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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의 ‘리더의 말과 글’] 트럼프 시대, ‘사이언스 가이’ 빌 나이는 어떻게 저항했나

by | 2021년 1월 5일 | 박상현의 '리더의 말과 글'

빌 나이(사진=셔터스톡)

몇 해 전 소셜미디어에서 큰 화제가 되었던 영상이 있다. 어느 호텔의 엘리베이터 안에서 대여섯 명의 젊은 여성들이 요란스럽게 떠들면서 춤을 추고 있었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나비넥타이를 맨 60대의 남성이 들어온 것이다. 그 사람의 얼굴을 본 여성들은 놀라며 일제히 춤을 멈추고 마치 교실에 들어온 담임 선생님을 본 것처럼 조용해졌다. 그 남성의 이름은 빌 나이(Bill Nye), 미국에서는 ‘사이언스 가이(Science Guy)’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 여성들이 엘리베이터에 들어선 빌 나이를 선생님처럼 바라봤다는 건 과장이 아니다. 빌 나이는 그들이 어린 시절, TV에서 <빌 나이: 사이언스 가이>(Bill Nye: The Science Guy)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아이들에게 특유의 나비넥타이를 맨 실험복을 입고 과학과 공학을 설명해주던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사이언스 가이>는 특별히 장수한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1993년에 첫 에피소드가 나온 후 1998년까지 5년 동안 1백 회가 방송되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당시 어린아이들에게 딱딱한 과학 이야기를 마치 (당시 인기를 끌던) MTV 스타일로 신나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새로운 시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코넬대 공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보잉에서 일하던 빌 나이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미디어에 진출한 엔지니어였다. 지금은 마크 로버, 데스틴 샌들린데릭 멀러(영상) 같은 사람들이 유튜브에서 과학과 공학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면서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지만, 빌 나이가 엔지니어로 활동하던 1980년대는 그렇지 않았다. 특히 빌 나이는 보수적이고 과학에 관심이 없던 레이건 행정부 시절을 회상하면서(영상) 자신이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1990년대를 <사이언스 가이>로 보낸 빌 나이는 그 이후로도 과학과 공학을 대중에게 전하는 전도사로 남아서 지금까지 활동 중이다. 과학적, 합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사회변화를 강조하는 빌 나이는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이 과학을 무시하는 태도에 충격을 받았고 그의 위기의식은 트럼프 행정부 이후로 더욱 활발해진 그의 활동을 설명해준다. 특히 기후위기를 부정하는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물론, 미국 내에서 증가하고 있는 백신 유해론, ‘평평한 지구’ (flat Earth) 설  같은 비과학적 주장에 맞서 대중을 향한 과학홍보에 큰 힘을 쏟고 있다.

1990년대 미국에서 방영했던 빌 나이의 ‘사이언스 가이’의 오프닝 장면(사진=유튜브 캡처)

빌 나이는 자신의 어머니가 졸업한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시 가우처대학(Goucher College)의 2019년 졸업식에 연사로 초청 받아 특유의 재치 넘치는 연설을 했다. 아래 영상을 보면 빌 나이가 등장하자 자리에 앉아있던 학생들이 일제히 “Bill! Bill! Bill!”을 외치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앞서 이야기한 <사이언스 가이>프로그램의 주제곡(영상)의 일부다. 이 졸업생들은 빌 나이의 프로그램을 보면서 자란 세대인 것.

가우처대학 졸업연설 https://youtu.be/T6z0K1-qBTY

이 연설의 전문은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연설의 일부를 소개해보기로 한다.

워싱턴 DC에서 자란 저의 할머니는 1909년에 메릴랜드주의 칼리지파크에 가서 라이트 형제들이 만든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걸 봤습니다. 당시만 해도 지구 위에는 15억이 조금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죠. 지금은 그때의 여섯 배에 가까운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지구를 둘러싼 아주 얇은 공기를 태우고 마십니다. 대기층이 얼마나 얇은지 아세요? 자동차의 속도로 달리면 한 시간이면 대기권 밖으로 나갈 수 있을 만큼 얇아요. 물론 695번 고속도로를 달리는 속도면 두 시간 반은 잡아야겠지만요. (695는 이 학교 근처에 있는 고속도로. 정체가 심하다는 걸 농담으로 한 것–옮긴이)
When my grandmother, who grew up in Washington, DC, went to see the Wright Brothers aeroplane fly in College Park, MD, in 1909, there were a few more than one-and-a-half billion people on Earth. Today, there are almost six times that many. We are burning and breathing an atmosphere that’s so thin…how thin is it? It’s so thin, if you can drive straight up, you’d be in outer space in an hour. On 695, it would be two and a half hours.

매 초마다 지구에는 네 명이 더 태어납니다. 여러분이 지구에 태어난 후 10억 초가 지나면 (여러분이 31세가 되는 해가 절반을 조금 넘은 시점입니다) 지구 상에는 90억 명이 살게 됩니다. 100억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지구에 살게 된다는 말입니다.
With every passing second, there are four more people born on Earth. By the time you all reach your billionth second on this planet, a little over halfway into your 31st year, we will have nine billion people, we may have close to 10 billion people, on Earth.

