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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의 ‘리더의 말과 글’] 긴즈버그가 소수의견을 낸 이유…“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by | 2020년 12월 7일 | 국제, 기획 · 연재, 박상현의 '리더의 말과 글'




지난 11월 말,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앤드류 쿠오모 뉴욕주지사가 코로나19 방역 조치의 일환으로 종교시설에서 모일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를 제한한 것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판결(5대4)을 내렸다.

연방대법원은 “감염병 사태에서도 헌법이 뒤로 밀리거나 잊혀져서는 안된다”며 “예배 참석 규제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제1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을 두고 미국의 진보진영은 그동안 우려했던 상황이 일어났다는 반응을 보였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와 트럼프 대통령의 합작으로 만들어낸 보수 절대우세(6대3)의 연방대법원에서 나온 보수적인 판결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은 단순한 보수 판결이 아니다. 공공의 안전보다 종교 집단의 요구를 앞세운 판결이며, 무엇보다 새로 합류한 에이미 배럿 대법관이 그동안 보여온 종교적 보수 성향이 반영된 판결이었다.

6대3의 보수 우세 법원에서 그나마 5대4의 판결이 나온 것은 대법원장인 존 로버츠가 진보 법관들의 편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대법원이 법관들의 정치 성향에 따라 판결을 내리면서 국민의 신뢰를 잃는 상황을 걱정하는 제도주의자(institutionalist)로 트럼프 정권에서 때때로 평소 자신의 보수적인 견해를 떠나 진보적 법관들의 편에 서는 균형추 역할을 해왔다. (트럼프가 이에 분노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압도적 보수 우위의 연방대법원

그러나 이제 연방대법원은 로버츠 대법원장이 균형추 역할을 할 수 없는 법원이 되고 말았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이 살아있을 때만 해도 네 명의 진보 대법관과  로버츠 대법원장을 포함한 다섯 명의  대법관들로 구성되어 있었기에 로버츠 대법원장의 선택에 따라 판결을 진보 쪽으로 뒤집을 수 있었다. 긴즈버그 대법관이 지난 9월 세상을 뜨면서 “다음 대통령이 뽑힐 때까지 내 후임을 임명하지 말아달라”고 유언을 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다.

물론 트럼프와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긴즈버그의 유언을 간단하게 무시해버리고 상당 부분 긴즈버그의 대척점에 서 있는 에이미 배럿(사진)을 후임 대법관으로 임명해버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대법원이 자신의 재선을 결정하는 상황에 대비한 보험으로, 그리고 기독교계를 비롯한 전통적 보수진영이 자신을 지지해준 데 대한 보답으로 낙태권에 반대하는 기독교 성향의 배럿을 임명한 것이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배럿의 임명 이후 대법원장도 손을 쓸 수 없는, 압도적 보수우세의 연방대법원이 내린 첫 번째 보수적인 판결이었다.

판결의 직접적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판결이 나온 12월 2일 시점에는 뉴욕시의 확진자 감소로 쿠오모의 종교집회 인원 제한이 풀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판결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보수 대법관들은 쿠오모의 집회 제한 명령이 헌법 수정조항 1조(종교, 출판, 언론의 자유)를 어겼다고 판단한 것인데, 여기에는 의문의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종교집회의 자유가 타인들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그렇다. 1919년의 판결에서 올리버 웬델 주니어 대법관은 사람들이 가득한 극장에서 거짓말로 “불이야”라고 외치는 것은 사람들의 안전을 해치는 위험한 발언이기 때문에 수정 조항 1조로 보호되지 않는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오로지 사람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모일 수 있는 숫자를 제한한 것이 종교의 탄압이라는 논란은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다. 그런 주장에 보수 대법관들이 손을 들어준 것이다.

판결과 다른 소수의견이 중요한 이유

대법원의 판결이 만장일치가 아닐 경우 판결에 동의하지 않는(dissenting) 법관들은 대개 소수의견을 기록으로 남긴다. 진보적인 법관으로 분류되는 소냐 소토마이어와 일레인 케이건 대법관은 소수의견에서 “자유로운 종교활동은 가장 소중하게 지켜지는 헌법상의 권리 중 하나”이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위험한 상황에서도 국가는 종교기관을 차별해서는 안된다”고 인정하면서도 “하지만 지금 그런 원칙들이 위협을 받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헌법은 주정부가 종교 기관들을 세속적인 다른 기관들에게 하는 것과 동등하거나, 혹은 더 우호적인 규제들을 통해 공공의 의료위기에 대응하는 것을 금하지는 않는다. 특히 그 규제들을 통해 생명을 구할 수 있을 때 그렇다”며 뉴욕주의 결정이 바로 그런 경우라고 했다.

하지만 판결이 이미 내려졌는데 일부 법관들이 소수의견을 내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여기에 대해서 잘 설명한 대법관이 있다. 바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다. 그는 소수의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었을 뿐 아니라, 그 신념으로 중요한 소수의견을 많이 낸 것으로 유명하다.

다음은 지난  2019년 11월, 뉴욕의 케네디 센터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여한 긴즈버그 대법관이 소수의견(dissenting opinion, 반대의견)이 왜 중요한 지를 설명하는 짧은 영상이다. 그의 말을 옮겨본다. 
※동영상: https://youtu.be/3nNelafVThg


어떤 패자(대법원 판결에서 다수의견이 되지 못한 의견)들은 승자로 바꿀 수 있습니다. 제가 예를 들어볼게요.
Some some losers can be turned into winners. I can give you some examples.

