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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편집 2020. 11-23.17:32

[채인택의 ‘美대선 깊이 보기’] 바이든의 ‘부자 증세’, 백인 노동자 표심을 어떻게 움직였나

by | 2020년 11월 18일 | 국제, 기획 · 연재


2020년 미국 대선은 조 바이든 후보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승복하지 않고 버티지만 권력의 추는 바이든 쪽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이번 대선은 인물 경쟁 못지않게 정책 경쟁이 치열했다. 바이든 후보는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 즉 중산층 이하 유권자들을 위한 경제, 복지, 보건의료 공약들을 많이 선보였다. 특히 트럼프에게 2016년 대선 때 빼앗긴 러스트 벨트 3개 주(펜실베이니아-미시간-위스콘신)를 탈환하기 위해 백인 노동자들을 겨냥한 공약들을 개발하는데 주력했다. 예컨대 세금정책과 관련해 “트럼프는 ‘자산’에, 바이든은 ‘노동’에 보상한다”는 구호를 내걸었다. 바이든의 중도층 공략 작전은 2022년 한국 대선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특히 상대 당 지지층을 빼내기 위해 소득 상위 1%, 0.1%에 대한 증세를 추진하되 그 혜택을 중산층 이하에 집중하는 전략은 눈여겨볼 만하다. 
채인택 필자는 바이든의 당선 연설(지난 7일)과 정책구상 발표(지난 15일)를 바탕으로 내년 1월 출범할 바이든 정부의 항로를 전망한다. 또한 바이든 캠프가 ‘백인 노동자’의 불안과 불만을 어떻게 파고들었는지 살펴본다. [편집자]

#”무너진 중산층 되살리겠다”
  세금, 일자리, 복지 재정비
#백인 노동자 불안-불만에 주목
  러스트 벨트 내 일자리-복지 확충
  트럼프의 핵심 정책은 계승
#코로나19 대처 및 보건의료
  트럼프와 확실하게 차별화

“무너진 이 나라의 중추, 중산층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중략) 존엄과 존경이 함께하는 일자리를 창출하는 미국을 향해서 나아갈 것입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7일 델라웨어 주 윌밍턴에서 당선 연설을 했다. 이 자리에서 언급한 향후 정책우선순위는 분명했다. ‘분열된 미국’을 다시 통합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경제 회생 방안이 가장 눈에 띄었다.

바이든의 발언은 곧바로 정책으로 이어졌다. 지난 15일 최저임금을 시간당 7.5달러에서 15달러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바이드노믹스(Bidenomics)의 구체적인 모습이 처음 가시화되는 순간이었다. 선거 공약에는 부유층 증세, 최저임금 인상, 친환경 인프라 투자 등이 포함됐다.

바이든은 선거공약에서 노동자의 복지와 일자리를 가장 강조했다. 특히 중산층 이하에게 돌아갈 혜택에 집중했다. 중소사업자 대출을 늘리고 빈곤층에 대한 사회보장 지급액을 월 200달러씩 증액하겠다는 내용도 들어갔다. 청년과 블루칼라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 두 계층은 민주당의 전통적인 지지층이다. 내년 1월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 각 분야 선거공약들은 구체적인 경제정책으로 하나씩 추진될 것이다.

‘블루월’이 무너졌던 2016년 대선

민주당의 기본 정책노선과 일치하는 이런 공약들은 이번 대선의 승리 전략과도 맞물려있다. 바로 2016년 대선 때 민주당에 뼈아픈 패배를 안겨줬던 쇠락한 공업지대, 즉 러스트 벨트(Rust Belt)를 되찾기 위한 것이다.

이를 설명하려면 ‘블루월 (Blue Wall·푸른 벽)’이라는 용어를 알아야 한다. 미국의 정치 지형도를 압축하는 단어인데, 1992년부터 2012년까지 여섯 차례 대선에서, 푸른색이 상징하는 민주당을 줄기차게 지지한 주(州)들을 가리킨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뼛속까지 민주당’ 지역이다. 미국 서부와 동북부, 중북부에 걸쳐 있는 18개 주와 수도인 워싱턴DC가 이에 포함된다.

