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15년째 OECD 36개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다. 충격적인 사실은 20대 여성 자살률이 급등 추세라는 점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20대 여성 자살자 수는 296명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43% 증가했다. 올 들어 지난 7월까지 서울 시내 병원 응급실에 온 자살시도자 수 역시 전체 5000여 건 중 20대 여성이 20%를 넘었다.
한국의 20대 여성들은 왜 좌절하는가? <피렌체의 식탁>은 지난 13일 명지병원 김현수 임상교수(정신건강의학과)를 만나 그 원인과 대책을 들어봤다. 그는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장, 코비드19 심리지원단장을 겸임하며 20대 청년들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그는 “삶의 기반이 허약한 20대 여성들을 팬데믹이 파고들었다”면서 “물리적 방역엔 성공적이었지만 취약계층의 심리적 방역, 경제적 방역은 다소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20대 여성들을 압박하는 요인은 다양했다. 요약하면 프로이트가 말한 인간다움의 토대인 ‘일과 사랑’을 모두 충족하지 못한 채 미래에 대한 희망을 꺾고 좌절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편집자]

#10대부터 우울과 스트레스 경험
  성범죄, 가부장 문화에 좌절 반복 
#20대 자살자, 개인적 자원 취약
  고졸, 비숙련, 1인 가구 지원해야
  
▲최근 20대 여성 자살률이 급증했다.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오해하면 안 되는 게 여전히 중장년 남자의 자살자 수가 전 세대를 통틀어 제일 많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감소 또는 증가하는 연령대가 있다는 거다. 올해는 10대, 20대, 30대가 증가 추세여서 많이 우려하고 있다. 그들의 특징은 삶의 기반이 허약하다는 것이다. 사회적 고립을 해야 하는 감염재난이 왔을 때, 개인적 차원의 자원이 취약하다. 금전적·심리적 자원, 사회적 관계의 자원을 다 포함한다. 막 독립해 살고 있거나 곧 독립을 해야 하는 그런 젊은이들이 제일 취약하다.
코로나19 방역과정에서 확진자, 사망자는 효과적으로 줄였지만 코로나19 때문에 가난해진 사람, 외로워진 사람, 우울해진 사람, 이런 사람들을 배려하는데 우리가 미처 준비를 못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강력한 방역을 실시할 때,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취약해진 그룹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걸 이번에 깨닫게 된 거다. 청년 지원을 강화하거나 그들이 대량 해고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게 필요했다. 물리적 방역 못지않게 심리적 방역, 경제적 방역이 중요하다.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장이자 코비드19 심리지원단장으로서 경험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최근 20대 여성의 상담 건수가 얼마나 늘었는가? 그들은 주로 어떤 고충들을 이야기하나?

-20대의 고민과 좌절은 10대 때부터 이어진다. 요즘 남성 청소년은 정서적으로 무기력하고, 여성 청소년은 우울, 스트레스에 빠진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들이 20대가 됐을 때 더 좋은 기회를 얻어 상황이 나아지기보다 그렇지 못한 사례가 더 많다는 것이다. 10대 때부터 부정적인 심리상태로 살아오다가 20대에 세상에 나와 고등학생 때 알았던 것보다 훨씬 더 각박한 현실에 부딪히게 된다. 그러면서 계속 살아야 되나, 어떻게 살아야 되나 그런 고민에 빠지는 것 같다.
요즘 20대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N포 세대, 이런 얘기를 한지 벌써 오래 됐다. 그럼에도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중 핵심은 일자리 문제다. 또한 취업과 관계없이 앞으로 즐겁게 재미있게 행복하게 일하면서 살 수 있느냐의 문제다. 그런데 희망적으로 느껴진다고 말하는 청년들의 수가 너무 적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마찬가지다. 당신은 한국의 미래가 과연 살만하다고 느껴지는가?

