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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세대가 바라는 세상④] “개인들이 존중받는 직소 퍼즐, 레고 블록 같은 나라 됐으면”

By | 2020년 12월 21일 | 2030세대가 바라는 세상, 기획 · 연재, 위크엔드 컬처

중앙일보 제공

피아니스트 손열음(34세)은 한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연주자다. <피렌체의 식탁>은 기획인터뷰 ‘2030세대가 바라는 세상’의 네 번째 인터뷰이(interviewee)로 그를 만났다. 강원도 원주 출신인 손열음 피아니스트는 2018년부터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예술감독으로 활동하며 국내 팬들을 정기적으로 만나왔다. 올 연말에 코로나19로 인해 유럽 공연 일정들이 취소되자 대관령음악제 ‘강원의 사계, 겨울'(23일 오후 7시, 손열음의 溫 에어, 유튜브 중계)에 참석하기 위해 일시 귀국해 2주간의 격리기간을 21일에야 막 끝냈다. 인터뷰는 독일에 머물고 있던 손 예술감독과 e메일을 통해 12월 초에 진행됐다.
그는 한국의 2030세대가 유럽과 다른 점으로 상대평가 교육환경을 손꼽았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창조성·인간성까지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는 거다. 그는 자신이 활동해온 독일을 ‘직소 퍼즐’(jigsaw puzzle), ‘레고 블록’(Lego blocks) 같은 나라라고 비유한 뒤 한국도 개인들이 존중받으며 사회적으로 큰 그림을 그리는 나라가 되기를 꿈꾼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이 ‘문화 국가’로 발전해 나가려면 단기성과주의, 1년 단위 계획에서 벗어나야 되며 ‘편식이 아닌 다양성’을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편집자]

◇손열음이 獨서 보낸 e메일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살아온 세대
  창조성·인간성까지 기대하니 부담
-작은 피스 하나하나가 대우 받으며
  독일처럼 큰 그림 만드는 사회 되길
-재능 위주 영재 교육, 시야 가리기도
  오래할수록 인정받는 분위기 필요

▲2030세대는 기성세대와 비교했을 때 어떤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기성세대와의 갈등 요인은?

-사람을 구분지어 생각하는 걸 잘 못하는 편입니다. 나, 너, 우리, 너희, 이렇게 나누어 생각하는 걸 무의식적으로 거부하는 것 같아요. 살다 보면 대부분의 경우 내가 너이기도 하고 너희가 우리도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인 것 같아요. 시대정신이라는 것은 분명히 존재하겠으나 세계인이란 관점에서 봤을 때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요.

▲2030세대가 부닥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은 어떤가? 다른 나라 2030세대와 비교할 때 다른 점은?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측면에서 양극화되는 사회 현상들이 조금 우려스럽죠. 이것은 가만 보면 전 세계적인 흐름인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2030세대를 볼 때 마음 아픈 점은 아무래도 끊임없는 경쟁과 비교 속에 시달렸고, 지금도 대부분 그 경쟁 속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겠죠. 학생 시절부터 늘 상대평가를 당해온 사람들을, 몇 년 전까지는 ‘인적 자원’으로 대하며 생산성을 강조했기에 가치적 충돌이 없었을 테지만, 요즘에는 갑자기 창조성과 인간성까지 기대를 하니, 그건 무리가 아닌가 싶어요. 제가 본 상당수의 유럽 국가에서 동 세대들을 찾아 비교한다면 결국 가장 다른 점은 교육 환경이 아닐까 싶습니다.

▲코로나19와 감염병, 기후변화 위기, 4차 산업혁명, 양극화 심화 등 전반적인 메가트렌드 가운데 우리 삶에 미칠 가장 중요한 변화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환경오염 아닐까요? 역사의 흐름에는 끊임없이 파도가, 부침이 있고 이것이 시간을 따라 반복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환경오염은 전혀 돌이킬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차원이 좀 다를 것 같아요. 그 어떤 것보다도 더 투철한 경각심을 가져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20~30년 후에 한국사회는 어떤 사회가 될 것 같은가? 손 감독은 그때 어떤 삶을 살고 있을 것 같은가? 본인이 이상적으로 꼽는 모델국가가 있다면?

