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의 식탁>은 2021년 새해를 앞두고 기획인터뷰 ‘2030세대가 바라는 세상’을 연재한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젊은 리더들을 만나 2030세대가 꿈꾸는 삶과 세상은 무엇인지 들어보기 위해서다. 인터뷰 대상자들은 각자의 경험과 인사이트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야 할 것인지 제안할 것이다.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살 만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기성세대의 몫이다.
첫 번째로 만난 이는 SF(공상과학소설) 열풍을 일으킨 천선란 작가다. 27세의 천 작가는 지난해 첫 장편소설 <무너진 다리>를 발표했고, 올해는 <천 개의 파랑>으로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소설 부문 대상을 받았다.
그는 우리 사회를 “2030세대의 노력이 제대로 보상 받지 못하는 사회”라고 규정했다.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는 과정들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고도 했다. 2030 여성들이 SF에 열광하는 현상 역시 비슷하다. 현실세계가 젊은 여성들의 기대를 담아내지 못해 SF 속 미래에서 힘을 얻는다는 거다. 그는 “비주류가 언젠가 주류가 되는 사회를 꿈 꾼다”며 소외된 이들을 끌어안는 사회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편집자]

◇2030세대가 보는 한국의 현실
-성공을 향한 루트 다양해졌지만
 노력이 보상 받지 못하는 사회
-일자리가 로봇으로 대체되더라도
 다양한 직종들이 새로 생겨날 것

▲2030세대는 기성세대와 비교했을 때 어떤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기성세대와의 갈등 요인은? 요즘 10대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기성세대와의 갈등은 예전만큼 심하지 않은 것 같다. 그보다는 오히려 제도, 사상을 둘러싼 갈등이 더 심하게 느껴진다.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면 남녀노소 상관없이 서로 통하는데, 생각이 다르면 동시대를 살고 있더라도 가로막혀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기성세대보다 더 큰 장점이라면 성공 루트들이 좀 더 다양해진 것 같다. 예전에는 평생직장이 있었고 그게 전부처럼 여겨졌다면 이제 그런 개념이 사라졌다. 한 가지 길에 얽매이지 않고 좀 더 다양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인 것 같다. 요즘 10대들은, 우리 때보다 경쟁구도가 더 심화되고 성공에 대한 압박이 더 심해진 것 같다.

▲2030세대가 부닥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은 어떤가?

-예전에 비해 학벌과 무관한 성공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좋은 대학이 아니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성공한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사회적으로 여전한 것 같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사태가 대표적이다. ‘이 사람은 나보다 공부도 못 했고, 학교도 좋은데 안 나왔는데 어째서 나보다 좋은 것을 가지냐’ 그런 마인드가 20대는 물론 10대에게도 있다. 사회는 점점 다양해지는데 그걸 포용하거나 인정하지 못한 채, 옳은 성공과 부적절한 성공으로 나누곤 한다.

▲2030세대의 노력이 제대로 보상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가.

-그렇다. 확실히 세대 전체가 보상을 못 받고 있지 않은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항상 좋은 대학을 가거나 공부를 열심히 하면 언젠가 성공을 한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컸다. 하지만 취업길이 다 막혀있다. 내가 정말 열심히 노력해서 얻어낸 이 졸업증명서가 그냥 종이쪼가리에 불과하다는 걸 느꼈을 때, 그 박탈감이란 게 굉장히 크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그걸 이겨내고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좌절하게 되는 게 이 사회의 현실이다. 

▲20~30년 후 한국 사회는 어떨 것 같은가? 그때 2030세대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와~~, 그때가 되면 50대다. (하하) 기술적인 것들을 제쳐놓고 말하자면 일단은 많이 다양해질 것 같다. 한국에는 정말 재능 많은 사람들이 많다. 다양한 방면에서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기성세대가 우리에게 주입했던 환상들이 있지만, 어른들이 말하는 성공 공식에 반감을 갖고 그걸 깨려고 노력하는 친구들이 많다. 지금 10대들도 어느 한쪽에 ‘공부만이 답’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도 있다. 그렇다면 미래의 한국 사회는 좀 더 다채로워지지 않을까.

