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셔터스톡)

한국에서 폭설이 내린 7일 새벽, 워싱턴에서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시위대가 국회의사당에 난입해 조 바이든의 당선을 확정하는 상하원 회의를 무산시켰다. 연방의회 의원들과 직원들은 긴급 대피했고 인근 건물에선 폭발물이 발견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자들을 선동하는 연설을 했다. 코로나19 시대에 드러난 미국 정치의 민낯은 사실 '민주주의의 위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는 건전한 공론장이 후퇴하고 진영논리와 양극단 세력이 상황을 주도하고 있다. 트럼프가 무대 위에서 내려와도 '트럼프 없는 트럼프 정치'는 계속될 전망이다. 한승동 필자는 이런 현상의 맥락과 배경을 깊이 분석한 뒤 우리가 장차 풀어나가야 할 과제를 제시한다. [편집자]

#100년 전과 닮은 격동의 시대  짙어진 포퓰리즘-파시즘 징후 #팬데믹과 기후변화 위기 가속화  양극화·차별이 반목, 갈등 부추겨#정부 정책도 혁신 피할 수 없어  21세기의 새로운 사회계약 필요#미국은 이미 하나가 아니다  한국도 불평등과 정면 대결할 때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지난해 11월의 미국 대선 딱 100년 전에 치러진 선거에서 새로 대통령에 뽑힌 사람은 공화당 후보 워런 하딩(Warren Harding)이었다. 그때 하딩이 선거 캠페인 구호로 내건 것이 “정상으로 돌아가자 (A return to normalcy)”였다. 이코노미스트지(誌) 연말연시 특집호는 머리기사(‘역병의 해’ The plague year)에서 워런의 이 ‘정상화’ 구호를 100년 뒤에 당선된 바이든의 그것과 대비시키면서, 과거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정상화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단언했다.“모든 것이 바뀐 해로 기억될 것” (This will be remembered as a moment when everything changed) 이라는 부제가 붙은 그 기사는 바뀔 수밖에 없는 암울한 이유들을 열거한 뒤, 판도라의 상자처럼 희망의 변화들도 있다며 이를 위한 “21세기의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하다고 했다.

코로나19 이후, 공황일까 도약일까 

이코노미스트의 지적대로 하딩이 내세운 ‘정상화’는 막 끝난 제1차 세계대전과 당시 유행한 스페인 독감의 파괴와 혼돈을 어떻게든 빨리 수습해 세계대전 이전의 황금시대(Golden Age)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100년 뒤 바이든이 코로나19가 초래한 파괴와 혼돈, 이를 더 증폭시킨 도널드 트럼프 4년 집권의 폐해로부터 벗어나 미국의 대내외 정책을 정상화하자는 것과 닮았다. 하딩이 당선되는 데는 전임 우드로 윌슨 민주당 정부에 대한 반감도 크게 작용했는데, 바이든의 당선 역시 트럼프 공화당 정부에 대한 반감 덕을 봤다. 오죽했으면 이번 대선을 ‘트럼프 대 反트럼프’의 싸움이라고 했을까.

그러나 하딩이 말한 정상화는, 그가 재임 중에 식중독으로 급사한 탓도 있지만, 애초에 실현 불가능한 희망사항이었다. 1920년대는 그의 희망과는 달리 사상과 산업, 예술 등 모든 분야가 과거로의 복귀가 아니라 새로움과 변화를 추구하며 미래를 향해 격동적으로 달려갔다.이코노미스트는 바이든이 문을 열 2020년대도 트럼프 이전, 코로나19 이전으로의 복귀가 아니라 앞을 향해 달려가며 모든 것을 바꿔 놓을 수 있다고 봤다.

그런데 1920년대의 그 변화의 끝이 세계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는 역사적 경험으로 보건대, 그 미래가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이코노미스트는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지만, 2020년대의 끝이 또 다른 공황과 세계대전으로 이어질지, 인류사회의 새로운 도약으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가짜뉴스와 극단적 편가르기가 횡행하는 가운데 민주주의의 비효율과 낭비를 비판하면서 ‘스트롱 맨’들의 일도양단 식(式) 화끈한 해결의 효율성을 찬양하는 포퓰리즘과 파시즘 대두의 징후가 짙어지고 있다.