▲‘절망스럽다’까지는 아니지만 집값은 폭등하고 결혼, 출산, 커리어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 집값은 물론이고 결혼, 육아, 커리어…. 뭐 하나 쉽게 되는 일이 없는 거다. 그만큼 사회가 자신들을 도와주는 것도, 해주는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부모 잘 만난 애들만 잘 되는 걸 보며 열받아하는 거다. 지난해 여름 조국 사태부터 시작된 것 같은데 엄마 찬스, 아빠 찬스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진보세력은 안 그럴 줄 알았는데 별 다를 바가 없었다며 실망하는 사람들이 적잖다.
20대 여성의 자살률이 급등하는 원인은 아까 말했듯 개인적 자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개인적 자원이 가장 적은 그룹에서 극단적 시도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들 중엔 고졸, 비정규‧비숙련 노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서 정규직 되기도 어렵고, 부모의 경제적 도움도 받을 수 없는 1인가구의 외로운 여성이 많다.
최근 통계를 보면 서울시 1인 가구 비중은 전체의 3분의 1쯤 되는데, 20대 여성이 25.6%로 가장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뜻밖이었다. 30대부터는 다시 남성 1인 가구의 수가 늘기 시작한다. 원래 서울에서 살다가 독립했거나 지방 출신들을 합친 통계다. 아까 집값 얘기를 했는데, 30대 남성들이 집값 자체를 많이 걱정하는 반면, 20대 여성은 전월세 보증금과 월세 수준에 대한 걱정이 크다.

▲1인 가구인 20대 여성에겐 그에 못지않게 안전에 대한 걱정도 있을 것 같다.

-맞다. 상담 과정에서 N번방 사건이 가장 큰 분수령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몰카나 성추행, 성폭력과 같은 성범죄에 대해 남녀 간에 생각의 차이가 굉장히 크다. 여성들이 성범죄에 대해 갖는 두려움, 혐오 같은 감정의 스펙트럼은 훨씬 더 다양하다. 사회복지 차원에서도 안전망이 부족하고, 개인적으로도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낀다. 남자친구를 사귀었더니 자기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거나, 데이트폭력 같은 위협적인 상황을 겪는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신용카드를 쓰며 겨우겨우 버텼는데 코로나19가 오면서 어느 날 갑자기 해고가 된 거다. 그렇게 완전히 코너에 내몰린다.
우리 사회엔 대졸자에 비해 고졸자에게 일자리를 주고 어려운 상황에서 재기할 수 있도록 돕는 지원제도가 턱없이 부족하다. 고졸자 중 70~80%가 대학에 진학한다는데 나머지 20~30%에 대한 사회적인 지원을 망각하고 있다. 전부 다 대학을 나온다고 가정하고 그들에게만 초점을 맞춘다.
이번에 팬데믹을 통해 우리 사회를 잘 몰랐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전문가들조차도 잘못된 통념을 갖고 있었다. 아까 말했듯 20대 여성 1인 가구가 서울에 많다는 것, 고등학교만 나온 젊은이들이 20~30%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 그리고 이들에 대한 사회적 대책이 거의 없다시피 한 것, 이런 것들이 그런 사례다. 특히 코로나19가 이들에게 큰 타격을 줄 수밖에 없었던 건 이들이 지금 일하고 있거나 장차 희망하는 직종과도 연관된다. 항공사, 여행사, 카페·식당과 같은 서비스업의 경제적 타격이 컸고, 그 여파가 고스란히 이들에게 전가됐다. 지금이라도 이들의 아픔에 귀를 기울이고 뭐가 필요한지 고민하고 대처해야 한다.


#20대 남성은 '원망', 여성은 '좌절'
  각박한 사회가 남혐-여혐 만들었다  
#어른 세대는 밥, 청년들은 폼 중심
  기성세대 도식 강요 땐 소통 단절

▲같은 청년층이지만 20대는 남성, 여성으로 갈라져 충돌한다. 20대 남성들은 자신들이 기득권을 누리고 있지 않은데 왜 우리를 공격하느냐고 ‘원망’한다. 20대 여성들은 과거보다 기회가 더 많아졌는데 왜 살기 힘들어하느냐는 주변 시선에 ‘좌절’하는 것 같다. 이들이 부모세대, 3040세대는 물론 20대 내부에서 우리 사회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다른 심리상태를 보이는 원인이 뭘까?

-20대 남녀의 충돌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솔직히 상담을 많이 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서로 미워하는지 몰랐다. 아이가 귀해지면서 각 가정에서 아들은 귀공자처럼, 딸은 공주처럼 키웠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딸들에게 하녀 대접을 한다.
여성 관련 모임을 다니면서 사회에 대한 20대 여성들의 불만을 많이 느꼈다. 극단적으로 ‘한남(한국 남자의 줄임말)과 사느니 죽겠다’는 말까지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제일 듣기 싫은 말 중 하나가 ‘취집’이라고 한다. 취업과 시집을 합친 용어다. ‘시(媤) 월드’란 단어 속에서는 여성으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문화를 느끼게 된다. 여전히 여성이 엄마처럼 해주길 원하는 남성이 많지만, 여성들도 귀하게 자란 만큼 그런 지점에서 반발하고 부딪히는 거다.
심리적으로 분석해보자면 20대의 남성도 여성도 일종의 나르시시즘(Narcissism)을 갖고 있다. 그걸 서로에게 요구한다. 자기애가 강한 남녀가 만나면 대립하는 수밖에 없다. 서로 공감을 하고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상황이 나빠지니까 내가 져주자, 그런 마음을 가질 여유가 없다. 그러면 공격적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너, 나를 무시하냐”와 같은 편집증적 태도를 보인다. 여기에 변변한 일자리를 갖지 못하면 자존감은 갈수록 추락하게 되는 거다.