▲천 작가가 쓴 장편소설 <천 개의 파랑>을 보면, 최저임금이 올라가자 편의점을 ‘무인 점포(휴머노이드 로봇)’로 대체하는 장면이 나온다. 4차 산업혁명으로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일자리가 사라지면 다양성 역시 사라지지 않을까?

-일자리는 확실히 로봇으로 대체될 것 같다. 특히 재해가 많이 일어나는 3D 업종의 작업들은 대부분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다. 요즘 10대 친구들에게 강연을 하다 보면 이런 질문이 많이 나온다. ‘미래에는 정말 직업이 없어질까요?’
그럼 난 이런 얘기를 한다. 우리가 지금 재난 상황이라서 많은 종(種)들이 없어진다고 하는데, 동물은 그렇겠지만 곤충들은 아니다. 곤충학자들이 말하기를 10만 종이 사라지면 그다음에 10만 종이 새로 발견된다고 한다.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고 관심 갖지 않았던 것들이 새롭게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는 얘기다. 그것들은 보이지 않았을 뿐 늘 존재하고 있었다.
요즘 취미와 여가, 문화, 스포츠 생활과 관련된 일자리들이 많아지고 있다. 어떤 직종의 일자리들을 로봇이 채우더라도, 새로운 직업이 더 생기고 늘어날 거라 생각한다.

◇기후위기, 양극화가 가장 심각
 -기후위기, 힘들고 어려운 곳 타격
  정부가 환경친화형 사회 조성해야
 -남북통일, 경제 측면만 보면 안돼
  인권 의식 없다면 스트레스 커질뿐

▲코로나19와 감염병, 기후변화 위기, 4차 산업혁명, 양극화 심화 등 여러 가지 메가트렌드 가운데 우리 삶에 미칠 가장 중요한 변화는 무엇이라고 보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 기후위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그에 따라 양극화도 심화될 것 같다. 최악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그 위기의 피해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극심하게 일어난다는 거다. 지금도 개발도상국들이 훨씬 더 많은 재난을 당하고 있고, 우리나라 역시 올해 태풍·장마가 왔을 때 강원도 지역에서 가장 큰 홍수 피해를 받았다.  그런데 국가가 정책적으로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기업들에 개선을 요구했을 때 그걸 수용하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결국 개인에게 돌아온다.
최근 며칠 동안 기후학자, 환경학자 분들이랑 대담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 우리 사회가 하는 노력들은 단순히 ‘보여주기’에 그칠 뿐이라는데 의견을 모았다. 유럽이나 미국이 먼저 탄소배출제로를 선언하고 나서야 우리나라도 선언을 하는 게 대표적이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시민단체들이 강력하게 항의하고 행동을 해야 기업들이 아주 조금씩 들어주고 있다. 물론 경제 성장이 더 필요한 상황에서 선진국 규제기준에 맞추려면 정부나 기업 입장에서 쉽지는 않을 것이다.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실천하는 친구들을 만나본 적 있는가? 본인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주변에 많은 편이다. 사소하게는 육식을 먹지 않는다거나 일회용품을 쓰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사실 기후위기를 개인 차원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문제다. 그 부담을 개인에게 전가시키면 죄책감만 높일 뿐이다. 일회용품, 음식물 쓰레기, 배달 음식은 어찌 보면 개인이 이 사회에 발맞춰 살아가려다 생기는 것들이다. 그걸 줄이려면 그만큼의 시간이 보장되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도시락 싸고 장을 봐올 시간, 설거지를 할 시간이 있어야 가능하다.
개인이 할 수 있는 노력이란 생활 속에서 ‘이거 하나만은 지키자’란 작은 기준을 세우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일회용품과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였다. 그 나머지는 기업과 국가에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수밖에 없다. 우유 마실 때 빨대를 쓰지 않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거나 배달 음식을 사 먹을 때 일회용품이 덜 나올 수 있게끔 법적 제재를 가하면 개인이 쉽게 환경을 지키는데 동참하는 사회가 된다. 한때 친구랑 둘이서 살아봤는데, 일회용품과 배달 음식이 아니면 정말이지 생활이 안 됐다.

▲앞으로 남북 통일을 이룰 수 있을까? 그에 앞서 북한 체제는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나?

