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맞는 보수적 가치의 발견, 이 사람들이 지금 그걸 모른다”

“진보가 문제제기하면 그걸 받아들여 해결하는 게 보수인데 지금 보수는 보수가 아냐”

“YS, ‘대통령 되고 싶어서 3당합당했다, 안 했으면 군인들만 좋은 일 시켰을 것’”
“문재인은 비서실장 때 적이 없어서 대통령 된 것,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았다더라”

“공직자 재산공개 때 YS, 8억 신고한 공직자 거명하며 ‘괜히 용돈 줬네...’”

 

8월은 정치 하한기다. 각 정당이나 진영은 가을 정기국회를 앞두고 쟁점과 전략을 정리하거나 새 지도부를 선출 중이다. 내부 정비기간인 것이다. 이 시점에 김영삼(YS) 대통령 때 정무수석을 오래 역임한 이원종(79)박사를 <피렌체의 식탁>에 모셨다. 인터뷰는 8월16일 낮 메디치미디어 회의실에서 김현종 발행인이 진행했다. (인터뷰 후기)

보수정당의 고민과 진로를 간접적으로나마 듣기 위해서다. 이 전 수석은 보수정당의 진화 개념을 제시했다. 보수가 다음 총선까지 진화하지 못하면 ‘씨도 없이 메마를 것’으로 내다봤다. 박정희 향수에 기댄 냉전보수가 아니라 YS와 같은 중도보수 만이 오늘날 보수정당의 살길이라는 소신이었다. “변하지 않는 것은 보수가 아니다”라는 강력한 표현도 썼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는 보수를 사회 두 축 중의 하나로 인정할 것과 대미관계에 있어서의 신중을 당부했다.
김대중, 김영삼 시절의 얘기도 몇 가지 새로 나왔다. 이 전 수석은 YS가 ‘대통령이 하고 싶어서’, 자신이 3당합당을 하지 않으면 ‘나도 DJ도 대통령하지 못하고 군인들만 좋은 일 시켜줬을 것’이라고 판단해 합당했다고 육성을 전했다.

 

“YS가 보수정당 스펙트럼 넓혀서 지금까지 왔다”

 

Q. YS 대통령의 정무수석을 끝으로 일체 공직을 안 맡으셨다. 선거에도 안 나가고, 주로 들꽃 사진을 찍거나 정치학 박사 공부를 하셨다. <국민이 만든 대한민국>은 어떻게 쓰게 되었나?

지도자들보다는 국민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이 정도로 만든 것은 인류 민족사에 기적 같은 일이다. 세계사에서 많은 민족이나 국가가 사라진다. 몽골이랑 싸울 때에도 왕은 강화도에서 38년을 살았지만 싸운 것은 백성이지 국가나 왕이 아니었다. 역사를 보면 우리나라를 있게 한 것은 권력 가진 사람이 아닌 백성의 힘이다.
우리나라는 국가가 국민을 위해서 해준 거보다는 백성이 국가를 지키고 그 속에서 살아왔다. 현대사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 역사 초반에 우리는 선거가 무엇인지도 몰랐고 70% 이상이 문맹이었다. 느닷없이 미국에서 민주주의 도입해서 이렇게 잘된 나라는 우리나라뿐인데 이것도 국민의 힘이다. 87년 6·29도 사실은 가장 평화적인 방식이었다. 이번 촛불 시위도 과격한 폭력으로 가지 않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이끌어냈다. 대단한 국민의 힘이다.

 

 

Q. 민주화와 산업화 중에서 산업화는 지도자 역량이 좀 더 뛰어나서 가능했을까?

박정희라는 지도자가 산업화라는 슬로건으로 국민 역량을 통합하고 발현시켰지만 그 또한 역량 있는 국민이 없으면 불가능했다. 주축은 국민이라고 본다. 민주화에서는 국민의 역량이 확실히 뛰어났다. 그 불꽃은 4·19, 6·29, 촛불이다.

 

 

Q. 최근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1996년 15대 국회를 통해 들어온 인물들이 전반적으로 퇴조하고 있는 것으로 진단한다. 역으로 이때 정치를 시작한 사람들이 그간 우리 정치를 20년 넘게 주도해왔는데, 보수정당에서는 이회창, 홍준표, 김문수, 이재오, 남경필 같은 의원이 초선으로 들어왔다. 당시는 이원종 정무수석이 NO.2, 부통령 얘기를 들을 만큼 일을 많이 하실 때다.

그때 홍준표, 김문수는 이회창 다음이지. 엄격하게 말하면 96년에는 박찬종, 이회창, 이수성 같은 사람들이 흩어졌다가 15대 총선을 통해서 Y가 흩어졌던 9룡을 끌어들인 것이다. 거기다가 대학교수 같은 지성인들을 끌어들여서 그분들 중심으로 수도권 공천을 했다.

