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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의 ‘美 정치 깊이 보기’] 펠로시, ‘탄핵 공세’로 트럼프 앞날에 재갈을 물리다

By | 2021년 1월 9일 | 美 정치 깊이·멀리 보기, 국제, 기획 · 연재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지난 3일 개원한 제117대 하원에서 2년 임기의 의장에 재선출된 이후 의사봉을 치켜 들며 임기 시작을 선언하고 있다. (사진=낸시 펠로시 페이스북)

세상을 4년간 쥐락펴락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열흘 후면 보통사람으로 돌아간다트럼프는 트위터와 팬덤을 통해 리얼리티 쇼’ 같은 정치 행보를 보여 왔다. 임기 막판까지 지지자들을 선동해 지난 6(현지시간·하원 국회의사당을 점거하는 초유의 폭거를 저질렀다미국 정치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물러나도 트럼프 없는 트럼프 시대’, 즉 미국판 태극기부대가 극성을 떨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런 가운데 네 번째로 하원의장이 된 낸시 펠로시(민주당)는 트럼프를 탄핵의 강으로 몰아세우며 바이든 시대의 권력 핵심으로 떠올랐다트럼프가 퇴임 후 정치적으로 재기하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는 한편공화당에서 극우세력을 떼어내는 효과를 겨냥한 것이다. <피렌체의 식탁>은 미국 정치를 오랫동안 관찰해온 박상현 필자의 글을 싣는다트럼프와 펠로시의 개인적인 악연부터 시작해 미국 정치의 속내트럼프의 장래까지 두루 짚어본다. [편집자]

#미 의회 유혈사태로 전 세계 충격
  폭도 돌변, 트럼프 지지자들 난입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리더십 부각
  트럼프 사임·탄핵 주장하며 총공세
#’트럼프=민주주의 파괴자’라 규정
  초유의 두 번 탄핵 불명예 씌울까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화력을 총동원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지난 4년 내내 워싱턴 D.C.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대척점에 서 있던 펠로시였지만 이번에는 사뭇 ‘끝’을 보겠다는 각오다.

그 배경에는 지난 6일, 폭도로 변신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사건이 있다. 워싱턴 D.C.는 물론 미국 전체가 충격에 빠졌고, 그동안 트럼프가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그를 감쌌던 공화당 의원들과 행정부 각료들도 트럼프를 비판하며 그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린지 그레이엄, 미치 매코널 같은 공화당 중진들의 비판은 물론이고, 일레인 차오 교통부 장관, 벳지 디보스 교육부 장관처럼 트럼프에 충성하던 각료들도 사표를 던지며 침몰하는 배에서 빠져나가는 중이다.

펠로시 하원의장에게 유리한 것은 트럼프 측근들의 거리두기만이 아니다. 의사당 난동 사건은 지난 11월 선거로 새롭게 구성된 의회가 막 개회된 시점에 일어났다. 민주-공화 양당 사이에 탄핵과 선거 싸움으로 힘들었던 2020년을 보내자마자 대형사고가 터진 셈이지만, 이는 거꾸로 말하면 다음 선거까지 2년이 남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펠로시, 2019년 탄핵 당시엔 신중 모드

지난 2019년 민주당 의원들이 트럼프 탄핵을 추진했을 때 펠로시는 끝까지 심사숙고하는 모습을 보여서 일부 의원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 이유는 이렇다. 탄핵을 추진하던 시점에서 민주당은 워싱턴D.C.에서 완전한 열세에 있었다. 백악관과 상원을 모두 공화당에 빼앗긴 상태에서 그나마 2018년 중간선거에서 선전한 덕에 하원을 간신히 빼앗아온 상태였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AOC) 같은 진보 성향 지역구의 의원들은 거침없는 발언을 할 수 있지만 펠로시는 그렇지 못했다. 2018년 민주당의 하원 장악은 트럼프와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 미치 매코널의 관례를 무시한 막강한 권력행사에 조금이라도 제동을 걸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고, 그 모든 책임은 하원의장 펠로시에게 있었다. AOC는 자신의 의석을 공화당 의원에게서 뺏은 게 아니라 당내 경선을 통해 같은 민주당 의원에게서 빼앗았다. 진보 성향의 (뉴욕) 지역구였기 때문에 AOC의 민주당 경선 승리는 곧 본선 승리를 의미했다.

