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2개국, 사실상 미중 양강 시대를 뜻하는 G2라는 말이 익숙해진 지도 오래다. 2013년 6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를 제시했다. 첫째 충돌 및 대립하지 않으며(불충돌 不衝突, 불대항 不對抗), 둘째 서로 존중하고(상호존중 相互尊重), 셋째 협력하여 상생하는(합작공영 合作共赢) 관계를 지향하자는 것. 중국은 왜 신형대국관계를 들고 나왔을까?

‘투키디데스의 함정’, 즉 기존 강대국과 신흥 강대국은 반드시 군사적으로 충돌한다는 명제가 실현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기존 강대국 미국과 신흥 강대국 중국이 새로운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국의 체제 특성과 가치를 미국이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자유, 인권, 민주주의, 법치 등을 강조하는 미국 입장에선 선뜻 존중하기 어렵다. 

미국 독립혁명과 프랑스 대혁명 이후 서양 시민사회와 민주공화국의 발전 경로 및 그 이념을 보편적인 것으로 여기는 미국. 중국 혁명 이후 이른바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발전시켜왔다고 자부하는 중국의 자국 특수성에 대한 강조. 이렇게 역사적‧이념적인 서양 보편주의와 중국 특수주의의 갈등 도화선이 중국의 신형대국관계 요구와 미국의 대응에도 들어있다. 갈등의 도화선은 도처에 있다.

티베트, 신장위구르 자치구, 타이완, 홍콩, 남중국해 등 중국이 물리력을 써서라도 꼭 지키겠다는 ‘핵심 이익’ 하나하나가 도화선이다. 미국은 도화선들을 은근히 또는 노골적으로 자극하면서 민주주의, 인권, 자유 같은 가치를 명분 삼곤 한다.

 1979년 수교 이후 미중 관계는 지금이 최악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그래도 지금보다는…’이라는 긍정과 ‘크게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부정이 엇갈리며 논의가 한층 더 분분하다. 중국의 미래를 가늠한다는 것은 세계의 미래를 가늠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세 가지 다른 시선을 살펴보자.

지금의 경성 권위주의로는 미래가 없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주중 대사 후보로 고려하기도 했던 조지워싱턴대 데이비드 샴보 교수는 <중국의 미래>(최지희 옮김, 한국경제신문, 2018)에서, 중국이 마주한 갈림길을 네 갈래로 본다. 

신(新)전체주의(Neo-Totalitarianism)는 보수 강경파가 전면적 통제 수단을 써서 1990년대 전으로 되돌아가는 퇴행이다. 경성 권위주의(Hard Authoritarianism)는 현재 중국이 걷는 길로 제한적 개혁이다. 사회문제 악화, 경제 침체, 중국 공산당의 정치적 쇠락이 예상된다.

연성 권위주의(Soft Authoritarianism)는 부분적인 정치 개혁을 포함하는 온건 개혁 노선이다. 준(準)민주주의(Semi-Democracy)는 중국 공산당의 지배는 유지하되 복수정당제, 사법부 독립, 완전한 시장경제 등을 구현하는 싱가포르 모델이다. 샴보 교수에 따르면 현재 중국은 경성 권위주의다. 그는 중국이 ‘경성 권위주의’를 앞으로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권력의 일인(一人) 집중과 사회 통제 강화를 추구하는 시진핑 주석의 성향이 그러하다.

샴보 교수는 경제개혁은 정치개혁이 병행되지 않으면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고 본다. ‘경성 권위주의’를 유지하는 한 정치개혁이 추진될 리 없고, 이에 따라 중국의 미래에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 시진핑의 길로는 중국이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고, 중국이 미국을 뛰어넘는다는 소리는 허튼소리로 판명날 것이라는 그의 지적을 어떻게 봐야 할까?

