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 학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한국에서 싱가포르로 다시 돌아왔다. 귀국 전 싱가포르의 살림살이를 맡겨 놓은 창고에 갔다. 코로나19 탓에 싱가포르 복귀가 계속 미뤄지면서 창고회사와 이용료 결제를 놓고 계속 실랑이를 벌였던 터라 담당자를 만나면 분위기가 썰렁할 듯싶었다.

정작 창고담당자는 반갑게 아는 척을 했다. 그에게 “내가 맡긴 짐이나 포기하고 도망갈 사람으로 보였냐”고 가볍게 항의했다. 정작 그 담당자는 그게 규정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담담하게 답했다. 창고 짐을 포기하는 외국인이 빈번하게 발생하기에 결제를 압박하는 게 최선이라는 설명이었다.

창고업으로 싱가포르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가 있다. 현대적인 국가(state)는 헤겔식으로 정의하면 “객관적 정신의 최고의 발전단계”라는 보편적이며 절대적인 윤리성을 지닌 지고지순한 존재에 가깝다. 한마디로 특정 국가를 따로 떼어 정의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도시국가 싱가포르의 경우는 실용적으로 정의 내리는 게 직관적이고 보다 유용하다고 느끼곤 한다. 3년 넘게 살아보니 그렇다. 그러니까 싱가포르라는 국가의 본질은 ‘창고업’에 무척이나 가깝다는 얘기다.

싱가포르 성장신화 ‘OK림’의 몰락     

코로나 시국임에도 각국의 경기부양책으로 인해 주가와 부동산 및 비트코인까지 거의 모든 자산 가격이 위로만 솟구치고 있지만, 가격이 주춤한 자산도 여럿 있다. 대표적인 게 원유와 철광석 등 전통적 원자재들이다. 2020년 4월 초의 원유 가격 급락 사태를 기억하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지금이야 예년 가격을 회복하긴 했지만, 당시는 전 세계를 휘몰아친 코로나 바이러스에 겁이 질려 원유의 선물(先物) 가격을 무려 ‘마이너스’까지 떨구는 패닉 셀 상황에 몰렸더랬다.

이 같은 폭락장에서 유탄을 맞은 기업이 있으니 바로 싱가포르 최대의 원유파생상품 거래회사인 힌렁(Hin Leong) 트레이딩 그룹이다. 한국에는 당시 4월 19일에 관련 소식이 전해졌는데, 내용은 무척이나 간단했다. 이 회사는 지난 수년간 석유선물거래에서의 손실 약 9000억 원을 감췄던 것인데, 이번 폭락 사태로 인해 누적된 부실채권이 약 4조 원에 이르러 파산이 불가피하다는 것과, 이로 인해 수많은 국제 금융기관들로부터 천문학적 소송에 직면했다는 내용이었다.

힌렁 그룹의 림운퀸 회장. (사진=링크드인)

힌렁 트레이딩은 싱가포르에 자리한 수많은 원자재 회사 가운데서도 아주 특별한 존재로 손꼽힌다. 그 이유는 여럿인데 유럽계 기업이 시장을 장악한 글로벌 원자재 시장에서 싱가포르인 Lim Oon Kuin(림운퀸)이 세워 뚜렷이 활약하는 민족기업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힌렁그룹은 싱가포르에 대규모 석유 비축창고를 갖춘 것은 물론 30척에 가까운 대형 유조선 그리고 트레이딩 사업까지, 석유거래와 관련된 거의 수직계열화를 완성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그의 싱가포르식 애칭이 ‘OK 림’이며 중국계 이민자 신화로 더 유명해진 기업이다.