우리는, 아니 여러분이 이 모든 사람들을 먹여 살려야 합니다. 여러분은 과학을 통해 얻어진 테크놀로지를 사용해서, 그리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혁신 투자를 지원하는 정책, 사실에 기반한 정책을 사용해서 우리 모두를 먹여 살릴 겁니다. 단지 물과 공기를 깨끗하게 지키고, 빨대 같은 플라스틱 쓰레기가 탄생하는 일을 막기만 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아니 여러분은 우리가 탄 우주선(지구)의 방향을 바꿔야 합니다. 지구는 여러분이 책임져야 합니다. 단순히 잘 지키기만 하면 되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인류는 스스로를 돌보는 동시에 공기와 땅과 바다를 직접 조종해야 하고 생물다양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합니다.
We, by that I mean you, are going to find ways to feed us all. And you will, with technology derived from science, and with policies that support innovation investment in the greater good, policies based on facts. It is no longer a matter of only keeping the air and water clean, curtailing the accidental creation of plastic trash, like straws, and hoping that will be OK. No. Nowadays we, by that I mean you, are going to have to steer our spaceship, take charge of Earth. It’s no longer a matter of just being good stewards. From now on, we humans will have to deliberately control what we do to our atmosphere, the land and sea, to ensure that we maintain as much biodiversity as possible, while taking care of all of us. (중략)

제가 하려는 이야기는 지구의 문제가 심각해 보여도 여러분이라면 해결할 수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아이작 뉴턴이나 코페르니쿠스보다 물리학을 더 많이 알고 있고, 진화와 생물학, 유전학에 대해서는 다윈이나 월레스가 알았던, 혹은 알 수 있었던 것보다 더 많이 압니다. 그 사람들은 DNA가 뭔지도 몰랐어요.
And what I’m saying is, as troublesome as some of our global problems seem to be, you are all up to the challenges. You know more physics than Isaac Newton or Copernicus, you know more about evolution, biology, and genetics than Darwin or Wallace did, or even could. Those guys didn’t even know there was DNA.

(DNA처럼) 생물학에서 사용하는 머릿글자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크리스퍼(CRISPR, 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 기술은 우리가 농작물을 기르고, 질병을 치료하고, 아이를 낳는 방식을 바꿀 겁니다. 여러분이 죽기 전에 화성에서, 혹은 목성의 달인 주피터의 바다에서 생명체의 증거를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미래는, 여러분의 미래는 엄청날 겁니다.
And speaking of biological acronyms (who isn’t?), 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 or CRISPR, is going to change the way we farm, treat diseases, and give birth. In your lifetime, we may discover evidence of life on Mars or the ocean moon of Jupiter, Europa. The future, your future, is going to be extraordinary. (중략)

잠깐만요, 여러분. 드릴 말씀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건 충고가 아니라, 명령에 가까운 겁니다. 투표하세요! 여러분, 반드시 투표해야 합니다. (학생들, 환호와 박수) 감사합니다. 투표하라는 말에 시비를 거는 사람이 없으니 다행이네요. (청중 웃음) 잠깐, 더 있습니다. 투표는 정책입안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방법입니다. 여러분, 투표를 하지 않을 거면 제발 입 좀 다물어주세요.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세상을 좋게 바꿀 수 있습니다.
Wait, wait, there’s one more thing that’s not really advice, people. I guess it’s the closest thing I can provide to a command. Vote! You have to vote. Thank you! I’m glad this is not controversial. Hang on, there’s just a little more! Voting is how we influence policymakers, it’s how we make big changes, it’s how we get things done. If you don’t want to vote, will you please just shut up, so the rest of us can get on with changing things for the better.

제 생각에 미국의 헌법을 만든 건국의 아버지들은 너드(nerd, 컴퓨터 기술 같은 특정 분야 만을 잘 알고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은 서로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함께 살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내려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헌법 내에) ‘변화’라는 기능을 넣어두었어요. 그것이 과학 발전(과 프로세스)의 열쇠입니다. 미국 헌법 제1조 8항에서는 과학과 유용한 기술의 발전을 이야기합니다. 제 생각에는 그것이 건국의 아버지들이 가졌던 통찰력을 보여줍니다. 변화는 적응을 위해 여러분이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학교 밖으로 나가서 세상을 바꾼다는 건 바로 그런 변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To me, the Founding Fathers, the people who wrote the U.S. Constitution, were nerds. They were trying to come up with a system that would always work for people who, for some reason, don’t always get along. And built in is change. That’s the key, and for me, the key to the progress—to the process—of science. And I remind you, Article 1 Section 8 of the U.S. Constitution refers to the progress of science and useful arts. And that, to me, reflects this insight that our Founding Fathers had. Change is what you have to have in order to adapt. And that’s what you all are going to do as you go out to, dare I say it, change the world.

2017년 4월 22일 미국 워싱톤DC에서 열린 ‘과학을 위한 행진’ 행사에서 진열의 선두에 선 빌 나이가 ‘진실을 말하는 것이 힘’이란 피켓을 들고 있다(사진=셔터스톡)

빌 나이의 소통능력을 보여주는 것은 과학과 정치를 이야기하면서 건국의 아버지와 헌법을 언급하는 대목이다. 좌우를 막론하고 모두가 인정하고 공유하는 헌법 속에 변화의 정신과 과학이 들어있음을, 그리고 그걸 설계한 사람들이 공학적 사고의 소유자들이었음을 설명한다.

빌 나이는 과학을 이야기하면서 정치 이야기를 피하지 않는다. 투표하라는 이야기에 야유가 나오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는 것을 보면 (투표 독려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싫어하는 이야기이기 때문) 그 말을 꺼내면서 약간은 긴장했던 것이 분명하지만, 이제는 정치를 이야기하지 않고 과학을 이야기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음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팬데믹도, 기후위기도 모두 과학의 문제인 동시에 정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박상현 필자

뉴미디어 스타트업을 발굴, 투자하는 ‘메디아티’에서 일했다. 미국 정치를 이야기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워싱턴 업데이트’를 운영하는 한편, 조선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에 디지털 미디어와 시각 문화에 관한 고정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아날로그의 반격≫, ≪생각을 빼앗긴 세계≫ 등을 번역했다. 현재 사단법인 ‘코드’의 미디어 디렉터이자 미국 Pace University의 방문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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