‘전체주의-권위주의-민주주의’는 ‘정치발전 3단계’나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라면 1987년이 ‘전체주의-권위주의’와 ‘민주주의’의 분기점으로 여겨진다. 샴보 교수는 신전체주의와 준민주주의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볼 때, 중국이 지속적으로 발전해나가려면 ‘연성 권위주의’를 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그의 주장은 서양 민주주의 및 정치발전 모델의 보편성을 전제로 한다. 그것과 다른 길의 가능성은 없을까?

저자가 간과하는 일종의 딜레마는, ‘연성 권위주의’를 택하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국의 경우 ‘아래로부터’가 아니라 철저하게 ‘위로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아래로부터’의 정치적 움직임과 변화 요구는 철저하게 탄압당할 수밖에 없다. 정치 변화의 동력을 통치 엘리트 집단의 결단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과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저자는 중국의 변화 가능성을 애당초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민주주의 위협하는 중국식 '현능주의'

캐나다 출신 정치철학자 대니얼 A. 벨은 <차이나 모델: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왜 유능한가>(김기협 옮김, 서해문집, 2017) 중국의 정치 모델, 특히 통치 엘리트 충원과 리더십 형성 방식을 현능주의(賢能主義, meritocracy)로 본다. 능력주의·실력주의로 번역되는 단어지만 품성까지 포함하기 위해 현능주의로 번역해야 한다는 것. 중국을 '좋은 민주주의 사회'로도 '나쁜 권위주의 사회'로도 보기 어렵다는 것. 저자가 말한다.

“문화, 역사, 조건이 서로 다른 나라에서는 서로 다른 정치체제를 채용할 수 있다고 하는 정치적 다원주의가 중국에서는 상식으로 통하는 반면, 미국에서는 거의 인정받지 못한다. … 중국식 현능주의 정치제도가 개선과 개혁을 계속하는 동안 민주주의 사회들이 끝끝내 자만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외부로부터 배우려는 자세를 갖추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는 인민의 마음을 잃고 현능주의가 전 세계 정치체제의 지배적 원리가 될 것이다.”

중국의 최고 권력 엘리트가 되려면 대부분 지방 말단 현(縣)급의 초라한 자리에서 시작해 시(市)급, 성(省)급, 부(部)급을 거쳐 중앙위원회, 정치국, 그리고 마침내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이르게 된다. 정치적 지도력과 실무 능력을 입증할 엄격한 심사를 단계마다 겪으며 승진해나가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이 현능주의 정치 체제의 사례다. 

이 책이 2015년 출간됐을 때 저자는 ‘중국의 대변인’, ‘민주주의를 깎아내리는 자’ 같은 비난을 받아야 했다. 저자 벨 교수는 자신에 대한 비판 대부분은 “자유민주주의와 1인 1표만이 절대적 정당성과 도덕성을 지닌 정치 지도자 선출 방법이라는 맹목적 믿음”에 바탕을 둔다고 지적했다. 그런 믿음을 갖고 있으면, 중국 자체의 문화와 역사에서 다른 정치 이념을 추출해볼 필요나 가능성을 전혀 인정할 수 없다. 

벨 교수도 현능주의가 권력 남용과 부패 문제, 사회 유동성 저하와 경직성 문제, 체제 정당성 문제 등을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가운데 특히 체제 정당성 문제는 민주화 개혁을 통한 인민의 정치 참여 기회 확대밖에 대안이 없다고 본다. 결국 현능주의와 민주주의 원리‧제도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는 것. 

벨의 <차이나 모델>은 정치 체제‧모델에 관한 ‘중국적 특수 경로’의 가능성을 탐색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지만, 그 탐색이 지나치게 가능성에 치우쳐 있다. 요컨대 긍정적인 뜻이든 부정적인 뜻이든 다분히 실험적이다. 중국식 현능주의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구체적 제도들을 거론하기는 하지만, 그 보완이 단순한 땜질이 아니라 온전한 조화가 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중국 중심 세계, 독재국가 양산

데이비드 샴보의 <중국의 미래>가 정치 체제‧모델의 서양 중심 보편성에 바탕을 둔다면, 대니얼 A. 벨의 <차이나 모델>은 일종의 내재 발전론에 가깝다. 두 저자 모두 기본적으로 중국이 세계 질서 안에 연착륙하여 협력적 관계를 이뤄나가기를 바란다. 요컨대 샴보와 벨은 중국에 대해 ‘협력적 조언자’의 자세를 취한다. 

