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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연 칼럼] ‘인간-기계의 공존시대’(下)…‘글로벌 기계세’ 선도국가 되자

by | 2020년 12월 14일 | 기획 · 연재, 정책

<피렌체의 식탁> 객원기자인 김세연 전 의원(국민의힘, 3선)이 기본소득과 기계노동, 무형자산시대를 둘러싼 성찰을 담은 세 번째 글을 보내왔다. ‘개혁 보수’ 성향의 김 전 의원은 이 글에서 4차 산업혁명과 AI 시대에 한국이 ‘글로벌 기계세’ 논의를 선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이제부터는 유형자산에서 무형자산으로, 국가의 부강에서 개인의 행복으로 무게중심을 옮기자는 논리를 제시하면서다. 비정규직 문제, 주 52시간 노동, 저출생 현상을 보는 시선도 남다르다. “저출생 추세를 되돌리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면, 우리가 인류의 진보·진화의 최일선에 서있다고 생각하고 과감하게 기계노동을 확대 보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편집자]

#가상세계 비중, 현실세계 능가
  소득 창출의 공간으로 적극 활용
#이미지·스토리·문화를 거래하는 시대
  무형자산 경제의 전략적 육성 필요

#국제사회서 기계세 도입 논의 주도
  기본소득 위한 재원 확보 나서야
#저출생, 재앙 아닌 기회로 역발상 
  기계노동을 과감히 확대 보급해야

어니스트 클라인의 2011년 SF 소설을 바탕으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2018년에 만든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 펼쳐진 2045년도의 시대상이 현실화된다고 가정해 보자. 마땅한 일거리가 없는 사람들은 헤드기어형 VR 단말기와 촉각 수트를 착용하고 전투 참여를 위해 실제 거리나 집안을, 또는 360도 어느 방향이든 전진할 수 있는 전방위 트레드밀(treadmill) 위를 뛰어다니며 게임 가상공간 ‘오아시스’ 안에서 전투에 참여하고 거기에서 승리할 경우 포인트를 얻으며 다른 유저들과 사회적 교류도 한다.
가상세계 안에서 나의 존재는 내가 설정한 모습의 아바타를 통해 표현된다.
(※아바타는 나를 닮았을 수도, 닮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가상세계는 ‘주캐’ 세상인 현실세계와 병립 가능한, 완벽한 ‘부캐’ 세상의 구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가상-현실 세계가 경제적으로 연결

여러 가상세계 중 하나인 게임공간과 현실세계는 현 시점에서는 경제적으로 한쪽 방향으로만 연결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현실화폐를 지불해 게임 속 아이템을 구매하거나 캐릭터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가를 받는다. 그러므로 현실세계 화폐가 가상세계 안으로 들어가긴 쉬워도 가상세계 화폐가 현실세계로 나오기는 어려운 구조다. 최근 들어 일부 게임에서는 게임 포인트를 현실화폐나 암호화폐로 환전해주는 경우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덕에, 미약하나마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의 경제적 연결이 시작됐다.

앞으로 한 세대 안에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의 경험을 극적으로 발전시킬 홀로그램 기술이나 단말기 인터페이스의 개선이 이뤄지면 어떻게 될까? 가상현실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감각이 현재의 시각·청각에 더해 촉각, 나아가 후각과 미각까지 확장될 것이다. 앞으로 인간의 삶에서 차지하는 가상세계의 비중이 현실세계를 얼마든지 능가할 수 있다.

지금도 현실세계에서는 직접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이 WoW(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만나 진실한 사랑을 확인하고 장거리 연애 끝에 결혼에 이른 여러 쌍의 부부가 있다. 식사, 수면, 심지어 샤워 시간도 가리지 않고 168시간(1주일) 동안 계속해 가상현실 단말기를 착용하고 생활한 사람의 체험기가 잡지 기사나 유튜브 동영상으로 올라오곤 한다.
※동영상: https://youtu.be/BGRY14znFxY 

훗날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의 제품·서비스가 상용화되면 굳이 이런 단말기와 인체 감각기관을 거치지 않고 인간 뇌세포와 직접 통신하면서 바로 오감(五感)을 전달할 수 있다. 기술과 서비스가 이 정도에 이르면 장자(莊子)의 이야기대로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구분 못하는 상황에 가까워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스마트폰에 파묻혀 살고 있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인류의 가상세계 생활이 낮은 단계에서 이미 시작됐다고 할 수 있겠다.

