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을 나와 전용 헬기 '마린원'에 오르며 작별의 표시로 손을 흔들고 있다. (워싱턴 EPA=연합뉴스)

조 바이든 대통령이 20일 취임했다. 바이든 시대의 개막과 함께 주목받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했던 세력의 움직임이다. 트럼프는 대선 득표율 46.8%(7422만 표)를 바탕으로 공화당과 보수진영의 기함(旗艦) 역할을 자처해왔다. 미국 언론이 ‘보수 신당’ 창당설을 제기할 정도다. 미국정치를 오랫동안 관찰해온 유정훈 변호사는 일찍부터 ‘트럼프 없는 트럼프 시대’를 언급해왔다. 미국의 보수 세력은 과연 어떻게 재편될 것인가. 공화당은 1950년대 초반 ‘매카시즘 선풍’부터 2000년대 초반 ‘티파티 운동’까지 극우를 향한 유혹이 그치지 않았다. 유정훈 필자는 이 글에서 트럼프 지지세력이 향후 공화당의 프라이머리(primary)에서 정치적 생존을 위한 행동에 나설 것으로 예측한다. ‘프라이머리’는 당내 경선을 뜻하는 명사이지만, 동시에 현역에게 강력하게 도전한다는 의미의 동사이다. 현역 의원(상하원)이나 주지사들을 겨냥한 당내 권력투쟁을 예고한다. [편집자]

#트럼프주의 약화 예단은 시기상조 핍박받는 존재로 그리는 영웅서사#충성하지 않으면 '프라이머리' 위협 공화당 주류를 겨냥한 적대적 M&A#'트럼프 대안' 찾기 어려운 공화당 경합주 뺏으려 '유권자 억압' 가능성#트럼프 대체 인물, 리즈 체니 필두로현역 상원의원·주지사 10여 명 주목

“900파운드 고릴라 같은 존재.”2012년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밋 롬니 상원의원은 트럼프가 대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에 계속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며 트럼프를 이렇게 칭했다.(2020년 11월 8일자 더 힐 보도)‘800-pound gorilla’는 압도적인 힘을 가져 통제하기 어렵고 규칙에 매이지 않는 존재를 뜻하는데, 그보다 100파운드 더 무거운 ‘900파운드’라는 표현으로 트럼프의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강조한 것이다.

지난 1월 6일 국회의사당 폭동 사태로 트럼프의 퇴임 후 정치적 입지가 좁아진 것은 사실이다. 이를 선동했다는 이유로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초로 두 번이나 하원의 탄핵소추 대상이 되었고, 상원에서 이를 승인하면 장차 공직 취임, 구체적으로는 2024년 대선 재출마가 금지될 수 있다.

‘트럼프주의’를 뒷받침하는 요인들

하지만 트럼프주의(Trumpism)가 약화될 것이라고 섣불리 예단하기는 곤란하다.우선 유권자 지지기반이 건재하다. 트럼프는 반(反)이민, 반(反)자유무역과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백인 저학력 유권자, 즉 인종(백인)과 젠더(남성) 외에는 미국 사회의 비주류로 밀려난 사람들을 공화당 지지층으로 끌어들였다. 또한 민주당 성향이 강했던 라티노 유권자의 공화당 지지를 확대했는데, 이는 최대 경합주 플로리다를 수성하고 텍사스에서 민주당의 도전을 물리치는 원동력이 되었다.이번 대선에서 승리한 바이든은 트럼프 지지흐름 자체를 역전시킨 게 아니라, 그런 추세 속에서 반(反)트럼프 유권자 동원을 극대화했을 뿐이다. 바이든의 득표(8128만 표)는 트럼프보다 706만 표 많았다.

대선 패배에도 트럼프를 찍은 유권자들은 그에 대한 지지를 거두지 않고 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ABC News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자 66%는 ‘선거부정에 관한 증거가 있으며 트럼프의 불복 시도는 정당하다’고 답변했다. 공화당 지지자 85%는 트럼프 탄핵에 반대하고, 56%는 의사당 폭동에 관해 트럼프는 책임이 없다는 의견을 보였다. 다른 기관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또한 비슷한 결과로 나온다.(2021년 1월 15일자 워싱턴포스트 보도)

이러한 유권자 기반은 친(親)트럼프 정치인이 공화당 다수파가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대통령 선거인단 결과 인증에 이의를 제기한 공화당 의원의 숫자를 보면 상원 8명, 하원 139명에 이른다. 하원 원내대표 케빈 매카시(Kevin McCarthy)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공화당 하원의원 211명 중 트럼프 탄핵에 찬성한 의원은 단 10명뿐이다. 트럼프가 지지한 로나 맥다니엘(Ronna McDaniel)은 대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공화당 전국위(RNC) 의장 연임에 성공했다.

