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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원 칼럼] 바이든, ‘오바마 대북정책’ 잊어야 북핵 문제 풀린다

By | 2020년 12월 26일 | 국제, 한반도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22일(현지시간) 인수위 사무실이 있는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퀸 시어터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윌밍턴 AFP/Getty=연합뉴스)


내년 1월 하순이면 트럼프 대통령이 물러나고 바이든 시대가 시작된다. 미중 패권경쟁 속에 북핵 문제, 미북 관계, 한반도 주변정세는 과연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바이든 당선인은 외교안보 라인의 핵심인 초대 국무장관으로 앤토니 블링컨(Antony Blinken) 전 국무부 부장관을 지명했다. 블링컨은 지난 20여 년간 바이든 곁을 지켜온 인물이다. 미국 언론에선 그를 가리켜 바이든의 ‘제2의 자아’(alter ego)라고까지 말한다. 그의 생각과 구상은 곧 바이든의 대외정책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오바마 정부의 클린턴 국무장관, 트럼프 정부의 폼페이오 국무장관처럼 블링컨은 북핵 협상에서도 키맨(keyman) 역할을 할 것이다. 이승원 필자는 20년 가까이 정치, 외교, 한반도 문제를 연구해왔다. 최근 <바이든 플랜>이란 책을 출간했다. [편집자]

#블링컨 국무장관 내정자가 키맨 
  북한에 줄곧 비판적 입장 견지
#오바마 식 전략 회귀 가능성
  이란 핵협상 모델 적용할 듯
#美, 단계적 접근보다 일괄타결 선호
  결단 필요한 땐 정상회담 고려해야
#한미 간 소통이 북핵 해결 열쇠
  北, 똑같은 실수 반복하지 않길

앤토니 블링컨 내정자는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직전 뉴욕타임스에 기고문을 실었다. “북한과 핵협상에서 최선의 모델은? 이란” (The Best Model for a Nuclear Deal With North Korea? Iran) 이라는 글이다. 이란 핵 협정(JCPOA, 포괄적 공동행동계획)은 쿠바와의 국교정상화와 함께 오바마 정부가 거둔 외교적 성과로 손꼽힌다. 당시 국무부 부장관이었던 블링컨이 깊숙이 관여했다.
기고문의 요지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 협정(JCPOA)을 파기했지만 향후 미북 협상에서는 이란과 했던 협상과 비슷한 접근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주장이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부분적 경제제재 완화를 대가로 모든 (핵·미사일) 프로그램 공개, 국제 감시 하에 농축과 재처리 인프라 동결, 일부 탄두와 미사일 폐기 등을 요구하는 중간 합의 (interim agreement)를 추구할 수 있고 이는 더 포괄적인(일괄적인) 협상을 위한 시간을 벌어 줄 수 있다”면서 “이것은 바로 오바마 정부가 이란에 취했던 접근법”이라고 강조했다.

블링컨은 또 다른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 외교가 ‘위협과 압박’에서 (김정은과의) ‘연애편지’ 사이를 거칠게 오가는 충동적이고 변덕스러운 양상을 보이면서 혼란을 주고 있다”고 말하는가 하면, “북한을 쥐어짜야 한다”, “김정은은 최악의 폭군” 같은 비판적 발언을 계속해왔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 (윌밍턴 AFP/Getty=연합뉴스)

#바이든-블링컨의 두 가지 착각

미국 대선을 40여 일 앞둔 지난 9월, 블링컨은 CBS 방송에 출연해 이란 핵 합의를 재차 언급한 뒤 “나는 북한과도 똑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협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달래기 위해 동맹들과 군사훈련을 유예하고 경제적 압박 페달에서 발을 뗐다”고 주장하며 “우리는 그 대가로 무엇을 얻었는가.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능력을 실질적으로 증가시켰다”고 비판했다.

필자는 먼저 블링컨이 여기서 ‘말하는 것’보다 ‘말하지 않은 것’에 주목하고 싶다. 블링컨은 트럼프 정부 4년 동안 북한이 핵·미사일 능력을 실질적으로 증가시켰다고 주장했지만 오바마 정부 당시에는 과연 대북정책을 제대로 펼쳤는지 되짚어본다.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이후 권좌에 오른 김정은은 2012년 처음으로 사회주의 헌법에 자신들이 핵보유 국가라고 명시하고 과속 질주를 시작했다. 오바마 정부 8년 동안 북한은 무려 4차례의 핵실험을 실시했고 온갖 종류의 미사일 실험발사를 시도 때도 없이 강행했다. 김정은의 목표는 핵·미사일 능력을 ‘완성’해 미국과 담판을 짓겠다는 전략이었고 무모할 정도의 빠른 속도로 이를 실행에 옮겼다.
오바마 정부는 유엔 차원의 대북 제재는 물론, 미국의 독자 제재 등을 통해 북한을 고립시키고 압박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북한은 오히려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시켜 자신들의 존재감을 높였다. 김정은의 북한은 트럼프 집권 후에도 약 1년간 도발을 이어갔고 2017년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발사로 일촉즉발의 고비를 맞았다.
그러나 김정은은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북미 대화의 장이 열린 뒤 2019년 2월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될 때까지 미국을 실질적으로 자극할 만한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실험발사를 유예해왔다. 여기에는 핵보유 완성이라는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도발의 수위와 빈도를 놓고 본다면 오바마 정부는 트럼프 정부에 비해 훨씬 낮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블링컨 내정자가 오바마 정부 당시 일련의 대북 제재가 성공적이었다고 여전히 믿고 있다면 이것은 커다란 착각이다.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는 인민들의 생명·생활보다 자신의 체제·가문 유지를 더 우선시하는 김정은에게 기대한 만큼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고 오히려 체제 위협과 안보에 대한 우려로 더욱더 핵 개발에 매진하게 만드는 역설적 상황을 만들어냈다.

