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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연 칼럼] ‘인간-기계의 공존시대’(中)…고용 없는 미래, 다양한 소득보장체제가 필요하다

by | 2020년 11월 19일 | 기획 · 연재, 정책


<피렌체의 식탁> 객원기자인 김세연 전 의원(국민의힘, 3선)이 기본소득을 둘러싼 성찰을 담은 두 번째 글을 보내왔다. ‘개혁 보수’ 성향의 김 전 의원은 이 글에서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AI) 시대에 기본소득 도입은 불가피하며, 기초자산과 개인데이터계좌의 도입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선 행정·재정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한다.

김 전 의원은 ‘인간-기계의 공존시대’ 주제아래 원래 두 편의 글을 쓸 예정이었으나 상·중·하 세 편으로 나누어 각각 ‘진단’, ‘처방’, ‘미래 트렌드’를 쓸 계획이다. 코로나19라는 신종 팬데믹과 기후위기, 인공지능(AI)이 겹쳐 인류문명은 중대한 갈림길에 서있다. 김 전 의원은 ‘사고 실험’(thought experiment)을 통해 먼 훗날 미래상황으로부터 각종 문제들을 찾아내 그로부터 차례차례 역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접근법을 제안한다. [편집자]

#20세기 경제·교육·복지 모델 붕괴
  ‘사고 실험’으로 새 판을 짜야할 때
①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눈먼 돈, 전시성 예산 등 혁파해야
   ‘마이너스 소득세’를 결합할 수도
②자산격차 줄이는 기초자산 지급
   어릴 때 목돈 마련 기회 주는 것
③개인 데이터를 현금처럼 관리하면
   경제적 보상, 프라이버시 보장 가능 

‘인간-기계의 공존시대’(上)에서의 진단을 간략히 되짚어 보면, 급격한 자동화의 결과 인간의 일자리는 줄어들 것이고,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는 일은 늘어날 것이며, 그나마 인간에게 남겨져 있는 일자리의 질이나 소득창출능력도 훨씬 떨어지게 될 것이다.
중산층은 중산층대로, 저소득층은 저소득층대로 제조업과 서비스 업종에 밀어닥치는 자동화의 물결을 피할 수 없다. 전통적인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 상당수도 인공지능(AI)이 지식노동시장으로 본격 진입하면 비슷한 운명에 처할 것이다. 반면, 새로운 경제 플랫폼을 만들어낸 소수 능력자들의 자산과 소득은 비약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김세연 객원기자 칼럼] ‘인간-기계의 공존시대’가 시작됐다(上)…내가 기본소득을 말하는 이유 <10월 28일자>
https://firenzedt.com/11323

어떤 사람은 ‘왜 그렇게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미래를 전망하느냐’고 비판한다. 1900년도에 존재하던 직업들 중 점차 사라진 것도 많은 반면, 불과 20년 전인 2000년도에 존재하지 않았던 유튜버 같은 직업이 많이 생겨났다는 반론도 있다. 기술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직업과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이다. 누구나 밝은 미래를 기대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겠지만, 우리는 일이 잘못될 경우에도 늘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인간 노동의 종말, 아니 인류의 종말을 막거나 그 시기를 미루어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말이다.

20세기 경제·교육·복지 모델 붕괴

전통적 개념의 노동과 임금소득의 연결고리가 끊어지고 나면, 대부분의 시민들은 프레카리아트(precariat)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이 새로운 단어는 precario(불안정한)와 proletariat(프롤레타리아트)의 합성어인데, 불안정한 고용상태에서 단순노동, 저임금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계층을 가리킨다. 1차, 2차 산업혁명과 1차, 2차 세계대전을 거친 후 20세기 중반부터 본격화된 산업화 과정에서는 제조업이 물건만 대량생산했던 게 아니라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도 대량생산했다.
이렇게 제조업 분야에 고용된 사람들의 소득 증대가 소비 증가를 가져오고, 소비 증가가 기업 투자를 촉진하고, 고용-성장이 서로를 견인하는 시장경제의 선순환 구조 속에서 소득분포는 배부른 항아리 모양을 그리며 성장과 분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 가능했다.