남방중국어(민난어)를 영어식으로 표기하면 한국 독자에게 어색하지만 중국 이름 그대로 쓰면 손쉽게 이해가 되곤 한다. ‘힌렁’이란 번영(繁榮)이란 한자의 민난어 발음이며, 림 회장의 이름을 한국식으로 발음하면 林恩强(임은강)이 된다. 그는 1943년 복건성(푸젠성) 푸텐이라는 아주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1960년 일가족이 배를 타고 남쪽으로 이주하다가 싱가포르에 정착했다. 싱가포르에는 아주 다양한 화교 집단이 존재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복건성 출신이 60%에 가까운 민난어 중심 사회다. 시기에 차이가 있지만 싱가포르 화교는 대개 19세기 말에 정착했으니, 임 회장은 남들보다 60년(2세대) 늦게 당도한 것이고, 중국인이란 정체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1세대 이민자라고 해야 할 듯싶다. 그런데 불과 60년 만에 싱가포르 최고의 재벌로 성장한 것이다.

석유 트레이딩 ‘싱가포르 번영’의 키워드    

전 세계 3대 상품시장은 영국의 런던, 미국의 휴스턴, 그리고 아시아의 싱가포르가 꼽힌다. 세계 3대 상품 트레이딩 회사로는 비톨(vitol) 글렌코어(glencore) 트라피규라(trafigura)가 꼽히기도 한다. 글로벌 상품 시장의 큰손 가운데 최고봉인 글렌코어와 이를 만든 마크 리치(Marc Rich 1934~2013)라는 인물에 친숙한 한국인은 그리 흔치 않다. 이 회사는 그러니까 IT업계로 따지면 마이크로소프트(MS)와 빌 게이츠에 해당되는 인물이다. 배나 자동차로 실어 나를 수 있는 거의 모든 상품을 취급하는 미국 출신의 스위스 기반의 유럽계 회사다.

이 같은 상품 거래 기업이 유명하지 않은 이유는 브랜드명이 중요한 소매업이 아니라 도매업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의 성장 역사와 배경이 글로벌 원자재 시장과 연관이 적은 탓도 있고 대부분의 이들 기업이 미국이 아닌 유럽계인 이유도 있다. 게다가 이와 관련된 기업은 SK에너지나 삼성종합화학 GS칼텍스를 비롯해 일부 자원 관련 기업과 대기업 종합상사만 관련된 특수시장에 속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학부 시절 경제 관련 세미나를 하면서 한 학생이 “유럽이 왜 부자인지 모르겠다”는 질문이 나온 적이 있다. 독일 정도만 제조업이 발달했을 뿐 영국은 물론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 프랑스 등 인구도 그리 많지 않고 자원도 빈약한데, 1인당 국민소득은 대개 5만 달러를 넘나들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바로 한국과는 무관한 원자재 시장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얘기해주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게 20세기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된 석유 관련 시장을 장악한 이들이 유럽 세력인 것이다. 미국이 사우디와 강하게 연관되어 있다면 유럽은 사우디 이외에 전 세계의 석유채굴권과 그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식이다. 한마디로 유럽의 번영은 18세기 ‘광산업’의 세계화에서 시작된 것이고, 제국주의와 함께 아프리카 인도·동남아 남아메리카 등으로 사업을 확대한 결과물이다.

물론 자원(원유)을 채굴해 정제해서 석유 거래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운송수단으로 이동이 가능한 상품시장(원유와 가스 등)은 창고에 머무는 동안 다양한 선물시장 및 파생상품 시장의 거래로 확대된 된다는 것도 이제는 널리 알려졌다. 상품이 채권이 되고 증권화가 되는 식이다. 글로벌 석유 관련 현물과 선물시장의 1년 규모가 $6 트릴리온(trillion) 달러, 즉 6000조 원에 이른다. 그 이윤의 대부분을 유럽과 미국이 챙겨가는 식이고,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가 그 선두에 서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싱가포르에는 한국인이 알만한 기업이 그리 많지도 않고 많을 수도 없다. 대개 원자재를 사고파는 ‘트레이딩’ 기업이기 때문이다. 힌렁 그룹도 수백여 개의 세계 트레이딩 컴퍼니 가운데 하나인 셈이고, 그는 1960년대부터 싱가포르의 성장과 맥을 같이 하는 대표적인 민족 기업이 된 것이다.