4차 산업혁명시대와 인공지능(AI), 로봇의 보급으로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는 지금, 소득 창출의 공간을 현실세계로 한정해야 할 이유는 없다. 노동이란 무엇인가? ‘힘겨움이 없으면 노동이 아니다’고 말하는 분도 있다. 거꾸로 즐거움만 있으면 노동이라 하기 어렵다. 초등학생이 숙제를 마치고 하는 게임은 유희인 반면 프로게이머가 몰두하는 게임은 노동일 것이다.

그런데 일반 유저가 게임공간에서 획득한 포인트를 현실 화폐로 환전해 저녁식사로 돈가스를 사먹을 수 있다면 그 유저가 했던 게임은 유희인가? 아니면 노동인가? 노동-소득의 연결고리가 끊긴 시대에는 유희-노동 사이 어디엔가 놓일 ‘노력’에 대한 경제적 보상이 제공되는 사회경제 시스템을 구축해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국가가 기본소득을 지급해 모든 개인의 삶을 책임져야 하는 재정 부담을 일부나마 덜어낼 수 있다.

#온라인상 자산·소득에도 과세해야

대법원은 2009년에 게임 아이템에 ‘재산권성(性)’(‘소유권’을 의미하는 ‘재산권’은 아니다)을 인정해 그 거래가 불법이 아니라는 결정을 내렸다. 또한 2012년에는 게임 아이템이 부가가치세법상 재화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현재까지는 게임 아이템, 즉 게임 공간에서의 ‘자산’은 개별 게임회사의 자체 서버나 임대 클라우드에 존재하는 디지털 자산일 뿐이고 유저는 게임에 접속해 있는 동안에만 이용권을 가졌다.

반면, 향후 각각의 게임세계들이 블록체인 기술의 활용으로 게임세계 간의 연동 등을 이루어내서, 공인되고 통합된 경제사회생태계의 일부로 편입된다면, 게임 아이템도 영구적인 자산으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이는 물리적 세계에서 노동 소득을 벌어들일 일자리가 없어져, 잉여인간화 될 사람들이 본인 취향에 맞는 다양한 가상세계(꼭 게임공간일 필요는 없다)에서의 활동으로 포인트를 적립하고 이를 공식적인 소득이나 자산으로 소유·교환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경제공동체로서의 국가는 현실세계의 물리적 공간에서 전자적으로 구성된 가상공간으로까지 확장돼 또 다른 경제적 활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정부는 기본소득을 비롯한 각종 재정지출의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가상세계에 존재하는 자산·소득을 세원으로 추가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즉, 소득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원칙을 적용해 온라인상의 자산·소득에 대해서도 똑같이 과세하는 것이다.

2017년 초에 비트코인, 이더리움을 비롯한 암호화폐 열풍이 불면서 ‘대안 화폐’가 부상할 때 늘 뒤따라온 것이 자금세탁 문제였다. 우리 정부는 암호화폐거래소 서비스 이용 시 기존 금융기관을 통한 실명확인을 반드시 거치도록 하는 방식으로 해법을 찾았다.
그런데, 가상세계 화폐를 현실 화폐로 환전하는 체계를 만들려 할 때 우리는 비슷한 논란에 또 한 번 부딪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그는 소심함에 빠져 있기보다는 다른 나라에 앞서 해결책을 찾아내고 인간의 활동 영역을 가상공간으로 적극 확장해야 한다. 그런 흐름을 IT 강국인 대한민국이 선도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무형자산 창출로 돈 버는 세상

