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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세대가 바라는 세상②] “사회적 약자 배려하는 아시아 리딩 국가 됐으면”

by | 2020년 12월 9일 | 기획 · 연재, 정책

변재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사진 김용운

<피렌체의 식탁>은 2021년 새해를 앞두고 기획인터뷰 ‘2030세대가 바라는 세상’을 연재한다. 두 번째 만난 이는 변재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정책국장이다. 변 정책국장은 20대로서는 드물게 시민운동에 투신한 행정학도다. 유년시절 소아마비로 후천적인 장애인이 된 변 정책국장은 대학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한 뒤 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를 마쳤으며 구글코리아에서 근무했다. 지난 11월 하순 서울 대학로 전장연 사무실에서 만난 변 정책국장은 “2030세대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앞에서 장벽을 느낀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성세대들은 개인의 감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정부의 장애인 정책에서 달라져야 할 지점과 386세대가 주도했던 시민운동의 성과들을 짚으며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의 개선”을 놓고  한국 사회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20대 시민운동가가 된 이유
-유학 준비 중에 자각한 현실
 현실 도피 아닌가 부끄러워
-대학원에서 행정학 전공
 정책 맥락 파악에 도움

▲시민운동에 뛰어드는 20대를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다. 여러 진로 가운데 장애인 시민운동을 직업으로 선택한 이유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시민운동을 하게 된 이유는 박경석 전장연 상임대표 때문이다. 박 상임대표는 해병대 출신으로 1983년 행글라이더 동호회 활동을 하다 추락사고로 하반신 마비를 당해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이후 장애인운동에 뛰어들었고 대학에서 사회복지학과 석사를 받았으며 노들장애인야학교 교장 등을 지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박 대표가 올해 2월 노들장애인야학교 활동으로 인연이 있던 나에게 “쿼 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를 아냐”고 물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뜻의 쿼바디스 도미네는 신약성서에서 박해를 피해 로마를 빠져나오던 베드로가 자신의 앞에 나타난 예수에게 물었던 말이다. 예수는 베드로의 질문에 “로마로 간다”는 말을 하고 사라진다.

그 말을 듣고 세례만 받은 천주교 신자지만 무언가 가슴이 철렁거리는 듯했다. 그리고 개인의 진로를 위해 유학을 준비하는 내가 신자들을 외면하고 로마를 탈출한 베드로처럼 이기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경력 덕에 주변에서는 나를 장애를 극복한 장애인으로 보고 있는데 거기에 스스로 만족하는 나 자신이 창피했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장애인들은 더 어려워지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유학을 간다는 게 도망가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 말을 들은 다음 날 박 대표에게 연락을 했고 전장연의 정책국장이 됐다. 이른바 운동권에 대해 냉소적이었는데 어느새 내가 집회에 나가 앞장서는 사람이 됐다.

▲학창 시절에 시민운동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나?

-소아마비로 후천적 장애인이 되었지만 자라면서 가족들 안에서는 장애로 인한 차별이나 어려움을 겪진 않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로 진학하면서 서울로 올라왔다. 지방의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탓에 한예종에 진학해보니 적응이 쉽지 않았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래디컬 한 분위기가 있었다. 처음에는 그런 사람들이 세상모르는 철부지들 같았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당시 KTX 민영화 반대를 하는 철도파업을 보면서부터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회에 나왔더니 내가 단지 장애를 가졌단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사회 구조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 예술경영을 전공한 덕에 문체부 산하 기관에 들어가 미술품 시장 관련 조사를 했다. 그러다 교통사고가 났는데 업무를 계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결국 직장 선배들의 조언으로 대학원에 가서 행정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행정학 공부와 함께 구글코리아에서 마케팅 인턴 생활을 했다. 석사를 마치고 유학 준비를 위해 지난해 연말부터 토플 공부를 하다가 어느덧 시민운동 활동가가 되어 있었다. 사실 10개월 남짓 일한 상황에서 운동을 한다고 말하기가 부끄럽기도 하다.