-아버지랑 종종 그런 얘기를 하긴 한다. 북한의 체제나 남북통일 같은 게 아니라 어떤 얘기를 하냐면, 통일이 되면 자원을 확보할 수 있고 토지가 넓어지니 경제발전이 훨씬 유리할 거라는 얘기를 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효용성 측면에서 통일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한창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조성됐을 때 통일이 되면 북에 가까운 지역의 땅값이 오를 거라면서 사람들이 그쪽 땅을 막 사들였다. 그런데 이걸 묻고 싶다. 과연 통일을 개발 차원에서만 바라봐도 괜찮은 것인가. 내 생각엔 통일이 됐을 때 양극화가 더 심해질 거다. 우리는 지금도 지역 언어(사투리)로 사람들을 차별한다. 통일이 되면 언어·문화에 대한 차별이 다시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다. 인권 의식이 수반되지 않으면 남북한 모두에게 더 큰 스트레스만 안겨줄 것 같다.


◇27세 SF 작가의 시선
 -2030 여성들이 SF에 열광하는 이유?
  다양한 여성서사 가능해 삶의 돌파구
 -발전하는 기술과 소외되는 사람들
  미래에는 기술 양극화 심각해질 것

▲SF(공상과학소설) 열풍에 앞장서고 있다. 한국 문학계에서 SF는 매니아 층의 전유물이자 하위문화로 여겨졌다. 젊은 세대, 특히 2030 여성들이 왜 여기에 열광하고 있을까?

-여성들에게 인기가 진짜 많다. 20~30대 여성들이 대다수고 그리고 40~50대 여성분들도 꽤 많다. 일단 재미가 가장 큰 이유겠지만 현실이 아니라 미래의 얘기이다 보니 삶의 돌파구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여성주인공 서사가 SF만큼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 장르가 없다. 순문학에선 리얼리티가 가장 중요하다. 만약 순문학에서 어떤 군대의 대장을 여성으로 설정해, 이 여성이 이끄는 어떤 군대에 대한 얘기를 전개하려면 시작 단계부터 주변의 리얼리티를 잔뜩 넣어 줘야 한다. '현실에서도 이게 가능하다'고 독자들을 설득시켜야 한다. 그 말은 거꾸로 현실에서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SF는 미래를 다루기 때문에 여성주인공들이 앞에 나설 수 있는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지점들이 여성들에게 흥미롭게 읽힌 것이 아닐까 싶다.
각 분야에서 많은 여성분들이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볼 때마다 다들 열심히 싸우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건 당연한 거야’라고 말하기 위해서 싸우고 있는 거다. 여자가 직책이 높은데 대해 안 좋은 시선들이 있어 왔고 지금도 자유롭지 않다고 본다. 당당한 여성, 실수하는 여성, 착하지 않아도 되고, 악당이어도 상관없는, 그런 다양한 여성들의 모습이 기존 문학보다 SF에 훨씬 더 많이 녹아들 수 있는 거 같다.

▲SF 속에서 등장하는 미래를 2030 여성들이 꿈꾸고 있다는 말로도 해석될 것 같다. SF 하면 현실과는 무관한 거대 서사를 다루는 작품이 많았는데 확실히 요즘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인지 현대문학을 읽는 느낌도 든다. 이런 서사를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특별한 이유는 없다. (하하) 고등학교 때부터 순문학을 오래 공부했는데, 사실 거기에는 영웅적 여성이 별로 없었다. 내가 독서를 풍부하게 하지 않아서 그럴 수 있겠지만, 2000년 무렵부터 순문학 경향은 좀 내면을 파고 들어갔고, 대부분의 소설 속에서 여성들이 대상화 되어서 나에겐 먼 타자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SF를 좀 읽었을 때 여성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세계에 대한 매력이 컸고, 나 스스로 이미 SF 콘텐츠를 좋아하고 있었다. <인터스텔라>, <아이, 로봇>, <에이 아이> 같은 영화들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SF를 읽어보니 영화보다 훨씬 더 재밌었다.
작가로선 애매하게 중간에 걸쳐져 있었던 거다. 좋아하는 것은 SF인데 주류문학을 공부하다 보니까 교수님께서 항상 내 소설을 읽을 때마다, '너는 뭔가 참 애매하다'고 말씀하셨다. 거기서 조금만 더 하면 주류 문학이, 장르문학이 될 것 같다는 얘기였다. 문제는 장르문학을 쓰려면 장르에도 문법이 있는데, 그 문법이 나한테 없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그럼 그냥 ‘애매한’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은 거다.