개인숭배 및 ‘프라이머리(primary)’ 위협

이런 객관적 지표로는 트럼프의 영향력을 온전히 설명하고 담아내지 못한다.트럼프주의의 독특한 양상은 지지자가 상식적 수준을 넘는 강력한 일체감으로 ‘개인숭배’에까지 이르렀다는 점이다. 트럼프에 대한 비판을 자신에 대한 것처럼 반응하고 반대편에 대한 공격적 행동에 나선다. 재력과 명예를 모두 쥐었음에도 트럼프를 ‘핍박받는 존재’로 그리는 영웅서사 또한 등장한다. 이들은 트럼프를 막후에서 미국 사회를 좌우하는 딥 스테이트 (Deep State), 힐러리 클린턴이나 낸시 펠로시 등 부패한 민주당 정치인, 뉴욕타임스 등 주류 미디어에 맞서는 영웅으로 인식한다.

국회의사당 폭동으로 수사 대상에 오른 사람들은 대부분 “트럼프의 연설이 폭동을 지시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행동했다”는 변명을 했다. 처벌 수위를 낮추려는 전략인 측면도 있지만, 참여자들의 일관된 태도는 시사하는 바가 있다. 현장 영상을 보면 이들은 “트럼프가 원하니 그를 위해 애국적 행동을 한다”고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2021년 1월 17일자 뉴욕타임스 보도)

해외 파병까지 다녀온 전직 군인으로 법집행 당국의 발포 가능성을 몰랐을 리 없음에도 대치상황에서 물러서지 않다 끝내 의회 경비대의 총에 맞아 사망한 애쉴리 배빗(Ashli Babbitt)의 사례는 이들의 심리를 극적으로 보여준다.(2021년 1월 7일자 뉴욕타임스 보도)

그렇다면 이들은 장차 바이든 시대에 어떻게 움직일까? 트럼프 본인과 지지자들은 향후 공화당의 프라이머리(primary)에서 정치적 생존을 위한 행동에 나설 것이다. ‘프라이머리’는 당내 경선을 뜻하는 명사이지만, 동시에 경선에서 특히 현역에 강력하게 도전한다는 의미의 동사이기도 하다. 이들은 트럼프에 충성하지 않는 인물, 대선 불복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트럼프를 옹호하지 않는 정치인에게 “그러다 프라이머리 당한다(get primaried)”며 압박을 가해왔다.

앨라배마 주의 제프 세션스(Jeff Sessions)가 대표적 사례이다. 세션스는 2016년 대선 당시 상원의원 최초로 트럼프를 지지한 덕분에 트럼프 행정부의 첫 번째 법무장관으로 임명된다. 하지만 취임 직후 러시아 특검 문제로 트럼프의 신임을 잃고 2018년 중간선거 패배 직후 사임한다. 세션스는 자신의 옛 상원 의석을 되찾기 위해 2020년 다시 출마했으나, 트럼프의 지지를 받은 토미 터버빌(Tommy Tuberville)에게 경선에서 완패했다. 상원의원 4선(選)을 했던 거물조차 트럼프에게 무조건적 충성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프라이머리 당하고’ 정계은퇴의 길로 내몰린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 시위대 수천 명이 6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 모여 있다. (워싱턴 EPA=연합뉴스)

트럼프 현상: 공화당에 대한 적대적 M&A

트럼프 현상은 반(反)자유무역, 반(反)국제주의 등 보수세력의 주류와 다른 입장을 내세운 워싱턴 국외자가 공화당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성공시킨 사례라 할 수 있다. 동시에 트럼프는 어느 순간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공화당이 그 동안 해온 정당정치의 귀결이라 할 수 있다.