굴뚝산업시대가 가고 디지털시대가 도래했다. 정보화시대 이후에는 통신서비스, 문화콘텐츠 등 손에 잡히지 않는 ‘무형자산’의 비중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이제 GDP(국내총생산)로 표기되는 물적·양적 지표만 가지고 국가경제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시대다. 전통적인 가사노동뿐만 아니라 자원봉사 등 사회적 가치를 담은 노동의 가치 측정도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공장, 사무실, 기계설비가 핵심을 이루는 유형자산 위주의 경제에서 소프트웨어, 아이디어, 브랜드, 특허권, 더 나아가 고객관계, 공급망, 고유 기업문화가 핵심을 이루는 무형자산 위주의 경제로 급속하게 옮겨가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산업화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다. 급격한 변화 속에서 산업/기업/나라 별로 극적인 흥망성쇠가 속출할 것이고, 불안과 공포가 엄습할 수도 있으나, 제조업의 시대가 지나가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다. 농업시대가 끝나고 산업화 시대가 열려도 농업은 계속 남아 있었듯이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해서, 전통 제조업이 곧바로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경제의 패러다임, 즉 경제 안에서 소득·자산이 만들어지거나 자원이 배분되는 방식이 달라질 뿐이다.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시대가 바뀌면서 그 시대를 규정짓는 기술과 산업도 함께 바뀐다. 이 흐름을 제대로 인지하고 적응하지 못하면 국가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곧장 도태될 위험에 처한다.
1994년 아마존 창업 당시 업계의 이단아였던 제프 베조스가 열정적으로 주창하던, 그러나 자신도 성공을 확신 못했던 비즈니스 모델이 2020년 전 세계를 지배할 기세로 이렇게까지 확장을 거듭하리라고 정확히 예상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매출 208억 달러인 테슬라는 자신보다 매출이 13.8배나 큰 토요타를, 기업가치 측면에서 2.7배(6160억 달러 vs. 2300억 달러) 앞서는 상황이다. 테슬라가 만들어내고 있는 새로운 내러티브와 이를 뒷받침하는 기술 진보의 결과물에 글로벌 금융시장이 동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뿐만 아니라 개인소득의 형성 방식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 ▲Medium이나 Quora 같은 블로그 플랫폼의 필진 ▲Patreon과 같은 구독-후원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나 콘텐츠 크리에이터 등의 출현을 산업시대의 전성기에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다. 개인은 유통 분야에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기도 한다. 아티스트-제조업체 간의 협업으로 제작된 한정판 셔츠나 운동화의 경우 유통과정에 들어서면 원래 200달러에 출시된 제품이 그 100배가 넘는 2만 달러를 넘는 가격에 매매되는 경우도 있다.

#꿈의 사회: 이미지, 스토리, 문화를 거래

어찌 보면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공황’을 떠올릴 수도 있겠으나, 밀레니얼 세대들은 이런 새로운 시장의 형성을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피카소의 그림 한 점이 거래되는 적정 가격이 얼마가 될지는 매매 대상의 희소성과 시장 참여자의 합의에 따라 결정되는 것 아니겠는가. 즉, 우리는 일상의 물건에 기업의 브랜드와 신뢰성, 작가의 브랜드와 창조성이 결합되고 여기에 희소성이 더해질 경우 폭발적인 가치 증식을 통해 새로운 소득과 자산을 형성하는 것을 목격해왔다.

무형자산 시대를 맞이해 우리는 공동체 차원에서 해야 할 일들이 있다. 무형자산의 가치를 발굴하고 창작을 촉진하며 그로 인해 만들어진 창작물에 대한 재산권을 적극적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소프트웨어나 콘텐츠의 불법 복제 및 불법 다운로드의 근절, 설계/유지보수 서비스에 대한 정당한 가치 인정 등 무형물의 거래 인프라를 구축하고 동시에 창작자들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받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정보화 사회 다음에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 꿈의 사회)라는 해일(海溢)이 밀려온다”고 짐 데이토 하와이대학 교수는 전망했다. 여기서 ‘꿈의 사회’란 만질 수 없는 이미지와 스토리와 문화를 사고 파는 시대를 의미하며,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 중 하나는 창의성이 될 것이다. 즉, 각자가 자신의 꿈과 재능을 표출한 결과물들을 거래할 생태계가 조성돼야 전통적인 일자리가 사라진 시대에 우리는 또 하나의 새로운 소득 흐름을 확보할 수 있다.


