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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인터뷰] 경악했고 분노했고 행동했다 ‘추적단 불꽃’

By | 2020년 12월 30일 | 기획 · 연재, 정책

‘추적단 불꽃’은 2020년 한국 사회의 어두움과 희망을 동시에 보여준 이들이다. 취업준비생이었던 두 명의 대학생은 기성세대의 무관심 속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난 디지털 성범죄를 만천하에 폭로해 이른바 ‘n번방 사건’의 범죄자들을 구속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나아가 시대에 뒤쳐졌던 성범죄 양형기준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기성 언론의 부끄러운 자화상도 노출시켰다. <피렌체의 식탁>은 2020년 연말을 맞아 ‘추적단 불꽃’의 활동가 ‘불’과 ‘단’을 만나 그들이 마주했던 한국사회의 민낯과 ‘n번방 사건’ 이후의 달라진 삶의 방향을 경청했다. 인터뷰는 이 달 중순 서울 강남의 모처에서 코로나19 방역수칙에 따라 마스크를 쓰고 진행했다.       

#텔레그램 내 성착취방 폭로
  조주빈 등 범인 체포에 기여
#평범한 취업 준비생의 분노
  지옥 같은 상황 외면 못해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 정립
  성착취 영상 경각심 일깨워
#약자 고통 주는 가해자 엄벌해야
  행동 없이는 세상 바뀌지 않아  

바쁜 한 해를 보냈다요즘은 무엇을 하고 지내는가?

-단 : 연말 이후에는 휴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을 겪다 보니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공익적인 일을 하고 싶다. 나라를 위해서 한다기보다 나라에서 돌보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불과 함께 경찰청에 디지털 성범죄 신고를 쭉 이어갈 계획이다. 2021년에는 지난 9월에 낸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수정고를 쓰고 싶다. ‘추적단 불꽃’의 유튜브 영상도 올리고 있다.

-불 : 졸업을 앞두고 고민 중이다. 지금 ‘추적단 불꽃’으로 성범죄 피해자를 돕는 활동가와 기자, 유투버로서 나름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 이와 별개로 법을 공부하고 싶다. 피해자 지원을 위해서는 법률 지식이 필수적이다.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는 것도 고민하고 있다.

익명으로 활동하다 보면 여러 답답할 수도 있을 듯싶다. 

-불 : 신변보호를 위해 익명으로 산지 1년 가까이 된다. 사실 답답하다. 방송 인터뷰 같은 데서는 가면을 쓰고 이야기를 하는데 이야기를 하다가도 벗어던지고 싶다는 충동이 들 정도다. 특히 조주빈이 40년형 선고받았을 때 짜증이 났다. 법조계에서는 예상보다 중형이라고 했지만 법원의 양형 과정에서 감형이 되는 걸 고려하면 무기징역이 아니라 법적 최고형까지 나왔어야 한다.

그때 차라리 내가 신분을 드러내고 말을 했더라면 더 호소력이 있지 않았을까? 고민했다. 아무래도 익명으로 활동하다 보니 파급력이나 호소력에 한계가 있는 듯해서다. 그러나 주위 친구들과 가족들의 걱정, 가해자들의 신변 위협 등으로 마음을 접는다. 그렇게 계속 고민을 하고 있다. 언젠가 얼굴을 밝혀야 하는 일이 있다면 내 존재를 드러내고 말하고 싶기도 하다.

-단 : 여러 모로 복잡한 심정이다. 만약 제가 홀로 존재한다면 저를 드러내고 활동했을 수 있다. 그래야 사람들이 더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서다. 그러나 가족들이 있고 친구들이 있고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사람들이 많다. 저뿐만 아니라 제 주변 사람들도 공포를 느낄 수 있다. 아직까지는 조심해서 신분 노출을 하지 않으려 하지만 한편으로 나 스스로 많이 약해졌다는 생각도 든다.

왜 ‘n번방’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고 보는가

-불 : 기성세대가 간과하는 게 있다. 지금 10대, 20대들은 디지털 자체가 의식주의 일부다. 디지털 기기를 다루는 게 너무 일상적이고 쉽다. 디지털기기와 일상이 분리되지 않은 아마도 첫 세대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서로 주고받는 게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그렇다 보니 스마트폰으로 남의 사진을 찍는 것에 대한 어떤 윤리적 판단을 못하는 면도 있는 거 같다.

특히 남자들은 또래집단 내에서 여성을 노리개처럼 여기고 성희롱을 하는 문화가 게임을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그게 범죄라는 것을 아예 인식조차 못하는 듯싶었다.