 

 

Q. 야당에도 정동영, 천정배, 신기남, 정세균, 추미애, 김한길 같은 사람들이 이때 들어왔다.

특히 당시 신한국당은 이때 들어온 사람들이 주도했다. YS가 1996년 선거에서 김문수, 이재오, 이우재 같은 진보세력을 국회에 끌어들여서 당시 신한국당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확 넓혔다고 본다. YS는 시대를 보는 눈이 확실히 있다. 민주화-산업화 세력을 묶어야 한다고, 보수가 옛날 보수로만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보수가 진보와 연합해야 하고, 진보적 보수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그때 신한국당 내에서 ‘빨갱이 당 만들자는 거냐’고 굉장히 반대가 많았다. 대통령한테 욕하진 못하고 내가 대신 욕을 많이 먹었다. 만약 그 일을 안 했다면 한나라당, 자유한국당이 존재하지 못했다고 본다.

 

“정치인들이 시대성이나 주인이 누구라는 의식이 부족하다”

 

Q. 그때 YS 대통령 취임과 1996년의 민주인사나 진보세력의 영입이 없었으면 보수정당은 힘들었을까?

YS는 개혁하지 않는 보수는 존재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근사한 말씀으로 설명하신 건 아니었는데 선택하시는 것 보면 그랬다. 그 분의 뜻을 잘 받드는 것이 내가 할 일이었으니까. DJ 캠프는 말을 근사하게 만들었지만 YS는 말을 멋있게 할 줄은 몰랐다. YS는 선거에는 반드시 시대정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87년 대선 때는 ‘군정종식 김영삼’이었다. 군사문화를 어떻게 없애고 문민문화 기반을 닦느냐가 ‘신한국 창조’였다. 그 흐름으로 지금까지 왔다고 본다.

 

 

Q. 당시 보수정당 안에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맥이 하나 있고 YS가 새로 영입시킨 세력이 있었다. 두 세력의 결합이 자유한국당까지 이어졌다고 보시는 건가?

결합하지 않았다면 끝났겠지. 어쨌든 3당 합당이 그런 흐름의 시작이다. 학자들은 산업화-민주화 세력 영합이라고 표현하는데, 나는 우리나라의 보수의 색깔이 진화되었다고 본다. 3당 합당 이후로 민주주의 정치가 뿌리내릴 수 있었다고 본다.

 

 

Q. 지금 자유한국당이 국민으로부터 외면받는 것은 그 진화가 멈춘 것이라고 보면 될까

보수든 진보든 핵심은 국민이다. 문제는 정치하는 사람들이 시대성이나 주인이 누구라는 의식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거의 다 그렇고 특히 보수가 그렇다. 진보와 좌파는 문제제기를 하지만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하진 못한다. 진보가 문제제기를 하면 보수가 그걸 받아들여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YS 이후에 민주화가 어느 정도 자리 잡았으니 DJ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민족문제를 문제제기 할 수 있지 않았나. DJ는 사실 북한과 얘기를 꺼내기 취약한 환경에 있었다. DJ가 공산주의자다 아니다가 문제가 아니라 국민들이 보기에 DJ는 ‘저쪽이다’라고 생각했다.

 

 

Q. 2000년 김대중-김정일 제1차 정상회담의 성사는, 불발되었지만 1994년 김영삼-김일성 간 정상회담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 같다

2000년 6월에 남북정상회담하던 무렵 YS를 모시고 중국 허난성에 간 적이 있다. 그때 허난성 성장이 지금 총리 하는 리커창이었고, 당시 나이 42세의 젊고 잘생긴 북경대 경제학 박사 출신이었다. 그 날 저녁 만찬을 하는데 남북 6·15 공동성명이 화제에 오르자 리커창이 축하한다고 했다. 그러자 YS가 ‘잘됐다’고 하시면서 ‘만약 1994년에 김일성 주석이 죽지 않아서 나와 만났으면 좀 더 균형 잡힌 영수회담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 YS는 DJ가 김정일에게 너무 양보했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YS는 70년대부터 김일성 만나겠다고 했어도 DJ는 만나겠다는 얘기를 못했다. YS-김일성 정상회담 합의라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DJ가 민족문제를 자기 생각대로 풀어갈 수 있었다고 본다.

