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2월 말 이후 한 달간 글로벌 증시는 바닥을 모르고 추락했다. 코스피 지수의 경우 지난 3월 19일 하루 사이에 주가지수가 10%가량 빠져 1431을 기록했다. 전례 없던 폭락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기존 투자자들이 패닉에 빠졌을 때,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 대개 1950년대 후반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로 1980~1990년대에 태어난 세대들은 역발상을 했다. ‘부동산은 망했지만, 주식에서 인생 역전의 기회가 왔구나!’ 이들은 앞 다투어 주식계좌를 만들고 주식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한다. 조선 후기 외세의 침략과 지배층의 학정에 맞서 봉기했던 동학농민운동을 빌어 이들을 ‘동학개미’라 칭하기 시작했다.     
다만 동학개미운동의 한 축이 된 밀레니얼 세대의 목표는 ‘동학농민운동’과는 달랐다. 모두가 평등한 대동세상이 아니라 본인의 경제적 자유를 쟁취하는 것이었다. 코로나19에 따른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주식시장에 뛰어든 동학개미들은 팬데믹 상황에서도 수익을 올리기 시작했다. 11월 10일 현재 코스피 지수는 3월 19일보다 1000포인트 정도 오른 2400선을 기록하고 있다.  현직 경제지 기자이자 밀레니얼 세대인 김슬기 필자는 최근 한국 소설에 반영된 현실과 서울의 부동산값 급등 상황을 넘나들며 또래 세대들이 동학개미로 변신한 맥락을 짚는다. 그리고 기성세대들이 제대로 공감하지 못했던 그들의 속내를 살펴본다. [편집자]      

#팬데믹 증시 폭락 속에 역발상
 동학개미운동 앞장선 밀레니얼
#"돈이 돈을 번다" 자본소득 눈 떠
  최근 소설 속 주인공 삶에 반영
#아파트 키드가 마주친 '양극화'
  부동산값 급등, 양극화 심화에 좌절
#계층이동 사다리 '주식'밖에 없다
  FIRE族의 꿈은 실현될지 미지수

한국 사회 내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기성세대들은 밀레니얼 세대들이 지닌 인생의 목표가 궁금하다. 조직 내에서 보면 그들의 모습이 자신들이 젊었을 때와는 너무나 달라서다. 회사에서의 승진과 출세가 아닌 건 분명하다. 이들의 목표는 기성세대들처럼 입신양명이 아니다. 이른 나이에 경제적 자유를 얻는 것이 우선이다.     

이는 ‘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로 요약된다. 쓸 만큼 돈을 벌어 빨리 은퇴하는 삶. 그래서 월급쟁이보다 블로거와 유튜버를 선망하며 돈이 스스로 돈을 벌어 들이는 구조를 동경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런 동경은 결국 투자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노동소득보다는 자본소득으로 삶의 경제적 토대를 바꾸겠다는 욕망에서다.      

회사에서도 후배들을 보면 더 이상 자기계발서를 읽거나 영어 공부를 하지 않는다.  승진이 자신의 삶을 경제적, 시간적으로 부유하게 만들어주지 않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 부장이나 임원으로 올라서는 것보다 서울에 내 집을 갖고 이를 통해 자산을 늘리는 게 더 성공한 삶임을 그들은 선배들을 통해 뼈저리게 학습했다. 이런 현실은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한국 소설 속 주인공과 그들의 가족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동학개미 앞장선 밀레니얼, 이유는?     

계나와 김지영,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를 탁월하게 보여준 한국 문학의 상징적인 인물들이다. 계나는 2015년 5월 출간한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의 주인공이고 김지영은 2016년 10월 출간한 조남주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이다. 소설의 주제도 흥미로웠지만 서울에서 나고 자란 두 소설 속 주인공과 가족 배경은 밀레니얼 세대를  이해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준다.        