필자가 보기에 블링컨의 두 번째 착각은 ‘이란 식 해법’이 북한에도 적용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북핵 접근법을 구상하고 있다는 점 자체는 긍정적일지 몰라도 이란과 북한의 상황은 전혀 달라서 그의 생각만큼 쉽게 돌파구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란은 2015년 협상 타결 시점까지 저농축 우라늄만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무엇보다 핵실험을 진행한 적도, 핵무기 보유를 주장한 적도 없었다. 반면 북한은 핵보유 국가임을 이미 선언한 상황이다. 블링컨이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스스로 말했듯 60여 개의 핵탄두와 수십 개의 탄도미사일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한 해에 약 6개의 핵폭탄을 만드는데 필요한 양의 핵물질을 생산할 시설들을 갖추고 있다.
또한 이란과의 협상에선 핵문제 자체(비확산)만을 의제로 했다면 북한의 경우 핵과 안보 문제 전반을 다루는 복잡한 협상이 되고 있다. 이란은 제재 해제만으로도 1300억 달러에 이르는 동결 자산을 움직일 수 있고, 석유 수출 재개에 따른 경제적 이익도 막대하다. 그러나 북한은 제재 해제로부터 얻게 될 혜택(경제적 이익)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 동결 및 해체에 따른 직접 보상을 원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시작하기 전에 인사를 나누고 있다. (싱가포르 AFP=연합뉴스)

#이란 핵협상 방식, 현실적으로 어렵다

바이든이 정권을 인수한 뒤 발등의 불은 국내적으로 코로나19 대응과 경제 회복, 대외적으로는 다자주의 및 동맹의 회복이 될 것이다. 바이든 정부가 과연 북핵 문제와 북미관계 진전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질지, 또 언제쯤 본격적인 로드맵을 선보일지는 아직 미지수인 셈이다.
어쨌든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구상은 2019년 하노이에서 열린 미북 정상회담의 실패 원인을 복기하는 데서부터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와 마주한 김정은은 당시 크게 봐서 두 가지를 제안했다. 2019년 3월 1일 새벽 기자회견을 자청한 리용호 외무상은 미국이 유엔 제재의 일부, 즉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의 제재를 해제한다면 ①북한은 영변 내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을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하에 두 나라 기술자들의 공동 작업으로 영구적으로 완전히 폐기할 것이고 ②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시험 발사를 영구적으로 중지한다는 확약을 문서 형태로 줄 용의가 있다는 것을 밝혔다.

이것은 북한을 수차례 방문한 핵 전문가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의 표현처럼 ‘북핵의 심장’인 영변 핵시설을 포기하겠다는 획기적인 제안이었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북한이) 핵시설 5곳 중 1∼2곳만 폐기하려 했으나, 내가 영변 외 핵시설도 추가 폐기를 요구했다’고 밝힌 바 있다. (2019년 5월19일 폭스뉴스 인터뷰) 이에 앞서 하노이회담 결렬 직후 기자회견장에 트럼프와 함께 등장했던 폼페이오 장관은 “미사일도 빠져 있고, 핵탄두, 무기체계가 빠져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양측의 주장을 종합하면 미국은 일종의 일괄타결(서로 원하는 것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방식)을 원한 반면, 북한은 2005년 9.19 공동성명 이후 줄곧 고수해온 ‘단계별 협상’ 방식을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이 ‘민수/인민생활’과 직결된 제재 해제를 요구한 것은 “신뢰 구축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촉진한다는 점을 인식(recognize)한다”는 싱가포르 합의문의 맥락에서 미국의 태도 변화를 확인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구조건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여전히 당신들을 믿을 수 없으니 최소한 이 정도는 해 달라’는 북한 중심의 사고로 접근한 것이다.
반면, 트럼프 정부는 핵무기와 미사일 폐기 등에 대한 북측의 포괄적이고 확실한 답변 없이는 어떤 제재도 해제하지 못하겠다고 맞선 것이다.
(※물론 당시 트럼프 곁에는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라는 훌륭한 방해꾼과 마이클 코언 청문회라는 장애물이 있었고 이런 환경들은 회담 결렬에 매우 중요한 팩터로 작용했다)

그렇다면 바이든 정부는 우선 이 질문에서부터 답을 찾아야 한다. 협상 자체는 어렵지만 목적지에 도달하기 쉬운 ‘일괄타결’로 방향을 잡을 것인지, 아니면 단계적 접근법을 택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큰 분쟁은 대부분 일괄타결로 해결됐지만 북한은 현재 -중간에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단계적 접근법’을 선호한다.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이라는 협상 상대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협상 단계마다 추가로 얻어낼 수 있는 이익이 많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일명 살라미 전술이다. 요약하면, 서로에 대한 신뢰가 제로상태인데다 북한의 핵·미사일 기술 등이 고도화된 상황 등을 고려한다면 바이든과 블링컨이 애정하는 이란 핵 협정과 같은 일괄타결 방식은 현실적으로 힘들다.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다.