▲우리 사회가 젊은 세대의 욕구나 기대를 담아내지 못하는 것 같다. 현재 20대 여성들을 압박하는 사회구조적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역시 일자리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단순히 먹고 살기 힘들어서? 그것만으론 표현하기 힘들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그러면서 폼 나게 먹고 사는 게 불가능하다는 거다. 요즘 청년들은 아무 일이나 하고 싶지 않아한다. 먹고살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는 시대는 끝났다. 어렵고, 힘들고, 폼 나지 않은 일들은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폼 나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니까 좌절하는 거다. 그래서 기업들도 상황이 어렵겠지만 조금 더 청년 고용을 확대해야 한다. 유능한 경력직 위주로 뽑으려 하니까 그에 못 미치는 청년들이 힘들어하는 것 같다.
정신과 의사나 심리학자들은 어른이 된다는 게 ‘일과 사랑’을 뜻한다고 말한다. 일이란 게 단순히 돈을 버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가 있다. 이런 말이 있다. 삶을 살아간다는 건 살 이유가 있다는 것이고, 일자리란 사람이 살 수 있는 자리, 설 자리가 된다. 설 자리가 있어야지 사람들이 살고 싶어진다. 결국 일자리란 살 자리다.
사랑은 감정이지만 문화이기도 하고, 연애-결혼으로 이어지는 사회적 요소다. 지금의 여성들은 신(新) 여성인데 남성들은 여전히 구(舊) 남성이 많다는 게 문제다. 달라지는 사회에 맞춰 남성들에게도 변화가 필요하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남혐, 여혐이 나뉘기 때문에 10대 때부터 해야 한다. 남학생들에게 젠더 감수성 교육을 해야 한다. 성교육을 포함해 남성중심성이나 봉건성, 가부장성에 대한 총체적인 학습이 이루어져야 한다. 왕자병을 내려놓고 가사·육아 노동을 같이 해야 된다는 걸 배우지 않으면 계속 갈등할 뿐이다. 그래선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2009년 소셜미디어의 등장을 기점으로 2011년부터 10대 소녀들의 자살률이 급등했다는 분석이 있다.

-전 세계적인 추세다. 원래 자살자들의 성별 비율은 남자 8, 여자 2 정도였는데, 점점 여성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자해(自害)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도 2017년부터 자해가 늘고 있는데 여성 비중이 커졌다. 그만큼 젊은 여성들의 개인적·사회적 좌절이 쌓이고 있다는 얘기다. 장래에 대한 기대는 큰데 현실에선 가능한 게 없으니까 이대로는 살 수 없다, 헤어날 수 없다는 생각에 빠지면서 자해-자살과 같은 극단까지 가는 거다.

▲20대 여성들의 좌절이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면 다른 국가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일본 자살예방기관에서 한국 중앙자살예방센터로 공조를 구하는 연락이 왔다고 들었다.

-일본이 우리에게 도움을 구했다는 건 오보다. 최근 일본에서 20대 여성 자살률이 크게 높아진 건 사실이지만, 공조 요청이 아니라 한국도 그러냐고 상황을 물어본 것이다. 상황이 심각하니 서로 협조하자는 말을 나눈 정도다.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보면 여성들의 사회 진출을 더 많이 배려하는 게 첫째 대책이다. 예컨대 정부 각료의 남녀 비율을 맞추고, 여성 수당을 지급하는 나라가 많아지고 있다. 여권 신장과 함께 육아 부담을 덜어주는 제도들을 계속 확대하는 추세다. 캐나다, 뉴질랜드,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가 그런 국가다. 그러나 단순 비교를 하기에는 이 나라들의 인구가 많지 않다. 스웨덴은 1000만이고, 아이슬란드는 34만 정도다.


▲서울시 차원에서 상담, 교육 등을 지원하고 있는 걸로 안다. 그것 말고 20대 여성들을 위해 어떤 지원책을 펼치고 있나? 보완해야 할 점은?

