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엄마와 어린 아들이 명의로 소문난 치과를 찾았다. 아이의 엄마는 의사를 보자마자 하소연했다. 

“아이의 치아가 다 썩게 생겼습니다. 사탕을 너무 좋아해요. 늘 사탕을 물고 있다 보니 치아가 다 썩게 생겼는데 엄마 말은 듣지도 않네요. 선생님께서 따끔하게 혼내주시고 치료해 주세요.” 

의사는 사탕을 꼭 쥐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한참 본 뒤 말했다.  

“지금 당장 치료하기는 어렵습니다. 일주일 후에 다시 내원하세요.” 

변화 자체가 뇌의 저항을 불러일으켜

변화란 무엇인가? 변화란 기존의 패턴을 해체하고 새로운 패턴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 계기는 외부의 달라짐. 즉 변(變)이다. 이에 대응하여 내부가 어떻게 되는 것. 즉 화(化)하는 것을 말한다.

계절에 따라 나뭇잎이 변하는 활엽수가 있는 반면 사시사철 푸른 상록수가 있다. 먹을 것이 없는 겨울이 오면 동면에 들어가는 곰이 있는가 하면 따듯한 곳을 찾아 날아가는 철새도 있다. 이처럼 계절과 날씨에 따라 식물이나 동물의 생존 방식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달라진다. 간단하지만 생명체가 벗어날 수 없는 도전과 응전의 숙명이다. 이것이 변화다. 그리고 인간은 동식물과 달리 이동도 할 수 있고 적응도 할 수 있다. 변화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인류 역사는 어쩔 수 없는 것들로 인한 변화의 역사다. 아프리카의 숲에서 내려와 사바나로 나온 때에, 인류의 진화적 변화는 시작되었다. 환경의 변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연쇄적인 구조 압력을 낳았다. 도태와 생존을 가르는 적응기를 지나 살아남은 인류는 완전히 변화한 다른 인류가 되었다. 

숲을 벗어나 사바나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체온을 발산하기 위해 털을 벗은 것이고, 직립해 오래 걷는 과정에서 골반 수축이라는 변화가 일어났다. 이것은 출산의 문제를 일으켰다. 우연히 미성숙한 뇌를 가진 아이가 무사히 좁은 골반을 지나 태어났다. 이런 유태보존 (대뇌 미발달 상태에서 출산하여 키우는) 전략은 공동체에서 소통과 협력을 하게 만드는 가장 구체적인 계기가 되었고, 인간이 서로에게 의존하는 문명화 과정이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 전략적이거나 의도적이거나 선제적인 것은 없다. 아마도 대부분의 인류가 적응하지 못하고 멸절했을 것이다. 우연히 돌연변이적으로 살아남은 유전자가 이어진 것일 뿐이다. 즉 자연 상태의 변화란 어쩌면 생명체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그저 자연 자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반면에 현대 사회에서는 변화를 생존이나 발전의 지렛대로 강조한다. 의지를 가지고 해야 할 행동양식으로 변화를 요구한다. 의도적이고 전략적이다. 특히 조직 내에서 변화는 이 시대의 화두다. 문제는 변화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먼저 직시해야 할 부분이 있다. 변화 자체가 뇌의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다. 사람은 익숙한 것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다. 인류가 생존을 위해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를 절약하는 체제’(energy saving system)를 지향하고 있어서다. 선사 이래 자연은 가혹했고 인류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 생존을 위해 최소로 에너지를 쓰려는 DNA를 면면히 이어왔다. 

에너지 절약의 기본은 ‘패턴 형성’에 있다. 인간은 체내에 흡수한 에너지의 약 20%가량을 몸무게의 약 2% 정도밖에 되지 않는 뇌를 운용하는 데 사용한다. 패턴을 벗어난 행동이나 생각은 뇌에 과부하를 주다 보니 뇌 자체에서 이를 거부하려는 경향이 생긴다. 뇌의 과부하에 따른 신체 불균형을 막기 위해서다. 그래서 익숙한 사고나 행동. 즉 자신의 패턴을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이렇게 확립된 패턴을 마음공부에서는 습관 (Type 1 thinking)이라 한다.