계나는 20대 후반의 여성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금융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안정적인 직장에 애인도 있지만 이른바 달동네 ‘흙수저’ 출신. 계나는 서울 도심 내 달동네였던 마포구 아현동의 재개발 구역 내 빌라에 살고 있었다. 계나의 부모는 동네 재개발 덕에 조합 아파트 입주자격을 얻게 된다. 계나의 부모는 2000만원의 분담금을 더 보태면 전용면적 84㎡(25평형) 아파트 입주권을 가질 수 있다며 직장인인 딸에게 돈을 빌리려 한다. 넓은 평형의 아파트가 훗날 더 집값이 오를 것을 기대해서다. 하지만 계나는 부모의 바람을 무시하고 홀연 사표를 쓴 뒤 호주로 유학을 떠난다. 

소설 속 계나가 만약 부모에게 2000만원을 빌려 줘 25평형 아파트 입주권을 얻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계나의 부모는 달동네 서민이 아니라 17억원에 달하는 부동산을 소유한 중산층이 됐을 것이다. 아현동 재개발 지역은 현재 서울 강북의 신흥 주거지역으로 부상한 일명 마래푸, 마포래미안푸르지오 단지로 변신했다. 마래푸는 지난 2012년 분양 당시 일부 미분양을 기록할 정도로 청약 열기가 뜨겁지 않았다. 당시 25평형의 일반분양가는 7억 4000만 원. 그리고 8년이 흐른 지금 마래푸 25평형은 약 17억 원 정도에 실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82년생 김지영> 속 주인공 김지영의 가족은 계나의 가족과 여러 모로 비교가 된다. 기혼여성인 김지영은 신도시에서 전세로 허덕이며 살고 있지만, 김지영의 부모는 계나의 부모와 달리 운이 좋았다. 가장의 실직에도, 부동산 정보에 밝았던 김지영의 엄마는 전세를 끼고 아파트를 사는 ‘갭 투자’로 번 이익으로 신축 주상복합 빌딩의 미분양 상가를 샀다. 이곳에서 프랜차이즈 식당을 열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데, 여기에 더해 상가 근처 대단지 신축 42평형 아파트를 분양 받는다.   여섯 식구가 살던 빌라를 처분해 잔금을 치르고 온 가족은 새 아파트로 이사했다. 이런 과정에서 세금은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역이 특정되진 않지만, 변두리일지언정 ‘인 서울’이라면 김지영의 부모는 가장의 실직에도 불구, 20억 원이 넘는 부동산 자산을 가진 여유로운 은퇴 세대가 됐을 것이다.

이처럼 두 소설 속 주인공의 가족들의 경제적 격차가 벌어진 이유는 서울의 부동산 때문이었다. 동학개미의 주축이 된 밀레니얼 세대들은 소설 속 계나와 김지영처럼 부동산의 격변이 가족의 미래를 좌지우지했음을 아는 첫 세대들이기도 하다.        

아파트로 갈린 계층 격차     

한국은 2000년대 들어 한 번의 부동산 장기 침체기와 두 번의 장기 상승기를 통과했다. 이 큰 파도가 전 국민의 계층을 갈라버렸다. 금융위기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부양책으로 부동산 경기가 살아난 것이 2015년이었다. 2017년까지만 해도 지방은 침체일로였고, 서울만 완만한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그러던 2017년 5월, 장미 대선이 치러졌다. 압도적으로 승리한 문재인 정부는 취임 일성으로 당시 꿈틀거리기 시작한 서울의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는 선언을 했다.   

  