또 다른 숙제는 실질적인 협상의 방식이다. 클린턴은 북미 양자회담을 했지만 클린턴을 증오한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6자회담이라는 다자 틀을 만들어냈다. 오바마는 사실상 한국 보수성향 정부의 방침에 동조해 북한 문제를 방치했고 트럼프는 정상회담이라는 획기적이지만 다소 위험한 카드를 꺼내 썼다.
바이든은 2018년 싱가포르 합의문이 발표되자마자 이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북한이 원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수용했고 북미 정상이 마주앉음으로써 국제적 고립상태에 빠져있던 김정은을 탈출하게 도와줬다는 비난이었다. 바이든은 대선 캠페인 내내 “실무 협상팀에 권한을 부여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물론 실무단계에서 실질적 합의에 이르고 마지막 단계에서 이를 ‘아름답게 포장’하는 것이 정상회담의 역할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시도했던 톱다운 방식도 무조건 외면할 것은 아니다. 실무협상과 정상회담은 상호 보완적 역할을 한다. 바텀업 방식이 일반적으로 내실 있고 안전하겠지만 ‘김정은은 폭력배’이니 마주하는 것 자체가 보상이라는 도그마적 인식은 협상에서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순간, 바이든도 정상회담을 고려해야 한다. (※물론 결과는 달랐지만, 2008년 대선 경선 당시 오바마는 독재자와 마주하는 것을 보상이라고 생각하는 네오콘들을 비판한 바 있다) 비핵화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바이든의 인식 전환도 또 하나의 숙제로 남아있다.

#북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그렇다고 북미관계의 앞날에 회의론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란과 핵 협상을 다시 트럼프 이전으로 정상화시킨 후 바이든 정부는 북핵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룰 가능성이 크다. 오바마 정부 8년은 미국에든 북한에든 좋지 않은 경험이자 기억이 됐다. 이런 학습효과를 바탕으로 바이든은 다른 시도를 해야 한다. 다른 결과를 바라면서 같은 방법론을 반복하는 것은 가장 바보 같은 짓이다.
그래서 주목하는 인물은 또다시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와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다. ‘성공의 경험’은 실패의 경험만큼이나 중요하다. 이들은 이란 핵 협상을 성사시킨 경험이 있고 그런 인식과 태도가 북핵 문제를 다루는데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과거 블링컨이 부장관이었을 당시 그를 상대해봤던 국내 한 외교관은 “합리적이고 온화한 사람”이라고 그를 평가했다. 그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미 간에 소통을 잘해 나간다면 북핵 해결의 열쇠도 찾아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한국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2000년 10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한 뒤 북한의 조명록 차수가 워싱턴을 답방해 북미 양국은 관계정상화 직전까지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당시 클린턴 정부와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극적인 접근에는 김대중 정부의 역할이 컸다. 그러나 그해 미국 대선 결과 부시 공화당 정권이 들어서자 북미 관계는 급속히 냉각됐다. 이후 오바마 민주당 정부 때는 한국에서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 북핵 및 북미관계에 아무런 진전도 보지 못한 채 ‘전략적 인내’라는 수식어로 그 실패를 얼버무렸다. 그래서 한미 양쪽에서 동시에 리버럴(진보적) 성향의 정부가 들어선 현재 구도는 북미관계 변화에 긍정적인 신호가 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북한의 태도와 자세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새로운 도발을 하게 되면, 한국 정부가 움직일 여지는 크게 좁혀진다. 오바마 정부 당시에도 북한은 잇단 도발로 국제적인 제재·고립을 자초해 왔는데, 바이든 시대에도 똑같은 실수를 저질러선 안 된다. 이는 협상을 하려는 상대방의 외교적 배후 공간을 잘라내는 일이다. 몇 번의 실패 경험을 통해, 자신이 쏜 화살을 스스로도 맞게 된다는 사실을 북한이 이제 충분히 인식할 때가 됐다.


이승원 필자

2000년대 초반에 기자 생활을 시작해 정치, 외교, 남북 관계를 주로 취재했다. 2차 북핵 위기 당시엔 6자회담을 현장에서 지켜봤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 워싱턴대학(잭슨스쿨)에서 석사 논문을 썼다. 2013년부터 라디오·TV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 활동하면서 주로 정치·국제 문제를 다루었다. 최근 <바이든 플랜>을 출간했다.틈날 때마다 강아지와 놀고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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