◇글로벌 기계세, 계층-국가 격차 완화

노동의 주체가 인간에서 기계로 넘어가면 인간의 소득이 감소할 것이므로 기존의 소득세 재원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을 지급하려면 더 많은 재정이 필요한데, 막상 세원(稅源)은 말라붙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기계노동에 대한 과세가 어느 시점에서는 불가피하다.

‘기계세’(machine tax)는 생산과정에서 기계의 종합적 이용으로 발생하는 모든 부가가치에 대한 추가 과세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개별 로봇 또는 그 로봇의 사용에 대한 과세로 정의되는 로봇세(robot tax)나 자동화 이익 발생분에 과세하는 자동화세(automation tax)와는 차이가 있다.

기계세 논의에 접어들다 보면, 몇 가지 쟁점에 부닥치게 된다.
첫째, 과세 대상 기계를 어떻게 정의하고, ‘로봇’과 ‘기계’를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둘째, 기계세의 과세 기준과 인간 노동력의 대체효과는 어떻게 측정하거나 산정할 것인가?
셋째, 원래 인간이 하던 일이 아닌, 전혀 새로운 업무에 기계가 투입된 경우에는 기계세의 대상에서 제외할 것인가?

기계노동에 대한 과세로 대규모 세원을 확보하는 것은 장차 불가피한 상황이다. 다만, 이것을 우리나라만 단독으로 먼저 도입하는 것은 곤란하다. 마치 전 세계적으로 법인세 인하 경쟁이 진행되는 와중에 ‘나 홀로’ 세율 인상을 하는 역효과를 낼 수 있어서다. 그래서 이중과세, 투자유출, 조세회피 등의 난제를 피하기 위해 토마 피케티가 제안한 ‘글로벌 자산세’의 개념을 차용해, 전 세계에 동시에 과세 그물망을 치는 방식의 ‘글로벌 기계세’ 형태로 논의와 실행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만일 이런 논의가 진전돼 국제공동조세기구가 창설, 가동될 수 있다면 국가 간 경제적 격차 해소를 위한 재원으로 글로벌 기계세의 일부를 활용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자동화의 급속한 확대로 개도국들이 도약할 기회를 잃고 국가 간 격차를 좁히기도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먼저 ‘글로벌 기계세’라는 논의 틀을 제시하고 기후변화협약처럼 전 세계가 동시에 도입해야 하는 글로벌 어젠다로 설정하는 게 지금으로선 이 이슈에 대한 가장 바람직한 국가적 대응책이라고 보여진다.

#축의 이동: 발전국가에서 적정국가로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미래를 대비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하다.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바뀌는 것은 불변의 진리다. 5년, 10년 단위를 놓고 보면 이미 인류는 급격한 변화기에 접어든 상태다. 이 변화를 먼저 자각하고 어떻게 적응하느냐에 따라 개인도, 국가도, 나아가 인류공동체도 전혀 다른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노동 없는 소득을 죄악시하지 말자. 내가 ‘좋아요’를 누른 페이스북 정보나 내가 장소를 옮기며 만들어낸 위치정보, 또는 내가 쓴 신용카드의 결제 데이터를 담은 소비정보들이 모여 빅데이터로 활용되고 있다. 이런 빅데이터와 AI의 결합으로 전혀 다른 차원의 가상세계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훨씬 더 빠르게 정교하게 유연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압축 고도성장 시대에는 성과의 척도를 GDP라는 단일 지표로 삼아 모든 분야에서 물질적·경제적 팽창에 매진했다면, 이제는 정신적·사회적 가치도 함께 챙겨야 할 것이다. 또한 국가의 부강에서 개인의 행복으로 초점을 옮겨가야 한다. 앞으로는 물리적 공간에서 손에 만질 수 있는 제품들(예: LP, CD, 책 등)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가상공간에서 손으로 만져지지 않는 무엇(예: 다운로드, 스트리밍, eBook 등)을 창출하는 방식으로 생산의 양상이 계속 바뀌어갈 것이다.

