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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의 ‘리더가 말하는 법’]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보여준 네 가지 용기

by | 2020년 12월 16일 | 강원국의 '리더가 말하는 법', 기획 · 연재




당신에게 리더 자질이 있는가?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용기가 없다.

리더의 말에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분은 김대중 대통령이다. 그 이전까지는 용기 있게 말하는 사람의 세상이 아니었다. 용기가 없을수록 득세했다. 용기 있는 사람은 시련을 겪고 핍박받았다. 사실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이 용기는커녕 직접 말을 할 필요조차 없었다. 대통령도 말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면 됐다. 중앙정보부, 국세청, 검찰이 대통령의 말을 대신해줬다.

노무현 대통령 이후 리더의 말은 보수 언론에 의해 전면적으로 노출됐다. 기득권층이 집권층의 말에 처음으로 시비걸기 시작했다. 전에 없던 일이다. 감춰주고 포장해주며 호가호위(狐假虎威)했던 사람들이 돌변했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역설적이게도 우리 사회의 투명성을 높였다. 이제 국민은, 청중은, 구성원은 리더의 말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리더의 말을 평가한다. 평가 항목 가운데 중요한 것이 용기의 유무다. 용기의 있고 없음을 모를 것 같지만 그건 착각이다. 속일 수 없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국민은 언제나 현명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민심이 마지막에는 가장 현명합니다. 국민은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최종 승리자는 국민입니다.”

약점·부족함을 드러내는 용기

리더는 자신의 약점과 부족함을 드러내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용기가 있었다.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 이렇게 묻고 스스로 답했다. “장인의 과거가 대통령을 못할 만큼 큰 허물이라면 후보 그만 두겠습니다.”

그는 완벽한 체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도와주고 싶게 했다. 그의 첫 책 제목도 <여보, 나 좀 도와줘>였다. 출판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지었다. 그를 보면서 나는 깨달았다. 따르게 하기 보다는 돕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리더십이구나. ‘노사모’ 역시 그런 리더십의 결과구나.

부족함을 드러내는 말은 듣는 사람에게 위로와 용기를 준다.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구먼. 나라고 못할 게 없겠네.’ 이런 생각으로 분투하게 만든다. 또한 아랫사람의 숨통을 틔게 한다. 완벽한 리더는 아랫사람을 눈치 보게 하고 주눅 들게 만든다.

부족함을 드러내는 말은 말한 사람에게도 마음의 평안을 준다. 자신을 치장하는 부담, 그걸 들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런 편안함이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만든다.

부족함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 왜? 무엇이 부족한지 잘 모른다. 아니 알고 싶지 않다. 자신의 부족함과 마주하는 용기가 부족해서다. 그래서 외면한다. 다른 사람이 그걸 지적하거나 건드리면 도리어 화를 낸다. 그런 사람일수록 부족함을 과장해서 ‘내가 그 정도는 아니다’라고 스스로 위안삼거나 남들에게 솔직한 척, 겸손한 체하기도 한다. 부족한 걸 알고 있어도 사람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면 말하지 못한다. 그로 인해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맞거나 동정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노파심 때문이다. 자신의 사람 보는 눈이 자기에게도 적용될 것을 두려워한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도전하는 용기

리더는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다. 이끌어가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리더에게 도전은 필연이다. 리더에게는 도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리더라고 도전이 두렵지 않은 게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도 그랬다.
“나도 두렵습니다. 두렵지 않기 때문에 나서는 것이 아닙니다. 두렵지만 나서야 하기 때문에 나섰습니다. 두렵다고, 겁이 난다고 주저앉아 있으면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용기만이 공포와 유혹과 나태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용기는 모든 도덕 중 최고의 덕입니다.”

잠시나마 모신 적이 있는 고(故) 김우중(사진) 대우그룹 회장도 이렇게 말했다.
“리더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갑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합니다. 이런 개척자가 리더이고, 이렇게 꿈을 꾸는 사람에 의해 역사가 만들어집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말고, 실패할 용기를 가집시다. 그런 사람에게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습니다.”

괴테의 말대로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그것은 배가 아니다. 바다에 떠 있을 때 배다.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다. 리더도 마찬가지다. 도전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리더가 아니다. 니체가 ‘풍파는 전진하는 자의 벗’이라고 했듯이, 리더는 역경과 시련을 친구로 삼아야 한다. 늘 성공할 수 없다. 넘어지고 쓰러지지만 다시 일어서 나아가야 한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야 한다. 그것이 리더의 숙명이다.