3년이 지났다. 성적표는 초라하다. 특히 한국 내 지역내총생산(GRDP)의 22%가량을 차지하는 서울의 집값은 충격적으로 올랐다. KB주택가격동향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이번 정부 들어 6억 635만 원에서 올 10월, 9억 2787만 원으로 뛰었다. 3년 만에 53%가 올랐다. 3년 간 시중은행 예금금리가 약 3~4% 수준에서 이제는 1~2% 초반으로 떨어진 것과 비교해보면 서울의 아파트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3년간 자산이 50%가 많아진 셈이다. 역으로 아파트를 소유하지 못했던 이들은 자산의 격차가 더 벌어지는 상황을 그저 지켜만 봐야 했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전국의 아파트 상승률을 평균 내고 그것을 기준 삼아 집값이 수치보다 실제로는 오르지 않았다고 강변하는 정부의 입장이 적어도 서울의 부동산 시장에서는 설득력이 없다는 점이다. 특히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며 대한민국 경제의 동력이 될 밀레니얼 세대의 눈으로 현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접근해야만 이들이 결국 동학개미로 변신했는지 맥락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23번째 부동산 대책이 나왔지만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값 급등에 이어 전세 급등까지 문제는 더 확대됐다. 따지고 보면 첫 단추를 잘못 채웠기 때문이다. 첫 번째 부동산 대책이었던 2017년 8.2 대책에는 황당한 규제가 포함됐다. 국민주택 평형(전용면적 84㎡이하) 아파트 청약의 추첨 물량을 없애고, 가점 물량을 100%로 채운 것이다. 2030세대에게는 아파트 청약이라는 기회가 사라졌다.      

서울 신축 아파트 분양은 적어도 40대 중반에 자녀 둘을 가지고 15년 이상 무주택으로 살아온 이들만 당첨될 수 있는 로또가 됐다. 여기에 서울 등 수요가 몰리는 규제지역에서 집값의 40%까지만 대출을 받는 LTV 규제가 더해졌다. 부모에게 수억 원을 물려받은 ‘금수저’가 아니면 밀레니얼 세대들은 대출을 얻어 아파트를 사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보다 더 한심한 건 실수요자의 구입을 막고, 다주택자의 구입을 장려하는 임대사업자 등록 장려였다. 애당초 다주택자에게는 대출이 필요 없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기 때문에 넘치는 현금으로 아파트를 주워 담기만 하면 된다. 기성세대가 젊은 실수요자가 살고 싶어 하는 중소형 아파트를 쓸어 담자, 아파트값은 한계 없이 올랐다. 밀레니얼 세대의 남은 선택지는 하나 뿐이었다. ‘영끌’(영혼을 끌어 모은 대출)로 변두리라도 당장 집을 사거나, 갭 투자를 하는 것이다. 목돈을 쥐고 있는 다주택 투기자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 절박한 실수요자들이 앞 다투어 집을 사면서, 집값은 폭주하기 시작했다.     

아파트 키드 눈으로 보면 ‘이생망’     

이후 22번의 대책은 방향성이 같다는 점에서 첫 번째 대책과 큰 차이가 없었다. 대출 규제를 강화하고 점점 더 밀레니얼 세대를 벼랑 끝으로 몰아붙였다. 그리고 진짜 지옥은 코로나 쇼크에서 겨우 벗어나던 올여름 찾아왔다. 총선 이후 더 큰 권력을 쥔 여당은 7월, 개인적으로 단언컨대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부동산 대책인 ‘전월세법’을 통과시켰다. 그 탓에 서울 시내의 아파트 단지 전세가 급격히 사라졌다. 전세로 아파트 입주를 노리는 밀레니얼 세대들은 공급의 부족으로 치솟는 전셋값을 보면서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네)을 되뇌일 수밖에 없었다.      

따지고 보면 지금 사회생활을 하는 밀레니얼 세대들은 과거 부모 세대들이 젊었을 때처럼 경제적으로 단순한 상황에서 자라지 않았다. 밀레니얼 세대들의 부모들은 한국 경제가 70~80년대 고도성장기를 겪었던 상황에서 아끼고 저축하면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지금보다 넓고 튼튼했다. 하지만 이들에게서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들은 다르다. 한국 사회는 어느덧 부의 양극화가 화두로 떠올랐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 대다수는 도시의 아파트에서 나고 자라면서 아파트 가격의 부침을 몸으로 '아파트 키드'들이다. 그들은 친구네 집 아파트가 몇 평인지 비교하며 자랐고 그 몇 평의 차이에 따라 집안의 경제력이 차이가 난다는 것을 은연중에 깨달았다. 아파트는 주거형태 외에 자산의 비교 수단이라는 것을 무의식 속에 각인하며 자랐다. 이들은 기성세대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자랐어도 정신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경제적 차별에 시달리며 성장했다.  