팬데믹은 경고, 양극화가 갈등 부추겨

이 잡지는 변화의 이유로 먼저, 7000만 이상이 감염되고 160만 넘게 사망했으며(기사작성 당시 기준) 5억 명 이상의 미확인 잠재 감염자를 낳은 코로나19 사태의 파괴적 영향에 따른 경제 황폐를 들었다. 세계경제가 7% 이상의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상황에서 삶에 대한 태도 자체가 바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팬데믹은 하나의 경고였다. 아니 경고여야 한다. 해마다 800억 마리가 넘는 동물을 인간이 먹잇감이나 털을 얻기 위해 도축하는 현실은 그들에 기생하는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등이 인류에게 치명적인 병원체로 진화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다. 팬데믹은 앞으로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 팬데믹으로 산업 활동이 위축되면서 일시적으로 하늘이 맑아졌듯이, 인류가 자초한 기후변화도 이대로 두면 더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으로 갈 것이다. 언젠가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코로나19로 마스크는 일상생활의 필수품이 됐다. (사진=셔터스톡)

소득 불평등과 차별도 마찬가지다. 이주노동자들과 대학졸업자 등 기존사회 신참자들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인종, 소득, 계층에 따른 차별이 증폭되고 있다. 나이 40세의 히스패닉계 미국인이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죽을 확률은 같은 나이의 백인 미국인의 12배가 넘는다. 브라질 상파울루의 20살 이하 흑인 시민은 같은 나이의 백인 시민보다 2배나 더 죽는다.연간 10만 달러 이상을 버는 사람들의 약 60%는 비대면 재택근무가 가능하지만 4만 달러 이하 소득자의 그 비율은 10%에 지나지 않는다. 2020년 세계 주식시장 신흥국 지수(MSCI Index)는 11%나 급등했지만, 유엔은 팬데믹으로 2억 명 이상이 극빈자로 전락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런 상황은 반목과 불신과 싸움을 부추긴다. 가진 자들, 독재자들은 더 가지려 팬데믹 상황을 이용해 더욱 쥐어짤 것이고 권력투쟁은 격화할 것이다. 팬데믹 이후에 대중적 봉기가 빈발하는 이유다. 국제통화기금(IMF)이 2001~2018년에 133개국을 관찰한 결과 전염병이 시작된 지 1년 2개월쯤 지나면 불안사태가 격화되기 시작해 2년째에 정점에 도달했다. 그 정도는 불평등 사회일수록 더 심했으며, 불안과 저항은 경제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그것은 또다시 저항을 더욱 격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위기는 기회, 새로운 사회계약을

다행히 이런 암울한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이런 암울한 상황이 변화와 진보를 재촉하는 혁신의 엔진이 될 것이라고 했다.팬데믹의 록다운(봉쇄) 상황에서 미국 소매시장의 전자상거래 판매는 8주 만에 과거 5년간의 실적을 달성했다. 재택근무로 뉴욕 지하철의 승객은 90%나 줄었으며, 예전이라면 많은 자금과 큰 공간을 마련하느라 몇 년씩이나 걸렸을 새로운 사업들이 하룻밤 사이에 부엌 식탁에서도 뚝딱 만들어진다. 양적 완화로 풀린 자금(저리의 자본), 인공지능(AI)과 양자컴퓨터 등의 신기술로 산업계 전체가 급격한 변화로 내몰릴 것이다.

보수적인 헬스케어도 예외가 아닐 것이며, 교육내용은 별로 바뀐 것도 없는데 지난 40년간 소비자물가지수보다 거의 5배나 더 오른 미국 대학의 등록금도 마찬가지다. 거기엔 반드시 현상 파괴자들이 나타나 변화를 이끌 것이다. 저비용 고효율의 획기적인 비대면 화상교육 시스템이 등장할까? 에너지 자원 혁신과 기계 배터리 장치의 스마트화 등의 기술진보는 화석연료들을 퇴출시킬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는 인간의 지식과 과학기술 변화도 촉진시킬 것이다. 예컨대 2019년 말 중국 우한(武漢)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사태 역시 그 병원체 바이러스 DNA의 전체 유전자(게놈) 배열을 단 몇 주 만에 밝혀냈다. 그리하여 그 바이러스가 어디서 왔고, 어떤 위력을 갖고 사람을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하며, 또 어떻게 치료될 수 있는지가 초스피드로 해독되고 빛의 속도로 전 세계에 공유됐으며 단기간의 백신 개발로 이어졌다.