습관은 외부환경의 변화를 바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굳어진 습관이 오래 가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개인이나 조직에게 실패와 위기를 불러온다. 그제야 비로소 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한다. 이것이 역치를 넘기는 쉽지 않다. 결국 개인이나 조직의 생사가 달렸다는 위기감, 즉 감정이 임계점을 넘어야 행동을 바꿔 변화를 초래한다. 하지만 그 때쯤 이면 이미 변화의 시기를 놓쳐 위기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조직 내 사람들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최우선이다. 이것이 잘 안되기 때문에 실제 조직 내 변화를 추동하다 보면 곧잘 ‘변화하지 못하면 가진 것 마저 빼앗기리라’는 협박적 변화 관리로 변질되곤 한다. 이것이 성공을 거둘 확률은 크지 않고 결국 ‘변화를 못해 망했다’는 후일담들만 나돌게 된다. 

네 개의 장벽에 둘러싸인 ‘자기 보존’

변화란 기존 패턴의 해체와 재구성이자 여러 장벽을 극복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조직 유지와 발전을 위해 변화의 필요성을 내부에서 공유한다 해도, 인간이나 조직의 변화는 어렵거나 거의 불가능하다는 이론도 적지 않다. 이것은 한 번 구성된 체제(system)는 가능한 한 그것을 유지하려는 속성 때문이다. 복잡계 이론에서는 이것을 프렉털 (fractal)이라고 한다. 

외형적, 형식적 변화는 이 원형(archetype) 즉 프렉털까지를 바꾸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프렉털까지 바뀌는 변화란 사실은 기존 시스템의 죽음과 새 시스템의 탄생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변형이 아닌 변화란 어려운 일이다. 옛말에 군자는 표변하고 소인은 하는 척한다는 말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화가 아니라 '변형된 자기 보존'에 더 관심이 있다는 의미다.

'변형된 자기 보존'은 다음과 같은 네 개의 장벽으로 둘러 싸여 있다. 네 개의 장벽을 무너뜨릴 때만이 구체적 변화 행동이 가능해진다. 

1.거부 반응 장벽

인간과 인간이 만든 조직은 다 유기체(organization)다. 유기체는 당연히 자기 방어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질적인 요소를 용납하지 않는다. 방어체계는 삼중 구조로 되어 있다. 경계가 첫 번째다. 우리는 피부 안쪽(a skin deep)을 '나'라고 여긴다. 조직의 울타리와 같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경계다. 눈에 보이지는 않는 미시적 수단도 있다. 면역계는 자기 인식 단백질을 가지고 자신과 이물질을 구별한다. 

조직으로 치면 출입증(ID card)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물질로 판명된 것에 대해서는 면역체계를 작동시켜 제압하고 소멸시킨다. 본연의 생명유지 활동이다. 그리고 마지막 우리가 스스로를 자기라고 의식하는 자기 동일감의 근원인 기억이 있다. 그래서 내 기억에 없는, 밖에서 들어오는, 이질적인 것에 대해서는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 우리가 그렇게 설계(진화)되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변화를 기초로 한 혁신 시도는 이 단계에서부터 실패한다.

2.인식 장벽

변화에 대한 저항은 때로는 정말 몰라서 일어나기도 한다. 1차 대전에서 프랑스와 독일은 참호를 파고 전선을 길게 늘여서 전투를 했다. 그 경험을 살려 프랑스는 엄청난 비용과 역량을 쏟아부어서 그 유명한 마지노선을 구축했다. 그 때까지의 전술 개념에는 용감한 돌격전과 버티는 진지전 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독일은 전차를 이용한 전격 기동전 개념으로 마지노선을 피해서 프랑스의 방어선을 완전히 유린했다. 이 전격 기동전 개념에 대해서는 프랑스의 장군들은 물론 처음엔 대다수의 독일 장군들조차 말이 안 되는 발상이라고 반대했다. 평생을 전쟁으로 보낸 역전의 노장들은 왜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까? 

서 있는 곳이 다르면 보이는 풍경도 달라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떠올리게 한다. 각자의 기억과 지식은 서로 다르게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에 인지에 강력한 부조화를 일으키지 못하면 그들은 자신의 경험 내에서만 최선을 찾으려고 할 것이기에 근본적인 다른 발상이 불가능한 것이다.