그런데 3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는 ‘고용 없는 성장’이란 표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고용을 없애는 성장’이 표준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 중산층이 무너져 빈곤층으로 편입되면서 소득분포 그래프는 배부른 항아리 모양에서 ‘목은 길고 몸통은 넙적하게 바닥에 깔려있는’ 호리병 모양으로 바뀔 것이다.
이렇게 극단적인 양극화 형태의 사회가 어떨지 그 모습을 상상해보자. 극소수의 상류층과 빈약한 중산층을 제외하면 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은 빈곤층이 돼 허덕이고 있을 것이다.

현재의 경제사회모델은 19세기에 시작돼 20세기에 완성되었다. 이 모델에서는 농촌에서 도시로 몰려든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일하며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키우며 사회보험으로 질병-실업-노후에 대비해왔다. 아이들은 유년기, 청소년기를 역시 공장처럼 생긴 학교에서 획일적인 교육과정을 거쳐 똑같은 스펙을 강요당하며 국민교육의 산출물로 대량생산됐다.

그러나 이젠 단순 반복적인 일은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훨씬 더 잘하는 시대로 바뀌었다. 기술의 발달로 생산양식뿐만 아니라 소통과 의사결정의 양식도 급격히 바뀌고 있다. 기술이 경제를 바꾸고, 경제는 사회를 바꾼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가 터보엔진처럼 변화의 속도를 증폭시킨다. 너무나 당연했던 대면 회의, 대면 교육이 비(非)대면으로 바뀌고 있다. 공교육 독점의 장벽 덕분에 아직 버티는 것처럼 보이지만, 20세기형 교육체제는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은 거나 다름없다.

복지 분야도 마찬가지다. 현대복지국가체제의 세 축 중 하나인 사회보험에서 가장 비중이 큰 것이 국민연금인데, 이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가입자가 낸 보험료보다 보험금을 더 많이 받아가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1988년 국민연금 도입 당시에는 인구가 너무 많이 늘어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고, 정기예금의 평균금리는 연 10%였다. 요즘엔 안정성과 수익성의 조합에서 국민연금을 따라갈 금융상품은 없다는 게 지배적 의견이다.)

그런데, 요즘 대한민국은 세계 최저 수준의 합계 출산율을 기록하면서 2019년의 경우 가임여성 1인당 0.92명에 지나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는 사실상의 제로 금리 시대를 맞고 있다. 이렇게 인구는 줄어들고 제로 금리가 된 세상에서, 먼저 가입한 사람들이 낸 돈(보험료)보다 더 받아가는 연금(보험금) 모델이 지속가능하겠는가. 아무 노력도 하지 않으면 연금제도의 종말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지난 수십 년간 안정과 번영을 가능하게 했던 20세기형 국가모델의 주축들 중 하나가 이렇게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사고 실험’ 통한 국가모델 재설정

그럼 21세기형 국가모델은 어떠해야 할 것인가? 정책 개발 목적으로 선입견 없이 자유로운 ‘사고 실험’(thought experiment)을 하기 위해서는 충분히 먼 장래를 상정해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특정 상황이 구체적으로 벌어질 시점을 예측하기보다는, 큰 틀에서 장기적인 방향을 설정하고 문제를 예상한 후,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실천해야 할 과제들을 논의해야 한다. 이렇게 먼 미래로부터 차례차례 역으로 공동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접근법은 불필요한 정쟁과 갈등을 예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어떤 사람에게는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다음과 같은 ‘사고 실험’은 우리의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충분히 시도할 가치가 있다.
즉,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의 발전을 기반으로, 기후위기를 겪고 있는 인류가 앞으로도 계속 생존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동등하거나 인간을 넘어서는 지능과 감성을 갖춘 기계, 즉 인간처럼 의식과 자아를 갖춘 기계와 공존하며 지구문명을 발전시켜 갈 향후 100년의 장기 항로를 염두에 두면서 단기적으로 수행해야 할 과제들을 고민해 보자는 것이다.

시대를 앞서가진 못하더라도, 100여 년 전 조선왕조처럼 시대에 뒤떨어진 국가에서 살아가는 건 그 구성원들에게 너무나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나태와 오만에 빠져 기술변화가 부르는 경제와 사회의 변화를 제대로 인지하지도, 대처하지도 못하는 공동체가 맞이할 불행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행동 처방’이 필요하다.