서부에는 캘리포니아(55, 이하 선거인단 숫자), 오리건(7), 워싱턴(12), 하와이(3)가 있고, 동북부엔 뉴욕(29), 뉴저지(14), 메사추세츠(11), 메릴랜드(10), 코네티컷(7), 로드아일랜드(4), 델라웨어(3), 버몬트(3), 워싱턴DC(3)가 자리잡고 있다.
중북부에는 펜실베이니아(20), 미시간(16), 위스콘신(10), 미네소타(10)가 있다. 동북부의 메인 주는 선거인단을 승자독식이 아닌, 주 전체 투표로 2명, 하원 지역구 2개 투표로 각각 1명씩 뽑는데 대부분 민주당이 차지해왔다.

이 18개 주의 선거인단을 모두 합하면 242명이나 된다. 미국 대선이 선거인단 538명 중 과반인 270명을 확보하는 싸움이니만큼 블루월은 민주당이 역대 대선에서 승리할 때마다 든든한 배경이 돼왔다.

문제는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된 2016년 대선 당시, 블루월 가운데 펜실베이니아(20), 미시간(16), 위스콘신(10)의 3개 주가 이탈했다는 사실이다. 선거인단 숫자로는 46명에 해당한다. 당시 대선에서 트럼프가 304명을, 힐러리 클린턴이 이보다 77명이 적은 227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했다. 결국 이 3개 주의 향배가 대선 결과를 뒤흔든 셈이다.
만일 이 지역을 힐러리가 모두 차지했으면 트럼프는 258명, 힐러리는 273명의 선거인단을 차지해 최종 결과를 뒤집을 수 있었다. 민주당은 텃밭인 블루월의 러스트 벨트(Rust Belt) 지역을 빼앗겼기 때문에 패배한 것이다.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과 민주당이 이런 급소를 놓칠 리가 없다. 2016년 트럼프가 승리한 원동력은 러스트 벨트의 백인 노동자들이 열광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국내산업 보호를 내세웠다. 그걸로 세계화와 중국산 공세에 불만이 팽배했던 노동자들의 표심을 빨아들였다. 정책 공약으로 블루월을 무너뜨린 셈이다.

러스트 벨트에서 트럼프가 2016년 거둔 승리는 한결같이 1%p 미만의 차이에 불과했다. 미시간은 0.23%p, 펜실베이니아는 0.72%p, 위스콘신은 0.77%p에 지나지 않았다. 2016년 트럼프는 초박빙 승부로 이 지역을 석권하면서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미국의 인종 분포와 대선과의 관계를 보면 트럼프의 선거 전략이 겨냥한 노림수를 짐작할 수 있다. 미국 인구센서스의 2019년 추정치를 보면, 인종별 분포는 비(非)히스패닉 백인이 60.1%나 된다. 이어 히스패닉이 18.5%,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이 13.4%, 아시아계가 5.9%, 다인종이 2.8%. 원주민이 1.3%를 각각 차지한다.

2016년 대선 당시 에디슨 출구조사에 따르면 투표자의 인종 분포는 백인 70%, 흑인 12%, 아시아계 4%, 히스패닉 11%의 분포였다. 그런데 백인 유권자들은 트럼프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트럼프와 클린턴에 대한 투표 비율은 백인이 58대37, 흑인이 8대88, 아시아계가 29대65, 히스패닉이 29대65로 나타났다. 백인 유권자에 대한 공략이 트럼프 승리의 핵심이었음을 보여준다.

