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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재의 ‘into아시아’] ‘국가자문역’ 아웅산 수찌, 서구언론 시각으로만 보지 말자

by | 2020년 11월 25일 | 국제, 기획 · 연재, 정호재의 'into 아시아'



한국인이 동남아 지역에 가면 가장 먼저 놀라는 대목이 바로 건물의 노후함과 도로사정의 열악함이다. 교통망의 뼈대가 되는 철도시스템부터 얘기하면 대략 제국주의 시대에 영국과 일본이 건설한 철도를 아직도 사용 중인 나라가 태반이다. 시속 60km 정도의 현대적이지 못한 속력으로 삐거덕거리며 운행된다.

인구 수백만이 넘는 동남아의 대표적인 메트로폴리탄에 제대로 된 공용버스 시스템을 갖춘 나라도 몇 안 된다. 그러다보니 대부분 시민들이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구입해 모든 것을 자체 해결해야 한다. 명목상 국가체제의 방향성이 사회주의를 지향했지만 실상은 일본과 한국, 그리고 대만 등의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사회후생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따지고 보면 북한체제 역시 이 같은 부정적 범주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자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할 수 있다. 나라가 가난한데, 어찌 철도나 도로, 전기와 같이 막대한 돈이 드는 사회적 인프라에 신경을 쓸 수 있었겠냐는 항변이기도 하다.
그러나 조금은 옹색한 변명이기도 하다. 분명 1970년대 이전까지 필리핀이나 버마(미얀마), 태국, 말레이시아가 한국보다 가난한 나라라고 표현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분명 동남아 여러 국가와 사회의 시스템 작동 방식에 문제가 있었고, 그 결과 사회후생을 늘리겠다는 국가의 의지가 꾸준히 줄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충격적인 미얀마의 열악함

필자가 평소에 갖고 있던 동남아 사회의 열악함의 원인에 대한 실마리를 잡은 계기는 2019년 말부터 2020년 상반기까지 미얀마 양곤에 장기 거주하면서다. 필자는 2012년, 2017년에도 양곤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처음 도착했을 당시 그 지독한 가난함의 풍경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최대 경제도시인 양곤 시내에 만연한 ‘낡음’과 ‘초라함’이 필자가 이제까지 돌아다닌 전 세계 그 어떤 도시보다도 심각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래도 수백만 명이 사는 동네인데 이 정도로 관리가 안 될 수가 있나? 휴대전화도 안 되고 심지어 전기도 자주 끊기고…”

분명 1950~1960년대에 지어진 것 같은 거주시설은 아마도 그 이후에 단 한 번도 페인트칠을 해본 적이 없는 끔찍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건물의 외벽엔 물때가 쩔어서 도저히 회복할 수 없을 지경이었고,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수십 년 된 쓰레기가 악취를 풍기고 있었고, 길가의 하수도 뚜껑은 죄다 깨어지고, 새똥과 쥐똥, 그리고 개똥이 어우러진 도로는 비만 내리면 악취가 심각해 차마 걸어다니기 힘들었다. 상당히 고급호텔의 수도관에서 정수된 물이 아니라 흙탕물이 쏟아지던 현상은 2017년까지도 무척이나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이미 상당한 시간이 지난 과거의 양곤의 풍경에 대해 이 정도로 악평을 기록하는 게 사실은 미얀마 친구들에게 미안한 느낌마저 든다. 그런데 당시 현대화된 서울에서 살다가 양곤에 처음 도착한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토로할 수밖에 없는 고충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미얀마 대표도시 양곤에는 사실상 행정시스템이 2012년까지 제대로 작동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특히 국가시스템이 도시 거주자들의 사회복지, 그러니까 쓰레기 처리나 상하수도 시스템, 전기나 교통에 대해서 일말의 고민이 없었다는 얘기고, 결론적으로 지난 50년간 단 한 푼도 나랏돈이 제대로 쓰이지 않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 이유를 따지고 들어가면 역시 오랜 군부정치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1960년 미얀마에서 군부정치가 본격화된 이후 나라의 정치와 살림을 장악한 군부가 고민한 대목은 사실상 단 하나, “버마 민족을 중심으로 하는 자랑스러운 독립국가 건설”에 모아진 것이다. 자주적이고 통일된 나라를 건설하려는 목표가 너무도 뚜렷했고 절박했다는 얘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라의 가용 자원을 대부분 국가체제를 지탱하는 ‘군대’와 ‘공권력’에 투입해야 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힘을 대개는 변방의 무장투쟁세력과 도시의 민주화 세력을 억압하는 데 사용한 것이다.

