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호주에서 일어난 대형산불로 한반도 면적의 약 85%가량인 1860만 핵타르의 면적이 불에 타버렸다. 기후변화로 호주의 기온상승이 맞물린 자연재해였다 (사진=셔터스톡)

기후변화를 넘어선 기후위기의 시대다.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이에 따른 기후 변동성을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지난해 호주와 미국 서부에서 일어난 대규모 산불은 이런 기후위기의 징후며 현실이다. 한국은 기후위기의 주범인 온실가스 즉 탄소 배출에서 자유롭지 못한 국가다. 국제사회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여러 협정을 맺고 이를 강제하는 상황이다. 온실가스 배출 감소는 기후위기 극복과 한국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 반드시 실행해야 할 시대적 과제가 됐다. 고재경 필자는 환경정책 전문가로 온실가스 감소를 위해 '탄소인지예산' 도입을 주장한다. 정부의 예산 편성부터 탄소감축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 필자의 글을 통해 이제 걸음마 단계인 탄소인지예산 도입의 배경과 해외사례, 앞으로의 과제 등을 짚어본다 [편집자]

#전 지구적 과제로 떠오른 탄소중립  '탄소인지예산'으로 일관성 확보 필요#온실가스 감축목표와 예산을 연동  의사결정에 활용, 후속조치 확인해야#기후영향평가 실시해 리스크 예방  시장의 온실가스 감축 투자도 유도#탄소중립 경로의 세심한 설계 필요  선언에서 벗어나 에너지 집중해야

지난해 11월 4일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패배가 확실시되자 당시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자신의 트위터에 일성을 남겼다.

“정확히 77일 안에 바이든 행정부가 다시 가입할 것이다.”

그로부터 77일 흐른 오는 20일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으로 업무를 시작할 조 바이든 당선자는 파리기후협약 재가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바이든 당선자가 대선에서 승리를 확신하며 남긴 첫 메시지가 바로 파리기후협약의 복귀였기 때문이다.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체결된 파리기후협약은 버락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이 앞장서 만든 협약이다. 지구의 평균 온도를 산업화 이전보다 2℃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소하는 게 목표였다.

195개국이 채택해 발효된 파리기후협약은 향후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지구촌의 공동대응이었다. 그러나 2017년 공화당 후보로 당선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기후변화는 사기”라며 그해 협약 탈퇴를 선언했고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실패가 가시화된 2020년 11월 4일은 공교롭게 파리 기후협약 탈퇴가 공식화된 첫날이었다.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탄소중립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탄소중립은 온실가스 배출량과 제거량이 서로 상쇄돼 순배출량이 ‘0’이 되는 상태로 일명 넷 제로, 배출 제로라 불린다.

'탄소인지예산'으로 일관성을 확보하라 

유럽은 2019년 12월 ‘그린 딜’을 통해 2050 탄소중립 목표를 발표하였으며 중국은 2020년 9월에 2060년 이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천명했다. 한국도 지난해 10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국제사회와 함께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하여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나아가겠다”고 밝히며 2050 탄소중립을 본격화 했다.

지난해 9월 9일(현지 시각) 인근의 대형산불로 인해 주황 빛으로 물든 샌스란시스코 베이브릿지와 도심 인근의 전경. (사진=셔터스톡)

탄소중립에 각국이 발 벗고 나서는 이유는 기후변화가 예상했던 것보다 빠른 속도로 진전되어 지구가 회복할 수 없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에 가까이 와 있다는 과학자들의 경고가 현실에서 드러나고 있어서다.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녹는 것은 실생활에서 크게 체감하기 어려운 기후위기 이슈였다. 하지만 지난해 호주와 미국 북서부의 대형 산불이나 한국의 50여 일간의 장마 등은 기후위기가 실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각인시켰다. 여기에 미국이 다시 파리기후협약에 복귀하면 탄소중립은 이제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국정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OECD에 의하면 GDP의 약 40%가 공공지출에 사용되므로 국가 예산이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일관된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기후위기에 대응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침체된 경제회복을 위해 전 세계적으로 사상 최대 규모의 정부 재정이 투입되고 있는 지금이 탈탄소경제로 전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 모른다. 탄소중립을 위한 정책의 일관성과 통합성 확보 수단으로 예산이 탄소배출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탄소인지예산’ 도입이 필요한 이유이다.