 

Q. 2000년 정상회담에 대한 상도동 측의 해석이 흥미롭다. 당시 정상회담에 대한 YS의 반응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인데

여담인데, 그때 중국 사람들이 김정일 위원장도 남한을 방문하기로 했다고 하니까 YS가 ‘김정일은 남한에 못 올 것’이라고 하시더라. 내가 호텔에 와서 ‘김정일이 온다고 했다는데 꼭 못 온다고 얘기를 하셔야 합니까’ 물었다. 그랬더니 ‘대한민국 국민을 뭐로 보냐’고 하시더라. ‘6·25 전쟁 일으킨 당사자의 자식이 어떻게 대한민국에 오느냐, 제주도에 와서 하룻밤 자고 갈 순 있을지 모를까’. (웃음) 이 말씀을 하시더라. YS가 한 말을 사람들은 잘 기억을 못하는데 정치적 선택을 보면 시대성에 대한 굉장한 안목을 가지고 계신다.

 

YS, “나는 사실 대통령 하고 싶었어”

 

Q. 아까 3당합당 관련해서 보수를 진화시킨 역할을 한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건 나 같은 사람이 한 얘기고. 퇴임한 후에 YS가 상도동에서 대학교수들이랑 갖던 점심자리에 나를 자주 부르셨다. 한번은 학자들이 3당 합당은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을 통합한 중대한 의미가 있다고 하더라. 학자들이 약간 칭찬하는 뉘앙스였는데, ‘이수석도 그렇게 얘기하나?’고 물으시더라. ‘학자들이 그렇게 생각해주면 근사하지 않습니까’ 했더니 YS가 ‘나는 사실 대통령 하고 싶었어’라고 하시더라. 학자들 다 있는 자리에서.(웃음) ‘3당합당 안했으면 나하고 김대중 씨하고 맨날 싸우고 군인들만 좋은 일 시켜줬을 거야’라고 하시더라.

 

Q. 노태우 대통령에 이어 한 번 더 민정당에 정권이 갔을 것이라는 말씀인데

“내가 3당 합당하고 정리하지 않았으면, 나나 김대중 씨가 전혀 양보 안 했을 것이니 그건 국가를 위해서 좋은 일도 아니다. 그래서 고민하고 어렵지만 3당 합당을 결심했다”고 하셨다. 사실 당시 결심하고 실행하기까지는 수많은 고통과 고민이 있었다. 요즘에야 이혼이 아무 것도 아니지만 옛날 수절과부가 재혼하는 것보다도 어려운 일이었다. 좌우간 ‘내가 그때 합당 안했으면 나도 DJ도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쉬운 말로 말씀하셨다. 그 말씀 하실 때가 노무현 대통령 임기쯤이었나 그렇다.

 

“변하지 않는 보수는 없었다, 변하지 않으면 보수가 아니다”

Q.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보면, 온건한 중도층들이나 부산 경남 유권자들이 현재의 보수 야당 대신 민주당을 선택했다. YS가 만든 구도가 깨진 건가

 

돌아가신 양반이 몇십년 책임질 수 없는 노릇이다. 이건 야당 지도부뿐 아니라 지금 정치인 모두의 책임이다. 근본적으로 한국 정치인들이 왜 정치를 하는지 모르겠다. 국민을 그저 표를 주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하지, 정치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인식이 없다. 권력도 국민의 위임으로 받은 것이라는 생각이 없다.
원래 정치는 힘들다. 욕을 제일 많이 먹는다. 그리고 민주주의에서 정치는 만장일치가 없다. 어떤 정치인이든 자신의 비전을 갖고 정책을 선택하면, 그 정책으로 인해서 피해를 보는 사람은 죽자고 비난하지 않나.

 

Q. 이번 지방선거 패배에 이르기까지 야당 지도부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보시나

이번 패배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패배였다. 국민들이 10년 이상을 봐줬다. 이번 선거 전부터 기자들 만나서 얘기했다. 6월 초에 중앙일보랑 인터뷰할 때도 ‘야당이 폭삭 망할 것이고, 망해야 한국 정치에 변화가 있을 거 아니냐’고 했다. 예측대로 됐는데, 사람들은 망했다는 사실에만 집중하지 그 이후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더라.
대한민국 가치를 지키는 게 보수 아닌가. 보수가 무얼 지켜야 하는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 국민이 10년을 봐줬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만들어줬으면 새로운 보수의 진가를 보여줘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Q.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신다면?