의문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왜 포기하는 선택을 했을까. 누구보다 강인한 분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분이다. 싸움을 걸어올수록 더욱 분투하는 분이다. 나약하게 뒷걸음질 치지 않는 분이다. 늘 새롭게 도전하며 살아온 분이다. 그런 분이 왜 그랬을까.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이 있지 않았을까. 역사는 진보할 것이고, 더 나은 세상이 왔을 때 정당한 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지 않았을까. 자신을 희생해서 한 걸음 더 내딛어보는 용기는 그런 믿음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예수님이 부활에 대한 확신이 있었듯이.

나는 실패가 두렵다. 그래서 도전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생각이 바뀐다. 어차피 얼마 남지 않았다. 잃을 것도 없다. 마지막 순간이 왔을 때 못해 본 것에 관한 아쉬움과 미련이 더 크게 나를 괴롭힐 것 같다. 아니면 말고다. 해보는 거다. 후회 없이 살자.

내게 가장 큰 도전은 말하기이다. 나는 지금 강연, 방송 등 말로 먹고 산다. 나는 말하기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첫째, 나의 말이 의미 있다는 믿음, 내가 지금 잘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무엇보다 스스로의 역량을 믿는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무슨 일이든 감당할 수 있다고 믿는다. 둘째, 믿음만이 아니라 믿음을 현실화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준비하고 연습한다. 셋째, 가급적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실수하거나 실패했을 때, 오늘 또 하나를 배웠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시작에 불과하고 앞으로 더 잘할 수 있을 것이고, 아직 내 삶의 최고 순간은 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넷째,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남보다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두려움을 키우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과거와 비교한다. 과거보다 나아지는 것에 만족한다. 다섯째, 감사한다. 최악의 상황이나 과거 어려웠던 일을 상기하고, 그렇지 않은 데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두려움이 설렘으로 바뀐다.

불의에 저항하고 약자 편에 서는 용기

노무현 대통령이 물었다. 어느 날 비서관들과 오찬을 하는 자리였다. “여기 모두 감방에 갔다 왔지요?” 둘러보니 모두 다녀왔고, 나만 예외였다. “저는 안 갔다 왔는데요?” 말하면서도 부끄러웠다. 감방에 다녀오지 않는 게 창피할 일이라니. 대통령이 묻지도 않았는데 윤태영 대변인이 나서서 나를 변호해줬다.
“강 비서관은 1980년 5월 고등학교 3학년 때 데모했습니다.” 데모랄 것도 없었다. 3학년 1반 반장이다 보니 맨 앞에 선 것뿐이었다. 밀려서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지레 겁을 먹고 서울로 도망간 것이 화근이 됐다.

나는 겁이 많다. 불의에 저항하고 약자 편에 선다는 것은 강자와 싸워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용기가 있어야 한다. 용감하지 못한 나는 애초부터 리더를 꿈꾸지 않았다. 늘 참모이거나 비서였다. 대부분 비겁했고 가끔 비굴하기도 했다. 하지만 비열하진 않았다. 비열한 짓은 리더의 몫이다. 리더는 스스로 불의하지 않아야 한다. ‘비열한 리더’는 형용모순이다. 이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불의한 사람은 아무리 그가 힘이 세고 영향력이 있다손 치더라도 이미 리더가 아니기 때문이다. 두목이거나 악당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리더가 많다.

리더이면서 의롭지 않은 사람은 많다. 대부분 기회주의자들이다. 불의에 눈감고 힘 센 쪽에 빌붙고 대세에 묻어가는 사람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누구보다 그런 사람을 싫어했다. 대통령에 취임하고 첫 번째 맞은 3.1절 기념사 초안을 보고했더니, 한마디만 추가해달라고 했다.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하는 역사를 청산하겠습니다.”

불의에 저항하고 약자 편에 서는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길은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근묵자흑(近墨者黑) 근주자적(近朱者赤)이라고 했다. 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지고, 붉은 빛에 가까이하면 붉게 된다. 그런 점에서 용기를 가진 사람이 늘어나야 한다. 또 그런 사람끼리 연대하고 결속해야 한다.

불의에 저항하고 약자 편에 서는 사람에겐 공통점이 있다. 사람을 사랑한다.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상식과 공정을 추구하고 불합리한 점을 개선하려고 한다.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변화와 개혁을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위험해질 수 있고 손해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을 감내한다. 사람을 사랑하면 용기가 생긴다.

