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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의 ‘지식 책장’] 역사 속 팬데믹이 전하는 네 개의 교훈   

By | 2020년 11월 7일 | 위크엔드 컬처

스페인독감이 창궐했던 1918년 미국의 시애틀.
스페인독감 감염을 막기 위해 마스크를 쓰지 않은 승객은 전차를 타지 못하도록 했다. (사진=황금시간 제공)

<피렌체의 식탁>은 창간 2주년을 계기로 주말판 ‘위크엔드 컬처’를 선보인다. 오피니언 리더들이 한 주의 긴장을 풀고 느긋하게 인문학과 지식, 문화의 시간을 즐기도록 하기 위해서다. 토요일 아침에 찾아가는 주말판은 기존 매체와 다른 맛과 멋을 드리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위크엔드 컬처’의 새로운 필자로 합류한 표정훈 작가는 서강대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탐서주의자의 책>, <책은 나름의 운명을 지니다>,<철학을 켜다>,<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등의 책을 썼으며 한양대 특임교수,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강사로 강단에 섰다. 출판계에서는 2만권의 책을 지닌 장서가로도 유명하다. 표 작가는 ‘지식 책장’이라는 연재를 통해 지성의 흐름을 선도하는 출판계와 학계의 소식과 함께 동시대 지식인들이 챙겨야 할 문화적 소양을 전한다 [편집자]

#코로나19, 21세기 2번째 팬데믹
  전염병 관련 책들, 서점가서 주목
#역사의 흐름을 바꾼 전염병 사례들
  교역과 방역, 과거에도 쟁점
#전염병과 공존은 인류의 화두
  사회적 연대, 일상의 방역 힘써야

팬데믹(pandemic)은 세계보건기구(WHO)의 전염병 경보 단계 중 최고 위험 등급인 6단계를 뜻한다. 그리스어로 ‘pan’은 ‘모두’, ‘demic’은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했다. WHO에 따르면 팬데믹은 두 개 이상 대륙에서 전염병이 발생하여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사망자가 많이 발생하는 ‘감염병 세계 유행’ 상태다.

팬데믹과 그것이 초래하는 사회적, 문명사적 변화에 대한 담론은 ‘현재와 미래’에 관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는? 인류는 과거에도 팬데믹을 겪곤 하였다. 과거로 올라갈수록 세계의 연결성과 기술 수준이 지금처럼 밀접하지 않았기에 양상과 범위가 많이 달랐다. 전염병의 ‘과거’, ‘과거’의 전염병에 주목한 책들이 ‘코로나19의 해’로 기록될 2020년 들어 예전보다 자주 출간되고 주목받는 일도 잦아졌다.

혐오·차별을 확산시키는 팬데믹

독일 출신 역사학자이자 의사 로날트 D. 게르슈테는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강희진 옮김, 미래의창, 2020년 3월 발행)에서 역사 속 중요 인물들의 질병이 역사의 흐름에 미쳤을 법한 영향을 흥미롭게 서술하면서, 전염병 대유행의 역사적 영향도 되짚는다.

예컨대 유럽의 페스트 대유행이 남긴 역설은 이렇다. 유렵 전역에서 인구가 급감한 뒤 살아남은 사람들은 사회·경제적 상황이 호전되는 이점을 누렸다. 노동력 부족으로 노동에 대한 보수가 높아졌고 식량 부족을 걱정할 필요도 줄어들었다. 팬데믹은 어느 시대든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흑사병이 급속도로 확산되자 사람들은 앞 다투어 희생양 찾기에 나섰고, 그런가 하면 세상이 저지른 죄를 대속하기 위해 채찍질하는, 이른바 ‘고행자’를 자처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중세는 종교의 힘이 강해 페스트가 진노한 신이 세상에 내리는 벌이라고 믿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신을 분노하게 만든 이들을 색출하여 벌하고 싶은 인간의 본능도 어김없이 고개를 들었다. 광신도들의 목표가 된 이들은 이번에도 유대인들이었다.” (p.51)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 행동이 늘고 있는 유렵과 미국의 현실을 떠올리게 만든다.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 초기였던 지난 2월 13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오슬로대 박노자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개인적으로 아는 한국 연구자들이 네덜란드에 출장을 가서 암스테르담 길거리에 있는데 현지인 청소년들한테 ‘코로나가 온다’ 손가락질 당했다. 유럽에선 코로나19를 둘러싸고 혐오와 인종주의의 광란이 춤추고 있다.”     

방역을 위한 격리·봉쇄와 무역·교류의 상충

19세기 중반 유럽의 콜레라나 아메리카 대륙의 황열병 확산 뒤에는 노예무역을 비롯한 국제교역과 노동 이주, 성지순례 등이 있었다. 국민 건강과 자유무역의 상충이라는 상황이다. 옥스퍼드대 의사학(醫史學) 교수 마크 해리슨은 <전염병, 역사를 흔들다>(이영석 옮김, 푸른역사, 2020년 5월 발행)에서, 풍토병이 세계사적 문제로 등장하게 된 배경에 무역이 있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경제 활력 유지와 감염병 방역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이율배반적인 과제다. 과거에도 그러했다. 감염원으로 지목된 물품을 갖고 다니는 사람들의 접근을 금지한 1348년의 피스토야 칙령을 비롯하여 마르세유(1383년), 피사(1464년), 제노바(1467년) 등이 페스트 위협에 바닷길을 봉쇄했다. “공공선을 위해 상인들의 이익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암묵적인 동의”에 따라 격리 및 위생 보호 조치가 내려지곤 했다.