▲지금 젊은 세대들은 공무원을 가장 선호하고 있다. 더군다나 행정학 석사를 했다면 공무원 시험에도 관심이 있었을 듯싶은데

-대학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행정학을 잘 몰랐다. 처음 다녔던 공공기관의 선배들이 행정학을 알아야 정부가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다는 말에 별생각 없이 행정대학원에 갔다. 행정학은 한국에서 공무원 시험을 위한 과목으로 의미가 축소되었다. 행정고시에서 행정학보다 경제학 때문에 당락이 갈리다 보니 경제학을 전공하고 행정학은 부수적으로 배우려는 분위기가 강하다. 반면 외국은 공무원이 되려고 행정학을 공부하기보다 비영리 경영을 공부하기 위해 행정학을 공부한다.

막상 시민운동단체의 활동가로 지내다 보니 행정학을 공부한 게 무척 도움이 된다. 행정학은 정책 시행자인 공무원들의 행동이나 결정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 좋은 도구다. 이른바 투쟁의 현장에서 행정학 논문에서 배웠던 여러 이론과 가설들이 구현되거나 맞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때 느끼는 묘한 재미가 있다. 마침 대학원 지도교수님도 시민참여가 전공이셨고 내가 시민운동을 한다고 했을 때 많이 응원해주시고 지지해주셨다.

다만 행정학도로서 가지는 한계도 있다. 행정학은 정부의 시스템 회로를 들여다보는 학문이다. 그만큼 보수성이 생기기도 한다. 회로에 얽혀 있는 온갖 부서의 이해관계도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활동가보다 목소리가 커지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한국사회가 바뀔 수 있었던 동력은 분명히 앞장서서 무엇인가를 바꾸자고 저돌적으로 움직인 활동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말로만 해서 바뀌지 않은 것이 많았다.

◇과격한 투쟁은 절박함의 표현
-전장연 운동 방식 급진적
 당사자가 느끼는 절박함 이해해야
-장애인이동권 투쟁 성과
 결국 사회적 약자들이 혜택 누려

▲장애인이동권 확보를 위해 출근길 지하철을 점거하거나 쇠줄을 묶고 연좌농성을 벌이는 등 과격한 장애인운동으로 화제가 되곤 했다.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는 운동 방식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지난 7월 전장연이 펼친 ‘장애등급제 가짜폐지 1년 규탄 결의대회 및 전동행진 대회’에서 박경석 상임대표가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사진=전장연)

-전장연은 2007년 만들어진 운동단체다. 바깥에서 보기엔 반정부단체로 보일 정도로 운동방식이 과격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 탓에 전장연에서 일했다고 하면 다른 장애인복지단체에서 취업하기 어려울 정도로 장애인 관련 단체에서도 일종의 낙인이 찍혀 있다.

나 역시 전장연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시위를 할까?’ 의아해했다. 하지만 전장연에서 활동을 시작하고 장애인 당사자가 느끼는 삶은 그만큼 절실하고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나 또한 ‘비장애인 중심사회에서 비장애인의 시선으로 장애인을 보고 있었지 않나’ 반성을 하게 됐다. 그리고 장애인 정책 대다수는 장애인의 생존권과 직결된 게 많아 그만큼 절박한 경우가 대다수다. 예컨대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타기 어렵다는 문제에서 출발한 게 아니라 지하철 역사에서 리프트를 타다가 죽은 사람이 많아서 시작한 투쟁이다.

나아가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일환인 저상버스 도입운동은 사실 장애인 운동의 범주로 축소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저상버스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노인과 아이, 임산부들도 승하차가 편하다. 장애인운동이란 게 본질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장애인 정책 자체가 신체적으로 장애를 가진 이들을 위한 치료 차원의 재활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과격한 투쟁 방식 탓에 담당 부처에서는 손사래를 칠 것도 같다