하지만 2018년의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한 것은 경합주(swing states)에서 이긴 민주당 후보들 때문에 가능했다. 이들은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이 팽팽한 보수적인 곳에서 공화당 의원들의 지역구 의석을 빼앗은 것이다. 이런 지역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보수적인 유권자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다음번 선거에서 패하고, 그럴 경우 민주당이 그나마 장악한 하원도 공화당에 빼앗긴다.

펠로시가 트럼프 탄핵에 신중했던 이유가 그거다. 미국의 하원의원은 2년에 한 번 선거를 치러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2004년 3월 한나라당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킨 후 4월 총선에서 큰 타격을 입었던 것처럼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 추진은 야당 입장에서 큰 모험이 아닐 수 없다. 펠로시는 당내 진보의원들의 압력을 받으면서 탄핵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트럼프를 ‘민주주의 파괴자’로 규정

결국 펠로시는 하원에서 탄핵을 성공적으로 끌어냈고, 파면 안(案)을 상원으로 보냈다. 트럼프는 공화당 우세인 상원의 재판에서 이겼고, 파면을 면했지만 탄핵이라는 흠집이 났다.

트럼프가 펠로시를 지독하게 싫어한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평소 여성 비하 언행을 일삼았던 트럼프가 힘 있는 여성을 유독 싫어한다는 분석이 나올 만큼 트럼프의 펠로시 혐오는 유명하다. 그런 트럼프의 태도를 조용히 참고 넘어갈 펠로시가 아니다.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었으면 살벌한 워싱턴 정치에서 하원의장이 되었을 리 만무하다)  백악관 회담 때 트럼프가 펠로시를 무시하는 발언을 했다가 펠로시의 강력한 항의를 받기도 했고, 공식 회의석상에서 펠로시가 일어나 손가락으로 트럼프를 가리키며 비난한 적도 있고, 트럼프의 의회 연설이 끝나자 그 원고를 보란 듯이 찢어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의 방어막 때문에 트럼프는 대통령직을 끝까지 지켰고, 펠로시는 탄핵만 당하고 파면을 면한 트럼프가 우쭐거리며 “나의 무죄가 증명되었다”며 자랑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정치를 개인적인 거래, 개인에 대한 충성과 배신이라는 틀로 보는 트럼프와 달리, 펠로시는 민주주의라는 시스템과 정부에 대한 믿음과 책임감이 철저하다. 이런 그의 믿음은 평소 대담이나 인터뷰에서 잘 드러난다. 펠로시가 그 어떤 정적들보다 트럼프를 혐오하는 것은 트럼프야말로 펠로시가 믿는 모든 제도(institution)를 우습게 생각하고, 파괴할 의도를 숨기지 않고 대통령이 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2020년 11월 선거에서 마침내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트럼프는 대선이 시작되기 1년 전부터 “내가 패배하면 부정선거”라는 독재자의 논리로 일관했고, 그 결과 지난 6일 트럼프 지지 폭도의 의사당 난입-점거 만행이 일어난 것이다. 그로 인해 경찰관을 포함해 5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을 당했다.

사임/탄핵 두 가지 옵션으로 압박  

미국 민주주의의 전당(temple)이라는 의회 건물에 트럼프라는 개인을 숭배하는 폭도가 난입해서 물건을 부수고 난동을 피우자 펠로시는 분노했지만 (아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펠로시의 사무실에도 폭도가 들이닥쳐 난장판을 만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침착했고, 행동은 결연했다. 이후 펠로시가 행동에 옮긴 것들을 보면 마치 “어떤 위기도 낭비해서는 안된다”는 격언을 철저하게 지키기로 한 듯 보인다.

