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1'에서 리사 수(Lisa Su) AMD CEO가 파노스 파나이(Panos Panay) 마이크로소프트 최고제품책임자와 화상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AMD)

CES(Consumer Electronics Show)가 올해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전에 없던 도전을 감행했다. 지난 11일부터 15일까지(미국 현지시간) 일정 중 모든 행사를 비대면 온라인으로 진행해서다. 가전 및 IT 분야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CES는 1967년 처음 열렸다. 매해 1월 중순 미국 라스베이거스를 세계 최첨단 제품의 향연장으로 만들고 수많은 인파를 모았던 CES가 CES방식의 타개책을 찾아나선 셈이다.  <거의 모든 IT의 역사>를 통해 IT분야의 태동과 흐름을 독자들에게 일목요연하게 전해준 정지훈 필자는 올해 CES를 코로나19에 대한 '응전'의 관점에서 해석했다. 먼 미래의 기술보다 상용 가능성이 높은 혁신적인 제품을 통해 코로나19 시대의 대처와 변화의 방향을 보여준 기업들이 많았기 때문이다.[편집자]

#코로나19와 中기업 불참 이중고   사상 최초 디지털 콘퍼런스 개최#AMD 리사 수, 파트너로 MS 초청  IT 역사의 변곡점 찍은 진풍경#삼성·LG전자 '혁신상' 68개 싹쓸이   헬스케어, 스마트 도시, 메타버스 주목 #첨단기술 자랑쇼 아닌 생활 솔루션  삶과 라이프스타일의 비전 보여줘

1월 중순 무렵이면 가전 및 IT분야의 트렌드와 최신 제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세계적인 행사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다. 1967년부터 시작한 CES(Consumer Electronics Show)다. 이번 CES는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오프라인 행사 대신 지난 11일부터 15일까지(현지시간) 온라인으로만 행사가 열렸다. 여기에 최근 부각된 미중 갈등으로 IT기술 경쟁의 한 축이었던 중국기업이 불참했다. 두 가지 악재가 겹친 셈이다. 그 탓에 4000개가 넘는 기업이 참가했던 2020년과 비교하면 전체 참여 업체가 절반 가까이 줄었다. 우리나라에서는 330여 개 기업과 기관 등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한국 역시 지난해보다 살짝 규모가 줄어든 것이기는 하지만, 중국 기업이 크게 줄면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기업과 기관이 참가한 나라가 되었다.

이번 CES는 ‘모든 것의 디지털화(All-Digital)’라는 표어를 내세워, 마이크로소프트의 팀즈(Teams) 플랫폼 기반으로 전시 관람, 콘퍼런스 진행, 사업 등의 미팅 등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리고 라이브 앵커 데스크를 통한 주요 테크 미디어들의 가이드, AI 자동 번역을 통한 16개 언어의 자막도 제공했다. 코로나19로 불가피해진 대면행사를 온라인으로 대체하며 IT기술을 총동원했다. 덕분에 라스베이거스에 직접 가지 않아도 CES를 온라인상에서 체험할 수 있어 접근성과 유용성은 더 나아졌다는 평가다. 반면 라스베이거스의 콘벤션 업체들은 연중 최고 대목이었던 CES의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CES 홈페이지에는 라스베이거스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라스베이거스에 기부를 요청하는 코너도 자리를 잡고 있었다. 코로나19로 정말 많은 것이 변했고 어려움을 겪는 곳들이 많다는 것을 다시금 체감했다.

지난 11일 열린 'CES 2021' 디지털 세트 현장. (사진=AFP/연합뉴스)