그건 정치하는 사람들이 해야 한다. 보수든 진보든 ‘우리는 이런 가치를 지키려고 한다’, 이렇게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보수들은 자신들이 (계속해서) 표를 받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니 지방선거에서 TK에서 겨우 광역단체장 2석 받아서 섬이 되어버렸다. 이제 그런 보수로는 안 된다. 그런데 지금도 그런 생각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보수는 경상도가 무조건 자기네 표라고 알고 있는데 이제 아니다. 특히 부산, 경남사람들은 개방적이고 다양한 사람들이다. YS를 아무리 지지해도 92년 대선 때 80% 가까이 지지했지. 1987년 대선 때는 YS 지지가 60% 조금 못 미친다. 저쪽(광주전남, 대구경북)은 90% 다 넘어갔는데. 그만큼 개방적이야.
이번 선거는 보수정당이 가야할 길을 보여준 거다. 자유한국당이 중도층, 중도보수층, 부산, 경남의 민심 확보하려면 자기들이 생각하는 보수가 뭔지 내세워야 한다. 대한민국이 나아갈 곳, 보수가 지켜야 할 정체성이 무엇인지 한국당이 내세워야 한다. 자꾸 말로만 보수 외치면 다음 선거에서 씨도 없이 말라질 것이다. 보수가 말은 보수라고 하지만, 변하지 않는 보수는 없었다. 보수가 변하지 않으면 그건 보수가 아니다. 계속 집권하려면 변해야 하고, 변하려면 시대적 흐름, 시대적 소명을 알아야 한다. 보수가 갈 수 있는 가치에 대한 시대적 소명 말이다. 이 사람들이 지금은 그걸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YS, DJ, 노무현까지는 시대정신을 제시했는데...”

Q. 이 시대의 진보와 보수는 무엇이 다른가. 차별화의 포인트는?

이 시대의 보수와 진보의 차이는 국가관이 가장 크다. 건국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흐름을 자랑스럽다고 생각하느냐에 대한 문제다. 지금 정권 잡은 사람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정통성에 대한 확실한 인식이 없었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도 보면 대한민국 대통령인데 상해 임시정부 얘기하고 있다. 임시정부를 잊어버리자는 얘기가 아니고 대한민국이 탄생한 것은 1948년 8월 15일이다. 지금 대한민국 대통령 아닌가. 그게 아닌 것처럼 말할 때가 더러 있는 것 같다. 이런 문제에 대해 확실하게 문제제기하는 신념 있는 보수가 있어야 한다.

 

 

Q. 그 말씀 들으니 앞으로 여야 간에 이 문제가 큰 이슈가 될 것같다.

여야 모두 국가관, 역사관, 시대관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인식 아닌 권력 때문에 움직인다. 어느 나라든 지역감정이 없을 수는 없다. 완벽하진 않아도 묶어서 함께 가야 한다. 자기네 생각들이 확실하게 있어야 하는데. 권력만 좇아간다. 이게 쉬운 권력이라서 그렇다. 권력자는 누구보다 더 큰 책임의식이 있어야 한다. 국민의 위임 받았으면 약속을 지키려는 책임의식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권력 잡는 데 급급해서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지 의식이 없는 것 같다.

 

 

Q. 이 수석은 본인이 무엇이 되겠다고 정치를 한 분은 아니다. 그런 입장에서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견해가 궁금하다.

정치인은 국가, 국민에 대한 소명의식. 시대에 대한 소명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에 없으면 그 사람들은 그 능력으로 다른 일을 해야 한다. 수단 방법 안 가리고 무언가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니 뭘 해도 성공할 것이다.
그런데 정치는 다르다. 정치만은 공익적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나라를 위해서 정치한다는 생각만은 가져야 한다. 실천은 못해도 말이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런 지도자가 필요하다.

 

Q. 공익적 가치를 잘 구현한 사람은 누구를 들 수 있나?

정치인은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시대에 맞는 가치, 어떻게 구현할지 비전을 들고 나와야 한다. YS나 DJ는 군사통치하에서 민주화 가치를 들고 나왔다. 노무현까지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후에는 시대정신을 제시하는 정치인을 보지 못한 것 같다.

 

“이명박, 박근혜는 왜 정치하는지를 잘 몰랐다”

Q.  왜 그런 사람 보기가 힘들까?

쉬운 권력을 취하는데 익숙해진 게 아닐까. 어떤 사람한테 잘 보이면 공천 받으니까. 학자들도 상향식이나 하향식이니 공천에 대해서 문제제기하지만, 정당은 공천 받을 만한 사람, 정치적 소신이 있는 사람을 공천해야 한다. 그런데 (공천권자는) 나하고 친한 사람, 데리고 있는 게 마땅한 사람만 생각하고, 공천 받을 계산으로만 정치하려는 사람은 차라리 고시를 봐야 한다.
모든 정치인이 그런 가치를 제시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 지도자가 사람을 모으는 것이다. 왜 정치를 하겠다고 나섰냐고 물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속으로는 국회의원하고 싶어서 정치했다고 할 것이다.

 

Q.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은 가치를 제시했나?

두 분은 뭐를 추구하기보다 왜 정치하는지를 잘 몰랐던 것 같다. 두 분뿐만 아니라 우리 정치인들이 지금까지 그 이유를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이제 나올 거라고 본다.