올해 대선 승부수 ‘백인 노동자’ 공략

그런데 러스트 벨트 주들은 백인 비율이 훨씬 높다. 2018년을 기준으로 펜실베이니아가 81%, 미시간이 79%, 위스콘신은 86%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목할 점은 펜실베이니아의 경우 2016년 등록유권자의 정당 지지율이 민주 48%, 공화 37%로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트럼프가 0.7%p 차이로 승리했다. 이는 민주당 지지층의 상당수가 투표하러 가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클린턴 후보에 대한 반감이 투표를 기피하게 만든 셈이다. 반면 백인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일자리가 걸려 있다는 생각에 적극적인 투표 참여에 나섰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에서 러스트 벨트의 유권자들은 어떤 성향을 보였을까. 정책 중요도 조사에서 펜실베이니아는 코로나 21%, 경제 21%로 나타났다. 미시간의 경우 경제 33%, 코로나 20%, 법과 질서 17%, 보건 12%로 나타났다. 민주·공화 양당이 이 지역 유권자를 사로잡으려면 뭘 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조사 결과다.

바이든과 민주당은 이를 바탕으로 이번 대선에서 러스트 벨트에 사는 백인 노동자의 민심을 사로잡을 정책을 마련하는데 주력했다. 이를 위해 바이든이 주목한 게 세금이다. 바이든 공약사이트(joebiden.com)를 들어가 보면 ‘두 개의 세금 이야기: 트럼프는 자산에 포상을 했지만 바이든은 노동에 보상을 한다’ (A TALE OF TWO TAX POLICIES: TRUMP REWARDS WEALTH, BIDEN REWARDS WORK)라는 구호가 큼지막하게 적혀있다.

이 구호는 바이든이 추구하는 경제 정책과 철학을 요약한다. 앞으로 트럼프가 추구해온 ‘낮은 세금과 작은 정부’ 정책과 반대 방향으로 선회하겠다는 의미다. 트럼프는 2017년 최고 35%였던 법인세율을 21%로 낮추는 친기업 감세 정책에 박차를 가했다. 낮은 인건비와 세금 등을 노려 해외로 나간 기업들이 미국에 돌아오도록 만들겠다는 게 명분이었다.

이에 대해 바이든 측은 “감세 혜택의 99%는 1%의 부유층에 돌아갔다”고 주장하면서 트럼프의 정책을 ‘부유층에 대한 세금 혜택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공약 사이트와 월스트리트저널(WSJ), 포브스, 닛케이 등에 따르면 바이든은 현행 최고 21%인 법인세를 28%까지 올릴 계획이다. 아마존·애플·구글 같은 거대기업이 다양한 방법으로 세금을 회피하지 못하도록 대기업에는 순익 대비 최저 15%를 과세하는 ‘미니멈 세금’ 제도를 도입한다는 공약도 내놓았다. 자본이득세도 부과할 방침이다. 연 수입 40만 달러 이상의 부유층에 대해서도 증세를 한다. 더네이션에 따르면 현행 상위 1%는 최고 세율이 29.7%에서 41.7%로 오른다. 특히 상위 0.1%는 30.4%에서 46.7%로 확 높아진다. 그 결과 가처분소득은 전자가 17%, 후자가 23.4% 줄어들게 되다.

대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세금을 이렇게 높일 경우 내년부터 10년간 법인세는 1조4000억 달러쯤 더 걷힐 전망이다. 또한 급여세가 9930억 달러, 개인소득세가 9440억 달러 정도로 세수(稅收)가 증가할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더힐이 펜와튼 예산모델(PWBM)로 분석한 결과다.

PWBM은 바이든의 공약대로라면 앞으로 10년간 연방지출이 교육 부문에서 1조9000억 달러, 인프라 및 R&D투자에서 1조6000억 달러 규모로 각각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중산층 이하의 학비 부담을 줄이고, 인프라 건설 등으로 일자리를 늘리는 정책이다.


바이든, 일자리 창출 공약에 집중

바이든의 공약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인프라 투자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다. 도로, 철도, 교량, 전력망, 수도, 도시교통, 5G 등에 대대적인 투자를 할 계획이다. 사실 미국의 인프라 투자 문제는 오바마 정부 때부터 해묵은 과제다. 인프라 투자 확대는 건설-서비스 경기를 자극해 일자리를 만드는 가장 빠르고 직접적인 방법의 하나일 것이다.