AMD 리사 수의 키노트 강연, IT 역사의 변곡점 찍다

원래 CES의 핵심 경쟁력은 거대한 전시장을 걸어 다니면서 직접 제품이나 기업들의 부스를 살펴보면서, 전반적인 느낌을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올해는 그럴 수 없었다.  그러나 이를 대체한 게 디지털 콘퍼런스였다. 참여도 쉬웠고 다양한 해설, 번역 등을 지원해 그 중요성이 훨씬 올라가게 된 느낌이었다. 필자 역시 CES 첫날 서울시에서 준비한 가상 전시관의 오프닝 콘퍼런스인 '커넥티드 서울 Connected Seoul' 의 패널이자 연사로 참여했다, 전시관보다 콘퍼런스 시청 및 평가가 매우 좋았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앞으로 디지털로 CES로 진행을 하거나, 디지털을 병행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참여하는 기업들도 이런 변화를 염두에 두고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CES 2021의 키노트 강연은 미국 최대 이동통신사업자인 버라이즌의 한스 베스트버그(Hans Vestberg) CEO의 ‘21세기의 프레임워크, 5G’, CES 주관기관인 CTA 개리 샤피로(Gary Shapiro) CEO와 CES 캐런 춥카(Karen Chupka) 부사장의 ‘2021년 기술 산업 전망’을 필두로 제너럴 모터스(GM) 메리 배라(Mary Barra) CEO, AMD의 리사 수(Lisa Su) CEO, 베스트바이의 코리 배리(Corie Barry), 포츈지의 앨러 머레이(Alan Murray), 마이크로소프트의 브래드 스미스(Brad Smith) 사장, 월마트의 덕 맥밀런(Doug McMillon) CEO 등으로 구성이 되었다. 특히 눈에 띈 것은 키노트 연사 10명 중 남녀 비율이 5대 5였고 패널 참가자까지 확대를 해도 총 18명 중 남녀 비율이 같았다. CES에서 성평등과 관련한 많은 신경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들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AMD의 리사 수와 GM의 메리 배라의 키노트 강연이었다. AMD는 2021 CES 최고혁신상에 빛나는 라이젠 CPU들의 대성공과 지속적인 혁신 제품들의 발표로 인텔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있다. 특히  AMD 리사 수의 키노트는 IT 역사의 변곡점을 찍었다. 지난 수십 년간 CES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주인공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PC와 윈도우를 중심으로 한 제품들이 대세를 이루어왔다.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가장 주목 받았던 기업은 윈도우 PC와의 찰떡궁합으로 세계를 호령했던 반도체 1위 기업 인텔이었다. 이들 콤비의 위세가 워낙 막강해서 세간에서는 '윈텔(Windows+Intel)' 제국이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그러던 CES에서 AMD가 키노트를 하는 것도 놀랍지만 더 큰 변화가 있다. 키노트 강연에서 리사 수가 자신들이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게 도와준 가장 중요한 파트너 기업을 호명하며 온라인 초청을 했는데 거기에 마이크로소프트가 등장한 점이다. IT 역사의 흐름을 중시하는 필자는 그 장면을 보면서 정말 역사의 큰 변곡점을 보는 듯해서 살짝 소름까지 돋았다. IT업계에서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제국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GM의 메리 배라는 2025년까지 무려 30여 종의 전기차 모델을 출시하고, 자율주행차 기술에 대한 과감한 투자, 그리고 플라잉카 비전을 발표하면서 새로운 모빌리티 혁명의 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했다. GM이 가장 중요하게 언급한 전기차, 자율주행차, 플라잉카는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당장 지난해 CES에서 현대자동차도 유사한 비전을 발표했었고, 여러 주요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도 동참하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 최대의 자동차 기업인 GM이 먼 미래의 비전이 아니라 몇 해안에 나올 실질적인 제품군에 대한 발표와 동시에 완전한 모빌리티 혁신기업으로의 전환을 선언했다는 점은 의미가 남달랐다. GM이 지닌 자동차업계의 위상을 고려했을 때 이제 내연기관 자동차의 시대가 저물고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시대로 패러다임이 전환한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특히 2020년 현대자동차가 발표해 주목을 끌었던 플라잉카에 대해서 GM도 적극적으로 제품화와 사업화에 나서겠다고 천명한 것은 의미가 컸다.

