 들려주는 나라와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Mr. President, Dr. Biden, Madam Vice President, Mr. Emhoff, Americans and the world, when day comes we ask ourselves where can we find light in this never-ending shade? The loss we carry a sea we must wade. We’ve braved the belly of the beast. We’ve learned that quiet isn’t always peace. In the norms and notions of what just is isn’t always justice.
And yet, the dawn is ours before we knew it. Somehow we do it. Somehow we’ve weathered and witnessed a nation that isn’t broken, but simply unfinished. We, the successors of a country and a time where a skinny black girl descended from slaves and raised by a single mother can dream of becoming president only to find herself reciting for one.

“조용한 것이 항상 평화는 아니”라는 것은 근래에 미국이 겪고 있는 혼란은 평화가 깨진 것이 아니라, 그동안 조용했던 사회를 평화라고 착각했던 것이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규범과 관념에 맞는 게 항상 정의는 아니”라는 것은 미국의 법과 사회 관념이 여전히 정의롭지 않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다들 미국이, 미국의 민주주의가 망가졌다고 하는 상황을 두고 “단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이라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시인이 가진 희망이 드러난다. 즉, 아직 미국은 완성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희망을 보는 것이다. “깡마른 흑인 소녀”는 물론 이 시를 읊고 있는 시인 자신을 가리킨다. 자신은 장래에 대통령이 되는 것이 꿈임을 밝힌 적 있는 시인이 또 다른 대통령인 바이든에게 이 시를 헌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완전한 모습과 거리가 멀고, 그렇다고 자연 그대로의 깨끗한 모습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완벽한 연합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연합에 목적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든 문화와 인종, 그리고 각 사람의 특성과 조건을 모두 수용하는 나라를 만들려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사이에 놓인 것을 보는 대신 우리 앞에 놓인 것을 바라봅니다. 우리의 미래를 가장 우선시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이의 불화를 극복해야 함을 알기에 우리는 의견의 차이를 줄입니다.
우리는 무기(arms)를 내려놓고, 서로를 향해 우리의 팔(arms)을 벌립니다. 우리는 아무도 해치지 않고, 모두와 화합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다른 건 몰라도 우리가 슬픔 속에서도 성장했고, 아파하는 동안에도 희망을 가졌으며, 지쳐있을 때에도 영원히 하나로 묶여 분리되지 않고 승리하기 위해 노력했음을 세계가 인정하게 합시다. 다시는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서가 아니라, 다시는 분열을 조장하지 않은 것이기에 하나입니다.
And yes, we are far from polished, far from pristine, but that doesn’t mean we are striving to form a union that is perfect. We are striving to forge our union with purpose. To compose a country committed to all cultures, colors, characters, and conditions of man. And so we lift our gazes not to what stands between us, but what stands before us. We close the divide because we know to put our future first, we must first put our differences aside.
We lay down our arms so we can reach out our arms to one another. We seek harm to none and harmony for all. Let the globe, if nothing else, say this is true. That even as we grieved, we grew. That even as we hurt, we hoped. That even as we tired, we tried that we’ll forever be tied together victorious. Not because we will never again know defeat, but because we will never again sow division.

위에서는 두운(頭韻)의 반복이 경쾌하게 드러난다. 가령 cultures, colors, characters, and conditions가 그렇고, 반복되는 ‘even as’ 뒤에 등장하는 grieved/grew, hurt/hoped, tired/tried 도 그렇다.

성경은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고, 그들을 두렵게 할 사람이 없는 세상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그 기준에 맞게 산다면 승리는 칼날에 있지 않고 우리가 건설하는 모든 다리에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터전에 대한 약속이며, 우리가 용기를 낼 수 있다면 오르는 언덕입니다.
왜냐하면 미국인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물려받은 자부심 이상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과거를 다시 방문해서 그것을 어떻게 고치느냐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우리나라를 함께 공유하는 대신 산산이 부수려는 무력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지체할 수만 있다면 나라를 무너뜨리려고 했고, 정말로 그렇게 될 뻔했습니다
.
Scripture tells us to envision that everyone shall sit under their own vine and fig tree and no one shall make them afraid. If we’re to live up to her own time, then victory won’t lie in the blade, but in all the bridges we’ve made. That is the promise to glade, the hill we climb if only we dare.
It’s because being American is more than a pride we inherit. It’s the past we step into and how we repair it. We’ve seen a force that would shatter our nation rather than share it. Would destroy our country if it meant delaying democracy. This effort very nearly succeeded.