지금은 인구 5백만에 1인당 GNP 6만 달러의 선진국 싱가포르가 줄곧 부자나라였던 것은 아니다. 1965년 독립 이전에는 미얀마 경제와 비견될 정도로 가난한 말레이 연방의 국제 항구에 불과했다. 당시 국제항구라고 해도 지금처럼 그리 번듯했던 것도 아니다. 선박의 정박이나 수리, 화물 하역과 적재 정도가 대부분이었고 싱가포르는 1970년대 중계무역으로 본격적인 경제성장의 기틀을 잡고 1980년대부터 국제항과 국제공항을 기반으로 하는 물류업으로 존재감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2000년대부터는 선물과 현물(상품)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르며 국제금융도시로 거듭났던 것이다.

힌렁 그룹이 보유한 석유 스토리지인 유니버셜 터미널 전경. 싱가포르 주롱 섬에 자리하고 있다.(사진=힌렁 그룹)

석유 배달업에서 자원시장의 큰 손으로  

임 회장의 입지전적은 재벌 1세대의 성공신화와 무척이나 흡사하다. 임 씨 일가는 1960년 중국 복건성에서 배 한 척을 몰고 싱가포르에 당도했고, 당시 17세인 임 회장이 생계를 위해 그 배를 몰고 싱가포르 앞바다에 정박한 낚싯배들에게 디젤유를 배달한 것이 출발이었다. 이윽고 기름을 배달하기 위해 자동차를 구입했고 1963년 20세의 나이에 자신의 회사 힌렁을 설립, 5년 뒤에는 유조선까지 갖춘 어엿한 석유 중개인까지 된다. 1965년의 싱가포르의 독립이 아주 커다란 사업 배경이 된 것도 물론이다.

힌렁과 임운퀸의 성공은 싱가포르의 발전과 맥을 함께 하는 데 크게 3가지의 맥락이 있다. 첫째는 단순히 지정학적인 장점을 살려 물류중심에 그친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상품 자본 시장으로 진화를 거듭한 점, 둘째는 상품시장 가운데 특히 석유산업에 싱가포르 정부와 자본이 막대한 설비투자를 했다는 점이다. 싱가포르는 “석유 위에 뜬 섬”이라고 할 정도로 중동과 동남아산 석유의 중간 기착지가 되었을 정도로 곳곳이 석유 저장고로 변신한 것이다.

마지막인 셋째는 주변 정세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인데 1970년대엔 베트남 전쟁을 발전의 기회로 삼았다면 1990년대 이후엔 압도적으로 중국 경제의 승천에 함께 올라탄 것이다. 힌렁그룹의 빠른 성장은 한마디로 자신의 출신을 활용한 중국과의 압도적인 커넥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힌렁의 물류&해운 자회사 오션 탱커스(Ocean Tankers)는 3개의 비축기지가 있는데,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중국의 닝보(닝보) 앞바다에 운영하며 중동에서 나는 석유를 빠르게 중국 경제에 공급하면서 기업과 싱가포르 성장에 기여를 했던 것이다.

임 사장의 사업 초기 수 십 년 동안 싱가포르의 석유 산업은 격동의 세월이었다. 중동과 아시아의 정세는 계속 요동쳤고 러시아의 천연가스와 미국의 셰일가스 그리고 이제는 테슬라의 전기자동차가 석유산업을 꾸준하게 위협하고 있다. 그러니까 림 회장의 지난 60년간의 사업이력에는 선박소유자, 석유저장시설과 항만 소유자, 무역업자, 보험 및 금융업자, 석유 구매 및 판매자라는 천연자원의 공급망과 증권시장을 이끌어 왔으며 싱가포르 발전의 중요한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던 것이다.

림 회장의 성공이 배후에 서있는 중국이란 존재감 덕분인데, 몰락 역시도 1세대 창업주 특유의 독선과 아집, 그리고 아시아식 연고주의에 의한 점도 흥미롭다. 이 회사가 경영난에 빠진 것은 지난해 4월의 원유 선물 가격 급락 이전에 회계 부정을 저지른 탓이다. 회계부정에 빠진 여든에 가까운 창업자인 림 회장이 아직도 후계자인 외아들과 손자 회사의 경영에도 개입하는 마인드 때문이라는 게 현지 언론의 분석인데, 실제로 꽤나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빈번하게 저질렀다. 결국 이를 감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손실을 감추는 최악의 수를 두었다는 얘기다. 한국의 대우그룹이나 아시아나그룹 등 수많은 재벌그룹의 흥망성쇠를 본 한국인 입장에선 무척이나 친숙한 일이기도 하다.