‘MAGA’ (Make America Great Again)는 1980년 대선 당시 로널드 레이건이 했던 캠페인 슬로건을 다시 활용한 것이고, 레이건 시대에 본격적 정치 개입을 시작한 복음주의 개신교는 트럼프의 확고한 지지층이다. 트럼프가 ‘BLM’ (Black Lives Matter) 운동에 대한 반응으로 내놓은 ‘법과 질서’ (Law and Order)는 미국 역사상 격동의 시기였던 1960년대 후반에 리처드 닉슨이 내세웠던 것이다. 여기서 정치인의 ‘법과 질서’는 중립적 표현이 아니라 이를 집행할 대상을 전제한다. 이런 면에서 트럼프는 공화당 주류의 전통을 계승한 셈이다.

포퓰리즘에 기반한 비주류의 도전 역시 공화당 역사상 트럼프가 처음은 아니다. 1992년 재선에 나선 H.W.부시(아버지 부시)는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드물게 당내 경선부터 도전을 받았는데, 당시 팻 뷰캐넌(Pat Buchanan)은 공화당 주류에 맞서 이민과 자유무역의 제한을 주장했다. 2009년부터 2010년까지 미국 정치를 휩쓴 ‘티파티 운동’(Tea Party Movement)은 정부지출 최소화를 내세우는 재정보수주의 운동이지만, 프라이머리에서 티파티에 동조하는 후보는 지원하되 반대 후보를 저격하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극대화했다는 점에서 트럼프주의와 상통한다.

문제는 트럼프가 민주주의를 유지시켜 온 제도와 규범을 파괴하는 초유의 방식으로 임기 4년을 보냈다는 점이다. 트럼프가 ‘팬덤 정치’를 뛰어넘는 개인숭배를 조장하고 활용했다는 점은 앞서 지적했다. 역대 대선을 실질적으로 종결지은 것은 선거인단과 의회까지 이어지는 형식적 절차가 아니라 패자의 ‘승복선언’(concession)이지만 트럼프는 이런 관행을 무시했고, 퇴임 직전까지 정권 이양에 협조하지 않은 것은 후임 행정부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에 해를 끼친다.

가장 심각한 것은 정치적 이익을 위해 사실-거짓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행태를 지속했다는 점이다. 백악관 자문이었던 켈리안 콘웨이가 4년 전 트럼프의 취임식 참석 규모를 과장하며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을 들먹인 것은 그 후 벌어질 일들의 예고편에 불과했다.트럼프는 대선 불복을 위해 선거를 관리하는 정부기관의 신뢰성을 부정했고, 상당수 유권자는 이를 실제로 믿는다. 극우 음모론인 ‘큐어넌(QAnon)’을 신봉하는 마조리 테일러 그린(Marjorie Taylor Greene), 로렌 보버트(Lauren Boebert) 등이 하원에 입성하는 등 이런 흐름은 이어진다.

미국정치에서 요즘 민주-공화 양당의 대립, 공화당 내에서 트럼프 찬반 세력의 대치전선은 낙태, 이민, 자유무역과 같은 개별적·정책적 이슈가 아니라, 정치적 현실을 어떻게 인지하느냐에 관한 근본적 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 공화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라 하더라도, ‘바이든 행정부와 총기규제에 대한 의견이 다르다’는 것과 ‘총기를 규제하려는 바이든 대통령이 불법으로 선출됐다’고 믿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反트럼프 성향 리더들에 '퇴출 압박'

백악관 및 의회를 모두 민주당에 내준 공화당은 이런 유산을 안은 채 정치적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 트럼프 탄핵에 찬성하는 공화당 상원의원이 얼마나 나올지, 특히 상원 원내대표 미치 매코널이 트럼프 탄핵을 통해 그의 재출마 가능성을 차단하는 극약처방을 택할지가 첫 시험대다. 매코널은 ‘아직 결단을 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도 트럼프가 의사당 폭동을 야기한 책임이 있다고 발언하는 등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2021년 1월 19일자 CNN 보도)

공화당 주류 다툼은 2022년 중간선거 당내 경선에서 본격화될 것이다. 보수 세력의 내전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적으로 공화당의 텃밭이었으나 이번에 민주당에 패배한 애리조나 및 조지아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은 공화당 소속 현역 주지사들이 대선 패배를 방관했다는 이유로 잔뜩 벼르고 있다. 상원의 경우 트럼프가 직접 존 튠(John Thune) 사우스다코타 주(州) 상원의원을 프라이머리 대상으로 지목한 바 있다.