 

Q. 어떤 점에서 그렇게 보시나.

수천 년 한반도 역사에서 더 힘든 일도 많았다. 그러나 다 극복하고 넘어갔다. 튼튼한 수준의 국민이 있었기 때문에 그 수준에 맞는 지도자가 꼭 나올 것이다. 나는 이런 점에서 낙관론자다. 그런 지도자가 나오지 않으면 비정상적인 상황으로 갈 것이다. 4·19 이상의 사건이 또 나올 수도 있다. 국민과 정치권이 싸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본인을 어떤 대통령으로 알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촛불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정의의 촛불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촛불민심에 대한 책임을 질 생각을 해야 한다.

 

Q. 책임은 어떻게 져야 한다고 보시나.

자신만 옳다고 말하면 안 된다. 촛불에 반대하는 사람, 현 정권을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태극기 세력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원래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수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사람들도 한쪽에선 대한민국을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사람들을 옳지 못한 그룹으로 보는 것 같다. 선악의 개념으로 보면 안 되고 두 축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 반대세력까지 완벽한 통합을 할 수는 없겠지만, 누가 책임을 지느냐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지금은 민주당이 책임지지만 다음에는 야당이 책임을 질 수도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대통령 비서에게 출마 권하는 건 위해주는 척하며 내보내려는 사람”

Q. 이원종 수석하면 사심 없는 참모의 이미지다. 지금 청와대 참모들에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금은 내각이 없는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YS 때도 그랬다고 하는데 우리 때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 때는 각부 장관을 매주 한 번씩 불렀다. 대통령과 장관의 독대 때에는 비서실장도 참여하지 않았다. 장관들이 청와대나 대통령 눈치를 너무 보긴 했다. YS는 나처럼 정무파트가 가장 힘들었다. (웃음) 귀신같이 자잘한 수까지 아시니까. 나머지 경제, 문화, 교육에 대해서는 YS가 잘 모르는 분야이니 자기 소신이 분명한 장관은 대통령 머리에 자기 것을 입력시킬 수 있었다. 당신이 잘 모르는 분야에 생각을 강요하는 분이 아니어서 장관이 역량껏 자신의 소신을 펴나갈 수 있었다. 당시 장관들이 비위 맞추고 눈치 보느라 그렇게 안 했다.
반면 DJ는 모든 분야를 다 알고 있었다. 어떤 수석이나 장관보다도 더 잘 알았다. ‘그 양반에게 인정받으려면 아부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DJ랑 일하는 분들은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Q. 노무현 대통령은 어떻게 보시나.

노무현은 훌륭한 자질을 가진 사람이지만 성공한 리더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 여러 주변에서 노무현을 인정 안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결국 업적이 좌파나 진보적 정책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한미 FTA, 이라크 파병, 제주 해군기지 같은 데에서 나왔다. 한나라당 지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이상은 참 좋았으나 불행한 리더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에서 대통령이 되었는데, 그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Q.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

 권력 내부의 권력싸움이 더 심하기 때문이다. 여야 간 싸움은 싸움도 아니다. 비서실장이 힘을 가지고 있으면 적이 많이 생긴다. 그래서 누구든 대통령비서실장이 차기를 노린다고 소문나면 그 사람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그걸 뛰어넘는 역량이 있어야 하는데, 주변에 적이 많아서 힘들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비서실장하면서 적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아무도 문재인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더라. 문재인도 청와대에 있을 때 대통령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나중에 힘을 가질 수 있었다

 

Q. 이수석의 경우 다른 생각이 없었죠?

나는 대통령을 모신 것 외에 다른 생각이 없었다. 국회로 왜 안 가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두 부류다. 하나는 좋은 의도로 비서는 맨날 비서니까 국회로 나가서 힘을 갖고 일해보라는 의도, 또 하나는 위해주는 척하면서 대통령비서실에서 일 그만두게 하려는 사람들이었다. 후자가 더 많았다. 나는 톱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내 역량의 한계를 알고 있었다.

 

Q. 개헌을 한다면 어떤 부분이 먼저라고 보시나.

 (지금과 같은) 대통령제에서는 총리를 없애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총리는 총리가 아니다. 장관 중의 한 사람이다. 이 제도에서는 총리를 제대로 된 사람을 둬 봐야 안 된다. 제대로 두려면 국회에서 뽑은 총리를 둬야 한다. 부통령은 아마 대통령 유고 시에 대통령 대신하기 위해서만 필요할 제도이다. 현재의 제도에서도 뭔가 잘못되면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 총리 잘못이니 내 책임이 아니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지금의 총리는 얼굴마담이다. 대독총리라는 말이다. 총리가 책임지지 않는데 무슨 권한을 가지나. 권력에는 책임이 있어야 한다. 책임지지 않는 권력은 폭력이다.

 

“시대정신 갖춘 리더 없으면 야당은 존재 자체가 무너질 것”

Q. 세대교체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한국 정치권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골 메뉴다. 몇 년에 한 번씩 나온다. 세대교체라는 말이 왜 나오며, 왜 잘 안된다고 보시나.