2021년도 정부 예산안이 555조원 규모라는 점과, 1인당 월 3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데 필요한 예산 규모가 연 187조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장 월 100만원, 많게는 30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주장을 처음 들을 때, 누군가의 마음은 더 훈훈해질지 모르나 실행 가능성은 대단히 낮아질 것이다.
따라서, 절대 지급액에 현실적인 한계가 있는 만큼 기본소득을 도입한다 해서 개인의 소득부족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소득과 함께 다른 요소들을 함께 도입함으로써 다층적 소득보장체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아래에 그 처방들을 제시해본다.

(1) 기본소득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새로운 시대를 맞아 공동체의 붕괴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할수록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방법밖에 없다.
즉, 노동 증발이 초래하는 소득 증발에 대한 방어수단으로서 기본소득을 도입할 필요성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커질 것이다. 개인들을 위한 안정적인 소득확보 방안을 마련해 놓지 못하면 공동체의 지속가능성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 오게 된다. 모든 국민들이 빈곤에서는 무조건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고, 바람직하게는 중산층 범위에 진입할 정도까지 도울 수 있다면 최선이 아니겠는가. 이는 헌법 제10조의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인권 보장’ 조항의 취지를 구현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소득조건과 근로의지 등을 따지는 기존의 공적 부조와는 달리 시민의 존재 그 자체로서, 즉 존재와 생존에 대한 수당 성격을 가지는 ‘시민 배당’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소득이 줄거나 불안정해지는 시대에, 경제 전체의 성장을 촉진시키기 위해서라도 개인의 구매력 확충을 통하여 유효수요를 진작시킬 필요가 있고, 그 수단으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전체 소비 여력을 키움으로써 경제성장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 소득이 낮을수록 현금 수입이 들어올 때 저축보다는 소비에 사용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경기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노후 생활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 나이가 들수록 저축을 늘리는 반면 소비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현재의 기초연금보다 보장 폭이 더 넓은 기본소득이 지급된다면 소비 촉진과 경제 활성화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
이 외에도 기존의 복지제도를 유지·관리하는 데 들어가는 인원 및 예산 중에서 기본소득으로 전환될 경우 절감될 수 있는 부분이 많은데, 이 또한 국민들에게 편익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실행 단계에 가까이 가면 무조건성과 보편성을 충족시키는, 즉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국민 누구에게나 지급하는 순수한 형태의 ‘보편적 기본소득’(UBI: Universal Basic Income)은 재원 부담 때문에 어느 정도의 타협은 불가피할 것이다. 엄밀하게는 기본소득과 다르지만 큰 틀에서 그 취지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마이너스 소득세’(NIT: Negative Income Tax)의 요소를 결합하는 방안도 고려해봄직하다.
다만, NIT 방식을 혼합하게 되면, 기존의 최저소득보장 복지제도와 같이 수령자격을 따지기 위해 소득수준과 고용 여부를 조사하고 관리해야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기본소득에 대한 가장 큰 반대논리는 전 국민에게 조건 없이 충분한 기본소득을 지급하기에는 재정여건상 그 막대한 돈을 도저히 마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행정개혁 및 재정개혁의 필요성과 방향을 잠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공룡 같은 행정부, 기능-인원-예산 개혁해야

‘재원이 없어서 기본소득을 못 하겠다’는 고장 난 녹음기를 틀기보다는, 뭔가 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 그러려면 먼저 개발도상국 시절에 주입된 국가주의적 행정만능주의의 의식과 관행을 타파해야 한다.
공무원들은 여전히 행정부가 마치 전지전능한 존재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 각 분야의 전문성에서 자신들이 압도당하고 있는데도, 시민들의 역량을 인정하고 존중하기보다는 여전히 봉사의 대상인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자세를 버리지 않는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을 만들 때 시민사회의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의제 설정과 해법 도출이 가능하도록 정책적 여백을 비워두지 않고, 책임 회피를 위한 용역과제 발주와 관료적 통제가 용이한 절차들로 그 여백을 가득 채워버린다.

민간부문은 늘 생존의 위기에 노출돼 있어 외부환경 변화에 민감하다. 그와 달리 공무원들은 거의 완벽한 정년보장과 두터운 공무원연금 덕에 자신의 생존본능을 직접 위협받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어떠한 환경 변화 속에서도 정부의 대책은 과거에 만든 문서들의 ‘복붙’과 ‘짜깁기’와 ‘한 줄 추가’로 나온다는 비아냥을 받는다.
흘러간 시절의 정부 기능, 인원, 예산을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들여다보면 불필요한 사무를 버리고, 단순반복적인 사무를 자동화하면서 행정 비효율을 개선할 수 있다. 다르게 표현하면 ‘20세기형 복지국가체제’를 ‘21세기형 기본소득체제’로 전환하면서 비대한 공룡처럼 변해 버린 행정부를 필수 기능 중심으로 날렵하게 축소 조정하는 개혁이 절실하다.

