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현지시간) 스위스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것을 기념해 다이양 마을의 빵집에서 만든 백신 주사기 모양의 크리스마스 케이크. (다이양 EPA=연합뉴스)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를 흥얼거린다. “크리스마스 아침에, 나는 일찍 일어날 거야. 머리맡에는 겨우살이, 나는 제일 먼저 일어날 거야.” 내가 어릴 땐 들어본 적이 없는 <크리스마스 아침에(On Christmas morning)>라는 캐럴이다. 아이는 노래를 부르다 말고 말한다. “엄마, 근데 다른 사람이랑 같이 겨우살이 밑으로 지나갈 땐 그 사람이랑 꼭 뽀뽀해야 하는 거 알아? 유치원 문에 겨우살이가 걸려 있는데 어떡하지?”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아이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웃는다.

겨우살이(영어명 Mistletoe·사진)는 크리스마스의 대표 식물이다. 작지만 윤기가 흐르는 녹색 잎, 빨갛거나 하얀 색깔의 동그란 열매. 다른 식물이 색을 잃고 말라가는 한겨울에도 홀로 생생하게 살아있어 풍요를 상징한다. 겨우살이가 살아남는 이유는 별 게 아니다. 다른 나무에 붙어 자라는 반기생식물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광합성을 하지만 부족한 영양분을 숙주 나무에서 얻는다. 열매에는 독성이 약간 있어 새들도 잘 먹지 않는다. 겨울철 드물게 반짝이는 잎과 열매는 기생성과 독성 덕분이지만, 어쨌거나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어울린다. 겨우살이 장식 아래로 지나가는 사람들, 특히 연인들이 키스를 하는 건 유럽 여러 나라의 오랜 크리스마스 풍습이다.

겨우살이, 풍요와 죽음의 상징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에 어울릴 법한 식물이지만 북유럽 신화에서는 죽음의 원인으로 등장한다. 신들의 왕 오딘의 둘째 아들이자 빛의 신 발드르는 선하고 정의감이 넘쳐 누구에게나 사랑받는다. 어머니 프리그는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세상 모든 것들로부터 발드르를 공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그때 단 하나 빠뜨린 것이 겨우살이다. 프리그는 너무나 작고 하찮은 이 풀이 아들을 해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발드르의 인기가 못마땅했던 로키는 그 사실을 알고 계략을 꾸민다. 겨우살이로 날카로운 화살을 만든 뒤, 발드르의 동생인 눈먼 신 호드를 꼬드겨 장난인 양 던지게 한다. 화살을 심장에 맞은 발드르는 그 자리에서 죽는다. 오딘은 저승으로 사자를 보내 발드르를 돌려보내 달라고 부탁한다. 저승의 여신 헬은 ‘세상 만물이 다 발드르를 위해 울어준다면’을 조건으로 내건다. 세상 만물이 다 울지만 단 한 명, 로키가 울지 않아 발드르는 부활하지 못한다.

올 겨울 거리 곳곳에 걸린 겨우살이 장식을 보면서 ‘풍요’가 아니라 ‘죽음’이 떠올랐다. 내가 사는 스위스 취리히를 비롯해 유럽 많은 도시들이 연중 최대 명절을 앞두고 다시 봉쇄 또는 그에 유사한 조치를 시행했다. 가족, 친구들이 모여 단란한 연말을 보내고 싶다는 기대는 무너졌다.

숙주에 기생해 자라는 풀, 발드르를 죽인 겨우살이는 2020년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린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닮았다. 작고 하찮아 보이지만 치명적이다. 키스를 부추기는 건 그 자신이 전파되기 위해서다. 사람들은 이제 겨우살이 밑에서 키스는커녕 마스크를 쓰고 거리두기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우살이에 면역이 없었던 발드르처럼 많은 이들이 세상을 떠났다. 손 쓸 도리 없이 1년이 흘렀고 이제 남은 희망은 백신이다. 그러나 그 희망은 조건부다. ‘세상 만물이 다 울어준다면’, 아니, ‘가능한 많은 사람이 백신을 맞는다면’ 이 상황도 타개 가능하다. 그러나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울기를 거부했던 로키처럼.

취리히 중앙역 거리(반호프슈트라세)에 늘어선 크리스마스 상점들. 보통 이런 상점이 수십개 모여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데, 올해는 대부분이 취소되어 이게 전부다. (사진=김진경)

넘어야 할 산, ‘백신 반대론’

스위스 정부는 지난 19일 화이자-바이오엔 테크 백신을 승인했다. 23일 오전, 루체른에 사는 90세 여성이 스위스에서 처음으로 백신을 맞았다. 정부가 주문한 물량은 1500만도즈, 그중 당장 사용 가능한 것이 10만도즈다. 그럼 이제 스위스에서 코로나19 정복은 시간문제인 걸까? 그전에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백신 반대론’이라는 보이지 않는 산이다.