-보완되어야 할 게 많다. 현직에 있어서 말하긴 좀 힘들지만, 요즘 자살자 수나 유가족의 규모, 자살자로 인해 힘들어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그렇게 많거나 크지도 않다. 예산도 적다. 올해 자살예방정책 편성예산은 291억 원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아주 적은 편이다. 일본만 해도 매년 8000억 원에 이른다. 사실 이런 거 밝히는 거 자체가 공무원들에겐 부담이다. 자살자 수도 옛날 통계는 괜찮지만 최신 자료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예산도 마찬가지다.

▲청소년 자살률이 사상 최고에 이를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전망도 나온다. 가정과 학교가 제1차 보호막이 됐어야 하는데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오히려 온라인 커뮤니티에 모여서 서로 다독였다고 한다. 20대 여성에겐 어떤 사회적 네트워크가 도움이 될까?

-기본 네트워크는 동료 네트워크다. 어른들의 네트워크보다 또래집단끼리의 네트워크가 제일 강력한 도움이 된다. 20대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서로 뭉쳐야 한다. 다양한 주제를 매개로 서로 돕고 연대하고 주장해야 한다. 그런 판을 만들어주는 게 제도다. 정부나 사회단체, 문화단체들이 앞장서서 판을 깔아줘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최근에 ‘시스터즈 키퍼스(Sisters Keepers)’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20대 여성의 자살을 막기 위해 서울시에서 관변으로 만든 모임이다. 자살예방, 심리 상담과 관련된 일자리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턴십 비슷하게 운영한다. 다양한 주제로 이런 모임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20대 여성은 잘 모이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30대, 40대는 자녀 양육문제로 모인다. 그런데 본인의 문제일 때는 잘 모이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비교되거나 루저가 되는 느낌이 싫기 때문이다.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남아있고 정신건강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여전히 낮다. 반면 집단주의 문화는 여전히 강하다.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 쓴다. 우리 사회가 위너와 루저를 나누면서 연대를 어렵게 만드는 것도 문제다. 그래서인지 20대 여성들은 자기끼리의 연대 경험이 적다. ‘미투 운동’으로 이제야 시작되었을 뿐이다.

#청년 주도의 자살예방사업처럼
  스스로 연대할 네트워크가 해법
#10대부터 젠더 교육으로 인식 개선
  일자리·생계 도와줄 정책 결단을 

▲서울시에서 지원 사업을 할 때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등 중앙 부처와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서울시 사업을 포함한 전체적인 지원 정책을 돌아봐야 한다. 지금은 청년들을 끌어내고 조직해서 서로 연대할 수 있도록 함께 호흡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좀 더 문화적으로, 생활적으로 접근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쉽게 말하면 지금 이런 정신보건 사업이나 심리 사업을 하는 40대, 50대들이 10대, 20대들을 끌어내는 방식을 잘 알리가 없다. 1020세대가 직접 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줘야 한다. 물론 실패할 수도 있지만 도와줄 방법을 많이 찾고, 멘토링을 통해 끌어줘야 한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옛날보다 지금이 청년들에게 더 기회를 주지 않는 거 같다. 잔소리만 하고, 왜 이렇게 됐을까. 옛날 어른들은 ‘나는 모른다, 네가 해라’ 이런 태도였는데 요즘 어른들은 ‘내가 좀 알거든’ 이런 차이인 것 같다.

▲얼마 전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에서 토론회를 열었는데 청년들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정책은 어떤 것이었나?

-우리가 지금까지 말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20대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소통 문제다. 소통의 어려움을 일상에서 늘 겪는다. 소위 말하는 베이비부머세대, 40대 중반부터 그 이후 세대의 사람들하고는 ‘얘기가 안 된다’고 느낀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코로나19 때문에 여행 못 가서 너무 괴롭다”고 말하면 어른들은 “지금 코로나19로 사람이 죽는 판에,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 여행이냐” 이런 반응인 거다. 어른들은 ‘밥 중심’이다. 밥 먹을 일을 해야 된다, 밥값을 해야 된다. 반면에 청년들은 밥은 됐다, 내가 하고 싶은 거 즐겁게, 폼 나게 하고 싶다고 한다. 청년들은 ‘폼 중심’이다. 폼 나는 일을, 폼 나게 하면서, 폼 나는 옷을 입고, 폼 나는 곳에 가서 사진 찍고 싶어 한다. 어른들은 가장 큰 고통이 배고픔이다. 청년들은 외로움과 쪽팔림이다. 친구 없는 것, 루저 같은 것. 이렇게 삶의 도식이 다르다. 어른들의 ‘라떼는 말이야’는 어른들의 도식을 청년들한테 강요하는 거다. 시간 낭비, 돈 낭비고 서로 화만 나고 관계만 나빠진다. 청년들이 ‘어른들은 우리에게 기회를 안 준다, 통제 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게 큰 문제다.