군인출신 행정가에게 감히 도심의 쓰레기 처리를 요청할 수 없는 극단적인 정치투쟁이 지속된 것이다. 이른바 ‘공안정치’에 매몰될 수밖에 없었기에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싹트는 부정부패 역시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고려시대 무신정권이나 동학혁명을 부른 조선시대 말기의 세도정치와 비슷했을 법 싶다. 심지어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군부정치는 통상교역마저 힘들게 돼 일반 국민들에게 무한대의 인내심을 요구했던 것이다.


2년 새 확 달라진 양곤 시내

2019년 말에 다시 찾은 양곤 시내는 확 달라져 있었다. (물론 지난 3월에 본격화된 코로나19 창궐로 도시마다 강력한 방역정책을 실시한 탓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경제적 타격을 입고 많은 자영업자들이 파산에 이르긴 했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외부요인이고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입은 피해이기 때문에 일단 빼고 얘기하기로 한다)

도시 곳곳에 공용버스가 빼곡히 들어찬 것이다. 한국에서 15년 전에 사용한 중고 버스들로 채워졌다고는 하지만 말 그대로 혁명적인 변화였다. 도시에 공공버스 시스템이 대거 확충됐다는 것은 서민들에게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혜택 가운데 하나다.
요금이 싼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도시 외곽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출퇴근을 할 수 있으며, 전체적으로 교통체증 역시 크게 줄어들어 시민들의 생활만족도 역시 크게 높아질 수 있다. 이미 스마트폰이 대부분 보급되었기 때문에 버스의 실시간 운행 상황을 젊은 층들은 스마트폰 앱으로 확인할 정도가 되었다. 한국서 수입한 중고 버스라는 점을 빼고는 외견상 서비스는 한국과 엇비슷해진 것이다.

공용버스 시스템이 이 정도로 바뀌었으니 그 외의 변화는 사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상당하다. 도로 재포장이 되기 시작했고, 과거 군사정부 시절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 이면도로까지 포장공사가 확대되었다. 노후한 건물에 페인트칠이 시작되었고, 도심곳곳에 방치된 쓰레기들도 하나둘씩 치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정기적으로 쓰레기차가 다니면서 쓰레기를 수거하기 시작한 것도 가장 최근의 변화다. 깨어진 하수도 뚜껑이 교체되기 시작했으며, 누가 봐도 확실하게 전기공급과 상하수도 사정도 나아졌다.

필자가 이런 변화를 너무도 뚜렷하게 느낀 대목이 필자가 거주하던 양곤의 한 게스트하우스 앞 도로가 포장되는 과정을 두 눈으로 목격하면서다. 비만 오면 질척이던 상당히 넒은 이면도로가 불과 3개월 사이에 주민들이 “으쌰으쌰” 하는 협동작업과 함께 말끔한 시멘트 포장도로로 뒤바뀐 것이다. 일종의 새마을운동이 펼쳐진 것인데 그 과정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순식간에 꽤나 근사한 품질로 완성되는 모습에 너무도 놀라서 이웃 주민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아니 왜 이렇게 열심히 도시미화사업에 참여하시는 거죠? 누가 시킨 건가요?”
답변은 너무도 싱거웠다. 지자체에서 사업비를 책정했고 단순노동에 참여하는 일부 주민들에게도 일당을 제대로 지급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자체와 시공업체가 돈을 들이는 것은 물론 주민들을 참여시켜 상당히 효율적으로 공사를 마무리한 것이다. 참여자 모두가 해피한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진 것이다.

어떻게 이 같은 변화가 이뤄졌을까? 이유는 너무도 뚜렷하다. 2016년 초 아웅산 수찌 정부가 무려 55년에 달하는 군부정권을 대신해 출범했기 때문이다. 수찌 정부는 사상 처음으로 국민들의 실질 생활 개선을 기치로 정치와 행정의 목표를 뒤바꾼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양곤 시민들에게는 난생 처음 겪어보는 국가의 질적 변화이기도 했다.