내 독일어 선생님인 65세 스위스 남성 E와 백신 얘기를 나눴다. 그는 처음엔 농반진반으로 “독일에서 대규모 접종을 하면 거기서 부작용이 없는지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인구당 확진자나 사망자 수는 스위스 상황이 독일보다 나쁜데도 말이다. 내가 이런저런 근거를 대며 가능하면 빨리 백신을 맞는 게 좋지 않겠냐고 하자, E는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로 죽는 사람이 많은지, 백신으로 죽는 사람이 많은지 두고 보면 알겠죠.” E는 아흔을 바라보는 자신의 어머니도 백신을 맞지 않을 거라고 했다.

E를 예외적인 경우로 볼 수는 없다. 최근 스위스 여론조사기관(Marketagent)이 14-74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나는 일반적으로 백신을 지지하지만 코로나19 백신은 쌓인 자료가 너무 적어 맞지 않겠다’고 답한 사람이 전체 응답자의 절반 이상(53%)이었다. 지난 10월 스위스 공영방송 SBC의 여론조사 결과는 더하다. ‘코로나19 백신이 이용 가능해지면 바로 맞겠다’고 답한 사람이 전체 응답자(약 4만 명)의 16%에 불과했다. 사실 이는 예견된 시나리오다. 올 한 해 유럽 곳곳에서 이어진 안티 코로나 시위의 핵심적인 주장 중 하나가 백신 반대론이었다.

스위스의 안티 백신 풍조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1882년 스위스 정부가 천연두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려고 했을 때, 백신 반대 단체가 지지자 서명 약 8만 건을 모은 뒤 이를 국민투표에 부쳤다. 당시 백신 반대론자들이 벌인 캠페인에서는 ‘백신을 맞은 뒤 고통받는 아이’라며 선정적 사진이 돌았다. ‘백신은 동물 배설물로 몸을 오염시키는 것이다’, ‘의사들의 폭력으로부터 우리 몸을 지켜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이 퍼지기도 했었다. 투표 결과 의무 접종 반대가 압도적(79%)으로 높았다. 정부안은 부결됐다. 스위스에선 지금도 일반 백신 접종이 국민의 의무가 아니다. 현재 감염병법은 병원이나 요양원 직원 등 일부 고위험군만 백신을 접종하도록 돼 있다. 거부해도 처벌할 규정은 없다.

코로나19 백신에는 거부감이 더 크게 나타난다. 개발 속도가 유례없이 빨랐던 데다 mRNA라는 새로운 방식 때문이다. 코로나 19 백신 거부에 대한 전문가 의견은 어떨까. 스위스 백신위원회 의장이자 스위스 연방보건청에 자문을 하고 있는 소아과 의사 크리스토프 버거는 “필수적인 팩트가 다 확인되기 전까지는 원치 않는 사람에게 서둘러 접종을 권유하고 싶지 않다”고, 이달 10일 스위스 일간 NZZ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우리는 불완전한 정보를 갖고 대응하고 있다. 천연두, 소아마비, 홍역 같은 병에 대해서는 수 십 년간 쌓인 경험이 있다. 백신 덕에 이 병들을 물리쳤다. 하지만 코로나19 백신은 이제 시작이다.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부 사람들이 회의적 태도를 보이는 걸 이해할 수 있다.”

전문가가 코로나19 백신 반대론자들을 ‘이해’한다니, 이게 무슨 뜻일까. 버거의 말을 더 들어보자. “백신의 최우선 목표는 고령층과 기저질환자 등 고위험군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것만 성공해도 병원 중환자실에 실리는 부담을 덜 수 있고 봉쇄를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집단 면역에 도달하기 위해 백신을 맞는다는 건 아직 먼 얘기다. 멀리 보고 전체 인구의 신뢰를 이끌어내야 한다. 접종을 망설이는 사람이 있으면 의사가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 설득해야 한다.”