▲그렇게 경계를 허무는 ‘애매함’에서 새로운 것이 탄생할 수 있다고 본다. SF에서 등장하던 기술들이 현실화되면서 현실과 픽션의 간극도 좁혀지고 있다.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미래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나?

-기술이 점점 소수의 것이 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있다. 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할 때도 로봇 치료와 수중 치료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그런데 값이 비싸거나 보편화되지 않아서 그런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은 한정적이다. 더 큰 문제는 기술을 개발하는 사람들과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이 겹쳐 있다는 거다. 기술은 특권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만 듣게 된다. 이 기술을 써보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다보면 기술의 혜택이란 결국 피라미드 형태를 이를 것 같다. 기술의 혜택을 상위 1%가 누리고 있다는 상황에서 다음 것을 개발하자, 그다음 것을 개발하자, 이렇게 되지 않을까. 그러면 기술 발전으로 인한 소외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누구는 암과 불치병도 치료하면서 영생 같은 삶을 누리지만 누구는 아예 접근조차 못하는 시대가 올까봐 두렵다. 

◇동식물, 약자, 소수자에 관심을
 -소수자에겐 가혹한 주류들의 세상
  바뀌는 ‘나’가 많다면 미래 밝을 것
 -저출생 걱정은 국가 차원의 시각
  2030 여성의 권리부터 생각해야

▲장편소설집 <천 개의 파랑>에 실린 저자 소개에서 “동식물이 주류가 되고 인간이 비주류가 되는 지구를 꿈꾼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우리 사회에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뭔가?

-앞으로 발전을 추구할 때 인간 위주가 아니라 친환경적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동식물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가 곧 그 사람의 본성 같다고 느낄 때가 많다. 동식물은 어떤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우리에게 항의하지 못한다. 인간은 상대방이 나보다 약한 존재라고 생각하면, 함부로 막 대하는 경향이 있다. 그 대상으로는 동식물이 첫 번째고, 두 번째가 약자들이다.
저희 어머니가 휠체어를 타신다. 뇌출혈로 쓰러지신 후 몸을 움직이지 못 하신다. 한 7년 정도 됐다. 휠체어로 갈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라는 걸 몸으로 겪고 나서야 세상에 대한 죄책감을 느꼈다. 겨우 지하철 두 정거장을 가는데 한참이 걸린다. 혼자라면 에스컬레이터 타고 아주 쉽게 갔을 텐데. 엄마랑 함께 갈 때면 엘리베이터를 찾아 봐야 되고, 사람이 많으면 못 탄다. 모두가 쳐다본다. 저상버스도 한정적이고, 장애인 택시는 부르면 1시간 후에 온다. 자차(自車)가 없으면 움직이지 못한다. 약자들이 살기 힘든 사회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세 번째가 소수자다. 여기서 소수자란 권력의 소수자를 의미한다. 지금까지의 지구는 권력의 주류들이 만들어왔다. 권력의 최상위층, 전 세계로 치면 백인 남성, 우리나라는 50대 남성, 이런 권력의 주류들이 만들어온 사회인데 내 눈에는 그 사회가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기후위기, 동물권, 여성권, 장애인 인권 등 많은 문제들을 정말 모른 체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동식물이 주류가 되는 사회를 꿈꾼다는 건 권력의 주변부에 있던 소수자들에게 맞춰 우리가 함께 나아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의미다.

▲2030세대도 언젠가 주류가 될 것이다. 그 때의 미래가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다고 보는가?