수찌의 혁명적인 권력교체, 그 이후 

사실 우리는 아웅산 수찌라는 인물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2015년 11월 총선에서 군부를 압도적으로 누르고 그 이듬해 ‘국가자문역'(state counselor)이라는 낯선 이름으로 미얀마의 사실상의 지도자로 등극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32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88년 그 유명한 ‘랑군의 봄’ 시위 당시 100만 시민 앞에서 군부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정도의 당찬 민주주의 연설을 했고,  1991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전 세계에 이름이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수찌의 인생은 신화 그 자체다. 아시아 시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지성인이라면 아시아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불꽃인 ‘아웅산 수찌’ 여사의 위대한 인생여정에 대해 절대 모를 수가 없다.

그리고 무려 20년이 넘는 가택연금으로 상징되는 군부체제의 오랜 탄압을 극복하고 2015년 연말 선거에서 승리하고 평화적 정권교체의 주역이 되었을 때 전 세계인이 그녀의 인내와 끈기에 감탄과 박수갈채를 보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아웅산 수찌의 존재는 아시아에 정의와 인권이 살아 있다는 명확한 증거이자 전 세계로 민주화가 확대될 수 있는 희망을 준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 평가는 2017년 초 미얀마의 서남쪽 변방인 라카인주에서 로힝쟈족에 대한 극심한 인권 탄압이 본격화되기 직전까지의 상황에 그친다. 수찌에 대한 평가는 로힝쟈 사태로 180도 바뀌었기 때문이다.

최근 3~4년 사이에 서구 언론이 아웅산 수찌를 어떻게 평가해왔는지는 많은 분들이 인지하고 있다. 2017년 여름 대략 1만 여명의 목숨이 희생되고 70만 명의 난민이 발생한 로힝쟈 난민 사태에 대해서 수찌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자 국제사회는 수찌의 1991년 노벨 평화상 반납 청원까지 올리며 수찌를 겨냥해 극단적인 비판을 쏟아내 왔던 것이다.

그 화룡점정은 2019년 12월11일 국제사법재판소(ICJ) 재판정에서 이뤄졌는데, 당시 수찌는 전 세계 민주주의의 대표가 아닌 미얀마 일국의 대표로 자국변호에 나서게 된다. 여기서 수찌는 다시 한 번 미얀마 군부와 정확히 일치하는 입장을 반복하고, 이에 미얀마 국민은 열광했지만 반대로 수찌를 향한 국제사회의 실망감은 뚜렷이 고정되어 버린 것이다. 실제로 최근에 치러진 2020년 선거결과에 대해 열광적으로 보도한 해외 언론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수찌가 선거에 압승한 게 불쾌하다는 느낌마저 자아낼 정도였다.


수찌의 NLD, 총선에서 압승한 이유

앞서 설명 드린 대로 수찌에 대한 평가는 국내와 국제적으로 크게 엇갈린다. 국내적인 열광은 지속되고 있고, 국제적인 비판은 높아진 것이다. 특히 국내에서는 군부출신 정치인과 달리 민생환경 개선에 집중투자해 이미 높은 평가를 받았던 수찌가 ‘로힝쟈 사태’에 대해 명확하게 미얀마에 대한 충성과 통합에 방점을 찍자 국내에서의 인기는 더 높이 치솟았던 것이다.