이 인터뷰를 통해 버거가 말하고자 하는 건 두 가지다. 첫째, 백신 반대론자들을 무지하거나 악한 사람들로 단정 짓지 말고 차분히 설득해야 한다는 것. 둘째, 백신 접종을 시작한 이후에도 당분간 거리두기 등 위생수칙이 계속 필요하다는 것. 그는 “‘빨리’가 아니라 ‘정확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3일 스위스 첫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이날 일간지 NZZ에는 '누가, 언제, 어디서' 백신을 맞는지 안내하는 기사가 실렸다. (사진=김진경)

백신 거부 국민투표 가능성도

‘빨리가 아니라 정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 이해는 되지만,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에선 느긋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스위스에선 현재 코로나19 환자를 위한 병상 확보 때문에 전국적으로 수술이 수천 건 취소됐다. 수도 베른에 있는 병원 인젤슈피탈은 지난 10월 이후에만 수술 700건 이상을 미뤘다고 밝혔다. 가벼운 수술이 아니라, 심장 질환 수술이나 암 수술 등이 미뤄지고 있다. 바젤대학병원 대변인 니콜라스 드렉슬러는 “의학적으로 수술을 미뤄도 큰 문제없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당사자는 수술이 늦춰지면 통증을 더 오래 겪고 심리적 문제도 커진다”고 우려했다.

의료 시스템은 이미 일부 무너졌다고 봐야 한다. 느리기로 유명한 스위스 정부가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백신을 승인한 것이나, 확보한 백신을 보관·운송하는 데 만전을 기하고 있는 것은 이런 상황 때문이다. 백신을 보관·운송하는 건 연방 정부, 구체적으로는 군대의 책임이다. 현재 스위스군은 구체적인 백신 보관 장소를 밝히지 않고 있다. 외부 위협에 대비해 백신 저장고를 ‘아주 높은 수준’으로 보호 중이라고 한다. ‘외부 위협’에는 백신 반대론자들도 포함된다.

스위스의 백신 반대론자들은 최근 조직적 행동을 시작했다. ‘스위스 자유 운동’이라는 이름의 단체가 ‘백신 거부할 권리’를 아예 스위스 헌법에 못 박으려 준비 중이다. 이 단체는 “현 상황은 우리가 정부나 정치인, 전문가들을 신뢰할 수 없다는 걸 보여준다. 코로나 백신을 거부해도 사회적 불이익이 없도록 헌법으로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앞으로 18개월 동안 지지자 10만 명의 서명을 모아 제출하면 이것이 국민투표에 부쳐질 수 있다. 가정을 해 보자. 국민투표가 시행되고 이 안건이 통과될 경우, 요양원 직원이나 중환자실 간호사가 코로나19 백신을 맞지 않은 상태로 계속 고위험군과 접촉하며 근무해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북유럽 신화에서 발드르가 겨우살이 때문에 죽는 장면을 묘사한 아이슬란드 책 삽화.

한국, 백신에 대한 사회적 신뢰 갖췄나

먼 나라 스위스의 동떨어진 이야기만은 아니다.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백신 접종률이 높긴 하지만, 최근 상황은 좀 다르다.

의학 저널 란셋(The Lancet)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149국에서 백신 신뢰도를 조사해 지난 9월 발표했다. 약 28만 4000명을 대상으로 290건의 설문조사를 한 결과다. 이 란셋 논문에는 한국이 여러 번 등장한다. 조사 기간에 백신의 중요성, 안전성, 효율성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나라로 한국이 꼽힌다(함께 꼽힌 나라들은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필리핀이다). 논문은 한국의 인터넷 커뮤니티 ‘안아키’를 언급한다. ‘안아키’가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의 줄임말이며, 어린 시절의 예방 접종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단체라는 설명도 들어가 있다. 공교롭게도 한국은 얼마 전 독감 백신과 관련된 사회적 파장을 겪었다. 유통 과정상의 문제로 접종이 한때 중단됐다. 안아키 같은 단체나 독감 백신 파장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은 정확히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백신을 확보한다고 끝이 아니라는 거다. 다시 발드르의 죽음으로 돌아가 보자. 아들이 죽고 난 뒤 오딘은 다리가 여덟 개 달린 말에 사자를 태워 저승으로 보낸다. 어찌나 빨랐던지 사자는 9일 만에 저승에 도착한다. 하지만 발드르는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 로키가 그를 위해 울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리 여덟 개 달린 말의 속도 못지않게 로키를 설득하는 일도 중요했는데 오딘은 그걸 간과했다. 신들의 미움을 받은 로키는 밀려나 고립되고, 이 갈등은 마침내 세상의 멸망인 라그나로크로 이어진다. 어쩌면 코로나19보다 더 큰 문제는 소통의 위기일지도 모른다. 크리스마스다. 소통이 간절한 시기다.


김진경 필자

한국에서 일간지 기자로 일했다. 미국에서 만난 스페인 출신의 남편과 2011년부터 스위스 취리히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다. 한국 및 스위스 매체에 문화 다양성(cultural diversity)에 대한 글을 쓴다. 여전히 정체성을 고민 중이고, 심리적 이방인의 새로운 시각을 글에 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