-그렇다. 난 정말 긍정적으로 보고 싶다. 왜냐하면 내가 바뀌었으니까. 주위 모두가 다 바뀌었다고 말을 하지 못하지만, 분명히 바뀐 나를 봤다. 근데 그런 ‘나’들의 집합이 생각보다 많은 거 같다. 나만 바뀌어도 세상이 바뀐다는 것을 옛날에는 피켓 문구처럼 느꼈지만 요즘에는 그걸 믿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여성 아이돌들의 잇따른 죽음에 대하여 “이 감정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어떤 물질의 사랑> 단편소설집 작가의 말 중에서)고 썼다. 20대 여성들의 자살률이 급증하고 있다. 같은 세대로서 이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유는 뭐라 생각하나? 우리 사회가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이것은 범죄 피해자 시각으로 접근해서 봐야 한다. 구하라 씨는 몰래카메라 불법 촬영에 대한 피해와 협박을 당했고, 설리 씨는 악플 피해를 받았다. 범죄 피해자들이 숨 쉬고 생존하지 못하는 사회다. 누가 봐도 피해자, 범죄자가 명백한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죽음을 선택했다. 우리가 봐야 할 건 가해자인데 언론 기사부터가 너무 자극적으로 나간다. 가해자 초점이 아니라 피해자를 파고든다. 사실 피해자는 주목받길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범죄자가 처벌받길 원하고, 우리 사회가 그들을 향해 목소리 내기를 원한다.
<피렌체의 식탁>에서 20대 여성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그걸 보며 20대 여성들도 드디어 자신들 권리를 박탈당했을 때의 상실감을 많이 느끼게 됐다는 생각을 했다. 성범죄의 형량, 취업의 좁은 문, 결혼·출산의 자율권 등이 사회적으로 무시당했을 때, 그 벽을 뚫지 못했을 때 이들의 좌절감은 더욱 커질 것이다. 여성들은 점점 성숙해지고 자기 인권을 찾으려 하는데 우리 사회가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요즘 들어 여성주의적 책들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내 친구 엄마가 괴로워서 그걸 못 읽겠다는 얘기를 하셨다고 한다. 나는 왜 이렇게 생각하지 못했을까, 내가 젊었을 때는 왜 이런 것들 몰랐을까, 이런 괴로움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거다. 

▲소외되는 사람을 위해 어떤 대안이나 정책을 마련해야 할까?

-우리 사회가 저출생을 걱정하는데, 내 생각엔 지금 인구가 너무 많은 것 같다. (하하) 90년대생, 80년대생, 70년대생들도 많은데 베이비부머 세대까지 있다 보니 우리나라 인구가 포화 상태다. 그래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도 많고, 그렇게 사는 어른들도 많다. 그 소외감 때문에 가정 폭력과 같은 부정적인 현상과 결과물이 계속 대물림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경제나 기술의 발전만으로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없는 거다. 어느 가정에 아이가 세 명, 네 명 있는데 그 집에서 갖고 있는 자산이 한정되면 어느 한 명에게 집중되듯이 말이다.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출생에 대해서 나는 그렇게 부정적이지 않다. 국가와 사회가 모든 아이들과 모든 가정을 책임져줄 수 없는데 왜 출산을 강요하는가. 국가 입장에선 노동력이 필요한 거다. 그런데 노동력은 장차 기술로 대체될 것이다. 인구가 조금씩 줄어들면 기술의 혜택이 닿을 수 있는 범위가 더 넓어지지 않을까? 지금 비혼을 다짐하는 여성들의 대부분이 육아에 대한 걱정과 동시에 그 아이를 온전히 책임질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이 크다. 사회 변화에 맞춰 복지 자체가 다 바뀌어야 한다. 모든 국민들을 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려고 먼저 노력해야 한다.

◇인문계도 藝高 '똘끼'에서 배워야
 -과학·사회만 잘해서는 대학 못 가
  학생이 목소리 낼 수 있는 환경 필요
 -세금-건보료 연계 제도 도입으로
  프리랜서들 피해 없도록 개선하길

▲어릴 적부터 작가가 꿈이었다고 들었다. 작가 지망생으로서 경험한 한국의 교육 환경은 어땠나? 학교 교육에서 보완할 점이 있다면?