지난해 12월 31일 싱가포르에서 야경을 즐기는 시민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싱가포르와 창고 비즈니스     

힌렁그룹의 사례로 알 수 있듯이 싱가포르의 국가 비즈니스 모델은 한중일의 제조업과는 아주 크게 성질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싱가포르가 자랑하는 최고의 국가 인프라는 공항과 항구와 원자재의 현물과 선물 시장이다. 선물시장이 돌아가기 위해서는 현물시장이 있어야 하고 동남아의 상품이 집결하는 싱가포르는 아주 훌륭한 창고 역할이자 상품 자본의 증권화가 이루어지기 최적의 장소가 된 것이다.

여기서 조금 더 확장해 봐도 호텔과 관광 부동산 은행업 역시도 마찬가지다. 호텔과 창고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결국 싱가포르 전체가 제3세계 동남아시아 한복판에 자리한 1 세계의 대리인 역할을 맡았고,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싱가포르라는 공간과 입지 자체가 1 세계 출신 엘리트와 자본에게 편안함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외국인 투자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세금제도 역시 정교하게 설계된 측면이 있다.

상품 자본거래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유럽인과 동남아 부호들이 스위스 혹은 싱가포르 국적을 획득하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싱가포르의 사례만 살펴보면 대개 영토국가들의 세금이 33%를 넘나들지만 싱가포르는 13% 정도에 그치는 것만 해도 엄청난 메리트가 있다. 또한 싱가포르는 아예 상속세조차 없다. 때문에 싱가포르 시민권이 인기가 있고 싱가포르 은행 역시도 동남아 부호들이 몰려든다. 싱가포르의 주택시장 역시 마찬가지인 셈이다.

싱가포르는 국가 전체가 거대하고 편안한 ‘창고’에 가깝다. 과거에는 동남아의 향신료가 집결을 했다면 20세기엔 석유가 집결을 했고 21세기에는 유무형의 자본과 새로운 산업을 고민하곤 한다. 싱가포르의 노동자들은 집요하게 창고를 관리함으로써 생계를 유지하고 엘리트들은 새로운 창고 비즈니스를 꿈꾸는 만드는 기획자에 가깝다. 정치 엘리트들은 그 창고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안보정책을 세우는 데 집중한다. 창고 비즈니스는 안보가 압도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이 나라의 모토는 ‘중립(中立)’과 ‘실용(實用)’이며 미디어의 자유 역시도 쉽게 허용되지 않는다. 실용주의를 해야 하는데 다양한 목소리는 방해만 되기 때문이다.

2004년 사스(Sars) 바이러스로 싱가포르의 전통적 창고업이 위기에 직면하자 리센룽 총리와 엘리트들은 카지노 사업이라는 관광산업으로 위기를 돌파해 냈다. 카지노 역시 창고 사업의 일종의 변형일 뿐이다. 21세기 석유산업의 근본적 위기가 찾아온다면 싱가포르는 아마도 다른 창고사업으로 돌파하려고 할지 모른다. 코로나19이라는 위기도 따지고 보면 가장 성공적으로 극복한 사례가 되어가고 있다. 창고의 안전을 고려한 실용주의적인 해법을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기에 안전하고 재빠른 싱가포르식 생존 비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호재/ 아시아연구자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사에서 짧지 않게 기자생활을 했다. 동북아, 동남아, 남아시아를 두루 답사하며 태국의 탁신, 말레시아의 마하티르, 캄보디아의 삼랑시 등 각국의 지도자들을 만났다. 번역서로 《탁신-아시아에서의 정치비즈니스》, 《수상이 된 외과의사-마하티르 자서전》이 있으며, 올해에는 《아시아 시대는 케이팝처럼 온다》를 펴냈다. 싱가포르와 미얀마 등을 오가며 연구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