지난 6일 폭도로 돌변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난입 사태 당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집무실에 무단 침입해 책상에 발을 올리고 사진을 찍은 남성. 그는 이틀 뒤 고향인 아칸소주에서 체포됐다. (사진=AFP 연합뉴스)

사건 직후 펠로시는 폭도를 선동한 트럼프를 규탄하고, 트럼프의 대통령직 사임을 촉구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 것임을 잘 아는 펠로시는 두 가지 옵션을 마련했다. 하나는 헌법 수정안 25조를 통해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강제로 인수하는 것이다. 원래 대통령의 건강 등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 사용하도록 마련된 이 수정조항은 부통령이 내각 구성원들이나 의회의 동의하에 이행하게 한 것이다

물론 트럼프의 충복인 펜스 부통령이 이에 동의할 리는 없겠지만, 펜스가 의사당 점거 당일 상원에서 트럼프의 패배를 인정하는 절차를 진행함으로써 트럼프의 분노를 샀다. 화가 난 트럼프가 트위터 글로 선동하자 지지자들이 펜스를 “배신자”라고 부르며 공격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펜스로서는 뭔가 선택을 해야 했을 거다. 하지만 측근을 통해 자신은 25조를 발동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펠로시의 두 번째 옵션은 (또 한 번의) 탄핵이다. 펠로시는 트럼프의 임기가 2주일도 남지 않았지만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갈수록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빨리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펠로시의 주장은 분명히 일리가 있다. 트럼프의 행동은 평소에도 짐작하기 힘든데, 요즘처럼 주위의 측근들이 다 트럼프 곁을 떠나거나 그를 비난하는 상황에서 무슨 행동을 할지 모른다.

펠로시는 합참의장에게 전화해서 트럼프가 충동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하는 일이 없도록 당부(이건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트럼프의 탄핵을 추진하기 위한 좋은 배경이 되는 뛰어난 플레이다)했을 뿐 아니라, 민주당 의원들은 물론이고 공화당 의원들까지 연락해서 탄핵에 대한 동의를 끌어내고, 금요일(8일) 중으로 탄핵안 초안까지 완성하는 등 엄청난 속도를 내고 있다.

‘최악의 대통령’ 낙인, 2024년 출마 저지

펠로시는 트럼프가 그가 저지를 죄의 대가를 치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아직 알 수는 없지만, 중도주의자 조 바이든이 임기 중에 (한국에서 일어난 것처럼) 전임 대통령을 감옥에 보낼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전임 대통령 사면론에서도 알 수 있듯, 국가를 이끌어야 하는 부담을 가진 사람에게 국민의 절반을 달래야 할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임기를 불과 2주일 남겨두고 미국 역사에 큰 수치로 남을 대형 사건을 저지른 것이다.

2020년 2월 4일 (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 D.C. 국회의사당에서 신년 국정연설을 마친 직후,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뒷줄 오른쪽)이 의장석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문 원고를 찢어버리고 있다. (사진=신화통신 연합뉴스)

펠로시는 지금이 민주주의를 망가뜨린 트럼프라는 황소에 칼을 꽂을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 것 같다. 열흘 남짓 남은 시간이지만 공화당 의원들도 분노한 이 시점에 자신의 정치력을 총동원해서 다시 한번 트럼프를 탄핵해서 공식적으로 (탄핵을 두 번 당한)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안겨주고, 혹시 모를 2024년 출마의 길을 막으려는 것이다. 그리고 남은 며칠 동안 트럼프를 몰아쳐서 그가 탄핵을 피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게 만들어야 이란을 선제 공격하거나 국내외를 상대로 돌발행동을 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펠로시가 이렇게 파워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앞으로 하원 선거가 2년이나 남았기 때문이다. 트럼프를 다시 탄핵해도 경합주 의원들을 걱정해주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게다가 힘겹기는 했어도 민주당 내에서 하원의 리더로 재신임까지 받았고, 네 번째로 맡은 하원의장으로서 마지막 임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펠로시는 민주주의의 파괴자 트럼프가 조용히 은퇴해서 미국의 ‘전임 대통령’으로서 존중받는 것을 지켜볼 마음이 없다.


박상현 필자

뉴미디어 스타트업을 발굴, 투자하는 ‘메디아티’에서 일했다. 미국 정치를 이야기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워싱턴 업데이트’를 운영하는 한편, 조선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에 디지털 미디어와 시각 문화에 관한 고정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아날로그의 반격≫, ≪생각을 빼앗긴 세계≫ 등을 번역했다. 현재 사단법인 ‘코드’의 미디어 디렉터이자 미국 Pace University의 방문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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