바이든이 간판 정책 중 하나로 내건 청정에너지 분야도 따지고 보면 일자리를 양산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특히 2030년까지 버스의 탄소 배출을 제로로 만드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자동차 분야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100만 개 만들어낼 계획이다. 이것을 시작으로 전국에 50만 개의 전기차 충전소를 만들고, 친환경 자동차 300만 대를 정부 조달을 통해 구입하는 정책도 마찬가지다. 스쿨버스 50만 대를 친환경 차량으로 전환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바이든의 친환경 정책은 지식인이나 환경운동가들의 구호가 아니라, 중산층·서민에게 일자리와 사업 기회를 마련해주는 경제정책으로 볼 수 있다. 차량의 부품 생산, 유통, 서비스를 진흥할 경우 중산층 이하 유권자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럴 경우 제조업 설비가 녹슬어가고, 일자리가 사라지고, 사업 노하우가 사장될 위기에 있는 러스트 벨트에는 단비와도 같은 소식일 것이다. 자동차·철강은 러스트 벨트의 대표적인 산업이다.

바이든은 2035년까지 전력 부문의 탄소 배출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들고 나왔다. 이를 위해선 다양한 에너지원의 비율 조정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차세대 전력망 구축이 필수적이다. 바이든은 역대 정권이 미뤄왔던 이 사업을 적극 추진할 방침이다.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는 게 발전 시설을 추가하는 것보다 가성비가 높다는 것은 상식이다. 게다가 이 사업을 위해선 상당한 인력 투입이 필요하다.
에너지 절감 정책은 건설 산업에도 활기를 불어넣을 전망이다. 공공 건축물을 중심으로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작업이 대대적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바이든은 또한 4년 임기 중 공공주택을 포함해 총 150만 채에 이르는 주택을 공급할 계획을 세웠는데, 건설 분야는 일자리 창출을 위한 지름길로 통한다.

바이든은 중산층 이하에 대해선 다양한 세금공제 제도를 신설 또는 확대해 세금 감면을 추진할 방침이다. 그의 정책대로라면 2021~2023년 사이에 어린이 부양 공제는 1055억 달러로 확대된다. 자녀·부양가족 공제가 3000달러에서 8000달러로 확대되면서 총 807억 달러, 첫 주택 구입자 소득 공제로 1646억 달러를 각각 감세하게 된다. 미국 조세 관련 싱크탱크인 조세재단(Tax Foundatipn)의 추산이다. 이는 고스란히 중산층·서민에게 감세 혜택으로 돌아가게 된다. 특히 러스트 벨트의 중산층에게 가처분소득을 늘려줄 수 있는 정책이다.

‘코로나19 대처’가 최우선 정책

세금과 함께 바이든 정부의 정책 방향을 잘 보여주는 것이 코로나19와 보건의료 정책이다.

“바이러스를 억제하기 위한 싸움, 번영을 일구기 위한 싸움, 여러분 가족의 건강을 보장하기 위한 싸움, 이 나라의 인종정의 실현과 구조적 인종차별주의 척결을 위한 싸움입니다. 기후를 구하기 위한 싸움입니다.”

바이든은 지난 7일 당선 연설에서 향후 정책우선순위를 이렇게 언급했다. 코로나19 대응정책을 맨 앞에 놓았고 번영에 이어 가족 건강을 거론했다. 지난 17일 현재 전 세계에서 확진자 5535만 명(사망자 133만 명)이 발생한 가운데 미국에서 발생한 확진자가 1153만 명(사망자 25만 명)에 이르니 이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가 시종일관 “코로나19는 별 것 아니다”, “검사를 많이 해서 확진자가 많이 나온다”,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던 것과 확실하게 다른 모습이다.