탄소인지예산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해가 되는 지출과 수입이 어디서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쉽게 판별하여 유해 보조금과 세금을 줄이는 대신 목표 달성에 기여하는 예산 비중을 높이고, 인센티브를 재설계하여 시장 주체의 온실가스 감축 투자를 유도한다.

또한 정부가 취한 조치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가시화하여 정책담당자의 이해를 높이고 관련 정책과 목표의 모니터링과 보고를 개선하는데 도움을 준다. 나아가 탄소인지예산은 정부 예산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고 ‘시민기후예산서’와 같이 예산 감시를 위한 시민참여를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기후위기를 국가 예산, 정책에 통합 관리

프랑스는 2017년부터 녹색예산 제도를 시행하였으며, 2019년 예산에 대한 녹색예산을 검토한 결과 총 950억 유로의 관련 예산 중 온실가스 감축에 긍정적인 지출은 27.3%~30.1%(260억~286억 유로), 부정적인 지출은 18.4%~19.8%(175억~188억 유로)로 분류되었다. 아일랜드도 OECD와 협력하여 2019년 예산 중 기후 목표달성에 기여하는 6개 분야 예산 규모를 파악하였다.

UNDP는 기후변화를 국가 예산과 정책 입안 과정에 통합하는 방법론을 개발하여 2011년 네팔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개도국에 적용해 오고 있다. 기후예산 태깅(Climate Budget Tagging)은 예산에 기후예산이라는 표식을 붙이거나 계정 코드를 만들어 기후 관련 지출을 정기적으로 측정, 모니터링하는 도구이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네팔의 경우 국가 예산관리 시스템에 기후변화 항목을 코드로 추가하여 기후변화 관련 지출을 비교적 쉽게 산정하고 있다.

개별 국가와 도시 차원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정부의 예산 지출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고 있다. 스코틀랜드는 기후변화법(Climate Change Act 2009)에 의해 정부가 구매하는 재화⋅서비스가 탄소배출에 미치는 직간접적 영향을 '스코틀랜드 정부 환경 투입산출(IO)’ 모델을 이용하여 매년 평가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2013년 OECD의 환경성과평가 권고에 따라 환금과 환경 유해 보조금 목록을 작성하여 관리하고 있다.

캐나다는 공공부문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에 대해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회복력을 평가하고 그 결과를 정부 투자 결정에 반영하는 기후 렌즈 평가(Climate Lens Assessment)를 의무화하여 시행하고 있다. 오슬로시는 2017년 예산부터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예산 과정을 통합하여 다음 연도 온실가스 배출량이 목표치를 초과하지 않도록 실행 수단, 예상 감축량, 책임 부서를 명시하여 관리하는 기후예산제(Climate Budget)를 시행하고 있다.

오슬로시는 2017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예산 과정을 통합하여 관리하는 기후예산제(Climate Budget)를 시행하고 있다. (사진=셔터스톡)

'기후영향평가' 실시해 리스크를 사전 예방

국내에서도 그린 뉴딜을 계기로 온실가스 감축과 예산을 연계하는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 국회에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할 때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도록 국가재정법과 국가회계법, 지방재정법과 지방회계법을 개정해 각각 탄소감축인지 예산서와 결산서, 기후변화인지 예산서와 결산서 작성을 의무화하는 입법을 추진 중이다.

서울시는 기후예산제 도입을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며, 경기도는 지난해 예산편성 과정에서 2021년 일부 예산사업을 대상으로 체크리스트 형태의 탄소인지예산제를 시범적으로 적용하고 이를 토대로 올해  구체적인 기준을 개발할 예정이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도 탄소중립 친화적 재정 프로그램의 하나로 탄소인지예산을예로 들고 있다. 이처럼 아직 국내 논의는 초기 단계이며, ‘탄소감축인지예산‘, ’ 기후 예산‘, ’탄소인지예산’, ’기후변화인지예산’, ‘예산 탄소영향평가’ 등 용어가 통일되어 있지 않고 구체적인 방법론도 부재하다. 일부 용어는 개념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뿐 아니라 기후변화 적응까지 포함하고 있다.