“코로나 유행(팬데믹)이 3년 전에 일어났다면 백신 개발은 훨씬 더 곤란했을 것이다.” 이는 화이자(Pfizer)와 함께 백신개발에 성공한 독일의 바이오기업 비온테크의 CEO인 터키계 우르 샤힌이 한 말이다.(아사히신문 2020년 12월 20일자)화이자와 모더나의 백신은 바이러스의 유전물질 RNA를 활용한 것인데, 일단 그 유전자 배열만 알면 단기간에 백신을 개발할 수 있다. 과거에 백신이 가장 빨리 개발된 전염병은 유행성이하선염(볼거리)이었는데, 4년이 걸렸다. 이번의 화이자, 모더나의 백신 개발에는 1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런 혁신은 정부 조직과 정책도 피해갈 수 없게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팬데믹은 그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영화 <곡성>의 그 섬뜩한 대사, “뭣이 중헌디?”를 떠올리게 하는 가치, 즉 자존감과 자신감, 시민적 긍지를 높이는 쪽으로 정부 정책은 나아가야 한다는 게 이코노미스트 편집진의 생각인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양 그 얼굴이 그 얼굴인 기득권자들끼리 나눠먹는 구조나 정책이 아니라 시민들 모두에게 개방되는 구조와 정책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다.

이런 것들이 코로나 팬데믹의 잿더미, 판도라 상자의 밑바닥에서 다시 피어오를 희망과 신생의 불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사회계약이 체결돼야 한다고 이코노미스트는 결론짓는다. 그 요체는 불평등과 차별을 없애는 것이다.

일본 소설가 마야마 진(真山仁)의 말을 하나 덧붙이자.아사히신문에 ‘Perspectives: 시선’이란 타이틀로 칼럼을 연재한 소설가 마야마 진은 이럴 때일수록 “기존의 벽을 깨부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자!”는 기개가 필요하다며 이렇게 썼다.“체념에선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는다. 핀치(위기)는 찬스(기회)다. 정체와 혼돈의 현상이기에 젊은이들의 폭발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미래에 절대 확실한 것 따위는 없다. … 한치 앞은 어둠-. 2020년은 그것이 실생활에서 그대로 실현된 한 해였다.”(2020년 12월 25일자)

트럼프 없어도 위력적인 ‘트럼프軍’

나라바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좀 더 살펴보자.“트럼프 정권은 끝나지만 트럼프 시대는 계속된다.” 소노다 고지(園田耕司) 아사히신문 아메리카총국 특파원은 코로나 사태를 방치한 트럼프가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이란 평가 속에 패배했지만, 그럼에도 2016년 대선 때보다 무려 1000만 표나 더 많은 표를 얻은 현상에 주목했다. 그는 ‘트럼프 시대’를 국제적 냉전의 붕괴로 소련이라는 적을 상실한 미국 보수우파가 미국제일주의를 부르짖으며 그 적을 내부에서 만들어낸 작전이 성공한 결과로 해석했다.

지난해 11월 14일 열린 트럼프 미 대통령 지지자들의 선거 불복 시위 현장. (사진=셔터스톡)

미국 보수우파는 미국 내 리버럴(liberal) 정파에서 그것을 찾아냈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주류 언론과 저널리스트, 각 분야 전문가들, 대체로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및 진보 성향의 리버럴 세력이 그들인데, 공화당 강경파를 중심으로 한 보수우파는 그들을 기득권자들로 몰아붙이며 주적으로 겨냥한 국내 냉전을 선포했다. 그 전쟁의 야전사령관이 트럼프였다. 리버럴이 주도한 세계화와 미국 제조업의 해외 이전, 수입 확대 등으로 졸지에 일자리를 잃은 예전의 중산층 핵심세력인 백인 중하층 노동자계층이 국내 냉전의 저류를 형성하고 있다가 트럼프 군(軍)에 주력으로 가담했다.거기에 역시 기득권자들 때문에 살기 힘들어졌다고 생각하는 히스패닉계와 흑인 등 유색 마이너리티 상당수도 가세했다. 국내 냉전의 전선은 인공 중절(낙태) 자유, 동성애-동성혼, 총기소유 규제, 헬스케어 등의 사회보장, 이민 문제 등을 둘러싸고 선명하게 갈라졌다.

트럼프군은 기존 주류 매체(언론)들을 철저히 불신하면서 팔로어가 8900만에 이른다는 트럼프의 트위터 계정, 그와 동맹을 맺은 폭스 뉴스 등 일부 우파매체와 그들끼리 소통하는 유튜브만 믿는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를 찍은 유권자의 77%가 “바이든의 승리는 부정선거 덕‘이라는 트럼프의 근거 박약한 주장을 아직도 맹신하고 있다.