이에 비해 <백 년의 마라톤>(한정은 옮김, 영림카디널, 2016)을 쓴 마이클 필스버리는 중국에 대해 강경하다. 책의 기조는 이렇다. ‘미국이여! 정신 바짝 차려라. 중국은 미국을 제칠 날만 고대하며 달리고 있다. 중국을 단단히 압박하지 않으면 당한다.’ 허드슨연구소 중국전략연구센터 소장인 필스버리는 트럼프 인수위와 행정부 자문 역할을 했는데, 2019년 3월 중국 당국은 필스버리의 중국 입국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중국이 세계 유일의 패권국, 즉 지금의 미국과 같은 위상을 차지하게 된다면? 필스버리는 중국 중심 세계가 독재국가들을 양산할 것이며, 중국 역사를 미화하고 찬양하는 서술들이 인터넷에 넘쳐날 것이고, 중국 국유 기업과 중국 중심 경제 및 군사 동맹이 중국의 뜻에 따라 작동하면서 다른 모든 세력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필스버리는 단호하다. 중국은 민주화와 개혁의 길로 나아가지 않는다. 중국은 미국의 친구가 아니라 경쟁 상대이며, 그것도 늘 기만전술을 쓰는 상대다. 중국 지도부의 부패를 폭로하고, 국제 규범을 어기면 제약을 가하며, 중국 주변국들과 협력을 강화하면서 중국 내 반체제 인사와 개혁파를 지원해야 한다. 

왜 책 제목이 <백 년의 마라톤>일까? 1949년 중국 혁명 이후 중국은 서구 열강에 당한 치욕의 역사를 설욕하고 2049년까지 유일 패권국가가 되고자 달려왔고, 또 달리는 중이라는 뜻이다. 특히 중국은 미국을 고대 전국(戰國) 시대 패권국으로 설정하고, 그것을 무너뜨리기 위해 중국 전통의 인(忍), 세(勢), 패(覇) 전략을 구사해왔다는 것이다. 때를 기다리며 몸을 낮추고, 상대가 내 뜻대로 움직이게 하고, 강자의 허점을 노려 무너뜨리는 전략이다. 

정파적 시선으로 보면 현실 파악 못해 

코로나19 확산 초기 이후 상당 기간, 우리나라의 이른바 보수 진영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굳이 '우한 폐렴'이라 일컬었다. 현 정권을 반미친중, 나아가 친북으로 몰면서 보수층을 결집시키려는 정략적 워딩이다. 중국을 '만악의 근원' 쯤으로 여기려는 혐중 정서와 주장도 드물지 않다. 굳이 냉전 시대 용어를 불러내어 중국을 '중공'이라 부르는 이들도 있다. 

다른 한 편에는 다분히 친중적 입장, 중국에 대한 낙관론이 있으며 진보좌파 일각에서는 한미 동맹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이렇게 중국에 대한 얼마든지 다양한 시선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러한 시선들이 중국의 현실을 얼마나 정확하게 파악한 바탕 위에 있는가, 이것이 문제다. 중국에 대해 지닌 각자의 선입견에 따라 중국을 평가하거나, 국내 정치에서의 정파적·정략적 이해 득실에 따라 중국을 보는 것이 아쉽게도 최근 우리의 현실이다.


표정훈 필자
작가. 서강대 철학과 졸업. 한양대 창의융합교육원 특임교수,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강사 역임. <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 <철학을 켜다>, <탐서주의자의 책> 등의 저서와 <중국의 자유전통>, <젠틀매드니스>(공역) 등 번역서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