우리는 모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대법원이 판단을 잘못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도 터무니없는 판단을 할 때가 있어요. 가령 1970년대 말에 있었던 판결이 그렇습니다. 당시 교사들은 임신해서 배가 불러오는 게 보이는 순간 학교에서 나가야 했습니다. “산후 휴가”라는 그럴 듯한 이름으로 불렸지만, 무급이었고, 다시 복직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습니다.
We all try our best, but sometimes the court gets it wrong— sometimes egregiously so. One such case was from the late 1970s, when school teachers were being forced out of the classroom the minute their pregnancy showed. They were put on what was euphemistically called “maternity leave,” which was unpaid and you had no guaranteed right to return.

자, 대법원은 고용법 7조에 있는 차별금지원칙에 대한 판결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 법에 따르면 성별에 근거한 차별은 금지됩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임신을 근거로 한 차별은 성별에 따른 차별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세상은 두 종류의 사람들, 즉 남녀를 포함해 임신하지 않은 사람들과 임신한 사람들, 둘로 나뉘어 있다는 얘기죠. 물론 임신은 여자만 하죠. 하지만 성별에 따른 차별은 아니라는 겁니다. (청중들의 웃음)
Well, the Supreme Court had a case involving our principal anti-discrimination in Employment Law Title VII. It says no discrimination on the basis of sex. (The Supreme Court) came to the conclusion that discrimination on the basis of pregnancy is not discrimination on the basis of sex, because the world was divided into two kinds of people: non-pregnant people including men as well as women, and then they were the pregnant people—they were only women, but on the basis of sex? No. (Laugh)

그 판결에 양 당이 모두 크게 반발했고, 오래지 않아 의회는 임신차별금지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법은 임신을 근거로 한 차별은 성별에 의한 차별이라고 아주 간단하게 규정해버렸습니다.
There was a groundswell of opposition from both sides of the aisle and in short order congress passed the Pregnancy Discrimination Act, which said it was the soul of simplicity: discrimination on the basis of pregnancy is discrimination on the basis of sex.

미국의 연방대법원이 내린 최악의 판결을 생각보세요. 드레드 스콧(Dred Scott) 판결에서 대법원은 아프리카에서 쇠사슬에 묶여 끌려온 미국에 도착한 사람들과 그들의 후손은 영원히 미국의 시민이 될 수 없다는 최악의 의견을 채택했습니다. 두 명의 법관이 이 판결에 반대의견을 냈죠. 지금은 그들의 반대의견이 이 나라의 법이 되었습니다.
Think of probably the worst case the Court, worst opinion that ever issued in the Dred Scott case, where the then Chief Justice said no person brought to the United States from Africa in chains will ever become a citizen of the United States and no descendant of such a person. There were two dissents in that case. The dissenting position is today certainly the law of the land.

1차 세계대전 즈음에 내려진 발언의 자유 판결도 있습니다. (올리버 웬델) 홈즈와 (루이스) 브랜다이스 대법관, 두 명이 반대의견을 냈죠. 그들의 반대의견이 지금은 다수의 견해, 즉 헌법조항을 해석하는 주류의 견해가 되어있습니다.
Or the free speech cases around the time of the the World War I when there were two dissenters: Holmes and Brandeis. Those dissenting positions are now the prevailing view—the prevailing interpretation of the Constitution.

그렇기 때문에 반대의견(소수의견)을 쓸 때는 의회가 변화(새로운 법)를 만들어내도록 하거나, 아니면 이후에 올 미래의 대법원이 전임자들이 저지른 실수가 어떤 것인지 확인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겁니다. 많은 소수의견들이 금방, 혹은 긴 시간이 흐른 후에 다수의견이 됩니다. 따라서 저는 소수의견을 쓸 때 마다 의회의 새로운 입법, 혹은 미래의 대법원이 과거의 잘못된 결정을 뒤엎을 것을 기대합니다.
So you can be writing a dissent to get Congress to make a change or to affect a later court that will see the error that its predecessor made. Many losses turn out either immediately or in the long run to be winners. So every time I write a dissent I’m hoping for one result—either congressional change or the other that the court will overrule its prior wrong decision.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누가 말했죠?
Who is it who said it ain’t over until it’s over?

물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은 뉴욕 양키즈 야구팀의 전설적인 감독 요기 베라가 한 말이다. 뉴욕의 브루클린 출신인 긴즈버그 대법관이 모를 리 없고, 당연히 수사적인 질문이다.

하지만 긴즈버그 판사가 소수의견을 쓸 때 자신이 하는 생각, 혹은 기대는 단순한 미사여구가 아니라 철저하게 의도적인 행동이었던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2007년에 대법원이 내린 ‘레드베터 대 굿이어 타이어’ 판결에 반대한 그의 소수의견이다. 이에 관해서는 9월 29일 ‘리더의 말과 글’ 참고: https://firenzedt.com/10517)


박상현 필자

뉴미디어 스타트업을 발굴, 투자하는 ‘메디아티’에서 일했다. 미국 정치를 이야기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워싱턴 업데이트’를 운영하는 한편, 조선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에 디지털 미디어와 시각 문화에 관한 고정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아날로그의 반격≫, ≪생각을 빼앗긴 세계≫ 등을 번역했다. 현재 사단법인 ‘코드’의 미디어 디렉터이자 미국 Pace University의 방문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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