-제 예상대로 이루어진다면 미래가 아니겠죠. 다만 무엇보다 교육 환경이 많이 바뀐 나라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에 비해, 저는 이제껏 훨씬 더 많은 나라를 방문하고 엿보았지만, 이상적으로 꼽을 수 있는 국가는 감히 말씀 드리자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독일로 처음 유학을 갔던 때부터 그 사회에서 여러 가지를 아주 많이 배웠어요. 저 같은 외부인이 볼 때 독일은 직소 퍼즐(jigsaw puzzle)이나 레고 블럭 같은 나라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작은 피스 하나하나가 아주 중요한 대우를 받으며 한데 모여 큰 그림을 만드는, 그래서 견고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회요.

▲손 감독은 에세이집 <하노버에서 온 음.악.편.지.>를 출간한 바 있다. 5년 전 언론 인터뷰에서 “재능은 1%에 불과하고 어떻게 키워지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 될 수 있다”고 답한 적이 있다. 선진국과 비교할 때 한국의 영재교육은 어떤 장단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나?

-일단 딱 하나의 재능만 가지고도 충분히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사람들을 키워야 하는 건 맞지만, 그 재능을 가진 것만으로 너는 충분하다, 그런 방식으로 키워도 되는 건 아닌 것 같거든요. 혹시나 한국의 영재 교육이 그들의 시야를 이런 방식으로 가리는 건 아닌가, 조금 의문이 들 때도 있어요. 다른 분야는 제가 잘 모르니 말하기가 힘들지만, 음악 분야에서는 단기간에 성과를 내는 데 너무 집착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 어떤 분야보다도 오래할 수 있고, 또 오래할수록 가치를 인정받는 분야의 특성이 다소 무시되는 것 같아요.

▲손 감독은 피아니스트뿐만 아니라 수필가, 사회활동가로도 이름을 떨치고 있다. 본인의 성장과 교육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이나 인물을 꼽는다면?

-저는 독서가, 수필가, 사회활동가로 활동하는 사람은 전혀 아니지만요. (ㅎㅎㅎ) 누군가 제가 일반적인 피아니스트와는 조금 다른 인물이라고 느낀다면 그건 음악가라곤 한 명도 없는 저희 가족과 클래식음악이 뭔지 관심도 없었지만 저를 온 마음으로 성원해줬던 중학교 친구들 덕분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들 사이에서 자란 덕분에, 이 세상에서 음악만 중요한 것은 전혀 아니라는 것을 배우는 한편으로, 그럼에도 나에게는 음악이 가장 중요하다는 그런 균형 감각을 배운 것 같고요. 또 공급자의 시각, 즉 음악가나 연주자의 시각에만 머물지 않고 수요자인 관객의 시각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이들 덕분인 것 같고요. 물론 저를 가르쳐준 선생님들은 한 분 한 분 너무 훌륭하신 분들이었고 그 분들이 다 저를 완전히 바꿔놓으셨어요.

◇’문화 국가’가 되려면

-가장 절실한 건 내수시장 규모 확대
  지역 문화 중심의 인프라 육성해야
-서양·일본에선 2~3년 앞을 플래닝
  단기, 편식에서 벗어난 다양성 필요
-AI가 대체? 클래식, 원래 기계와 경쟁
  흘러가는 음악 잡아둔 유튜브에 감사

▲손 감독은 해외에서 주로 활동하지만 국내에서도 많은 활약을 해왔다. 2년 전부터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데 한국이 ‘문화 국가’로서 발전하기 위해 민관 차원에서 어떤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생각하나?