LG전자가 디자인한 가상인간 '래아'가 'CES 2021' 프레스 콘퍼런스에서 혁신 기술을 소개하는 모습. (사진=LG전자)

삼성·LG전자가 돋보인 미디어데이 콘퍼런스

사실 올해 CES 2021의 공식 키노트보다 훨씬 더 주목을 받은 발표는 한국의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콘퍼런스였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주요 기업들의 콘퍼런스가 많이 열리는 미디어데이를 주름잡았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CES 2021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혁신상(innovation award)을 각각 44개와 24개를 수상해서 두 기업이 68개를 싹쓸이했는데, 혁신상이 27개 분야라는 넓은 영역에서 총 285개가 주어졌음을 감안하면 올해 CES에서 두 기업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수치로도 증명이 된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회사의 미디어데이 콘퍼런스는 아주 대조적인 스타일로 진행이 됐다. 삼성전자는 세바스찬 승 삼성리서치 소장의 등장부터 마치 영화를 연상시키는 연출을 헤 디지털로 진행된 CES의 바뀐 환경에 최적화된 발표를 했다. 제품과 기술이 일상생활을 어떻게 더 낫게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면서도 지속가능성과 환경 등의 이슈에도 많은 발표 시간을 할애했다. 제품 중에서는 특히 새롭게 발표된 최첨단 로봇청소기 제품과 세바스찬 승 소장에게 물컵을 전달하면서 등장한 핸디봇 등의 로봇과 AI 제품들이 시선을 끌었다. 반면 LG전자는 다소 투박한 전통적인 스타일의 발표를 했다. 삼성전자와 달리 제품 하나하나의 장점을 부각하는데 많은 공을 들였다. 특히 노크 두 번에 순식간에 냉장고 내부의 모습이 보이는 인스타뷰 냉장고나 세탁기와 건조기를 아래 위로 쌓았을 때 중앙에 제어 패널이 위치하고, 인공지능 기능도 아주 간편하게 둘 사이에 공유가 된다거나, TV 리모컨에 스마트폰을 살짝 두들기면 영상이 전송되는 매직탭, 게이머들이 고사양 고화질 게임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대형 TV 스크린에 엔비디아, 구글 등과 협력해서 만든 기능을 탑재하는 등 사용자들이 편리하고, 꼭 있었으면 하는 기능들을 선보여 찬사를 받았다. 특히 지난 10년 간 스마트 컨트롤러 정도의 기능을 제공하는데 그쳤던 씽큐(ThinQ) 플랫폼이 드디어 오픈 플랫폼으로 진화하며 여러 협력기업들이 참여한 앱들이 선보이면서 향후 전자제품들 사이의 상호작용과 관련한 여러 생태계가 커질 가능성을 보여준 것도 매우 긍정적이었다.

디지털 헬스케어, 스마트 도시, 메타버스

키노트 강연이나 콘퍼런스 등이 전체적인 기술과 트렌드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아주 구체적인 변화의 양상은 2000개 가까운 전시 기업들이 출품한 다양한 제품들을 둘러보면서 파악할 수 있다. 이들을 모두 둘러보는 것은 간단한 작업이 아니기에, CES 2021에서 공식적으로 선정한 27개의 최고혁신상(best innovation award) 수상작들 중에서 파악이 가능한 트렌드들을 추려보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디지털 헬스케어와 관련한 제품들에 대한 관심이 크게 쏠렸다는 점이다.  최고혁신상을 수상한 바이오인텔리센스의 바이오버튼은 코로나19 시대에 건강관리를 위한 개인의 체온, 심박, 호흡수 등을 모니터링 하면서 초기 코로나19 증상 등을 찾아내고, 스크리닝과 추적관리 등에도 활용이 가능하게 한 제품이다. 간질환자를 관리하는 모바일 앱인 엡시(Epsy), VROR의 VR기반 시력관리 제품, 오리진 와이어리스의 원격환자모니터링을 위한 오리진 헬스 등도 최고혁신상을 수상했다. 이들 외에도 많은 수의 참가기업들이 디지털 헬스케어 제품들을 선보여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헬스케어 분야가 급성장했음을 반증했다. 반려동물들과 관련한 제품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삼성전자가 미디어데이 콘퍼런스에 선보인 스마트싱스 펫(SmartThings Pet)도 큰 관심을 끌었고 최고혁신상에도 쳄버레인 그룹의 마이펫포탈(myQ Pet Portal), 뱅가드 인더스트리의 인공지능 반려동물 로봇이 이름을 올리면서 최근 부상중인 반려동물 및 로봇 기술에 대한 기업들의 뜨거운 관심을 살펴볼 수 있었다.