-단 : 피해를 당한 것은 십 대 여성들만 있지 않다. 중학생 남자애들도 신체 사진으로 이른바 몸캠 피싱을 당했다. 성적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의 특성을 악용해 성적인 행위를 온라인으로 강요하고 그걸 녹화해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것이다. 돌아보면 학교에서 온라인상에서의 성범죄가 벌어졌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교육을 받지 않았다. 일 년에 한두 시간 정도 특강으로 끝났다. 온라인 그루밍에 대해서도 사전 예방을 위한 교육이 거의 없었다.

사실 더 문제는 학교 밖 청소년들이다. 추적을 해보면 학교에 다니다가 디지털 성범죄에 가해자로 연루되었다가 정학과 퇴학으로 학교 밖으로 나온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텔레그램 안에서 성착취방의 직원처럼 행동하며 디지털 성범죄를 키웠다. 조주빈 같은 방장들의 사주를 받아 피해자들을 직접 가해하고 중간에서 돈을 받았다.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이 다른 성범죄보다 미성년자들이 가해자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고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동안 인터뷰나 책에서는 최대한 순화해서 피해자들의 사례를 말했다. 자칫 또 2차 가해가 되거나 호기심 차원에서 소비될지도 모른다는 염려에서다. 다시 강조하지만 실제 n번방에서 벌어진 디지털 성범죄의 수위는 아동 성폭행을 비롯해 언론에 알려진 것보다 너무 잔악하고 참혹했다.

▲’n번방’주범들의 특징은 무엇이었나?

-단 : 조주빈을 예로 들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거의 구분하지 못하고 온라인 속 자신의 모습에 심취해 있었다. 지난 3월 체포되었을 때 ‘악마는 이제 갑니다, 악마의 삶을 끝내주셔서 감사하다’는 글을 한 텔레그램 대화방에 올렸다. 온라인 속 자신을 영웅시하고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다. 온라인에서는 n번방 가담자들이 마치 자기를 왕으로 여겼고 현실에서도 남들이 자신을 그렇게 봐주길 바란 듯싶었다. 한마디로 온라인에 ‘절어’ 있었다. 성착취 피해 여성을 실존하는 인격체라고 생각지 않았다.

-불 : 피해자들이 돈을 받고 영상을 찍었기 때문에, 혹은 ‘당할 만한 짓’을 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가한 가해나 폭력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그냥 온라인상의 캐릭터처럼 여겼다. 또 조주빈과 와치맨같은 주동자들은 매우 영악했고, 수사가 시작되자 성착취방 안에서 경찰과 기자를 조롱했다.

지인능욕도 경악스러웠다. 지인능욕이란 자신이 아는 여성의 사진을 음란물과 합성해 디지털에 유포하는 범죄다. 지인능욕의 한 피해자의 경우, 피해자의 적극적인 협조로 추적 끝에 잡고 보니 피해자와 친했다는 중학교 동창이었다. 그 가해자는 어릴 때부터 피해자를 좋아해 그런 마음을 잘못 표현하게 되었다고 진술했다. 괴롭힘은 결코 애정표현이 아니라 명백한 성범죄라는 사실을 그 가해자는 몰랐을까? 아니면 배우지 못했던 것일까?

▲’n번방 사건’은 지난해 9월 뉴스통신진흥회의 공모전을 통해 처음 드러났지만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디지털 성범죄에 관심을 가지게 됐던 계기는?

-불 : 대학에서 언론방송학을 전공했고 언론사에서 인턴생활도 했다. 공모전을 보고 취업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응모하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단과 의기투합이 됐다.

기자라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사회문제 중 가장 절실히 느꼈던 게 불법 촬영이었다. 취재를 하다 내가 다닌 학교 이름이 적힌 영상파일을 발견한 적도 있다. 내 일상과 주변에서 벌어지는 심각한 문제였지만 찾아보니 불법 촬영과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 대부분이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 한국에서 살아가는 20대 여성인 우리에게 ‘불법 촬영’은 피부에 와 닿는 문제였다. 지난해 7월부터 준비를 하며 인터넷 검색을 통해 취재를 시작했다. 불법 촬영물 공유 사이트를 찾는 것은 생각보다 너무 쉬워서 오히려 허탈했다. 그러다 텔레그램 번호방(n번방) 후기를 발견했고 닉네임 ‘갓갓’이란 자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성 학대를 일삼는다는 내용이었다. n번방으로 들어갈 수 있는 첫 번째 통로인 ‘고담방’을 알게 됐다.

성인인증 같은 입장 조건도 없는 텔레그램 고담방에 접속해보니 온갖 성희롱과 성폭력이 난무했다. 전 여자 친구의 카톡 아이디를 뿌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더 수위가 높은 n번방을 알게 됐다. 무언가 더 큰 범죄가 일어나는 현장 같은 느낌이 들어 다섯 시간 남짓 만에 n번방 중 하나인 1번 방에 입장했다. 거기는 지옥이 펼쳐지고 있었다. 입장과 동시에 어린아이들의 나체 사진과 온갖 협박과 성착취물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었다.