이에 대해 상인들은 격리, 봉쇄의 완화 혹은 철회를 요구했다. 1582년 세비야 보건위원회가 역병에 감염된 도시와의 상거래를 금지했을 때 상인들은 “버티기 어려운 손실과 타격”을 걱정하며 제한 완화를 요청했다. 반면 상업 세력이 강했던 함부르크는 1832년 콜레라 유행에도 전년도에 시행한 격리 조치를 해제했고, 1848년 콜레라가 재발 했을 때는 이를 막기 위한 조치를 거의 취하지 않았다.

해리슨 교수는 “불필요한 공포심 조장은 경계하라”고 조언한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심은 공동체의 가치를 한순간에 무너뜨리며, 약한 대상에게 공격성을 드러내기 때문. 또한 한국어판 서문에서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각국의 대응은 19세기로 되돌아간 느낌”이라고 지적한다. 

국제 협조의 정신은 사라지고 각국은 국경 폐쇄, 무역 중단 등 ‘격리’를 통한 방역에 몰두한다. 해리슨 교수는 “새로운 전염병이 간헐적으로 출현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하면서, “불필요한 혼란과 경제적 피해를 줄이려면 국제 공조를 통해 새로운 방역 방식과 제도를 창출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완전한 박멸이 아니라 공생이 답이다

질병은 박멸만이 답이 아니라면? 인간이 질병에 적응해 살아가듯 질병 역시 그 나름의 방식대로 인간에 적응하며, 그 과정에서 공존의 길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감염증 예방 및 정책 전문가인 일본 나가사키대학 열대의학연구소 교수 야마모토 타로는, <사피엔스와 바이러스의 공생: 코로나 시대에 새로 쓰는 감염병의 역사>(한승동 옮김, 메디치미디어, 2020년 11월 발행)에서 ‘그렇다’라고 말한다. 

지금 상황에서 듣기 불편한 주장일 수도 있겠다. 홍역과 결핵의 발병률이 과거보다 떨어지는 건 인간이 병에 적응하듯, 병도 인간에 적응하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존속하기 위해서라도 숙주인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파괴하지 않으려 한다.

야마모토 교수는 감염병이 완전히 근절되면 과거 감염병에 대항해 만든 면역체계와 유전자도 함께 도태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공생까지 도달하는 데는 희생의 비용이 따르지만, 바이러스와 공생하는 길을 찾지 않으면 더 큰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것. 야마모토 교수의 다음과 같은 ‘맺음말’의 울림이 크다.

“감염병이 없는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은 파멸적인 비극의 막을 열기 위한 준비 작업이 될지 모른다. 대참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공생’적 사고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이제껏 이뤄진 적응들이 하나같이 결코 ‘기분 좋다고는 할 수 없는’ 타협의 산물이었으며, 어떤 적응도 완전하고 최종적인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리라. 기분 좋은 적응은 다음에 올 비극의 시작에 지나지 않을 것이므로.”      

작고 일상적이면서 영웅적인 행동

20세기에 인류가 겪은 가장 큰 팬데믹인 ‘스페인 독감’(1918~1919년)에 관한 책으로,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역사 저술가 캐서린 아놀드의 <팬데믹 1918>(서경의 옮김, 황금시간, 2020년 9월 발행)이 있다. 

원서 <Pandemic 1918: Eyewitness Accounts from the Greatest Medical Holocaust in Modern History>는 2018년에 처음 출간됐지만 2020년 5월 증쇄본이 나오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저자 자신도 ‘한국어판 서문’에서, “책을 쓸 무렵에는 이 책이 이토록 시의적절한 것이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라고 말한다. 아놀드는 특히 팬데믹에 고통받은 사람들과 대처하기 위해 분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전한다. 당시 의료진들은 지금과 비교하면 상상도 못 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헌신했다.

책에 인용된 존 옥스퍼드 교수의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보통 사람들의 작고 일상적이면서도 영웅적인 행동이었다. 1918년에는 영웅적인 행동이 (제1차 세계대전) 서부 전선보다 가정 전선에서 더 많이 있었다.”     

팬데믹이라는 오래된 미래의 교훈

팬데믹의 과거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네 권의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첫째, 팬데믹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든 혐오와 차별, 나아가 불평등의 확대와 심화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에 대처하는 정부와 사회의 노력이 절실하다. 

둘째, 감염병 방역을 위한 격리·봉쇄는 세계의 연결성을 차단하면서 교역과 교류를 훼손시킬 수 있다. 이 상충하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 공조를 굳건히 해야 한다.

셋째, 감염병 바이러스의 완전한 박멸과 근절이라는 최종적, 근본적 목표에 연연하기보다는 그것과 공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넷째, “몸은 멀리, 마음은 가까이”라는 방역 슬로건에서도 볼 수 있듯 사회적 연대의 정신이 중요하며, 각자의 일상에서 방역을 위해 애쓰는 것이 중요하다. 전염병 또는 팬데믹은 인류 역사에서 반복해온, 앞으로도 반복할 오래된 미래다.


표정훈 필자
작가. 서강대 철학과 졸업. 한양대 창의융합교육원 특임교수,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강사 역임. <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 <철학을 켜다>, <탐서주의자의 책> 등의 저서와 <중국의 자유전통>, <젠틀매드니스>(공역) 등 번역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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