세대교체는 스스로 치고 나와야 한다. YS가 1970년도에 40대 기수론을 처음 들고 나왔지만 초기에는 잘 안되었다. 그때 야당은 지금보다도 더 확고한 보수적 위계질서가 강한 체제였다. 처음엔 무서워서. DJ가 YS보다 기반이 약했으니까. YS가 40대 기수론 들고 왔을 당시에는 기라성 같은 원로들이 구상유취라고 했다. DJ는 YS가 40대 기수론 들고나온 두 달 후에야 동의했다. 지금은 세대교체론이 대세라고 본다.

 

Q. 지금은 그때와 다르게 당사자들이 세대교체론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언론이나 학계에서 먼저 띄워주는 것 같다.

새 시대의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의 정치와 자기가 맡을 시대의 정치는 어떻게 달라야한다는 시대정신이 없으니까 언론에 편승해서 간다. 나이만 젊다고 세대교체가 아니다.
지금의 세계는 젊은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 많은 나라가 이미 40대 지도자 시대이다. 원로는 원로대로 할 일이 있고, 젊은 세대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젊은 세대가 일을 추진하면 그 위험부담을 원로들이 막아줘야 한다고 본다.

 

Q. 요즘 대안으로 등장하는 것이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의 학생운동권 세대들이다. 소속 정당을 떠나서 이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문제는 세대가 아니라 시대정신이다. 시대정신이 있는 정치인이 없는 것 같다. 시대정신이 없으면 세대도 없다. 나이가 젊다고 세대인가.

 

Q. 그렇다면 지금의 시대정신이나 가치는 무엇이라고 보나.

지금은 한국이 선진국도 후진국도 아닌 상태다. 중진국 비슷한 상태인지 오래되었다. 이제는 여기서 추락하느냐 올라가느냐밖에 길이 없다고 본다.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할 시점이다. 그런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말로는 보수, 진보라고 하지만 ‘시대에 필요한 보수, 진보’를 간단한 말로 국민 앞에 정리해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대한민국을 만들자! 혹은 어떤 시대로 가자!는 말이 필요하다.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국가주의’니 뭐니 하지만, 시민 시대라고 해도 국가 리더십은 필요하다. 박정희, 전두환, 박근혜 같은 리더십이 아니라 시민 시대로 건전하게 끌고 갈 리더십이다. 이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도 좀더 생각을 가다듬어야 할 것 같다.

 

Q. 여당이든, 야당이든 시대정신을 잘 풀어낼 리더가 나오면 좋겠지만. 그런 리더가 양쪽 다 안 나오면 자유한국당은 다음에도 정권을 놓치지 않을까?

정권이 문제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무너질 것이라고 본다. 이번 지방선거가 마지막 분노의 폭발이었다고 본다. 이건 애정을 가지고 혼내주는 선거였고 국민들이 다음번에는 관심도 없을 것이라고 본다. 그래도 야당 안에서 보면 몸부림치는 사람이 있겠지. 그럼 좋은 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
여야 두 축이 같이 살아나야 나라가 살아난다. 여당도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것 같다. 야당이 개판이니까.

 

“YS는 세 가지 개혁으로 할 일 다했다”

Q. YS 집권기에 대해 여쭙겠다. 3당합당으로 집권하고 나서 하나회 청산, 금융실명제와 공직자 재산공개의 도입을 비롯해 우리나라 개혁의 근간이 그때 많이 생겼다. OECD 가입이나 세계화 비전 제시도 있었다. 반면 IMF 외환위기, 외환수지 관리 실패, 그 뿌리가 된 산업구조 재편 실패 등도 있었다. 음양이 뚜렷한 대통령 같다. YS가 정치개혁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역시 YS의 개혁의지인가.