바이든은 코로나19와 관련해 7대 공약을 내걸었다. 검사소를 기존의 두 배로 늘리고, 전시 수준의 총력 대응으로 대응 인력과 소요 물자 확보에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주지사들과 손잡고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는 한편, 트럼프가 단절시킨 세계보건기구(WHO)와의 관계도 복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노약자와 소수민족이 코로나 대응에서 불이익을 보지 않도록 배려하겠다는 내용도 담았다.

바이든은 이와 함께 트럼프가 끈질기게 없애려고 시도했던 전 국민 건강보험제도인 오바마케어를 확대할 예정이다. 바이든 선거사이트에 따르면 미국 인구의 97%가 오바마케어에 가입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하고, 저소득층에 대한 보장 범위를 확대한다. 아울러 메디케어의 연령 상한선을 65세에서 60세로 낮췄다. 메디케어는 미국 정부가 제공하는 사회보장제도인데, 1965년 이후 65세 이상 또는 소정의 자격 요건을 갖춘 사람에게 건강보험을 제공해왔다. 바이든의 공약대로라면 56년 만에 연령 제한을 다섯 살 낮추게 된다.

아울러 약값을 인하하고, 출산과 낙태 시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며, 지역보건센터와 저소득층에 대한 보건의료 지원을 늘리기로 했다. 가난한 노동자와 실업자, 그리고 은퇴 노동자들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월 급여가 적어도, 일자리를 잃어도, 은퇴를 해도 기본적인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받도록 의료 혜택의 문호를 넓혀주는 정책이다.

트럼프의 ‘러스트 벨트’ 지원책은 유지

그렇다고 바이든이 모든 정책에서 트럼프와 반대로 가는 것은 아니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러스트 벨트, 백인 노동자들의 표를 흡수했던 정책 중 핵심 부분은 그대로 계승했다. 바로 무역적자 및 세계화와 관련한 규제조치다. 바이든은 미국 내 생산기지를 유지할 경우 10%의 세금 혜택을 주지만,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할 경우 징벌 성격의 세금을 물리기로 했다. 트럼프가 법인세를 낮춰 리쇼어링(reshoring, 제조업의 본국 회귀)을 유도하는 정책을 폈다면 바이든은 제조업이 해외로 못 나가게 압박하겠다는 거다.

바이든은 정부조달시장 분야에서도 미국산 제품의 우선구매정책을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 4년간 4000억 달러에 이르는 규모다. 친환경 차량 구매, 철강·시멘트 등 건축자재 구입, 의약품 구입, 첨단산업 제품 구매에서 미국산 구매 규정을 강화했다.
정부 지원을 받을 때는 ‘미국 내 제조 요건’을 필수화했다. 아울러 여성·유색인종을 고용하는 기업에 대한 지원도 강화한다. 민주당의 색깔을 유지하면서 러스트 벨트의 노동자 표를 잃지 않으려는 정책적 조합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중국에 대한 불공정 무역관행의 시정 요구는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
바이든은 트럼프의 ‘보호무역’ 대신 ‘공정무역’을 추구하겠다고 말해왔다.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 강조하고 있는 ‘자유무역’이 아니라 공정무역이라는 용어를 굳이 쓴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트럼프가 떠나도 트럼피즘(Trumpism)의 상당 부분은 미국에 계속 흔적을 남길 가능성이 크다.

아무튼 바이든의 2020년 대선 승리는 러스트 밸트의 변심 덕이었다. 박빙의 승리라는 점에선 4년 전과 똑같았지만 승리의 주인공은 트럼프가 아니었다. 바이든은 제조업의 쇠락과 시대의 변화,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우울증을 겪어온 백인 노동자를 달래고 배려했다. 그것은 바로 선거 공약과 정책을 통한 승리였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1988년 중앙일보에 기자로 입사해 국제·문화·과학기술 분야에서 주로 일했다. 국제부장, 논설위원을 지냈고 현재 국제전문기자로 활약한다. 국제 분쟁과 갈등, 인도주의 활동, 과학기술 혁신이 만드는 삶과 문화의 변화에 대한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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