2020년 11월 8일 미얀마 총선이 실시됐고, 대략적인 투표결과는 11일쯤 나왔다. 한 마디로 아웅산 수찌가 이끄는 NLD(민주주의민족동맹)의 압승이었다. 딱히 구체적인 선거결과를 집계하지 않아도 좋을 정도다. 로힝쟈족 분쟁이 벌어진 라카인 주와 전통적인 독립세력이 이끄는 샨족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구에서 90% 가까운 승리결과를 얻었다.
2015년 선거 역시도 NLD의 압승 구도였는데, 당시 상·하원 경쟁의석의 79.4%(390석)를 이겼다면, 이번에는 83.2%(396석)를 차지한 것이다. 군부계열 정당인 USDP는 41석에서 33석으로 쪼그라들었다. 100여 개의 정당이 난립해 5년에 단 한 번의 선거로 권력구조를 결정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쉽게 이루기 힘든 수준의 압승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꼭 기억해야 하는 대목은 바로 선거 결과에 관계없이 상·하원 25%의 의석은 이미 군인들에게 배정이 된다는 것이다. 1970년대 유신헌법에 따라 국회 의석의 3분의 1을 군인출신 대통령이 지명하던 한국 정치의 사정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NLD의 전체적인 의석 점유율은 64% (0.75 × 0.832=0.64)에 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하원의 의석비율이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현재 미얀마의 헌법상 주요한 권력구조 개편을 위해서는 국회 의석 중 75% 이상 동의가 필요하다. 때문에 군부의 결단(의회 내 25% 이상) 없이는 절대로 어떠한 개헌 시도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이것을 감안하면, 수찌의 권력기반이 선거압승에도 불구하고 그리 확고한 게 아님을 알 수가 있다.

그럼에도 수찌의 선거 승리는 역사적이고 중요한 승리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번 선거가 치러지기 전에 국내외에서 무척이나 다양하고 강도 높은 비판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행정경험이 일천한 NLD 운동권 및 지식인 출신 정치인들의 부정부패가 줄을 이었고, 여러 행정적인 실수 역시도 언론에 자주 노출되었다.

수찌가 행정 권력을 쟁취했다고 한들 미얀마의 전통적인 권력이 NLD와 수찌에게 완벽하게 이동하지 않았던 요인도 컸다. 따지고 보면 지난 55년간 군부권력이 굳세게 유지되었던 나라다. 전통적 지식인과 행정관료 및 사법부 권력이란 게 사실상 군부가 키워놓은 보수세력이 절대 다수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불과 4년이 조금 넘는 시간에 완벽하게 권력기반을 쌓기란 물리적으로 부족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위태로운 권력구도에서 최대한 역할 

국내적으로 여러 어려움 속에 착실하게 개혁·개방정책을 이끄는 수찌였지만 이제까지 강력한 우군이 되어준 국제사회가 등을 돌린 것은 명확해 보인다. 굉장히 복잡한 구도로 진행 중인 로힝쟈 사태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을 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수찌가 여전히 미얀마 민주주의 정착에 중요한 키 역할을 맡고 있고, 국제적인 평가와는 달리 무척이나 위태로운 권력구도 속에서 본인에게 주어진 역할을 하고 있다는 대목을 설명 드리려고 한다.

첫째는 수찌의 권력이 우리가 외신보도를 통해 접하듯 확고부동한 것이 아니다. 미얀마의 의회만 간신히 수찌와 NLD가 차지한 것에 가깝다. 군부 출신 야당이 선거에 졌다고 해도 행정부의 상당한 권력은 이미 군부 지도자인 민 아웅 흘라잉(Min Aung Hlaing) 군(軍) 총사령관이 갖고 있다. 군 총사령관은 의회의 25% 지분을 갖고, 행정부에서도 국방부/내무부/국경부 장관 3인의 인사권도 가졌다. 내무부는 경찰조직을 총괄하고, 국경부는 소수민족과의 분쟁에 관여되어 있기 때문에 대통령중심제라고 했지만 사실상 군통수권 없이 외교권만 지닌 ‘반쪽 대통령’에 불과하다.

둘째 수찌가 헌법상 대통령이 아니라는 것도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그러니까 현재 수찌는 4개 부처의 장관을 겸직한 슈퍼장관의 위상으로 내각을 대신 지휘하는 것 뿐이다. 헌법에 근거가 없는 ‘초헌법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셈이다. 만일 국민의 지지가 50% 이하로 내려올 경우 군부는 언제라도 쿠데타로 권력을 전복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전히 사법부는 군부 시절에 임명한 보수적인 법조인들로 꽉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셋째, NLD의 차세대 정치인들이 역량을 쌓을 기회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측면도 고려되었을 것이다. 미얀마 민주세력의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수찌 이후를 책임질 차세대 지도자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1990년대 이후 수찌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된 이유도 있겠지만, 실제로 2012년 이전에는 NLD 출신 국회의원이나 지자체 행정관료가 거의 없던 것이 보다 결정적인 이유다. 때문에 수찌로서는 로힝쟈 사태의 굴욕을 받아들이고, 그 대신 안정적인 10년 집권이 절실했다는 해석도 간간히 나온다.