위에서 인용하는 성경 구절은 기독교 성경 미가서 4장 4절에 등장한다.

비록 민주주의가 때때로 지체되는 일은 있어도 영원히 패배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이 진리, 이 믿음을 신뢰합니다. 우리가 미래를 바라보는 한, 역사가 우리를 지켜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공정한 구원의 시대입니다. 처음에는 두려웠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무서운 시기를 물려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가자 우리는 새로운 챕터를 쓸 수 있는 힘을, 우리 스스로에게 희망과 웃음을 줄 수 있는 힘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한 때 ‘이런 재앙을 이겨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느냐’고 물었던 우리는 이제 ‘재앙이 어떻게 우리를 이길 수 있겠느냐’고 확신합니다.

But while democracy can be periodically delayed, it can never be permanently defeated. In this truth, in this faith we trust for while we have our eyes on the future, history has its eyes on us. This is the era of just redemption. We feared it at its inception. We did not feel prepared to be the heirs of such a terrifying hour,
but within it, we found the power to author a new chapter, to offer hope and laughter to ourselves so while once we asked, how could we possibly prevail over catastrophe? Now we assert, how could catastrophe possibly prevail over us?

우리는 과거로 행진해서 돌아가지 않고 이 나라의 미래로 나아갈 것입니다. 비록 멍들었지만, 온전히 하나이고, 선하며, 그러면서도 담대하고, 용맹하고 자유로운 이 나라의 미래로 말입니다. 위협 때문에 발걸음을 돌리거나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행동하지 않거나 타성에 빠진다면 다음 세대가 물려받게 됩니다. 우리의 실수는 그들이 짊어질 짐이 됩니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분명합니다. 우리가 자비에 힘을 더하면, 힘에 정의를 더하면, 사랑은 우리의 유산이 되고, 변화는 우리 자식들의 타고난 권리가 됩니다
.
We will not march back to what was, but move to what shall be a country that is bruised, but whole, benevolent, but bold, fierce, and free. We will not be turned around or interrupted by intimidation because we know our inaction and inertia will be the inheritance of the next generation. Our blunders become their burdens.
But one thing is certain, if we merge mercy with might and might with right, then love becomes our legacy and change our children’s birthright.

그러니 우리가 받은 것보다 더 나은 나라를 물려줍시다. 청동처럼 단단해진 제 가슴이 숨을 쉴 때마다 우리는 이 상처 입은 세상을 놀라운 세상으로 승화시킬 것입니다. 우리는 서부의 황금빛의 언덕에서 일어설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선조가 처음으로 혁명을 이끌었던 바람 부는 북동부에서 일어설 것입니다. 우리는 중서부의 호숫가 도시들에서 일어설 것입니다. 우리는 태양에 그을린 남부에서 일어설 것입니다. 우리는 재건하고, 화해하며, 회복할 것입니다. 이 나라의 우리가 아는 모든 구석에서, ‘우리나라’라고 불리는 모든 곳에서 다양하고 아름다운 우리 국민이 다쳤어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걸어 나올 것입니다.
새 날이 오면 우리는 타오르는 모습으로 두려움 없이 그늘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우리가 해방시킨 새벽이 피어날 것입니다. 빛은 항상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빛을 볼 용기가 있다면, 우리가 그 빛이 될 용기가 있다면 말입니다.
So let us leave behind a country better than one we were left with. Every breath from my bronze-pounded chest, we will raise this wounded world into a wondrous one. We will rise from the gold-limbed hills of the West. We will rise from the wind-swept Northeast where our forefathers first realized revolution. We will rise from the Lake Rim cities of the Midwestern states. We will rise from the sun-baked South. We will rebuild, reconcile and recover. In every known nook of our nation, in every corner called our country our people diverse and beautiful will emerge battered and beautiful.
When day comes, we step out of the shade aflame and unafraid. The new dawn blooms as we free it. For there is always light. If only we’re brave enough to see it. If only we’re brave enough to be it.


박상현 필자

뉴미디어 스타트업을 발굴, 투자하는 ‘메디아티’에서 일했다. 미국 정치를 이야기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워싱턴 업데이트’를 운영하는 한편, 조선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에 디지털 미디어와 시각 문화에 관한 고정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아날로그의 반격≫, ≪생각을 빼앗긴 세계≫ 등을 번역했다. 현재 사단법인 ‘코드’의 미디어 디렉터이자 미국 Pace University의 방문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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