이후 신고와 함께 경찰청에 수사협조를 하면서 공모전 준비를 했지만 고민이 많았다. 인턴을 했던 언론사의 선배 기자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세상에 알리고 기성 언론이 이를 탐사취재해준다면 피해를 막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래서 공모전에 냈고 9월에 우수상을 탔다. 정작 반응을 보인 건 고담방 운영자인 와치맨이었다. 공모전 수상 소식을 자신들의 대화방에 올린 것이다.

언론의 후속보도는 이어지지 않았고 세상은 조용하기만 했다. 피해자가 늘어나야 하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경찰 수사에 계속 협조를 했고 와치맨도 경찰에 잡혔지만 오히려 n번방 가담자들은 성착취방 운영자들을 계속 추앙하며 떠 받들었다.

▲기성 언론에 대한 애증이 생겼을 것 같다.   

-불: 작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언론들의 관심사는 법무부 장관 관련 뉴스였다. 그래서 n번방 보도가 기성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거 아닐까 싶었다. 사실 언론사 인턴생활을 하면서 기자사회의 내부를 많이 들여다보기도 했다. 기자들의 고충도 알고 언론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게 됐다. n번방 보도는 지난해 11월에 일간지에서 처음 다뤄졌고 이후 방송 시사프로그램에서도 몇 차례 다뤄졌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제보했던 프로그램도 있었지만 흐지부지됐던 경우도 있었다. 우리가 크게 주목을 받은 것은 지난 3월 조주빈(사진=연합뉴스)이 검거되면서부터였다. 우리의 잠입 탐사보도로 n번방 사건이 세상에 드러났다는 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후 인터뷰가 폭주했고 최대한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알리고 디지털 성범죄를 없애기 위해 언론의 인터뷰에 최대한 협조했다. 이전에 기사를 내준 언론사 선배 기자들로부터 도움도 받았다. 심리상담을 마련해준 곳도 인턴을 했던 언론사였다.

-단 : n번방을 취재하기 전 방송국 탐사보도프로그램에서 랜덤 채팅 피해 보도 같은 걸 보고 영감을 많이 얻었다. 언론사 인턴을 하면서 언론사 내부와 기사가 나오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른바 ‘레거시 미디어’라고 하는 곳은 비주류나 소외된 사람들의 문제를 주요하게 다루려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주축인 뉴 미디어 매체를 많이 보게 됐다. 그럼에도 기성 언론사 내부에서 좋은 기자들이 나름 고군분투하는 것 같아서 언론이 아직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

12월 초 대법원 양형위에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안을 마련했고 내년부터 적용된다. ‘추적단 불꽃이 폭로했던 ‘n번방 사건’이 사회의 변화를 이끈 셈이다

-단 : IT 선진국이라고 우리 스스로 자랑스러워했지만 IT기술로 벌어지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서는 그간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특히 카메라 등을 이용한 불법 촬영 같은 건 아예 기준도 없었다. 권고안에 따르면 아동, 청소년 성착취물을 상습적으로 제작했거나 죄질이 나쁜 아동, 청소년 성착취물 제작 범죄를 두 건 이상 저지른 경우에는 최대 29년 3개월까지 구형할 수 있도록 했다. 상습범인 경우에는 최소 10년 6개월 이상의 형을 선고할 것은 권고했다.

조주빈과 공범들이 일반 디지털 성범죄자들보다 형을 많이 받은 것은 그들이 ‘범죄집단’을 만들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항소를 한 상황이다. 계속 재판이 이어지면서 형이 깎이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불 : 특정 범죄가 다른 범죄보다 형량이 큰 이유는 그런 범죄가 더 사회에 미치는 해악이 크기 때문이다. 디지털 성범죄가 갈수록 많아지고 있는데 한국사회는 그동안 이런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결국 그게 n번방을 만든 셈이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이 더 세졌으면 좋겠다. n번방 사건은 성인동영상 파일을 주고받는 게 아니다. 아동과 십 대 여자, 남자애들을 실시간으로 성착취하고 그걸 가학적으로 즐기고 공유하며 돈벌이를 했다.

언론을 통해서도 알려졌지만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였던 ‘웰컴 투 비디오’ 이용자들은 다수가 집행유예로 풀려나거나 처벌조차 받지 않았다. 운영자 손정우는 2년도 안 되는 기간 복역하고 풀려났다. 외국은 아동 성착취 영상을 가지고만 있어도 중형이다. 조주빈이나 손정우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면 80년, 100년형, 종신형도 나올 수 있다. 한국은 아동 성범죄에 대한 형량이 세지 않았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면?  