즉, 국가의 기능 가운데 국방, 치안, 방재, 방역, 특수복지 등 국민의 생명-안전-건강에 필수적인 분야들은 강화하되 각종 시혜성 산업정책에서 나오는 눈먼 돈과 각종 전시성 예산 나눠먹기의 생태계를 이해관계자의 반발에 구애받지 말고 과감히 혁파해야 한다. 국가적 차원에서 그런 노력을 기울인다면 기본소득 재원의 상당 부분을 확보할 수 있다.
‘기본소득은 퍼주기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식의 교조적인 입장보다는 ‘어떻게 하면 기본소득체제 하에서도 지속가능한 재정을 가능하게 만들 것인가’를 논의의 초점에 두어야 한다.

케인즈의 이론도 1930년대 대공황이 닥치기 전까지는 주류로 취급받지 못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는 국공채를 직접 매입하는 양적완화를 실시했고, 팬데믹 이후에는 기업 채권까지 직접 매입했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그랬듯이 기술과 경제와 사회와 제도가 상호작용하면서 경제학 교과서를 새로 써온 것이다.
인간 삶의 공간이 현실세계에서 가상세계로 점차 옮겨갈수록 경제학에서의 전통적인 생산요소들인 토지·자본의 공급 제약 및 노동에 대한 수요가 사실상 사라지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은 이단처럼 보이는 현대통화이론(Modern Monetary Theory)도 어느 시점에서는 케인즈처럼 주류가 되는 날이 올 수 있을지 모른다.

코로나19 경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만들어낸 과잉유동성이 요즘 자산거품을 심각하게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금리 인상을 통한 유동성 회수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는 지를 생각해보면 이 역시 당분간 선택하기 어려울 것 같다. 과다하게 팽창해있는 정부부채와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해 금리를 올리고 돈줄을 조이는 순간, 그 후유증을 감당해낼 수 있는 국가는 많지 않을 것이다.

(2) 기초자산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부분적이지만 각 개인의 안정적 소득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것은 소비 증대를 통한 총수요 창출로 경제성장에 도움을 줄 것이고, 소득격차 완화의 효과도 낼 것이다. 그러나, 기본소득만으로 지난 수십 년간 벌어질 대로 벌어진 자산 격차까지 줄이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같은 세대 안에서도 ‘영끌’하여 몇 년 전에 주택을 구입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최근 몇 년 간의 집값 폭등으로 발생한 자산 격차 확대만 해도 심각한데, 일찌감치 지금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집을 샀던 앞선 세대와 비교하면 이제서야 막 사회에 진입하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의 미래에 대한 불안은 우려를 넘어 공포 수준일 것이다.

기초자산 제도는 특정 조건을 충족했을 때, 예를 들어 성년 기준이 되는 특정 연령에 도달했을 때 목돈을 마련해주자는 것이다. 자산 격차로 인한 출발선 자체가 달라지는 불평등 문제를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초자산의 재원은, 아동들에 대해서는 기본소득을 감액 지급하는 대신 그만큼의 차액을 적립하였다가 일시 지급하는 형태로 마련할 수 있다. 아니면, 공기업의 지분이나 그로부터의 배당 수입을 기금화(化)하여 마련할 수도 있으며, 정부 예산이 투입된 연구개발과제 결과물로 등록된 지식재산권 수입을 기금화하는 방식도 있다. 주파수 경매나 우정사업수익과 같이 국민공유자산에서 발생하는 수입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국민공유자산을 기초로 조성되는 재원인 만큼, 평생에 걸친 안정된 생활에 전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기초자산의 처분에 대해서는 일정한 제한을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와 함께 개인적 허비를 막기 위해 경제·금융 교육도 함께 병행돼야 한다.