김대중 대통령은 사람의 마음속에는 누구나 양심이 있다고 했다. 양심을 행동으로 옮기면 된다면서 생애 마지막 연설을 했다. 2009년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행사에서다.
“여러분께 간곡히 피맺힌 마음으로 말씀드립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독재 정권이 과거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까. 그분들의 죽음에 보답하기 위해, 우리 국민이 피땀으로 이룬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을 다해야 합니다. 나쁜 정당에 투표 안 하고, 나쁜 신문 보지 않고, 집회에 나가 힘을 보태고, 작게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됩니다. 하다못해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고 해야 합니다.”

용기는 사회적으로 북돋아줄 필요가 있다. 누구나 처음부터 용기를 낼 순 없기 때문이다. 용기는 키워가는 것이다. 인간은 위험, 비난, 실패에 두려움을 느끼는 존재이다. 모두가 겁쟁이다. 또 누군가 해도 되는 일을 굳이 내가 용기를 낼 이유도 없다. 누군가에게 미루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므로 사회적 신뢰가 중요하다. 용기를 발휘한 사람이 불이익과 억울함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롭게 싸운 사람이 대접받는다는 믿음을 공유해야 한다. 그런 사회적 풍토를 진작해야 한다. 불의에 영합하고 약자를 핍박하는 걸로 권세를 누려온 사람이 참회하기는커녕 여전히 호의호식하고 거들먹거리는 사회에서는 누구도 용기를 내지 않는다.

2003년 6월 9일 노무현 대통령은 일본 국회 연설을 통해 “진실을 말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도자의 용기”라고 말했다.

자기 진영을 설득하고 적에겐 관용·용서

리더는 자기 진영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심, 모든 관계에서 성공하고 싶은 욕구를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미움 받을 용기로, 욕먹을 각오로 자기 진영에도 싫은 소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거북한 문제에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라크 파병, 한미 FTA 등 진보 진영에서 반대하는 의제를 정면 돌파했다. 지지율 하락 등 손해를 무릅쓰고 대연정 제안 등 해야 할 말은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도자는 여론에 영합해선 안 됩니다.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 건 지도자의 역할이 아닙니다. 왕께 상소하는 신하의 심정으로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 합니다. 갈등이 무서워서, 싫어할 게 분명하기 때문에 할 말을 못하는 건 지도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그것이 해야 하는 일이라면 제안하고 건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국민에게 최선을 다해 설명하고 설득한 후에도 하지 말라고 하면 못하는 것이지요.”

노 대통령은 2003년 6월 일본 국회에 가서도 할 말은 했다.
“나는 일본 지도자들께 용기 있는 지도력을 정중히 호소하고자 합니다. 과거를 직시해야 합니다. 솔직한 자기반성을 토대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평가하도록 일본 국민들을 설득해 나가야 합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도자의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가장 큰 용기는 관용과 용서가 아닐까 싶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게 아니다. 그것은 만용이다. 두렵지만 꿋꿋하게 나아가는 것이 용기다. 용기는 또한 굽히지 않는 게 아니다. 그것은 아집이다. 굽혀야 할 땐 굽히는 게 진정한 용기다. 우리는 그런 용기를 김대중 대통령에게서 봤다.

전두환이 대통령 자리 빼고는 무엇이든 해줄 테니 손을 잡자고 했을 때, 그러지 않으면 죽음밖에 없다고 했을 때 살고 싶었다. 살아있어야 싸울 수도 있다는 유혹도 있었다. 무엇보다 죽는 게 두려웠다. 하지만 지금 죽고 역사에서 사는 것이, 지금 살고 역사에서 영원히 죽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죽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대통령이 된 후 자신의 목숨을 빼앗으려 했던 박정희와 전두환을 용서했다.

일본에 대해서도 국민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하라고, 과거 역사에 대해 진실을 가르치라고 충고했다. 그러면서도 일본 문화를 개방하고 일본과 화해했다.

물론 사과와 반성이 먼저다. 밝힐 것은 밝히고 반성할 것은 반성해야 한다. 그런 토대 위에서 용서하고 화해해야 한다. 그런 용기가 있을 때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거기에 우리의 희망이 있다.


강원국 필자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증권회사 홍보실, 대우그룹 회장비서실 등을 거쳐 대통령의 스피치라이터로 8년간 일했다. 노무현 청와대에서는 연설비서관을 맡았다. 말과 글보다 미소 짓는 표정이 더 인상적이다. 저서로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의 글쓰기』, 『회장님의 글쓰기』가 있다. 각종 강연을 통해 ‘좋은 글쓰기’를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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