-정부의 장애인정책은 주로 보건복지부가 담당한다. 전장연은 보건복지부의 지원금을 받지 않는 단체다. 덕분에 오히려 정부 정책에 대해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지점들이 있다. 여기에 전장연처럼 과감하게 행동하는 단체들이 적어 오히려 발언권이 크기도 하다. 실제로 지난 10월에는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UN ESCAP)에서 주최하는 ‘동북아 장애인들이 경험한 코로나19’를 주제로 한 온라인 포럼에 한국 대표로 나가 한국의 상황을 발표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만나는 공무원들은 대부분 전장연이 주장하는 취지에는 동의해주시는 편이다. 때문에 공무원 분들 중에는 자료를 주시면서 우리와 보이지 않는 협업을 하시는 분들도 더러 계시다. 하지만 공공조직의 특성상 담당자들의 순환근무 등으로 업무의 연속성이 떨어지고 담당자별 관심도의 편차가 커 정책이 원활하게 변하거나 입안되지 않는 경우가 아직은 많다. 그럼에도 정부의 예산 편성안에 ‘전장연 등 장애인 단체의 요구 사항’ 등을 근거로 예산이 확정되거나 늘어나는 경우를 보면 보람을 느낀다.

◇장애인정책, 개인단위로 바꿔야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사회 주류
 재난지원금 계기 인식 바뀌어
-가족단위 해결방식, 시대 맞게 변해야
 가족에 대한 인식, 젊은세대에겐 장벽

▲한국의 장애인 정책에서 가장 먼저 달라져야 할 지점은 무엇인가?

-한국에서 장애란 대부분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간에 신체적으로 기능이 손실된 경우를 의미한다. 서구에서는 장애를 사회적인 개념으로 본다. 지역사회 내 공공생활을 하는 데 돌봄이나 도움이 필요한 경우를 장애로 인정한다. 한국은 ‘어디 마비냐?’는 관점으로만 본다. 의료적 대상으로서만 장애를 보고 거기에 초점이 맞춰진다. 게다가 한국은 장애인 돌봄이나 치료의 일차적인 책임이 가족이나 가구에 있다. 선진국들은 반대다. 장애인 돌봄이나 치료를 가족이나 가구가 아닌 국가가 먼저 책임진다.

다시 강조하지만 장애인 정책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이다. 누구나 사회적 약자가 된다. 장애인들이 버스나 지하철을 많이 이용하지는 않는다고 해서 저상버스나 지하철 역 엘리베이터 등을 설치하는 비용을 아깝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저상버스와 엘리베이터는 결국 노인들과 임산부, 아이들에게도 안전하고 편리하다.

또 한 가지는 가구단위의 복지정책이 개인 단위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구 기준으로 복지정책이 마련되어 있다 보니 개인이 소외된다. 이런 상황에 대해 코로나19가 역설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주었다. 재난지원금 지급을 가구단위로 하는 과정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이게 불합리하다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장애인 운동이란 단순하게 말해 장애인의 휠체어를 사달라는 운동이 아니라 사회복지의 대상을 가구 단위에서 개인 단위로 바꾸는 것까지 맞닿아 있다.

▲부모와 두 명의 자녀를 기준으로 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공고하다. 이런 상황에서 변화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한국 사회의 가장 큰 갈등은 젠더이슈라고 본다. 그런데 이건 결국 ‘가족관’에 대한 충돌이다. 지금 2030세대는 같은 성별끼리 살던, 고양이랑 살던, 누구랑 살던 그런 측면에 대해 굉장히 관대해졌다.

일을 하면서 여러 모로 뜻이 통하는 어른들을 만난다. 그 분들 중에는 학생운동을 했다는 386세대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가족이 화제에 오르면 일종의 벽을 느낄 때가 많다. 내가 기혼자임을 알게 된 분들이 ‘애를 언제 낳을 것인지’를 쉽게 묻는다. 그분들이 나쁘거나 이상한 게 아니다. 그런 분들조차 기성세대들이 생각하는 ‘가족관’ 자체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안에 있어서다. 지금 젊은 여성들은 일을 그만둬야 한다면 차라리 가족을 만들지 않겠다고 여기는 친구들이 적지 않다. 가족관 자체가 다른 상황이다.