마지막으로 빼놓지 말아야 할 대목은, 미얀마연방의 가장 큰 고민이라고 할 수 있는 135개 소수민족과의 보다 확실한 평화협상이다. 수찌는 로힝쟈 난민에 대한 어설픈 옹호를 통해서 현재 진행 중인 다른 소수민족과의 협상의 판을 깨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 로힝쟈만큼 고난을 겪은 소수민족이 연방 내부에는 적지 않은 탓에 이민족에 가까운 로힝쟈를 적극 보호할 경우 다른 소수민족들의 불만을 제어하기 힘든 탓이다)
군부의 55년 집권은 소수민족에 대한 강압적인 연방통합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수찌는 이같은 관계를 보다 평등하고 평화적인 관계로 뒤바꾸고픈 야심을 자주 드러냈고, 아마 이 대목은 집권 2기의 핵심 과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집권 2기, 소수민족 평화협상 이룰까

해외 지도자, 그것도 우리와 별 관계가 없는 제3세계 지도자를 있는 그대로 정당하게 평가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가장 힘든 경우는 미디어에 비친 이미지와 현실정치의 이미지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렸는데, 2015년 선거 승리 이후 수찌가 뿜어내는 아우라는 조금은 지나칠 정도로 흑화(黑化)된 측면이 없지 않다.

필자가 최근 한국에서 가장 많이 들은 표현이 바로 “아웅산 수찌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권력에 집착하냐?”라는 질문이었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집권한 수찌가 지나치게 장기집권을 하면서, 소수민족을 마치 강력하게 탄압이라도 하는 듯한 이미지가 어느새 형성이 된 것이다.
앞서 설명드린대로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수찌가 초대총리 예정자인 아버지의 절대적인 후광을 입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실상은 무려 30년 가까이 군부와의 치열한 대결과 노련한 타협을 통해 정권을 정당하게 획득했으며, 오랜 미디어 노출로 과대 대표된 측면이 있다. 실제로 수찌의 집권기간은 이제 겨우 5년이 채 되지 않았을 뿐이다.

2017년 이후 로힝쟈 인권탄압과 난민사태의 경우는 수찌에게 아무런 실권이 없다고 보는 게 맞다. 해결하고 싶어도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군 총사령관이 사실상 국방과 치안의 모든 책임을 갖고 있고 수찌에겐 군부를 통제할 아무런 헌법적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군부의 예산과 인사권은 사실상 군부에게 할양되어 있고, 수찌는 그저 국제사법재판소에 끌려가 연방의 악업(惡業)에 대해 국가지도자 된 도리상 책임을 지는 태도를 보인 것일 수 있다.

결국 수찌의 고육책은 이번 선거의 압승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제 미얀마의 정치 시계는 더 뚜렷해진 셈이 됐다. 수찌의 정계은퇴는 앞으로 5년 뒤로 확정된 것이다. 누구라도 예상하는 확정된 정치 일정이다. 만일 수찌가 미얀마연방의 보다 확실한 평화프로세스 정착과 코로나19로 망가진 경제위기를 빠르게 회복시키지 못한다면, 아마도 다음 선거에서는 군부정당이 크게 반등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10년의 집권 기간은 그리 짧은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가 잠시나마 미얀마에서 머물며 지켜본 미얀마의 변화상과 수찌의 정치력은 충분히 높게 평가받을 만하다. 앞으로 5년이 남았고, 아마도 미얀마는 보다 획기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민주적인 사회 건설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정호재/ 아시아연구자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사에서 짧지 않게 기자생활을 했다. 동북아, 동남아, 남아시아를 두루 답사하며 태국의 탁신, 말레시아의 마하티르, 캄보디아의 삼랑시 등 각국의 지도자들을 만났다. 번역서로 《탁신-아시아에서의 정치비즈니스》, 《수상이 된 외과의사-마하티르 자서전》이 있으며, 올해에는 《아시아 시대는 케이팝처럼 온다》를 펴냈다. 싱가포르와 미얀마 등을 오가며 연구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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