(3) 개인데이터계좌

네이버, 카카오, 구글, 페이스북 등 IT 대기업들이 제공하는 서비스 이용 약관에 동의하는 순간, 우리는 무료서비스를 이용하는 대가로 자신의 개인정보를 고스란히 이들 기업에 넘겨주고 있다. 그렇게 빅테크 기업의 데이터베이스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개인정보가 어떤 것인지 우리는 과연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현실세계에 실존하는 나 자신과는 별개로 온라인 공간에서의 나를 규정하고 설명할 수 있는 정체성은 내가 만들어낸 데이터의 총합이라고도 할 수 있다.

데이터를 21세기의 유전(油田)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데이터의 생산주체인 개인들은 그에 대한 접근·활용이 제한되어 있고, 개인정보를 집적해 둔 기업과 정부에서는 이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그와 관련된 소유권이 확립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소유권’이라 표현할 때 전제되는 강력한 법적 지배권이 오히려 데이터의 유통, 가공, 활용을 가로막아 데이터경제의 발전을 저해할 우려도 있다. 그래서 데이터에 대한 통제권을 중심으로 계약 인프라를 확립하는 것을 목표로 이를 ‘데이터 오너십’으로 표현하자는 의견에 뜻을 같이 한다.

데이터의 통제·보호와 관련하여 유럽연합(EU) 쪽에서 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등의 기준들이 제정되고 있으나, 개인정보의 거래·활용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더욱 근본적인 법적 인프라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개인 데이터에서 만들어진 부가가치의 일부를 그 개인에게 데이터 생산 대가로 돌려주기 위해서도 법적 인프라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민법상 물건의 유형에 데이터가 추가되어야 한다.
미국은 전력의 산업화로 시작된 2차 산업혁명의 발원지인데, 당연할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로마법 이래 2000년 된 민법의 역사에서 ‘전기’를 민법상 물건의 유형으로 제일 먼저 추가해 거래 계약의 대상으로 삼는 법적 인프라를 구축했다. 그 때문에 미국이 산업화시대를 선도할 수 있었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데이터경제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먼저 데이터 거래 인프라를 구축하는 차원에서 모든 법의 기본인 민법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렇게 데이터 거래 인프라가 갖추어지더라도 개개인이 직접 거대 사업자들과 자신이 만들어낸 데이터의 거래를 위해 유의미한 협상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이 자기 데이터를 보관하고 있다가 해당 데이터를 요구하는 기업에 각각 제공하는 방식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개인별 데이터 서버를 관리하는 시대

영국의 7개 대학이 함께 결성한 비영리기업인 ‘Hub of All Things(HAT)’에서는 개인이 자신의 데이터를 직접 관리할 수 있고 대형 사업자들과 데이터를 교환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즉, ‘개인데이터계좌’ (PDA: Personal Data Account) 제도를 도입하면 마치 개인이 직접 현금을 갖고 있지 않고도 은행에 있는 ‘개인금융계좌’(Personal Financial Account)에 맡겨놓고 쓰는 개념과 같이 자신의 개인정보 데이터를 직접 관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솔루션에 자기 데이터를 얹어서 자기만의 미니 데이터 서버를 만들어 클라우드에 올려놓고 자기 데이터가 제3자들에 의해 어떻게 활용되는지 모니터링도 할 수 있고, 자기 데이터를 분석해서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데이터의 가공, 유통 과정에서 지금과 달리 개인이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면, 비록 소득의 절대금액은 크지 않은 수준이더라도 사업자들이 개인정보의 가공, 활용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데 대한 경제적 보상을 직접 수령할 수 있게 된다.
현재는 무방비 상태로 기업과 정부에 데이터를 전량 넘겨주고 있는 개인들이 이렇게 데이터를 직접 관리할 수 있게 되면 경제적 보상을 가능하게 하는 데이터 오너십뿐만 아니라 민감 정보와 관련한 데이터 프라이버시까지 확보해주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김세연 객원기자

전직 3선 의원, 1972년 출생.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2008년 총선 당시 부산 금정구에서 처음 당선돼 18, 19, 20대 국회의원으로 활약했다. 2016년 박근혜 탄핵 정국 땐 새누리당을 탈당해 유승민 전 의원과 함께 ‘바른정당’ 창당을 주도했으며 2018년 1월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다. 당내 싱크탱크인 여의도정책연구원 원장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을 지냈다. 4.15 총선을 앞두고 지난해 11월 불출마 선언을 했다. 보수 정치인으로는 보기 드물게 기본소득, 기후변화, 기계세(로봇세) 등의 미래 어젠다에 집중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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