지금 우리 경제는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몸살을 앓고는 있지만 머지않은 어느 시점에서는 그나마 남아있는 일자리와 임금소득을 나누기 위해 주 20시간을 적정 노동시간이라 할지도 모른다. 지금은 ‘정규직’이 일반적이고 ‘비정규직’이 예외적인 고용형태라고 하지만, 곧 역전 현상이 일어나 ‘정규직’이 예외적인 고용형태로 인식될 것이다.

#저출생은 국가적 재앙 아니다

앞으로의 세상에서는 산업화 시대처럼 물질적 부를 빠르게 쌓아올리는 것보다, 모든 공동체 구성원이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데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다. ‘발전국가’를 지나 ‘적정국가’로 접어들면서 인구감소, 소득정체에도 불구하고 삶의 만족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소비생활 곳곳에서 각자가 높은 만족감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즉, 모두의 ‘소비자 잉여’를 대대적으로 높일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유형제품의 제조·유통에서는 지속적으로 혁신을 이어나가야 한다. 혁신을 가로막는 장벽들은 정부가 앞장서 적극적으로 제거해줘야 한다. 생산원가와 소비자가격을 지금보다 더 획기적으로 떨어뜨리면서도 만족도는 같거나 높아지도록 하자. (이 일을 위해 정부가 나서 일일이 지시할 필요는 없다. 유능한 기업들이 공정하게 경쟁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실현될 수 있는 일이다.)

특히 주거, 교육, 노후생활 등 우리 삶을 짓누르는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이러한 혁신들은 더욱 광범위하게 일어날 필요가 있다. 지금 쓰고 있는 주거비, 교육비, 의료비 수준을 30%, 50%씩 낮출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 총력을 기울여보자.

‘저출생은 국가적 재앙’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자. 산업시대 기준으로 보면 높은 출생률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경제활동인구의 비중을 높여 경제에 더 큰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일종의 ‘인구 보너스’ 효과를 낳는다.
그러나 인간의 일자리와 소득이 감소하고 이로 인해 심화되는 자산·소득 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기본소득 및 기초자산의 도입이 불가피한 탈(脫)산업시대에서는 오히려 인구 증가가 정부의 복지지출 부담을 늘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와 같은 급격한 출생인구 감소는 경제·사회 각 분야에 심각한 문제를 낳을 게 틀림없다.

그렇다고 이런 현상에 절망만 하고 손 놓고 앉아있을 수는 없다. 저출생 추세를 되돌리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면, 우리가 인류의 진보·진화의 최일선에 서있다고 생각하고 과감하게 기계노동을 확대 보급해야 한다.
인간이 여전히 기계에 비해 비교우위를 가질 창조의 영역에서 지금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더 높은 차원, 더 큰 규모로 무형자산의 창조와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게 해야 한다. 이 위기를 기회로 바꿔 나갈 국가전략의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
가만히 서있는 채로 미래의 습격을 받아서야 되겠는가.

[김세연 칼럼] ‘인간-기계의 공존시대’(上)…기본소득을 말하는 이유
https://firenzedt.com/11323

[김세연 칼럼] ‘인간-기계의 공존시대’(中)…고용 없는 미래
https://firenzedt.com/12028


김세연 객원기자

전직 3선 의원,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2008년 총선 당시 부산 금정구에서 처음 당선돼 18, 19, 20대 국회의원으로 활약했다. 2016년 박근혜 탄핵 정국 땐 새누리당을 탈당해 유승민 전 의원과 함께 ‘바른정당’ 창당을 주도했으며 2018년 1월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다. 20대 국회 후반기엔 여의도정책연구원 원장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을 지냈다. 보수 정치인으로는 보기 드물게 기본소득, 기후변화, 기계세(로봇세) 등의 미래 어젠다에 집중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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