탄소인지예산 도입을 위한 가장 단순한 형태는 프랑스, 아일랜드처럼 예산이 탄소 배출을 감소하는지, 증가시키는지 분류해 표식을 붙이는 방법(tagging)이다. 하지만 이 역시 많은 준비가 필요한데 어떤 예산이 탄소감축에 도움이 되는지를 정의하고 분류하는 세부적인 기준(taxonomy)과 지침 개발 뿐 아니라 이 정보를 의사결정에 활용하고 후속조치를 확인하는 일련의 과정과 방법이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탄소배출을 고려한 예산 정보가 정책 결정과 예산 편성에 반영되어야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OECD가 탄소인지예산의 기본 틀과 방법론 이외에 투명성과 책임성 제고를 위한 보고체계, 예산 과정의 참여 거버넌스를 강조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탄소인지예산의 본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탄소배출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예산을 분류하는 수준에서 오슬로시와 같이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예산을 연동하여 관리하는 수준으로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온실가스 감축뿐 아니라 기후변화 적응을 함께 고려하는 방향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주요 계획과 정책, 사업에 대해 기후영향평가를 실시하여 온실가스 배출 및 기후 리스크를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언적 표현이 아닌 세심한 설계가 필요

지난해 10일 '2050 탄소중립 비전'을 선언하는 문재인 대통령. 이번 대통령의 연설 부분은 컬러 영상의 4분의 1 수준의 데이터를 소모하는 '흑백 화면'으로 송출되었다. (사진=청와대)

그동안 한국사회에서도 기후위기에 대한 비상행동을 촉구하며 탄소중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확산되어 왔으나 탄소중립이 실행 가능한 목표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과 우려도 많다. 2017년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은 7억 910만 톤이며, ‘16년 기준 세계 11위, OECD 5위 배출 국가이다. 1997년 IMF 영향(1998~1999)과 2014년 전년 대비 온실가스가 0.78%(약 550만 톤) 줄어든 것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유의미하게 온실가스를 줄인 경험이 없다. 화석연료와 에너지 다소비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친환경 산업구조 전환을 위한 준비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문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소중립 2050’을 발표했지만 그에 앞서 지난해 7월 발표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에 포함된 그린 뉴딜에는 탄소중립(Net-zero)을 지향한다는 선언적인 표현만 담겼었다. 그리고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 수립을 위해 2050 저탄소사회비전포럼이 1년 동안 다양한 이해관계자 논의를 거쳐 2020년 2월 환경부에 제출한 목표 시나리오에도 탄소중립은 빠져 있었다.

이 보다 앞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추진한 녹색성장은 환경규제 완화, 4대 강 사업, 석탄발전 확대 등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상충되는 정책으로 인해 온실가스 배출이 증가하고 녹색투자 효과가 반감되어 저탄소 시장전환이 이루어지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가야 할 이정표가 분명히 제시된 이상 과거와 같이 탄소중립이 공허한 선언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소모적 논쟁이 아니라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어떻게 갈지, 그 과정에서 예상되는 불확실성과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대안 마련에 사회적인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총론이 아니라 각론으로 들어가 구체적인 근거를 가지고 탄소중립 경로를 세심하게 설계하고 모든 정책과 계획, 정부와 시장이 목표를 향해 일관성을 가지고 움직이도록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탄소인지예산’의 도입은 탄소중립을 향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기재부도 올해 온실가스 발생·감축량 측정과 분석 방법론 개발 등에 대해 연구용역을 발주해 탄소인지예산 도입의 밑그림 그리기에 나설 계획이다. 하지만 탄소인지예산이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제도 운용을 위한 역량과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수반되어야 한다. 또한 탄소인지예산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여러 정책 수단 중 하나이므로 탄소세를 포함한 에너지 가격 및 세제 개편, 화석연료 보조금 폐지, 재생에너지 사용 의무화, 에너지 성능 기준 강화 등 경제적 인센티브 및 규제 수단의 녹색 개혁과 함께 추진되어야 효과를 높일 수 있다.


고재경 필자

경기연구원 생태환경연구실 선임연구위원. 서울대에서 행정학박사를 받고 국회 정책보좌관과 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팀장 등을 역임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기후변화와 관련된 연구와 환경정책 개발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