기성세대들에게 가난과 역경은 본인의 성공을 빛나게 해주는 훈장이었다. 이제는 아니다. 영화 속 아이언맨도 드라마 속 재벌 2세도 ‘돈 많음’이 ‘재수 없음’을 이기고, 성격보다 재력 자체가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가장 큰 매력인 세상이 됐다.      

밀레니얼 세대, 자낳세? 자낳괴?      

동학개미운동의 주축이 된 밀레니얼을 일컬어 ‘자낳세’(자본주의가 낳은 세대)라 부르는 일간지의 기획 기사도 등장했다. 10대에게는 심지어 ‘자낳괴’(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이란 말이 칭찬의 의미로 쓰이기까지 한다.  

밀레니얼 세대 직장인들이 주축이 된 동학개미들이 과거의 불나방 같은 개미 투자자들과 다른 것은 유튜브와 인터넷 강의에 익숙한 이들 세대가 재테크 공부에도 열심히라는 점이다. 생애 처음 투자로 돈을 벌고 나면 시야가 넓어진다. 토마 피케티가 2013년 발간한 <21세기 자본론>이라는 소위 벽돌책을 통해 증명한 r> g(자본수익률> 경제성장률)라는 공식을 이들은 깨달았다.

부자들이 부자인 이유는 자본을 통한 수익이 크기 때문이다. 이 ‘게임의 법칙’을 알게 됐을 때, 비로소 성실한 노동과 ‘노오력’이 부족해 내가 부자가 되지 못했다는 자조를 마침내 벗어날 수 있다. 동학개미운동은 밀레니얼 세대를 좌절과 절망에만 빠져있지 않고, 10만 년 만에 처음으로 인류를 빈곤의 운명에서 해방시킨 ‘자본주의를 긍정하는 세대’로 탈바꿈 시켰다.     

때문에 ‘밀레니얼은 왜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가’에 대한 보다 진솔한 답은 <한국이 싫어서>의 계나의 독백에서 나온다.      

-이민을 떠나기 전 계나의 꿈은 쉰쯤 은퇴를 하고 제주도에 가서 사는 것이었다. 직접 요리도 하고, 운동도 하고, 책도 되게 많이 읽고, 악기도 배우고, 서울은 1년에 한 번만 올라오는 삶. 그때 가족도 만나고 공연도 보고 친구도 만나고. 그렇게 살다가 예순이 되면 죽는 삶.      

“더 오래 살아서 뭐해? 10년 그렇게 살면 됐지. 가만 생각해보면 지금 그렇게 고생하며 회사에 다니는 것도 예순부터 여든까지 좀 편히 살려고 그러는 거잖아.”     

한국 소설에서 이토록 솔직하게 묘사된 밀레니얼 세대의 은퇴 계획과 꿈을 본 적이 없다. 이들이 파이어(FIRE)족이 되려는 이유는, 동학개미운동에 나선 이유는 부동산 폭등 등으로 부의 양극화가 고착화되는 시대. 본인의 자존을 잃지 않고 안분지족을 위한 꿈이자 몸부림일 수 있다. ‘돈독이 올랐다’며 밀레니얼 세대들을 한탄하기 전에 기성세대들이 유념해야 할 지점이다.         

흙수저로 태어나 성실하게 살았던 계나가 ‘한국이 싫어서’ 호주로 떠난 지도 6년이 지났다. 지금은 서른 중반이 되었을 그녀에게 문득 묻고 싶어진다.           

 “너는 그 꿈에 한걸음이라도 더 가까워졌니?”


 김슬기 필자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 30대 직장인. 2008년부터 매일경제신문 문화부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 대중문화, 공연, 미술, 출판, 문학 등 다양한 장르를 다뤄왔지만, 책 기사를 가장 많이 썼다. 어렵다고 꺼려하는 경제경영서에 관한 기사를 오랫동안 써온 덕분에, 구조적으로 가난해진 밀레니얼 세대와 이들이 이끈 동학개미운동에 관한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