-단 : 지난 4월 국회에서 인터넷 사업자에게 불법 촬영물 유통 방지를 의무화한 ‘n번방 방지법’이 통과됐다. 문제는 해외 사업자는 강제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텔레그램은 그런 점을 악용해서 독버섯처럼 자랐다. 성착취물 시청만 해도 3년 이하 징역 또는 벌금을 받는다고 했지만, 시청을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하는 부분도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불 : 온라인상에서 스토킹과 그루밍도 심각하다. 이런 것을 방지할 수 있는 법안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또 화가 나는 건 조주빈은 성착취 영상을 제작해 벌어들인 돈으로 변호사를 선임하고 대응을 하고 있다. 심지어 매일 반성문도 쓴다고 하는 데 이게 철저하게 감형을 위한 계산된 행동이다. 이런 것들을 막을 수 있는 건 없을까? 그래서 범죄수익금을 몰수해 성범죄 피해자들을 위해 쓰는 방법들이 나오면 좋겠다. 일본이 이런 방법을 쓰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아이디어인데 디지털 성범죄자들은 디지털 세계에서 일정 기간 추방시키면 좋겠다. 카톡을 금지시킨다던가 하는 방법으로 말이다.

그리고 디지털 성범죄에 관련해서는 국제 공조수사도 필요하고 마약사범을 잡을 때처럼 함정수사도 범죄 예방을 위해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보다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되면 좋겠다.

추적단 불꽃을 보면서 부끄럽기도 했다디지털 성범죄의 현장에 잠입해서 이를 폭로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심리적 트라우마신변의 위협이나 사회생활에서 제약도 있었을 것이다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원동력이 있다면?

-단 : 처음 스마트폰으로 n번방에 잠입해 들어가 느꼈던 감정은 분노였다. 어떻게 해서든 저들에게 벌을 내리고 싶었다. 그래서 신고를 했고 언론을 통해 알리기도 했다. 공론화하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세상은 우리의 예상과 달랐다. 공론화는 쉽지 않았고 세상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n번방에서는 피해자들이 생겨났고 가해자들은 줄어들지 않았다. 혼란스럽고 좌절했다. 대인기피가 생겼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저를 제 또래와 다른 사람으로 보시기도 하는데 아니다. 수업하다가 쉬는 시간에 춤도 추고 꿈도 많고 쾌활한 성격의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돌이켜보면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고 내가 부서질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해자들은 벌을 받아야 한다는 단순한 믿음이 여기까지 온 원동력이었다. 또 불과 함께 하지 않았더라면 못 했을 것이다.

-불 : 처음 탐사보도를 했지만 언론의 반응은 없었고 우리도 기운이 빠졌다. 그래도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걸 외면할 수 없어 계속 n번방을 모니터링하고 경찰의 수사를 도왔다. 모니터링을 할수록 분노와 증오가 커졌다.

어떻게든 가해자들이 처벌을 받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단과 나의 각자 인생보다 이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취업이 늦어지고 심리적 트라우마가 생기더라도 계속 n번방을 모니터하고 범죄를 추적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컸다. 우리라도 계속 지켜봐야 한다는 책임감이 들었다. 복잡한 계산보다 단과 나는 경악했고 분노했고 증오했고 행동했다.

20년 후에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단 : 약자들이 당하는 피해에 대해 강력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정희진 선생님이 쓴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라는 책을 읽으며 그런 바람이 커졌다. 또 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유명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일상에서는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을 알리는 글을 쓰고 싶다. 참 그때는 ‘2차 가해’ 같은 게 없는 한국이 됐으면 좋겠다.

-불 : 디지털 성범죄를 뿌리 뽑는 데 기여를 하고 싶다. 강력한 처벌이 뒤따라야 하는데 결정권을 가진 쪽에서 쉽게 추진하지 못하는 거 같았다. 결국 디지털 성범죄를 다루는 분야의 결정권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리에 올라갈 때까지 시간은 걸리겠지만 노력을 할 것이다. 디지털 성범죄가 없는 국가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있을 것이다.

글·사진 김용운 편집장


추적단 불꽃

대학생 신분으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취재해 세상에 디지털 성범죄 실상을 알렸다. 최초 보도자이며 최초 신고자로서 경찰과 협력해 수사를 진행했다. 불과 단은 신분 노출을 피하기 위한 가명이다. 현재도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 중이다. 제1회 뉴스통신진흥회 탐사심층르포 공모전 우수상과 제22회 국제앰네스티 언론상 특별상과 제55회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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