CES 2021 삼성 프레스콘퍼런스에서 소개된 '삼성 제트봇 AI' 로봇청소기와 '스마트싱스 펫(SmartThings Pet)' 케어 서비스. (사진=삼성전자)

스마트 도시나 모빌리티와 관련한 기술들은 올해도 주목을 받았다. 구글 알파벳의 자회사로 자율주행 로보택시사업을 주도하는 웨이모(Waymo)의 5세대 자율주행 시스템, 자율주행 드론을 발표한 스카이디오, 대서양을 무인으로 횡단하는 데 성공한 IBM과 메이플라워의 인공지능 선장(AI captain), 존 디어의 자율주행 농기계 제품들, 모엔의 스마트 수도꼭지 등이 최고혁신상을 수상하며 이런 경향성을 보여줬다.

마지막으로 최근 IT업계의 '핫 이슈'가 되고 있는 메타버스(metaverse)와 연관된 제품들도 여럿 최고 혁신상을 수상하였다. 삼성전자가 인수한 세계적인 스피커 기업인 하만 인터내셔널은 젓가락 모양으로 공간 전체의 3D 사운드를 전달할 수 있는 획기적인 사운드 시스템을 발표하였고, 소니는 눈으로 실질적인 입체감을 광학적으로 느낄 수 있는 3D 디스플레이 제품을 선보였다. 임버스에서는 3D 홀로그램으로 여러 명의 사람들의 라이브 중계가 가능한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통해 최고혁신상을 수상했다. 이들은 모두 향후 급속하게 발전할 메타버스(2020년 12월 28일자 칼럼)와 관련한 인프라 기술로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CES 2021, ‘삶’과 라이프스타일을 관통하다

그렇지만, 이번 CES 2021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여러 기업들이 제시한 기술들의 지향점이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준 것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미디어데이 콘퍼런스에서 내세운 ‘모토(motto)’다. 지난 수 년간의 CES가 인공지능이나 미래 모빌리티 기술과 같이 첨단 기술을 자랑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여러 기업들이 미래지향적인 기술의 향연을 벌여왔다. 하지만  CES 2021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우리의 일상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제품과 코로나19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한 솔루션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이런 맥락에서 '모두를 위한 더 나은 노멀 Better Normal for All' 이라는 모토를 제시했다. 이는 코로나19와 함께 언급되었던 ‘뉴 노멀'(New Normal)이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다소 불안하고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즉 기술이 과거보다 더 나은 ‘노멀'을 제시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더 나은 노멀 Better Normal’을 선정한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전체 발표 30분 중 무려 10분 가까이를 사람, 사회, 환경(People, Society, Environment)에 대한 이슈로 할애했다. LG전자의 모토인 ‘Life is ON’ 역시 비슷한 맥락이었다. LG의 약자처럼 그동안 이야기하던 ‘Life is Good”의 연장선의 느낌이 나면서도, 코로나19탓에  어두워진 우리의 일상을 기술을 통해 밝게 켠다는 의미로 ON을 강조했고 온라인(On-line)에 다 같이 연결되어 삶을 확장해나가는 의미도 동시에 전했다. 두 기업 모두 CES라는 이벤트를 기술전시회가 아닌 우리의 ‘삶’과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는 것으로 잘 정리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제시했던 키워드들은  CES 2021에 참여한 많은 기업들과 조직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했던 주제들이었다, 코로나19와 함께 각 개인들과 우리 사회 뿐만 아니라 기업들도 큰 변화를 준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는 것. 온라인으로 진행한 CES 2021이 던진 가장 큰 화두였다.


정지훈 필자

모두의연구소 최고비전책임자. 정부 기관과 수많은 기업체에서 미래 트렌드와 전략에 대해 자문하고 있다. 한양대 의대를 졸업한 후 서울대 보건정책관리학 석사, 미국 남가주대학(USC)에서 의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어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 《미래자동차 모빌리티 혁명》 《거의 모든 IT의 역사》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내 아이가 만날 미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