3.비용 장벽

사실 문제가 되는 것은 알고 싶지 않을 때다. 인식하고 인정하는 순간 변화에 따른 비용과 희생을 감당해야 한다는 직감이 들면 더욱 그렇다. 큰 변화를 요구하는 사태의 변화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눈치챌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시간과 돈을 들여(sunk cost) 구축해 놓은 최선의 경험(best practice)을 부수고 새로운 것을 만들 때 들어가는 비용이 가장 현실적인 장애가 된다. 

새로운 솔루션의 효과는 늘 불확실하지만 기존 것을 폐기함으로써 잃는 것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개선이 개악이 아니라는 보장이 어디 있느냐는 명분 있는 질문에는 '역사는 보험회사가 아니다'라는 어느 철학자의 답변을 읊조릴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다. 

4.생존 장벽

늘 그렇듯이 가장 결정적인 장벽은 사람의 문제다. 변화의 결과를 온몸으로 감당해야 할 사람들이 있는 경우가 특히 그렇다. 동기 부여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조직적인 저항을 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왜 내가 희생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그다지 신통한 답변은 없다. 

변화의 근본 동인은 '바뀌어야 너도 살고 나도 산다'인데 변화해도 나는 살아남을 수 없다면 성립하지 않는 일이다. '열심히 노력해서 내 자리를 없애 봅시다'로 들리지 않겠는가? 현실에서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국내 기업 중 유한킴벌리나 한국전기초자에서는 조직원 내부에서 '설사 혁신으로 내 일자리가 없어져도 회사 내에 새로운 일이 주어진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모두가 승리할 수 있었다. 

이런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변화 과정에서 적절하고 올바른 보상과 헤어짐은 어쩔 수 없이 필요하다. 다이어트나 금연과 같은 개인적인 변화와 조직의 변화가 가장 크게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현장에서는 이 생존 문제에 가장 관심이 큰데 이 부분을 간과하면, 방향이 옳다 하더라도 집단적 변화의 동력을 초기에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조직의 변화, 리더의 역할은?

이렇게 네 가지 장벽을 무너뜨린 이후에도 변화의 완성을 위해 간과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덕목이 있다. 바로 변화를 이끌고 타인에게 변화를 종용하는 리더 스스로가 변화의 어려움을 체감하고 스스로 변화를 실천했는지 여부다. 

다시 글의 서두에서 꺼냈던 예화로 돌아가 보자. 

사탕을 많이 먹어 충치가 생긴 아이의 치료를 위해 치과를 찾았던 젊은 엄마는 의사의 말에 의아했지만 워낙 '명의'로 소문난 치과였기에 일주일 후에 다시 아이와 함께 치과를 찾아갔다. 

의사는 병원에 온 아이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달달한 믹스 커피를 무척 좋아하는데  몸에는 좋지 않아 한 번 끊어 보려고 하니까 어렵데요. 믹스 커피 끊는데 일주일이 필요했어요. 이제 사탕에 대해서 아이와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변화를 말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직접 해 보면 어렵다. 변화는 형성된 패턴을 고치는 것이고 그것은 일종의 중독을 상대하는 일이다.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특히 변화를 이끄는 리더는 조직원들에게 '변화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어서 하는 것' 임을 이해시켜야 한다. 또한 사람이란 존재 자체가 무수한 내적 변화의 결과로 오늘 여기 있게 됐다는 사실을 납득시켜야 한다. 

변화의 본질은 그래서 움직임이고 리더가 솔선수범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옛날(古) 풀(草) 있었던 자리에 머무르고 있으면 반드시 괴로움(苦)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살아 있다면 움직여야 한다. 변화의 시작이다. 한계는 없다.


임성원 필자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및 행정대학원 수료. 롯데그룹 기획조정실, 한국생산성본부에서 일하다 휴맥스에서 인사담당 임원을 맡아 수많은 기업들을 상대로 자문·인사·교육 서비스를 제공했다. 2000년부터 1인기업 ‘현덕경영연구소’를, 2002년부터 평창에서 힐링캠프를 운영해왔다. 저서로는 <직장인 울랄라>가 있다. 20년 이상 상담·교육을 하는 한편으로, 심리학, 뇌과학, 철학, 음양오행, 불교를 꾸준히 공부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