-뜬금없는 얘기 같을지 모르겠는데 문화 국가가 되려면 제일 절실히 필요한 것은 내수 시장 규모의 확대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가 지금 같은 사이즈의 관객층, 관객 수라면 앞으로도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클래식 음악 강국이 되긴 어렵다고 봐요. K-pop이 세계화의 흐름을 탄 건 먼저 극동과 동남아시아의 그 엄청난 규모의 시장을 다 장악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클래식 음악의 경우 빨리 서울 중심에서 벗어나 지역 문화계가 확대 및 발전되어야 하고 공연장 등 하드웨어가 최소한 세계적 스탠더드에 준할 정도로 발전해야만, 일본·중국과 겨우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두 가지 정도를 더 얘기하자면, 하나는 장기적 시각으로 계획하는 것이 가능했으면 좋겠다는 거고요. 관(官)의 일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모든 게 연(年) 단위로만 정해지기 때문에 미리 계획을 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점이거든요. 서양 문화권 뿐 아니라 일본만 해도 2~3년 앞을 플래닝하는 것이 당연한데, 저희 패턴처럼 일해서는 이 수준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어요.
또 하나는 민관 모두에게 바라는 점인데, 이제는 부디 편식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지향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는 열 개 이하의 교향곡이 일 년에 수십 번 이상 연주되는데, 나머지 수천 곡의 다른 교향곡들은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연주되지 않아요. 이 불균형은 너무 기형적이에요. 그래서 제가 프로그래밍 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유명한 곡, 유명하지 않은 곡, 300년 전 곡, 가장 최근에 쓰인 곡, 오케스트라 곡, 소규모 실내악, 모두를 다양하게 아우르면서도 그 안에서 아이덴티티(identity)를 갖추도록 하는 거예요.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AI)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 체스와 바둑에서 AI가 인간을 누르고 교육, 법률, 의료 등 전문분야에서 각광받고 있다. 장차 예술 분야에서도 AI가 인간 못지않게 창작 활동을 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AI와 인간을 구분 짓는 창조적 상상력과 공감능력은 어떻게 배양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솔직히 아직까진 그다지 와 닿지 않는 주제라고 할까요. 다른 말로 하자면, 예술이 AI가 침범하지 못할 성역이라고 생각하는 건 전혀 아닌데, 그렇다고 해서 그걸 참담하게 느낀다거나, 위기의식을 느낀다거나, 반대로 고무적으로 느낀다거나, 그 어떤 느낌도 딱히 없어요. 다른 예술 분야는 잘 모르겠지만, 저희 클래식 음악가들은 원래부터 기계와 경쟁해왔기 때문일지 모르죠… 아직도 죽은 카라얀(Herbert von Karajan)이 살아있는 지휘자 모두를 합친 것보다도 더 인기가 많고, 길렐스(Emil Gilels)의 복각 음반이 나오면 유럽 판매 차트 1위를 달성하니까요. 거슈윈(George Gershwin)이 유일하게 남긴 음반은 실제 녹음이 아닌 피아노롤에 입력한 걸 플레이시켜 녹음한 가짜 연주예요. 하지만 우리는 이 모두에 아직까지도 감동을 받죠. 창조적 상상력, 공감능력, 이런 것도 언제까지 사람만의 전유물일까요? 전 잘 모르겠어요.

▲코로나19 이후 대면교육보다 온라인 화상교육이 각광받는다. 젊은 예술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어떤 대안을 고민하는가?

-개인적인 견해를 말하자면, 음악에서 화상교육은 없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만 절대로 대면교육을 대신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올림픽종목 스포츠를 온라인 화상교육으로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지 않나요? 악기를 다루는 일은 상당히 체능적인 부분이 많이 존재하고 그렇기 때문에 밀접 접촉이 동반되는 교육 과정이 필수예요. 그래서 코로나19가 하루빨리 끝나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손열음 유튜브 페이지>

▲두 달 전에 개인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구독자가 벌써 3만 명을 넘었다. ‘랜선 공연’뿐 아니라 일상까지 공개하고 있다. 팬들을 무대에서만 만나다가 직접 소통하는 계기가 됐을 것 같다.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요즘에는 ‘소통’이라는 개념이 좀 남발되지 않나 생각해요. 즉문즉답이 가능하다고 해서 그것만을 가지고 과연 소통을 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 사실은 서로 만나서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며 함께 음악을 만들어가는 것이 더 깊은 차원의 소통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고요. 물론 장점도 많아요. 특히 흘러갈 뿐인 음악을 잡아둘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고마운 플랫폼이죠.

▲K-pop을 비롯한 한류 열풍이 전 세계에 불고 있다. 대중문화뿐만 아니라 클래식 음악 쪽에서도 우리 젊은이들이 세계무대에서 약진하고 있다. 이른바 K-클래식이라고 부를 만한 현상이 존재하나? 한국의 음악 영재들이 세계무대에 진출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개인적으로는 ‘K클래식’이라는 단어 자체가 좀 괴이하게 느껴져요. K-pop이야 생산 과정에서부터 수요 방식까지 이전의 주류 팝계와는 확연히 다르다고 분석할 수 있는 점들이 많겠지만, 클래식 음악은 그 태생이 200년 전이고, 그 본산지는 엄연히 따로 있기 때문이죠. 200년이 지나 연주자만으로 국가나 인종을 나눈다는 개념은 좀 무의미하거나 또는 부적절할 것 같기도 해요. 다만 한국 출신 음악가들이 세계적으로 선전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이전보다는 훨씬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손열음 피아니스트

1986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독일 하노버국립음대 최고연주자과정을 졸업했다. 1997년부터 국제 콩쿠르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해외 각지를 돌며 다양한 연주활동을 펼쳐왔다. 2015년에는 에세이집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를 출간해 남다른 글쓰기 실력을 과시했다. 2018년부터는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예술감독으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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