YS의 87년 대선 구호는 군정 종식이었고 93년 취임 때의 슬로건은 문민시대였다. 노태우 대통령의 의식 속에는 군사문화가 있었다. YS는 집권기에 문민화를 위한 기반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하나회 정리를 포함해서 기득권 세력이 불편하게 생각한 일을 많이 했다.
금융실명제, 하나회 정리, 부동산실명제, 공직자 재산등록 공개도 하고 나니 당연해 보이지만 엄청난 일이었다. 당선자 시절 모 조간신문 기자가 ‘거창한 개혁을 공약하셨는데, 약속 지킬 것 같냐’라고 묻더라. 나는 ‘100%는 아니더라도 지킬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 기자가 ‘사실 전두환도 금융실명제 하려고 했다’면서 ‘재무부 국장들이 예금통장 몇 개씩 갖고 있는 줄 아시냐’고 묻더라. 평균 수십 개가 넘는다면서 금융실명제 안된다고 하더라. 그 사람들이 실무자인데 자기 재산 쉽게 내놓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출세하고 자리 잡은 입장에서 보면 자기 돈 줄어드는 것과 같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게 얼마나 무서운 개혁인지 잘 모르지만.
공직자 재산등록을 하고 나니 차관급 중에서 내가 꼴찌에서 둘째고, 관선으로 인천 시장하던 최기선이 꼴찌였다. YS 비서 두 명이 꼴찌인 거다. 하루는 YS가 전화 하셨더라. ‘너는 어째 돈이 그렇게 없냐’고 묻더라. 어른 입장에선 자기 비서 두 명이 꼴찌였으니까. 내가 2억 몇 천 정도 가지고 있었는데 그만하면 됐지 뭘. ‘기선이는 저보다 적던데요’ 하면서 ‘각하도 그렇게 많진 않습디다’ 했다. YS도 민주화 운동 때 당신이 용돈 주던 모 공직자가 재산이 8억 얼마라며 재산이 많아서 깜짝 놀랐다고 ‘괜히 용돈 줬다’고 하시더라. YS 재산이 4억 몇 천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하여간 비밀이 새어나가면 안 된다고 해서 아무도 모르게 추진했다.
YS가 하나회 개혁한 것도 그쪽이 얼마나 부패했는지, 군인들의 오만함, 더러움 모두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그 양반이 하나회, 금융실명제, 공직자 재산공개 이 세 가지 개혁으로 할 일 다 했다고 본다. 사람들은 YS 개혁이 실패했다고 보는데 나는 실패라고 보지 않는다. 임기 말에 외환위기를 맞은 것도 정상국가를 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자 단계였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하향식 리더십에 의해서 생각보다 쉽게 산업화하고 성장했다. 외환위기는 비정상적으로 성장한 우리나라가 반드시 거쳐야했던 단계였을 지도 모른다. 오히려 YS 시절에 빨리 와서 다행이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기반으로 국민의 정부가 거저먹은 것이다. DJ가 세계에서 제일 빨리 IMF 관리국가에서 해결되었다고 자랑했지만, 그건 사실 국민의 역량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Q. YS의 복심답게 거의 모든 현안에 대해서 어느 정도 정리를 해놓은 것 같다.

적어도 핵심 참모로서 기본적인 국정방향에 대해서는 알아야 했으니까. 누구를 만나도 얘기를 할 수는 있어야지. YS가 구체적으로 말씀 안 해도 스스로 정리해놔야지.

 

“북한은 내부모순 때문에 국제사회 나온 것”

Q. YS와는 주로 어떤 말씀을 하셨나.

민주주의 원칙에 철저하신 분이라서 국회를 소중하게 생각하셨다. 모 의원같은 경우 뛰어난 인물이 아니었는데도 개인 아무개와 의원 아무개를 대하는 방식이 다르셨다. 국민에게 선출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국회의원을 대접하는 자세는 달랐다.

 

Q. 1998년 2월 25일 취임식을 마치고 청와대로 가다가 광화문에서 길거리 시민들의 손을 잡는 모습을 보고 ‘국민과 함께 성장한 대통령이 선출되면 저런 모습을 볼 수 있구나’ 싶었다. 반면 퇴임 후에는 몇 번 고집스럽게 비친 장면도 있었다. 외환위기 청문회 때에도 충돌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사실 그분이 퇴임 후에 DJ에게 기분 나빴다. 여당 분열 속에 DJ는 JP와 손잡고도 39만 표 차이로밖에 못 이겼거든. DJ 비토그룹이 그만큼 많다는 거다. DJ가 대통령 당선되자마자 그 다음날부터 두 내외가 일주일에 한번씩 청와대에서 식사하면서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언론에 보도된 것보다 훨씬 많이 만났다. YS는 DJ를 돕겠다고 생각하고 DJ 취임까지 YS는 대통령직을 포기한 것이다. 당선자 의중에 거의 따르고 공도 DJ쪽으로 넘겼다. 그래서 IMF를 빨리 수습할 수 있었던 부분도 있다.
두 분이 온갖 얘기를 다했다고 하더라. 자주 만날 수가 없으니까 두 분이 다 잘 아는 누구를 메신저를 정해서도 대화를 많이 했다더라. 근데 취임 후에 DJ가 YS를 청문회에 나오라고 한 거다. 그래서 YS도 굉장히 화가 나셨다. 외환위기를 청문회로 해결할 수 있던 일인가 하면서, 그때 험한 애기를 몇 번 하셨다.
물론 DJ가 IMF 극복하려면 희생양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어느 정도는 각오하셨다. 그런데 청문회 자리에 대해서는 굉장히 화가 났던 것 같다. YS는 39만 표차 승리였던 DJ가 당신의 협조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는 생각에 돕는다고 도왔는데.