-일단 인문계 고등학교는 작가 지망생에게 최악이었다. (하하) 고등학교 때 처음에 인문계로 진학했는데 결국 예술고등학교로 편입을 했다. 17살 때 학교 시험을 봤는데 국·영·수 성적이 최하위였다. 그것도 문학 문제를 진짜 못 풀었다. 비문학은 잘 풀었는데, 문학은 작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묻더라. 이게 정답인지 아닌지 알게 뭐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반면에 과학, 한국지리는 잘 봤다. 근데 그것만 잘한다고 갈 수 있는 대학이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이랑 상담할 때, ‘선생님, 전 과학이랑 사회를 진짜 잘하는데, 왜 영어를 못 한다고 지리학과도 못 가고 천문학과도 못 가냐’고 하소연한 적이 있다. 선생님과 같이 고민하다가 내가 이야기 만드는 일을 좋아한다는 걸 발견했다. 그 때 선생님께서 ‘그럼 너는 소설가가 되어라, 소설가가 되면 과학 공부도 맘대로 할 수 있고, 사회문제도 네 마음대로 고민할 수 있다’고 얘기하셨다.
그렇게 소설가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고 여기저기 찾아보니 때마침 안양예술고등학교 편입공고가 눈에 띄었다. 편입시험에 붙고 나서야 엄마에게 얘기했다. ‘엄마, 예고에 가면 꼭 4년제 대학을 가겠다, 인문계에 다니면 확실히 난 대학 못 간다, 국·영·수를 못하니까 대학에 갈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다행히 부모님이 허락해주셨다.
한국 교육에선 과학과 사회만 잘하는 아이들이 살아남을 수 없다. 이런 부분도 있다. 과학을 너무 좋아해서 물리에 나오는 수학은 잘 풀었다. 근데 수학 책에 나오는 방정식과 도형을 못 풀었다. 전체적인 점수가 안 나오자 그렇게 수학을 못하는 애가 됐다. 어떤 과목의 세부 분야를 좋아하고, 또 잘한다고 해도 어쨌거나 너는 7등급, 이렇게 된다. 그런 시스템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그럼 안양예고에서는 작가 지망생을 위한 교육이 잘 이루어졌나?

-그렇다. 예고에서는 전공시간이 따로 있어서 소설가 강사분과 함께 소설을 쓸 수 있었다. 근데 예고에서 무엇보다 많이 배웠던 건 어떤 ‘똘끼’였다. 말 그대로 똘끼로 뭉친 집단. (하하) 인문계 학생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성적으로 인한 경쟁의식이나 공부에 대한 압박감이 거의 없었다. 여름철 태풍이 불어닥친 날 아이들이 시위를 했다. ‘오늘 태풍이 왔는데 왜 우리가 등교를 해야 했느냐, 위험하니 빨리 집에 보내 달라’며 교무실로 쳐들어갔다. 그곳에선 우리가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위기가 있었다. 한국 교육에 필요한 건 학생들이 목소리를 내는 환경이다. 아이들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외치면서 자라나는 교육이 필요하다.

▲문학, 출판계의 미래를 위해 필요하거나 폐지되어야 하는 제도가 있다면 무엇이라 생각하나?

-작가들이 좀 더 창작을 활발하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부분은 사실 자본이 받쳐줘야 하고, 결국에는 출판시장이 활발해져야 한다. 아직도 작가들에게 좀 불리한 계약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고, 그 과정이 투명하지도 않다. 특히 신인 작가들은 불공정한 계약서를 받게 되는 사례들이 있다. 그 이유는 좀 예민한 문제지만 얼마나 많이 팔렸는지, 얼마나 유명한지에 따라 조건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최소한 젊은 작가들이 피해를 받지 않는 선에서 계약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정부 정책에도 고칠 부분이 있다. 작가가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강연을 다닐 경우 이런 일들이 있다. 일시적인 강연 수입도 정규 수입으로 잡혀 1년 뒤 건강보험료가 자동으로 올라간다. 그런데 일시적인 수입이 중단되면 건보료도 자동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그때는 본인이 증명을 해야 한다. 이를테면 강연을 30건 했다면 30곳에 일일이 전화해 증명서를 떼서 제출해야 하는 거다. 프리랜서, 비정규직들에 대한 세금 징수와 건보료 연계 제도를 개선하도록 국민청원을 진행할 생각이다.

한은지 기자


천선란 작가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후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안양예고로 편입했다. 단국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해 작가의 꿈을 키웠다. 안락사를 앞둔 경주마와 로봇 기수의 삶과 우정을 다룬 장편소설 <천 개의 파랑>으로 2020년 제 4회 한국과학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천선란’은 필명으로 어머니, 아버지, 언니의 이름을 한 글자씩 조합하여 만들었다. 언제나 지구의 마지막을 생각했고 우주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꿈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