이런 기괴한 상황 속에 짜여진 보수우파 대 리버럴 전선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은 불평등, 즉 소득양극화와 차별이라고 소노다 특파원은 지적했다.“이 대립의 근저에 미국 사회의 구조변화가 깔려 있다. 첫 번째가 경제격차(양극화)다. 글로벌리즘(세계화)과 규제완화로 국내 산업이 공동화하고 전통적 중산계급은 몰락했다.민주당의 샌더스 상원의원이 지적한 대로 ‘상위 0.1% 사람들의 소득이 하위 90%의 사람들 소득 합계와 거의 맞먹는 부를 소유’하는 상황이 됐다. 두 번째가 인종문제다. 지금은 백인이 인구의 약 60%를 차지하지만, 2045년에는 50% 아래로 내려갈 것으로 예측된다. 일부 백인들에겐 인종 다양화로 자신들의 문화가 위협받고 있다는 공포감이 뿌리 깊다.”미국 보수우파 중진인 팻 뷰캐넌이 1992년 공화당 전국대회에서 리버럴파와의 전쟁을 “문화전쟁”이라고 선언한 것은 이런 인구구성변화에 따른 백인들의 위기감을 반영한 것이었다. 백인 경찰관들이 흑인을 가혹하게 대하고, 흑인들의 저항이 점점 더 거세지는 악순환도 백인들의 이런 위기감을 반영하고 있다.

한국도 불평등과 정면대결을 할 때

일본의 미국 연구 전문가인 미마키 세이코(三牧聖子)도 인종차별과 심각한 소득격차 때문에 “미국은 이미 하나의 나라가 아니다”라고 말했다.(아사히신문 2020년 12월 2일자) 코로나 팬데믹은 이를 증폭시켰다. 그리하여 대선의 패자가 승자를 축복하고 물러나는, 1896년 이래 지속돼온 미국 정치사의 아름다운 ‘미학’은 이번 트럼프의 불복 이전에 이미 깨져 있었다는 것이다. 미마키의 분석은 이어진다.

“트럼프와 공화당 간부의 (대선) ‘패배’ 거부가 의미하는 것은 이미 미국 사회가 ‘하나의 아메리카’라는 리얼리티를 상실한 현실이다. 바이든은 승리선언 연설에서 ‘하나의 아메리카’가 있을 뿐이라며 결속을 호소했다. 그러나 이번의 대선에서 무엇이 쟁점이 됐는지를 돌아보면 ‘하나의 아메리카’가 있을 뿐이라는 전제 위에 서는 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이다.”

미마키는 미국의 역대 정권들이 바로 이 본질적인 문제, 즉 인종차별과 소득격차를 얼버무리며 정권교체의 ‘미학’을 외관상 유지시켜 왔다면서, 바이든이 공화당과의 타협을 통한 중도적 화합을 내세운다면 또 다시 그 본질적인 문제 해결을 미루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럴 경우 바이든은 민주당 내에서 버니 샌더스 등으로 대표되는 좌파세력과의 내분에 시달리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어차피 단박에 명쾌한 해법이 나오기 어렵다. 장기 전망을 세우고 꾸준히 나아갈 수밖에 없다. 요컨대 장기전이 답일 수 있다.

미마키의 분석은 한국 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다. 최근 부동산값 급등사태에서 보듯 한국도 부익부 빈익빈으로 갈라져 있고 그 틈새는 갈수록 빠른 속도로 더 벌어지고 있다. ‘이미 하나의 나라가 아니다’라고 하면 과장이 될지 모르겠으나, 만일 더불어민주당이 한국 사회의 이런 불평등 문제, 즉 소득 양극화와 그로 인한 차별 문제와의 근본적인 정면대결을 회피한다면, 민주당과 보수야당 사이에는 이미 아무런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여당의 ‘적폐 청산’ 구호가 이런 본질적인 계급격차 해소를 동시에 겨냥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은 오히려 본질문제를 얼버무리기 위한 기득권자들의 위장장치로 전락할 것이다.그런 본질적인 차이가 없는 여야 정당의 타협적 ‘중도 협치’는, 미마키 식 분석에 따르면, 본질적인 문제를 은폐하는 야합일 수 있다. 그렇다면, ‘1987년 체제’ 이후 정립된 듯 보이는 한국적 민주주의의 ‘미학’은 껍데기만 남은 셈이다.


한승동 필자

1986년 잡지 <말>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해 1988년 <한겨레> 창간 멤버로 합류했다. 1998년부터 3년간 도쿄특파원을 지냈고, 이후 국제부장, 문화부 선임기자, 논설위원 등을 거쳤다. 동아시아와 민족(통일) 문제는 물론, 환경·생태·과학 분야를 비롯해 다른 세상사에도 두루 관심이 많다. 전체를 아우르는 이른바 통섭적 안목을 갖추려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