이게 장애인정책과도 연관이 된다. 장애인정책에서 ‘탈시설’이 화두다. 시설에 있던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나와 사회에 복귀하는 것이 탈시설 정책이다. 그런데 장애인들이 시설 바깥으로 나오는 것을 두려워한다. 장애인들 역시 정상가족에 대한 관념이 강해서다. 사회에는 장애인 활동가가 있고 활동지원사가 있다. 시설 바깥에서도 충분히 가족과 유사한 관계 속에서 살 수 있지만 이를 불안하게 여긴다. 개인의 자유 측면에서 시설에 사는 건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여러 사회복지 정책에서 결국 가족과 관련된 정책이 안에서 부딪히고 있는 형국이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2030세대들이 마주한 장벽 같은 것이다.

▲2030세대에게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가장 큰 벽인가?

-소위 같은 진영에서도 가족관에 따른 시각차로 정서적으로 갈라지는 게 느껴진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의문을 가지지 않는 분들,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거기를 벗어난 논의 자체에도 거부감을 느끼시는 듯하다. 그런 분들은 페미니즘 이야기가 나오면 화를 낼 확률이 크고 동성 간의 만남도 불길하게 느끼실 것이다. 그런 지점에서 기성세대와 부딪히는 게 가장 어렵고 또 무섭다. 이런 지점이 자유로워지면 좋겠다. 

기성세대가 인정해야 할 지점은 지금은 ‘개인의 감정’을 존중하고 존중받아야 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기성세대들은 상대도 나와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 감정에 대한 평등을 인정해야 한다. 과거 한국의 사회가 사용자와 노동자라는 축으로 갈등이 빚어졌다면 지금은 다양한 사랑이나 가족의 형태를 인정할 수 있느냐를 놓고 논리보다 감정영역인 개인의 호오 때문에 갈라진다.

▲젊은 세대 입장에서 2030세대들은 하나의 세대로 묶는 것에는 동의하나?

-2030세대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공통분모는 하나다. 바로 ‘토익’이다. 입사지원서에 학교명을 기입하진 않아도 토익점수는 꼭 기입하게 되어 있다. 즉 지금 내가 어느 학교를 나왔다고 이력서에 쓸 수 없지만 토익점수는 써야 한다. 토익점수가 나를 증명하는 숫자가 됐다. 만점을 맞은 사람, 800점을 맞은 사람 700점을 넘기지 못한 사람 등으로 구분된다. 사회에 나오는 순간 토익은 반드시 가져야 할 무엇이 됐다.

토익을 제외하고 2030세대는 사실 다른 세대다. 20대는 90년대 생이고 30대는 80년대 생이다. 일반화 위험성이 있지만 지금 20대는 진짜 능력주의 사회에 내동댕이 쳐진 세대다. 대학에 들어갔을 때 지금 30대인 80년대 선배들까지만 해도 동아리 활동 같은 걸 했고 운동도 했었다. 하지만 20대들은 성인이 되자마자 능력주의 사회에 편입되었다. 때문에 누군가가 끌어주고 조직화하는 경험이 386세대와 달리 20대에게는 거의 없다. 이런 점은 여러 가지 시민운동에도 영향을 미치는 듯싶다.

◇약자 간 연대, 변화의 희망 있어
-시민운동은 조직력 없이 불가능
 386세대 시민운동 기틀잡아
-한국, 민주주의 역동성 장점
 의사결정 개선방법에 집중해야

▲정작 386세대 등 이른바 운동권 세대들은 요즘 비판과 희화화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 경향을 보면 청년들이 주축인 사회적 기업이 많이 생기고 있다. 하지만 그게 연대를 하거나 공동체주의를 내걸고 있지 않다. 전장연은 80년대 후반 소위 386세대들이 주축이 된 운동권과 연이 닿아있다. 나는 386세대를 대학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다. 그들이 20대 젊은이였던 시절의 시대적 배경은 지금과 달랐다. 그들은 그런 시대에 용기가 있었고 조직화와 연대를 이뤄냈다. 이후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386세대들은 시민운동을 이어왔고 지켜왔다. 그 숙련도와 노하우가 있는데 이걸 희화화하고 배척하는 건 오히려 손해 아닌가 싶다.