▲정부의 자살예방 정책은 장년층·노인 측에 중점을 두고 있다. 20대는 이슈만 제기되고 실질적인 대책은 없는 상황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법적, 제도적 정비는?

-참 공무원스러운 말이지만, 인식 개선이 우선이다. 청년들이 왜 살고 싶지 않고, 청년들이 왜 극단적인 자해-자살을 생각하는지 사회적 공감대를 이루는 게 제일 중요하다. 그 다음에 청년들이 스스로 자살예방운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일본에선 청년단체에 돈을 주고 SNS로 상담해 자살을 예방하게 하는 사업을 했더니 20대 자살률이 2019년엔 20%, 2020년엔 40% 줄었다고 한다. 그걸 본 따서 우리나라도 청소년 대상으로 ‘다들어줄개’ 사업을 실시했다. 20대들에겐 이런 사업이 필요하다. 20대들이 또래를 대상으로 하는 그런 자살예방사업을 정착시켜야 한다. 20대의 취향에 맞게 소셜미디어나 유튜브를 활용하면 더 좋다. 첫째는 이해와 공감대, 둘째는 청년들에 의한 자살예방사업 실행이 필요하다. 그 다음이 일자리를 포함한 사회경제적 지원 정책이다.
그동안에는 청년에 대한 정서적 지원정책이 없었다. 학생/중장년/노인 대상의 사업만 각각 있었다. 올해서야 청년기본법이 만들어졌다. 실제적으로 청년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을 담도록 해야 하는데, 실상을 제대로 모르고 있지 않는가. 주요 내용이 뭔지도 모르고 심지어는 청년의 기준마저 헷갈린다. 그것도 나라마다 상당히 차이가 있다. 어디는 35세까지를 청년이라 하고, 어디는 39세까지라고 한다. 10대부터 25세까지로 한번 끊는 경우도 있다. 연령대를 어떻게 나누든 청년의 관점에서 청년 복지를 실행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가정에서의 노력과 사회적인 인식 변화도 중요할 것 같다.

-희망이 있다는 게 중요하다. 없다고 느끼니까 문제다. 청년들이 스스로 만들 수 있는 희망도 있고, 어른들이 만들어줘야 되는 희망도 있다. 두 가지가 다 잘 안 되고 있다. 교육제도도 안 바뀌고, 가부장적 문화도 남아있다.
한국 사회에 희망을 주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바뀌어야 한다. 먼저 교육 분위기다. 입시 중심의 교육이 빨리 바뀌어야 한다. ‘공부 아니면 안 된다’는 인식과 제도를 바꿔야 한다. 그 다음에는 가부장적인, 남성중심의 사고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많이 제공해줘야 한다. 그래야 희망이 생긴다. 어른들 월급을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청년에게 희망이 없다면 우리 사회는 갈수록 망가진다.
사람들이 그것을 몰라서 안 한다고 하지는 않을 거다. 여러 가지 이해관계와 이권이 있다. 개인이나 기업들이 하지 못한다면 사회적으로 해결해줄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과 같은 논의들이 나오는 이유일 거다. 그러면 세상이 좀 나아질지도 모르겠다. 기본소득이라도 주지 않으면 양극화가 너무 심각해질 것 같다.
한국 경제가 노동 집약에서 기술 집약으로 변화하면서 인공지능, 자율주행, 드론 택배, 로봇 노동이 확대되고 있다. 일자리가 사라지고 노동소득이 사라지면 어떡하나. 그런 시대가 오면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이 분명히 많아진다. 옛날 방식의 단순 노동을 하던 사람들이 단기에 고급·숙련 노동자로 바뀌긴 어렵다. 식당 서빙 하다가 컴퓨터 코딩을 하라고 하면 기본 코딩까지는 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돈을 벌 수준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청년들의 기본권에 관한 문제는 이런 산업구조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려면 좀 더 과감한 정책과 결단이 필요하다.

대담=한은지 기자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중앙대 의대를 졸업하고 '빵과 영혼'이라는 상담센터를 만들어 어려운 이웃과 아이들에게 쉼터를 제공하는 일을 시작했다.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장, 코비드19 심리지원단장을 겸임하고 있다. 또한 대안학교인 ‘성장학교 별'을 설립해 방황하고 상처받은 청소년을 위한 교육 활동을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