 

Q.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

나는 북한에 대한 신뢰는 없다. 평화를 얘기하는 시대이지만. 저쪽에서 전쟁을 일으킬 순 있어도 우리 쪽에서는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문 대통령이 ‘북한을 경계한다’는 인식을 확실하게 보여주면 좋겠다. 더군다나 우리는 6.25를 겪었다. 이런 부분까지를 고려하는 언행을 하는 것이 문 대통령한테도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평화 또한 우리 주도로 지켜야한다는 입장이다. 전적으로 북한이 평화적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 안 된다. 북한은 전쟁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니까 안한다고 본다. 지금의 북한이 국제무대로 나오는 것은 그만큼 내부모순이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Q. 북핵 문제는?

북한이 무너지거나 핵을 포기할 때까지 지속될 문제다. 남북한 간의 공존은 문제가 없다 통일이 되든 말든 중요한 것은 평화다. 삼국시대나 신라 발해시대 같은 때 길게는 남북이 1천년 동안 갈라져서 산 적도 있다. 그러나 이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공존은 지향해야 할 목표다. 어떤 통일이든 남북한 체제가 현재처럼 다른 이상 통일이 빠른 시일에 현실적으로 다가올 수는 없다고 본다.

 

 

“미국은 자유, 평등, 개방성 회복해야, 트럼프 방식은 잘 안될 것”

Q. 최근 북한은 핵을 폐기할 수는 있지만 핵기술은 갖겠다고 했다.

그건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이고 속은 모른다. 미국과 어떤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한국을 따돌리고 북미 간 무언가 있지 않나 우려하는 사람도 있다. 언론 보도 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의심도 들지만 그건 아니라고 본다. 트럼프가 아무리 예측불가라고 해도 한미관계 깨고 북한과 새로운 관계를 맺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중국도 북미관계가 깊어지지 않을까, 즉 자국 영향력이 줄어들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다. 앞으로 중국, 미국과의 관계에서 북한이 항상 이슈가 될 것이다.
평화는 북한이 원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북한이 전쟁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 평화를 얘기한다고 본다. 더 이상 폐쇄적인 환경 속에서 체제유지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외부로 나온 것이다. 북한 인민들이 자유와 시장경제의 콧바람을 쐬고 빈부의 격차도 생기고 있다. 옛날처럼 일사불란한 지도체제로 북한이 인민을 10년 이상 다룰 수는 없을 것이다.

 

 

Q. 트럼프 대통령은 어떻게 평가하시나.

미국 사람들이 그를 뽑았다는 사실만으로 미국의 품격이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자유와 평등으로 세계를 끌고 나갔다. 돈을 주먹 삼아서 끌고 나가는 것이 과연 잘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이제 군사력이 아니고 돈으로 주먹질하려고 하잖아. 이제 미국은 10원도 손해 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래서는 세계를 이끌어갈 수 없다. 미국 내에서도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트럼프를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내야 미국이라는 나라의 존재 이유가 있다고 본다. 트럼프 방식으로 돈과 무력으로 세계를 이끌어 가려면 절대 못할거다.

 

 

Q. 로마제국도 전성기에는 시민개병제와 황제정으로 제국을 이끌다가 나중에는 게르만족에게 벼슬이나 돈도 줘서 제국을 연장했다. 같은 제국이라고 해도 국력에 따라 다른 방법을 쓸 수 있는 것 아닌가.

로마 때하고 지금 시대는 크게 다르다. 로마 때에는 로마 이외에 나라들이 없었다. 그리스와 페르시아와 동양 중국도 있었지만, 그 주변에 제대로 된 나라가 없었다.
그렇다면 트럼프 방식으로는 더 잘 안 될 거라고 본다. 중국과의 문제도 대화로 해결해야지 무력으로 해결하던 시대는 지났다. 개인으로 봐서도 사람을 데리고 있으려면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도 토닥이면서 같이 가야 한다. 아랫사람에게 주먹으로 해결하면 해결되는 일이 별로 없다. 회사도 정당도 마찬가지다. 당에서 정치해보면, 정당 계보하나 운영하는 데에도 별별 사람 비위 맞추면서 운영해야 한다. 잔소리 말고 따라오라고 하면 잘 따라오지 않는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원래 정체성인 개방성으로 돌아가야 한다.
문제는 한국에도 있다. 문 대통령 주변에 미국을 싫어하는 사람이 제법 많다. 대한민국의 독립성과 자존심을 지켜가면서 미국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내가 느끼기로 문 대통령이 가끔 ‘우리가 미국에 종속된 국가는 아니다’, ‘이제 대등한 국가’라고 말하는 인상을 받았다. 크게 극한적인 상황은 아직 아니라고 보지만.

 

정리=박지은 수습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