전장연이라는 단체가 젊은 세대들에게는 올드하고 클래식한 조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사회운동, 시민운동을 배우기는 좋은 조직이다. 박 상임대표가 해온 운동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고 나는 옆에서 그의 운동 경험과 조직을 보고 배우고 있다.

이제 젊은 사람들이 광화문 광장에 나와 무엇을 바꾸기 위해 서로 연대하는 모습은 더 보기 어려워질 것이다. 각자도생의 사회니까. 하지만 시민운동은 연대를 기반으로 한다. 연대를 통해 목소리를 모으고 의제화해야 한다. 의제화에 가장 큰 힘이 되는 건 결국 조직력이다. 많은 사람들이 뭉쳐서 같은 목소리를 낼수록 의제화가 되고 이 의제를 다수에게 설득할수록 이기는 게 민주주의의 원칙이다.

▲20~30년 후의 한국사회는 어떤 모습으로 달라져 있을 것으로 보는가?

-한국이 적어도 아시아에서는 장애인정책을 리드하는 국가로 위상이 높아졌으면 한다. 현재 한국의 장애인 정책을 보면 일본, 홍콩, 싱가포르 대만보다 앞서간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국내 장애인들은 절박한 마음과 연대 능력이 있다. 차별과 배제의 대상으로 일상을 살아가고 어떠한 공간에서도 환영받지 못하지만 역설적으로 더 다른 약자들과 연대하고 시민사회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누군가의 시혜와 동정에 기대서는 정책을 바꿀 수 없다.

장애인 관련 국제회의에 참가해 보면 한국 장애인들은 정부의 정책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대안까지 제시한다. 최근 장애인 시민운동단체 7곳이 연대해 ‘2021년 장애인 예산 요구안’을 마련하고 정부에 제출한 것이 좋은 예이다. 이런 모습에서 희망을 본다.

▲그런 방향으로 가기 위해 현재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면?

-정부가 정책을 만들 때 수십 년 현장에서 관련 실무를 한 이들이 내는 의견보다 미국에서 박사를 받아온 교수 한 두 명이 내는 의견을 더 낫다고 평가하는 분위기가 있다. 미국 아이비리그의 박사가 한국 사회의 장애인과 얼마나 같이 생활해보고 그들의 불편을 느껴봤을까?

그리고 사람을 잘 키워야 한다. 최근 같이 활동하던 동료가 전장연을 그만둔다고 했다. 일종의 ‘번아웃’을 겪었기 때문이다. 비장애인인 그 동료는 지난 몇 년 간 서울시의 장애인 관련 예산과 정책을 가장 많이 들여다본 활동가였다. 그런데 그 동료는 전장연에서 일했다는 이유로 다른 장애인 관련 단체의 재취업이 어렵다. 그냥 몸을 쓰는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해서 뭐라고 더 말해주지도 못했다. 나도 그런 전철을 밟을까 봐 걱정이다.

▲그럼에도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엿보인다.

-사실 사람들을 만나면 왜 전장연에서 일을 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월급은 많지 않고 일은 쉽지 않다. 익숙지 않은 가두 선전전 같은 것도 해야 한다. 하지만 저는 전장연이라는 시민운동단체에서 집단적 의사결정과 조직을 배우고 이를 통해 정책을 바꾸는 일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머릿속에 새로운 자극이 들어올 때 희열감은 이루 표현할 수 없다.

앞으로도 장애인이란 정체성 속에서 국가 차원의 장애 정책을 계속 연구하고, 분석하고 끊임없이 글을 쓰고, 사람들을 만나 설득할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은 민주주의 역동성을 헌법이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시민단체 운동가로 활동하면서 정책 변화에 대한 희망과 자부심을 갖는 근본 이유다.

결국 현재 한국사회의 여러 문제들은 우리 손으로 만들어 낸 민주주의란 틀 안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국민들이 상대의 의견을 부정하지 않고 상대를 설득하거나 때로는 설득당하는 과정. 이런 민주적 의사결정의 개선 방안에 집중하면 많은 부분 풀리지 않을까 싶다.

김용운 편집장


변재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 

28세.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학 전공, 한국예술연구소와 구글코리아에서 근무했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으며 올해 2월부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정책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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