다음으로는 2024년 대선으로 이어지는 중장기 전망이다. 공화당은 아버지 부시가 빌 클린턴에게 패배하며 재선에 실패한 1992년 이후 8차례의 대선에서 일반투표(popular vote)는 단 한 차례 이겼을 뿐이다. 조지 W. 부시(아들 부시)의 현직 프리미엄과 민주당 약체 후보 존 케리가 겹친 2004년 대선이 그것이다.이것이야말로 트럼프 이전에도 이후에도 공화당 주류가 안고 있는 고질적 문제다. 일반투표 패배에도 백악관을 차지한 2000년과 2016년 사례처럼 선거인단 간선 제도는 구조적으로 공화당에 유리하게 작용해왔다. 다만, 2020년 선거 때 오하이오를 공화당 지지로 굳히고 펜실베이니아/미시간/위스콘신을 경합주로 유지한 것은 수확이다. 하지만 애리조나/조지아에서 대선 선거인단 및 상원 의석을 모두 민주당에 내주었고, 절대 아성이었던 텍사스의 경우 매 선거마다 득표율 격차가 줄어 2020년에는 5.6%포인트까지 좁혀졌다.

공화당, 민주당 지지층 투표방해 '꼼수'

그렇다면 공화당은 장단기 전략을 어떻게 구사할까? 현실정치 측면에서 공화당은 백악관 및 상원 탈환을 위해 민주당 지지층의 투표 참여를 어렵게 만드는 유권자 억압(voter suppression)을 계속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2020년 대선에서도 민주당이 집권한 주(州)에서는 코로나19를 감안한 우편투표 확대나 기한 연장에 적극적이었지만 공화당은 이를 지속적으로 방해했다. 조지아 주 상원의원 결선투표 과정에서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은 “조지아 주 국무장관이 우편투표 제출처 확대 등 공화당 승리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불평했는데, 공화당의 일반적 정서 내지 전략으로 봐도 무방하다.

트럼프를 대체할 당내 리더들도 워밍업

공화당 내부에서 트럼프주의를 가까운 장래에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고 한동안 진통의 시간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짧은 시간에 트럼프를 대체할 간판을 찾기가 쉽지 않아서다.트럼프 탄핵에 찬성한 리즈 체니 하원의원(와이오밍)이 대표적 인물인데, 딕 체니 전 부통령의 딸인 리즈는 단시간 내에 공화당 하원 서열 3위로 올라섰고 공화당이 하원 다수당이 될 경우 공화당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까지 노리고 있다.

다음으로 밋 롬니(유타), 리사 머카우스키(알래스카), 수잔 콜린스(메인) 등 트럼프와 거리를 둔 상원의원들이다. 롬니는 첫 번째 트럼프 탄핵소추안에 찬성했고, 머카우스키는 캐버너 대법관 인준 반대, 콜린스는 배럿 대법관 인준 반대 등 소신투표의 전력이 있다. 머카우스키와 콜린스는 고(故) 존 매케인과 함께 당론을 어기고 ‘오바마케어 폐지’에 반대했다.

마지막으로는 래리 호건(메릴랜드), 찰리 베이커(매사추세츠), 필 스콧(버몬트), 마이크 드와인(오하이오) 등 민주당 혹은 중도성향 주(州)의 공화당 소속 주지사들이다. 워싱턴 정치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는 없지만 이들은 주 단위에서 독자적인 코로나19 방역지침을 시행하는 등 트럼프 행정부의 극단적 행태를 나름대로 견제하는 역할을 했다. 트럼프 4년과 국회의사당 폭동 사태로 전례 없는 위기를 맞은 공화당이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유정훈 필자

변호사(한국 및 미국 뉴욕 주). 2011년 미국 연수 당시 버락 오바마에 맞설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이 한창이어서 미국 정치·선거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페이스북에서 꾸준히 미국 정치와 법에 관한 ‘덕질’을 계속하고 있다. 메디치미디어가 출간한 『상 차리는 남자? 상남자!』를 공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